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_2024/24호_회복

24호_회복의 의미 / 망

밍기적_ 2024. 8. 30. 07:00

회복의 의미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알아보는-

 

 회복이란 뭘까? 한자로는 回復으로, 회回자와 복復자 둘 다 ‘돌아가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 그런데 돌아간다는 건 돌아갈 곳, 즉 떠나온 어딘가가 있다는 의미겠지? 그래서 사전을 뒤져보면 회복에 대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라고 풀어서 설명하고 있어.

 그럼 원래 상태라는 건 뭘까? 참 생각이 많아지는 단어야. 건강을 생각하면 쉬워지기도 하고. 감기에 걸렸다가 낫거나, 어딘가 부러졌다가 낫거나 하면 건강을 회복했다고 하잖아. ‘원래의’ 건강 상태라는 건 있나봐. 그렇지만 최근에 본 영화를 생각하면 이 회복이라는 뜻이 참 복잡하게 느껴져.

 바로 6월 12일 한국에서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2>때문이야. <인사이드 아웃2>가 개봉하면서 전편인 <인사이드 아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다시 부활했지. 오늘 이 글에서 다룰 이야기도 <인사이드 아웃>에서 출발해! 아직 <인사이드 아웃>조차 보지 않은 친구라면 스포일러에 주의하라구~

 

감정을 잃은 주인공이 회복하는 이야기!

 <인사이드 아웃>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의 다섯 가지 감정이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해. 감정들은 주인공인 11살 꼬마 라일라의 머릿속 본부에 살면서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상황을 인식해. 외부 상황에 따라 기쁨이가 본부의 제어판을 만지면 라일라는 기쁘게 반응하고, 슬픔이가 제어판을 만지면 라일라는 슬프게 반응하지.

 영화 속 주인공 라일라의 머릿속에 사는 기쁨이는 감정 친구들 중에서 슬픔이의 존재 의의를 이해하지 못해. 즐겁기만 해도 부족한 하루에 슬퍼할 겨를이 대체 어디 있냐는 거야! 슬픔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망치기만 해. 그래서 슬픔이에게도 최대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지. 그것 때문에 슬픔이와 아웅다웅하다가 둘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려. 이게 뭐가 문제냐면,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더 이상 제어판을 조종할 수 없어졌다는 뜻이야! 즉, 라일라는 더 이상 기쁜 반응이나 슬픈 반응을 할 수 없어졌어..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이와 슬픔이가 다시 본부로 돌아와 라일라가 감정을 되찾는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둘이 아웅다웅한 이유는 기억 구슬 때문이야. 기억 구슬 이야기부터 해볼까? <인사이드 아웃> 세계관 속 기억 구슬이란 감정 친구들이 제어판을 조종해 상황에 반응하고 나면 생겨나는 것으로 해당 반응을 이끌어 낸 각 감정 친구들의 대표 색을 띄고 있어. 예를 들어, 버럭이가 반응을 해서 생성된 구슬이라면 버럭이의 대표 색인 붉은 색을 띄고, 까칠이가 반응을 해서 생성된 구슬이라면 까칠이의 대표 색인 초록색을 띄고 있어.

 11살의 라일라의 성격은 기쁨이의 노란색 기억 구슬들로 구성되어 있었어. 그러나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라일라는 고향 미네소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지. 전학을 간 후 라일라가 겪어야 했던 일(기존의 친구와 멀어지고, 마음에 쏙 들진 않지만 낯선 곳에 적응해야 하고, ..등등의 일들 말이야.-전학을 한 번 이상 가본 관람객들은 여기에서 라일라의 혼돈에 많이들 공감했다고 하더라구.) 때문에 슬픔이가 제어판을 만졌고, 그에 따라 생긴 푸른색 기억 구슬이 라일라의 성격을 구성하는 주요 구슬이 되려는 찰나에 기쁨이가 이걸 방해하면서 슬픔이와 아웅다웅하고.. 그러다 바람 같은 것에 날려 훨훨.. 본부에서 멀어지고 만 거지.

