Magazine_2024/24호_회복

24호_회복된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 또바기

밍기적_ 2024. 8. 29. 07:00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신체적으로 아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소한 상처나 감기부터 수술까지.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허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 유아기 때부터 툭하면 코피를 쏟곤 했으며, 워낙 왈가닥이었던 유년시절에는 밖에서 뛰어놀다 다쳐오기 일쑤였다. 그 덕에 각종 질병이나 고통에 면역이 생겼는지 성인이 된 이후로는 감기조차 웬만해선 겪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그런데 올 한해 들어서는 여러 통증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자주 병원을 찾게 되었다. 오른쪽 하체에만 해도 슬개건염부터 차례대로 족저근막염과 건초염을 진단받았고, 몇 달 지나서는 왼쪽 발목에도 염증이 생겼다. 고통이 없었던 게 아니라 고통에 무뎌져서 아픈 줄도 몰랐던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 만성염증이 되어있었고, 그 탓에 6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상태가 훨씬 괜찮아져서 최근에는 의사 선생님께서도 치료가 곧 끝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다들 살아가면서 조금씩 아팠다가 회복했다가, 또 아팠다가 회복했다가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팠다가 회복을 하는 삶이 아니라, 고통이 영원히 낫지 않는 삶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 경험이 하나 있다. 두 달여 전, 난소 낭종 파열로 인해 난소에 피가 고여 있어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5월의 마지막 날인 그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녁을 먹기도 전에 배가 아파 약을 먹고 누워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복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10시 반 즈음이었을까, 잠시 몸을 일으키니 어지러움과 동시에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빈속이라 그런가 싶어 황급히 물도 마시고 집에 있던 초콜릿과 달달한 과자를 한두 개 집어먹었다. 곧 식은땀과 어지러움은 멎었으나 복통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아무래도 응급실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숨을 쉬는 것도 미세하게 버거웠다. 문제는 응급실을 찾았지만 입원 접수가 불가능하여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도중 호흡이 급격하게 가빠져 쓰러지기도 했다. 호흡을 고르고 어찌저찌 병원을 찾아 입원 접수를 한 이후에는 역설적이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숨이 더 가빠짐과 동시에 어지러워서 앉아있는 게 버거웠고, 그러다 숨을 헐떡일 지경이 되어 병원 땅바닥에 눕고 구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원래라면 대기를 더 해야 했을 듯한데, 그 덕분인지 바로 병상에 누울 수 있었다. 이후 CT를 찍고 병명을 진단받은 뒤, 수술 전 고지내용을 듣고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병실로 온 게 새벽 6시 즈음이었다. 끔찍하게도 길었던 밤이었다.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던 당시의 경험에서 생각해보게 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안락사였다. 아픔의 원인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로 입원할 병원조차 찾기 힘들어 고통이 지속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심각한 질병이라 이대로 쭉 고통스럽기만 하고 고칠 방법이 없다면? 치료가 불가능하여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면 고통이라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죽음을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필자의 경우에는 치료가 가능한 증상이긴 했지만, 회복에 대한 희망이 없는 환자들이 고통을 느끼는 심정이 어떨지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의 치료가 무의미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현재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각주:1]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말하자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인 것이다.[각주:2]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은 이들은 본인의 의사를 명시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나 말기환자의 경우 담당의사와 상의를 한 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고, 그 외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 방문한 뒤 상담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본인의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3년도 10월 기준으로 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 수가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각주:3] 참고로 연명치료에 대해 미리 작성해둔 문서가 없으면서 식물인간이 되는 등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가족 전원이 동의하거나 가족 중 2명 이상이 환자가 의사표현이 가능했던 당시 말했던 내용을 동일하게 진술할 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각주:4]

- 연명의료계획서 및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각주:5] -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연명의료 중단’은 필자가 생각해보았던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나라마다 이런 용어들을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통일시켜둔 개념 분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한국의료윤리학회지[각주:6] 및 법무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각주:7] 를 참고하여 필자는 안락사를 행위의 성격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하고, 전자를 다시 실행 주체를 기준으로 ‘직접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로 나누는 정의만을 사용하고자 한다. 즉, 소극적 안락사(③)는 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함으로써 그 결과로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인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적극적 안락사를 ‘의사가’ 시행하면 직접적 안락사(①), ‘환자가’ 스스로 할 경우 간접적 안락사(②)로 볼 것이다. 이러한 개념 구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명의료중단제도는 소극적 안락사(③)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존엄사’라는 개념 역시 여기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연명의료중단이나 존엄사 모두 단순히 안락사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소극적 안락사 대신 사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의사조력자살’이라는 개념은 간접적 안락사(②)에 해당된다.