 어쨌든, 기쁨이라는 감정으로도 슬픔이라는 감정으로도 반응할 수 없게 된 라일라는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부모님한테 대들기도 해. 그러다 버럭이가 제안하지. “우리의 기쁜 기억들은 전부 미네소타(전학 오기 전 살던 지역)에 있어. 그러니까 미네소타로 돌아가자!” 이 말은 곧, 알지? 가출하자는 거지!

 11살의 라일라가 가출이라는 결정을 한다는 건 큰일이야! 기승전결 중에서도 전轉이라구! (느낌표를 연달아 쓰니 정말이지 버럭이가 된 기분인걸?!) 갈등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대목이야. 영화를 감상하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다들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야.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없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기쁨이와 슬픔이는 자신들이 제어판 앞에 있어야 된다는 걸 알고 부던히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돌아간다는 말이 오늘의 시작부터 나왔었지? 이걸 한자어로 하면 ‘회복’이 된다는 걸. 맞아. <인사이드 아웃>은 주인공 라일라가 잃었던 감정을 회복하는 이야기야. 물론 라일라가 기울인 노력은 없지만!..(;;)

 전부 기쁨이와 슬픔이의 노력이었지. 돌아가는 과정에서 기쁨이는 삶에 왜 슬픔이라는 감정 친구가 필요한지를 깨닫고(오늘 이야기에서 크게 중요하진 않으니 넘어갈게), 함께 돌아가려고 방법을 찾아내. 미네소타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기쁨이가 제어판이 있는 장소(본부라고 부르기도 해.)로 돌아와 라일라의 반응을 조종해서 버스에서 내리도록 만들어. 그렇게 라일라는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한 단계 성장하지. 바로,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말야. 기쁨이가 슬픔이의 존재 의의를 이해하고 난 뒤, 라일라가 다시 부모님과 만났을 때 ‘부모님을 만나 기쁘다’는 감정을 느껴 본인도 제어판을 만졌지만, 어쩐지 모르게 느껴지는 슬픔 감정에 슬픔이에게도 제어판을 만지게 해 줘. 그러면서 기억 구슬은 기쁨이의 노란색과 슬픔이의 푸른색을 동시에 띄는 새로운 형태로 생성되지. 복잡다난한 감정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야.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이야, 그래. 해피엔딩인 이유는, 라일라가 원래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일까?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서, 돌아온다는 건 뭘까?

 오늘의 시작에서 ‘회복이라는 뜻이 참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 라일라는 지나친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돌아왔어. 하지만 원래 상태로 돌아오진 않았지. 11살의 라일라는 삶에서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다섯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 성장했지. 이전 상태와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그래서 ‘원래의’ 상태라는 기준도 참 모호하기도 해. 원래 상태라는 건 뭘까? 생각이 많아지는 단어라고 앞서 말했었지. 라일라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짧은 기간이나마 느낄 수가 없었어.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어떻게든 회복해야만 하는 상태인 걸까? ‘원래 상태’라는 게 있어서 ‘감정을 느끼는 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감정 친구가 없는, 그래서 공감을 할 수 없는,

 감정은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재료이기도 하잖아, 우리가 흔히 ‘감정도 없고 공감도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이코패스’라는 표현을 쓰지.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사이코패스 아니냐는 말을 하고 말야.

사이코패스라는 증상은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이 처음 이야기하고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커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가 정신병리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어.

 하지만 정작 의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현재 전세계 정신의학계에서 공유하는 진단분류명칭은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로 이 또한 계속 개정을 거쳐 DSM-5까지 나왔지. 사이코패스는 정신의학계에서 DSM이라는 공동 진단분류 기준을 만들기 전에 있었던 표현이고. 이 글은 회복이라는 단어가 전제하는 ‘원래 상태’에 대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있다면 그걸 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사이코패스라는 표현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자!

 DSM-5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에 대해서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진단하고 있어. 반사회적인 행동, 즉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행동들을 반복하고, 충동 조절의 어려움을 겪고, 다른 사람과의 공감이 부족한 사람들을 분류하는 진단이야. ‘장애’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명시되며 이러한 증상의 심각성과 치료의 가능성 유무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렇다면 과거에 쓰이던 사이코패스라는 표현이 그대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말로 이름만 바뀐 걸까? 엄밀히 말해 이름만 바뀐, 같은 증상을 가리키는 표현은 아니라고 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대상의 ‘행동 특성’에 초점을 더 맞추고, 사이코패스는 ‘정신 역동’에 초점을 맞춘 진단명이라고 한대. 조금 복잡하다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사이코패스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 (그렇다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사이코패스를 전부 포함하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는 모두 사이코패스다’라는 명제도 거짓이고 ‘사이코패스는 모두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명제도 거짓이야.

 오늘날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경우 미국정신의학계가 발표한 DSM-IV-TR의 진단 기준을 따르고 있고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진단받아. 15세 이후부터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동양상을 보이며 다음 중 3가지 이상의 항목에 해당되어야 해. 아래에서 제시하는 항목들은 단순히 자가 진단용으로만 활용하고 전문적인 지식 습득은 전문가에게 찾아가길 바라! 

  • 반복적인 범법행위로 체포되는 등 법률적·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고 거짓말을 반복한다.
  • 가명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향이 있다.
  • 충동적이며,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행동한다.
  •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신체적인 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된다.
  • 시종일관 무책임한 성향 또는 행동을 보인다.
  •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학대한다.
  •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원인은 뭘까? 뇌의 합리적인 판단과 대인관계 능력, 실행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피질과 회백질 기능 장애'가 원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야. 2013년 영국 정신건강연구소 Nigel Blackwood 박사팀이 범죄자들의 뇌 구조를 관찰한 결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경우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백질 양이 매우 적었대. 박사는 연구결과를 두고 “이들 부위가 손상되면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져 죄책감, 두려움, 걱정 등의 반응이 약해지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어. 국내 연구진들도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전두피질 등 뇌기능 장애로 인해 발병한다는 주장에 동의해.

 서울의대 권준수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뇌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서 “환경적 요인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의과학계 정설”이라고 설명했어. 그렇지만 일각에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유전적 요인으로 타고났다기보다는 어린 시절 정서적 상처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하구. 캐나다 범죄심리학 Robert D. Hare 박사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뇌에서 기분 나쁜 것을 예상해 중추신경계로 두려움이란 신호를 전달해야 하는 편도체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해.

 이러한 공감결여, 무책임,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 특성상 치료는 최대 난제로 꼽혀. 치료라는 말은 ‘회복’으로 나아간다는 걸 뜻하기도 하잖아.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긴 했지만 결국엔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라가 순간적으로 감정 일부를 잃어버리고 그걸 되찾은 상황에 대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거나 관계를 ‘회복했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반사회적 성격장애 또한 치료의 대상이거나 회복해야만 하는, 원래 상태와는 정반대의 어떤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태어나거나 그렇게 지내왔을 뿐, 영화 속 라일라처럼 원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상태에서 멀어진 게 아니라 애초에 공감하기 어려운 게 그들의 원래 상태인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에 대해서 치료의 대상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들의 폭력성이나 충동성을 절제하지 않고 버젓이 사회를 살아간다고 하면 두려움이 느껴지겠지. 그래서 그런 행동 양상을 보이거나 기질을 띄는 사람들을 반사회적 성격장애라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로 일반 사람들과 구분하고 있는 거고.

 원래 상태에서 ‘원래’라는 게 무엇인지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어. 그렇지만 사회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규율은 있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은 있을 거야.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야. 그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반사회적 성격‘장애’처럼 장애임을 인정하고 그들이 그런 장애를 지님과 동시에 사회에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지.