적극 소극
직접 간접
① ‘의사’가 약물 투여 ② ‘환자’가 스스로 약물 섭취
(=의사조력자살, 의사조력사)
③ 생명유지장치 제거/중단
(=연명의료 중단)

  안락사의 개념이 각 단계별로 세분화되어 구분될 수 있는 만큼 안락사 자체를 모두 거부할지, 혹은 허용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의 허용 여부에 대한 논쟁이 과거부터 존재해왔는데, 1997년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각주:8] 으로 인해 관련 논의가 다소 위축되었다. 사건 당시 머리를 다친 환자가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서 호흡보조장치를 부착한 채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환자의 부인이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을 요구했다. 의료진들은 환자가 그대로 퇴원할 경우 호흡이 어렵게 되어 사망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설명과 만류를 하였음에도 환자의 부인이 계속된 퇴원 요구를 하여 환자를 퇴원시켰다. 환자는 결국 퇴원 후 집에서 호흡정지로 사망하였고, 환자의 배우자와 의료진들은 모두 살인을 방조하였다는 죄를 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는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들이 치료 중단을 원하더라도, 그리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라 하더라도 치료를 멈출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그 흐름이 바뀌게 된 사건이 2008년에 발생하였다. ‘김 할머니 사건’[각주:9] 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 당시 만76세였던 김 할머니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김 할머니의 자녀들이 인공호흡기와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였으나 병원 측에서 거부하였고, 이에 자녀들이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2016년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해당 법률에 근거하여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나 안락사의 단계까지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의 나라들과 달리, 연명치료 중단의 방식으로써만 예외적으로 개인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여 안락사의 인정범위를 가장 좁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자 역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만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연명의료중단은 ‘임종과정에서’ 치료효과 없이 단순히 임종과정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각주:10] 다시 말해, 증상 악화 속도와 예상 잔여수명을 기준으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 환자’를 개념적으로 구분하여 말기 환자를 제외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을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자로 지정해두고 있는 것이다.[각주:11] 말기 환자의 경우 추후 상태가 급속히 악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은 후, 앞에서 말했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을 뿐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환자에 대한 이러한 구분에 대해 의료 현장에서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료진이 임종기와 말기를 구분해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우며, 나아가 결정행위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떠안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각주:12] 그리고 말기환자들 중에서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들은 연명의료중단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의 한계로 인해 고통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실정인 것이다. 이는 결국 환자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도록 하거나 법제화된 제도를 통한 경로가 아닌 길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소극적 행위로서의 연명치료중단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지난 5일, 국회에서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지난 22년도에 발의되었다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인해 폐기[각주:13] 된 데 이어 다시 발의된 의안이다. 해당 법률안의 내용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 골자로 하고 있다. [각주:14] 의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조력존엄사’는 존엄사라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본다면 앞서 정리한 안락사의 개념 분류 중 적극 ‧ 간접적 안락사(②)로서 ‘의사조력자살’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국민들의 현재 인식은 어떨까? 우선 법률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면 국민의 약 82%가 조력존엄사 입법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찾아본 바로는 한국리서치에서 2022년 7월에 조사한 조력존엄사 입법화 찬반 결과 [각주:15] 를 토대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해 전인 2021년에 서울대병원 교수팀에서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각주:16] 에서는 응답자의 76.3%가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하였고, 한국리서치에서 올 5~6월에 진행한 인식 조사결과[각주:17] 에서는 존엄사법 찬성 84%라는 결과를 보였다고 하니, 그 수치는 해가 지날수록 높아져온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은 지금의 소극적인 연명의료중단을 넘어서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대상자의 범위 역시 말기환자로 넓히고자 하려는 활동의 일환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법률안이 통과된다면 의료진들이 말기 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구분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조력존엄사를 시행한 의료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죄를 묻지 않는다는 면책조항도 있으므로 ‘보라매병원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의료자원을 다른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해질 것이다. 어쩌면 간병인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과 간병 부담도 덜 수 있어 거의 해마다 한두 건씩은 발생하는 간병살인[각주:18] 을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력존엄사법의 발의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개인에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허용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런 점에서 법률안의 주된 이유이기도 한 ‘개인의 권리 신장’이라는 의의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력존엄사법이 통과된다면 해당 법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조력존엄사가 가능한 환자들을 상대로 의도적인 살인을 조력존엄사로 포장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것이 기우에 불과한 상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유사한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나기도 했다.[각주:19] 또한 조력자살을 허용하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 안락사까지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책이 시행될 경우 그에 따른 이해관계자가 생겨나게 되고, 정책의 지속과 확대를 요구하게 되어 일반적으로는 범위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각주:20] 나아가 심지어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안락사까지 허용되어 안락사가 악용될 여지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고통’이라면,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고통과 달리 취급해야 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나치 정권하에서 시작된 안락사 정책은 중증 장애인이나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그 대상이 확대되어 정신질환자, 유대인, 로마인 등까지 포함되었고, 대량 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더하여 조력존엄사법의 시행은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 [각주:21] 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전체 자살률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낳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력존엄사가 시행될 경우, 아무리 본인이 조력존엄사를 선택하겠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진정 자발적인 결정일지에 대한 의문도 남을 것이다. 조력존엄사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풍토가 된다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조력존엄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은밀한 강제성은 오히려 개인이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지 않고자 하는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어보았을 때 여러분의 입장은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는가? 찬반 주장이 너무나도 팽팽히 맞서는 의제라 입장을 결정하기 어려운가? 필자가 정리해둔 의견에 이어 각 찬반 논거들을 서로 반박하며 이어나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해보겠다. 본인이, 부모님이, 친구가, 연인이, 혹은 주변 지인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아래는 가상의 두 인물, A씨와 B씨의 상황이다. 각 인물들의 상황에 몰입해보길 바란다.