 실상, 장애라고 명명되는 시점에서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이들을 치료의 대상이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어.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타고난 게 그들에게는 원래 상태인 것이니 그들의 공감 결여와 폭력성에 대해 존중해주자는 의미가 아니야. 다른 장애들과 비교해보자는 거지. 신체장애를 지닌 이들을 보고서 우리는 치료, 회복 가능한 존재라고 하지 않아. 신체장애는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내가 갖게 된 이상 그게 앞으로 꾸준한 나의 상태인 거고, 회복 가능한 거였다면 장애가 아니라 질병이라고 했겠지. 신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장애를 회복할 수는 없고, 회복 가능한 대상도 아니지만 비장애인을 위한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방식으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의 사회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잖아? 그러니 반사회적 성격장애도 이를 회복 대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고 봐.

 다시 정리해서,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장애이기 때문에 그게 그냥 그들의 원래 상태인 거고, 그래서 현재 반사회적 성격장애 치료를 위한 자체 치료법은 없어. 그렇지만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게 하도록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시행되는데, 반사회적 성격장애 성향이 나타나는 양상에 맞춰 대증적 치료와 심층 상담이 주로 이뤄진대. 충동성이나 우울, 감정폭발, 행동조절 문제가 심할 경우 타인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하고. 여기에는 항정신병약물 또는 항우울제 처방이 이뤄지고, 감정조절이나 충동조절을 위한 심리치료가 병행되는 것으로 알려졌어.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전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사이코패스가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기질,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노출된 점을 고려하면 당연히 치료가 어려운 것은 맞다”면서 “다만 사이코패스의 주요 병리적 특징인 공감능력 결여, 충동, 공격성 등은 장기적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고 조언했어. 그들은 그 자체가 원래 상태이지만 충분히 공동체 생활에 어울리는 자아를 만들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거야.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꼭지에서 또 한 번 더 다뤄보도록 하자.

 

슬픔이라는 감정만 남는다면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라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잃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하나의 감정만이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져서 다른 감정들을 집어 삼키는 경우를 말야. 슬픔이 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우울증? 맞아. 슬픔이라는 감정이 과하면 우을증, 기쁨이라는 감정이 과하면 조증, 이런 이미지가 연상되지.

 우을증에 대해서도 대중들의 많은 오해가 있어. 우을증은 극복 가능한 것이라든가, 다르게 말해서 회복 가능한 것이라든가, 의지의 문제라든가, 등등 말야. 이번 꼭지에서는 이러한 오해들을 풀어볼까 해.

 먼저, 슬픔이라는 감정 이미지에서 우울증을 연상하도록 유도했지만 사실 우울증이 꼭 감정이 원인이 되는 진단명은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을 진단명이라기보다 슬픔이 너무 지속되어서 감정에 집어삼켜진 증상으로 오해하기도 해. 그래서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의지에 의하면 극복할 수 있는 상태로 보기도 하지. 그래서 여기에서는 단호하게 우울증을 우울 장애라고 부르겠어. 앞선 꼭지에서 이 글은 회복이라는 단어가 전제하는 ‘원래 상태’에 대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있다면 그걸 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 그래서 왜 우울증을 우울장애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에 대해서도 다루어볼까 해. 그래야 하는 이유에 공감한다면 앞으로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더 적합한 표현을 선택하면 좋겠어.

 영국의 총리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은 우울 장애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적 있어. “제가 정신적 침체 상태에 들어가리라는 걸 알아요. 저는 절망의 늪에서 일어나려고 합니다.” 1895년 홀더숏 훈련기지에서 윈스턴 처칠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야. 그는 전 생애 우울 장애로 고통 받았으며 끊임없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우울 장애에 솔직하게 대면하거나, 신경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고 해.

 우리 모두가 어쩌다 한 번씩 우울한 기분을 경험하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나 자신의 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우울감이 지속되면서, 동시에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변화가 수반된다면 이는 우울 장애에 해당할 확률이 높아.

 사람들은 물어 봐. “우울 장애는 왜 생길까요?” “제가 정신력이 약해서 오는 건가요?” 아니야. 우울 장애는 단일 질환이라기보다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되는 뇌의 장애일 가능성이 높아. 이러한 우울 장애는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며 개인적인 약함의 표현이거나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의지나 마음, 감정의 문제인 줄 알고 상당수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러 가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정신 질환과 비슷하게, 다양한 생화학적,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우울 장애를 야기할 수 있대.

  • 첫 번째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서 기분을 담당하는 신경회로의 기능이 저하되며 우울 장애를 야기할 수 있어. 우울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서는 세로토닌(행복감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정을 느끼는 데 기여한다고 보고되고 있는 복잡한 신경전달물질) 활성도가 저하되어 있으며 노르아드레날린(스트레스를 받을 때 형성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등의 활성의 조절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어.
  • 두 번째, 내분비 이상 때문에 우울 장애가 발생하기도 해. 코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 이상, 갑상선 기능 이상, 성장 호르몬 분비 이상, 수면 및 생체 리듬의 장애로 인해 우울 장애의 발생으로까지 이어지는 거지. 임신, 출산 및 산후 문제, 갑상선 문제, 폐경기 또는 여러 가지 다른 상태로 인한 호르몬 변화가 우울 장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 세 번째, 신경면역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면역력 결여로 뇌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단 말이지? 이때 뇌의 염증이 기분조절에 혼란을 일으켜 우울 장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어.
  • 네 번째, 심리 사회적 요인으로서 우울 장애의 발생 전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의 죽음, 직업, 경제, 건강의 상실 등의 스트레스가 대표적이며 본인이 지니고 있던 체질적 소인과 스트레스로 인한 변화가 상호작용하여 뇌의 신경전달물질 및 신경회로에 변화를 초래해.
  • 다섯 번째, 개인의 성격 또는 기질적 요인이 있어. 어린 시절의 외상은 스트레스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은 성격의 주류를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하지. 어린 시절부터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낮은 자존감 또는 자기 비판적인 태도를 발전시키게 돼. 또한 성인기에 상실(주변인의 사망 또는 죽음)은 소아기의 상실 경험을 되살려, 우울 장애를 촉진시킬 수 있어.
  • 마지막으로 현재의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가 우울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해. 만성 질환, 불면증, 만성 통증 또는 암과 같은 특정 상태로 인해 우울 장애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고 또한, 알코올을 지나치게 사용하거나 마약류 물질로 인한 우울 장애도 발생도 무시할 수 없겠지.

 우울 장애를 예방하는 방법이 정확히 검증된 방법으로서 존재하지는 않아. 스트레스 조절, 위기 상황에서의 대인 관계, 사회적 지지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악화되기 전 초기 증상 때 치료를 받는 것이래. 재발 예방에 있어서도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

 좋아, 자. 이제 우울 장애의 꼭지에서도 치료라는 표현이 나왔구나! 치료라 함은 회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말이지. 슬픔이라는 감정 친구만 본부에서 그 역할을 전부 도맡아 할 때, 이 상황은 라일라가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 친구를 잃었을 때처럼 회복 가능한 걸까? 우리 사회에서 바라는 원래 상태는 모든 감정이 적절하게 상황에 맞는 제 역할을 하는 걸거야. 우울 장애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처럼 선천적인 장애로 보이지는 않지. 선천적인 것이었다면 우울 장애도 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원래 상태’나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뇌 기능 저하, 호르몬 불균형, 외부 환경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다면 우울 장애는 ‘원래 상태’가 아닌 걸 수도 있겠어. 설령 우울 장애가 ‘원래 상태’라 한들, 반사회적 성격장애에 대해 다룬 꼭지에서도 말했다시피 공동체에서 남들과 원활하게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원래 상태’와는 별개의 사회적 자아를 생성해야 할거야.