  내 이름은 A이다. 나는 말기 암 환자로, 매일 밤낮으로 견디기 힘든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마치 내 몸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통증이 반복되니 살아갈 의지는 더욱 더 사라져 가고 있고, 이제는 그저 누군가 제발 나를 죽여줘서라도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심정이다. 암 진단을 받은 후로 내가 없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도 하고, 장례 절차나 상속 등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확정을 지었다. 그래서 더 이상 걱정할 거리도 없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은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 가족들과 보내는 순간들을 최대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충분히 했다고 생각해 이제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다. 미련이 남았다 한들 낫는다는 희망이 없으니 어차피 손 써볼 도리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의료진은 진통제가 혈압을 낮춰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며 진통제조차 처방해주지 않는다. 죽는 순간이 오기까지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고통만이라도 줄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니. 무척이나 괴롭고 분통이 터진다. 나는 이미 고통으로 지쳐서 너덜너덜해졌는데, 그마저도 덜어줄 수 없다는 현실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을 금지하고 있는 법이 정말 원망스럽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조력존엄사법이 왜 도입되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괴롭기만 하다.


  나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혼자 살고 있는 B이다. 자식이 있긴 하지만 나를 그리 자주 찾아오거나 연락을 주지는 않는다. 자식들도 본인의 생활이 있고 인생이 있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평소에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외로움을 달래 왔다.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잠깐 앉아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한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봄이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풀과 꽃들의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푸른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면서 내 속을 충만하게 채워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행복을 주는 이런 시간들도 결국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일상생활이 상당히 어려워졌는데, 자식들은 은연중에 내가 조력존엄사를 택하길 원하는 기색을 비치곤 한다. 자식들에게 언제까지고 돈만 축내는 짐처럼 보이기 싫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내 나이쯤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조력존엄사를 선택한다. 사실 나는 최대한 오래 살면서 사소한 순간들에 기뻐하고,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삶의 의미를 더해가고 싶은데. 하지만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 법은 대체 왜 통과가 된 걸까. 법만 없었더라도 내가 스스로 내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모순적이지만 내가 선택하면서도 나의 의지가 아닌 선택을 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

 

  조력존엄사법의 시행 유무로 인해 달라지는 두 인물의 상황을 그려보니 어떤가?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법이 뻗는 손은 결국 비중이 좀 더 있는 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반드시 결정을 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의 상황 중 누구의 상황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한 이유는 결국 이 법률안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해당 법의 적용으로 인해 ‘당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아무리 인간이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실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느끼는 괴로움을 제3자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일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의 의견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의제는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살펴봐야 하는 만큼 대상자들의 이야기에―가령 말기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귀를 좀 더 기울여봐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각종 찬반 논거의 타당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그에 비해 앞서 언급했던 각종 여론조사 설문결과는 모두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900~1,000여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에서 2022년에 조사한 여론조사결과[각주:22] 역시 일반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여기서는 심지어 다른 조사결과들과 상반되게 응답자의 약 80%가 조력존엄사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난 것도 그렇고 의견 수렴의 대상자도 충분치 않아 보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당장 조력존엄사 법률안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생명과 직결된 내용의 법률안인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력존엄사법이 법의 적용 대상자들에게 꼭 필요한 법이라 하더라도 그 악용 가능성에 대해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적어도 해당자들의 의견을 보다 다양한 기관에 의해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수렴하고,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려는 논의도 충분히 한 뒤에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한번 해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조력존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한번 진지하게 본인의 입장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는 때는 그와 모순되는 죽음을 생각할 때니 말이다.