 자아라고 하니 <인사이드 아웃2>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 그전에 먼저 우울 장애의 치료 가능성에 대한 논의부터 마무리짓고 말야. 이 글에서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도 장애로 불리고 우울 장애도 장애라고 부르고 있어. 둘의 차이점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인데, 전자가 조금 더 선천적인 기질에 가깝고 후자가 후천적으로 생기는 장애에 가깝지. 장애의 대표적 사례인 신체적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시각 장애나 청각 장애를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갖게 되면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의 감각들을 누릴 순 없어. 시력이 단순히 저하되는 경우에는 안경이라는 보조 기구만 있으면 시력이 좋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감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시력 저하의 경우 시각 장애로까지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야. 신체 장애를 가진 경우 휠체어라는 보조 기구가 있으면 걸어다닐 수 있으니 안경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해당 보조 기구를 사용하고도 삶의 감각이나 경험 자체가 완전히 비장애인들과 동일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지. 당장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휠체어로는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장애가 있잖아. 어쨌든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장애’라는 표현을 썼을 때의 공통점은 장애로 인해 비장애인과 똑같이 이 사회 속에서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거야. 이 기준으로 봤을 때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우울 장애의 차이점은 하나가 더 있어.

 바로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치료의 가능성이 좀 더 어렵다는 건데, 우울 장애는 치료 가능성과 회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거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 치료를 통해 죽기 전에 공감 능력을 갖게 된다는 말보다, 우울 장애를 지닌 사람이 치료를 통해 우울한 사고로부터 벗어났다는 말이 좀 더 현실성 있게 다가올거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우울 장애를 우울’증’이라고만 표현한 걸거고. 우울 장애에 대해 더 닫혀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은 커녕 우울한 생각 자체에 대해 의지만 있다면 회복 가능한 거라고 여겨. ‘그건 다 네가 나약해서야’라고 말하지. 우울 장애에 대해 열려 있는 주변인이라면, ‘너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꽤 오래 지속되는데 병원에 가서 적절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라고 치료를 권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우울 장애가 치료를 통해 완벽히 해결되는 걸까?

 아니야. 앞서 언급했던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우울 장애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검은 개라는 표현을 사용했어. 검은 개는 내 마음 속에 함께 있어. 이 개는 날이 맑을 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올 수도 있고 전혀 예측 불가야. 그렇지만 검은 개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얼마나 잘 돌봐주느냐에 따라 돌발행동을 하는 일은 줄어들거야. 그렇지만 검은 개가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일이 줄어든다고 하여 검은 개가 사라지진 않을 거야. 검은 개는 내 안에 계속 함께 있을 거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는 거니까. 더 자세한 검은 개 이야기는 아래 영상을 참고해보자.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Living With A Blackdog)-우울장애|심리학|우울증극복|검은개|

 즉, 우울 장애에 대해서, 치료라든가 병원에의 방문, 상담사와의 상담 등의 표현이 있다고 하여 장애가 아닌 단순한 증상, 그러니 개인적 의지로는 회복 불능이어도 치료를 잘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서는 안될 것 같아. 이걸 명확하게 장애라고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는 하되 치료를 통하면 우울 장애가 있는 나와는 다른 자아를 형성하고, (마치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또다른 자아를 만듦으로써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지낼 수 있다고 말했듯이 말야) 그 자아로 지내다가도 문득 검은 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봐. 검은 개를 잘 길들이는 방법을 익히는 게 우울 장애에서의 치료의 개념인 거지, 검은 개를 완전히 내쫓을 수는 없어.

 검은 개와 함께 지내는 게 우울 장애의 ‘원래 상태’인 거고, 검은 개를 잘 길들여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맞다! OK? 정리가 되지? 0.<

 

회복에 대한 의미를 찾는 여정

 앞서 자아라고 하니 <인사이드 아웃2>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 이번에도 줄거리를 설명해야 할텐데, 자, 스포일러에 주의하도록 해!

 <인사이드 아웃2>는 다섯 감정 친구들이 서로의 존재 의의를 인정하고 라일라의 반응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 먼저 라일라는 13살로 성장했지. 그 과정에서 전편에서는 라일라의 성격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다섯 가지의 주요 기억 구슬이 나왔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게 이미 생성되어 있어.