 

- Fin.


  1. 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제4호에 따른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으로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혈압상승제 투여, 혈액투석, 수혈 등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생명윤리정책과, “연명의료결정제도”, 보건복지부, 2024. 7. 18.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3040200 [본문으로]
  3. 생명윤리정책과 이신영,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참여자 200만 명 달성”, 보건복지부, 2023. 10. 12., https://www.mohw.go.kr/synap/doc.html?fn=1697072945671_20231012100905.pdf&rs=/upload/result/202408/ [본문으로]
  4. 연명의료결정법 제17조 제3호 및 제18[시행 2024. 6. 14.] [법률 제19466, 2023. 6. 13., 일부개정] [본문으로]
  5.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규칙 별지 제1호 및 제6호서식 [시행 2024. 6. 14.] [보건복지부령 제1018, 2024. 6. 14., 일부개정] [본문으로]
  6. 최경석, "자발적인 소극적 안락사와 소위 '존엄사'의 구분 가능성," 한국의료윤리학회지 12, no. 1 (2009): 61-76, https://doi.org/10.35301/ksme.2009.12.1.61. [본문으로]
  7. 이승준, “의사조력자살에 가담한 의사의 자살방조행위는 면책될 수 있는가?” 형사정책연구 33(4) (2022): 1-38. 10.36889/KCR.2022.12.31.4.1 [본문으로]
  8. 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995 판결 [살인(인정된 죄명 : 살인방조살인] [본문으로]
  9. 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거등] [본문으로]
  10. 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제5[시행 2024. 6. 14.] [법률 제19466, 2023. 6. 13., 일부개정] [본문으로]
  11. 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제1~3[시행 2024. 6. 14.] [법률 제19466, 2023. 6. 13., 일부개정] [본문으로]
  12. 김주연, “안락사, 존엄사 등 중구난방조력존엄사법 앞서 용어부터 정립“, 청년의사, 2022.09.17.. http://www.docdocdoc.co.kr [본문으로]
  13. 안규백 의원 등 12[의안번호 2115986]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의안정보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D2T2G0V5I2T6C1U1L3E1I2D8W5Y4Z2&ageFrom=21&ageTo=21 [본문으로]
  14. 안규백 의원 등 11[의안번호 2201412]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 의안정보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P2Y4V0U6C2B1Y0U9U0R5A5J7I3F7B4 [본문으로]
  15. 권윤지, "자기결정권 보장"국민 82%, 조력존엄사 입법 찬성, 복지타임즈, 2022714.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13

       최성훈, 조력 존엄사, 국민 82%찬성품위있는 죽음 맞이하고 싶어”, 한의신문, 2022715, 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49892 [본문으로]

  16. 박은식, 주삿바늘·기도관으로 연장하는 삶은 존엄한가, 신동아일보, 2023810, https://shindonga.donga.com/society/article/all/13/4325269/1 [본문으로]
  17. 이동휘 ,"삶과 죽음,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조력존엄사 필요" 10명 중 8명 이상, 한국일보, 202476.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0317520001824?did=NA [본문으로]
  18. 간병살인은 간병하는 사람이 오랜 간병생활에 지쳐 간병을 받는 이를 살해하거나 의도적으로 방치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에서 판결문 분석을 통해 집계한 우리나라 간병살인 건수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총 371(살인미수 포함)에 이른다고 한다. 이후로도 뉴스에 보도된 것만 2016년과 2018년 경기도에서, 2019년 부산에서, 2021년 대구 및 인천에서, 2022년 시흥 및 인천에서, 2023년 부산에서, 2024년 태안과 양산에서 간병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본문으로]
  19. 김회경, 돈 받고 난치병 환자 안락사시킨 의사들 '우생 사상' 충격, 한국일보, 202072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2411320002054 [본문으로]
  20. 대표적으로 연금 제도의 확대, 의무교육 기간 연장, 무상교육 확대, 정보 공개 정책 확대 등이 있다. [본문으로]
  21. OECD (2024), “Suicides”, in Society at a Glance 2024: OECD Social Indicators, OECD Publishing, Paris, 100-101, https://doi.org/10.1787/42e38a47-en

       Oh Seok-min, "S. Korea reports highest suicide rate, ultra fine dust level among OECD nations: data", Yonhap News Agency, 2024. 4. 25., https://en.yna.co.kr/view/AEN20240425005200320 [본문으로]

  22. 송수연, 국민 81% ‘조력존엄사법 반대’…“연명의료 안받겠다” 82%, 청년의사, 2022년 8월 1일,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612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