 바로 ‘자아’라는 거야. 하루 동안 경험하고 그에 따라 생성된 기억 구슬을 전부 아래쪽으로 내려 보내면 기억 구슬들로부터 기다란 실이 나와서 다시 위로 올라오지. 그 실들이 뭉쳐져 제어판이 있는 장소에 보관된 ‘자아’가 되고 (즉, 자아와 기억 구슬들이 서로 연결 되어 있는 거야.) 그 자아를 툭, 하고 건들면 라일라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지. “나는 좋은 사람이야.” 맞아. 기쁨이가 의도적으로,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억 구슬들만 모아서 아래로 내려 보냈거든. 그러니 나쁘고 안 좋았던 경험들은 라일라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스스로에 대해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과 평가밖에 남지 않는 거야.

 어쨌든 라일라의 감정 친구들에겐 뿌듯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자신들과 라일라가 가꾼 자아를 보며 행복해 하던 중 새로운 감정 친구들이 이사 오지.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야. 불안이는 말해. “라일라는 앞으로 더 복잡한 상황들을 겪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선 기존 감정 친구들인 너희보다 우리가 더 필요해.” 그리곤 기쁨이네를 본부에서 쫓아내고 말지!

 라일라가 겪게 될 복잡한 상황들이라는 게 뭘까? 현실에선 이걸 세 글자로 줄일 수 있어. “사춘기”. 으악, 라일라에게 사춘기가 찾아온 거야! 우리에게 사춘기가 주는 이미지는 어떻지?

 질풍노도의 시기, 방황, ...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사춘기의 대표적인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나’가 아닐까 싶네. 라일라도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어. 우리의 방황은 마냥 이유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특히 라일라는 사춘기의 대표 고민 중 하나인 ‘진로’ 때문에 이유 있는 방황을 하게 돼. 진로에 대한 고민은 불안이라는 감정 친구를 가장 자극하는 것 중 하나였지. 원하는 진로를 갖고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불안이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해 예상하고 좋지 않은 상황에 다다르는 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제어판으로 라일라의 반응을 조종해. 그런 반응들 중 대부분은 라일라가 기존의 친구들에게서 등을 지고 자신을 원하는 진로로 이끌어줄 사람들에게 과하게 잘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거였지. 라일라의 자아는 분영 라일라를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었는데 친구를 나몰라라 하는 게 분명 ‘좋은 사람’의 행동은 아닌 거 같지?

 불안이가 제어판을 조종하며 생성되는 기억 구슬들 또한 마찬가지로 라일라의 저 아래로 내려가 실을 만들고 새로운 자아를 직조해. 라일라의 자의식은 점점 변해가고, 그런 라일라의 모습을 보며 기쁨이와 기존의 감정 친구들은 다시 본부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지. 그 과정에서 기쁨이가 일전에 아래로 내려 보내지 않고 그냥 버려두었던, ‘좋지 않은 행동을 한 라일라’에 대한 기억마저 전부 아래로 폭포처럼, 우르르르. 떨어지고 말아. 그 모든 기억들이 한 번에 실이 되어 자아를 마구잡이로 직조하지. 기쁨이와 감정 친구들은 본부에 도착해서 변해버린 자아를 발견해. 그 자아는 이렇게 말해. “나는 나야.

 기쁨이는 마냥 불안에 떠는 불안이를 진정시키고, 자신도 깨달음을 얻지. 본인을 비롯한 감정 친구들이 라일라의 자아를 입맛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이전에는 기쁨이가 기억 구슬을 걸러내서 라일라의 자아를 의도적으로 만들었으니까,) 라일라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라일라는 잃었던 감정들-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을 되찾고 지나친 불안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났어. 다가올 미래로부터도 좀 더 의연해질 수 있게 되었지.

 <인사이드 아웃>의 11살 라일라도, <인사이드 아웃2>의 13살 라일라 모두 라일라의 ‘원래 상태’에서 벗어 났다가 돌아오는 ‘회복’을 경험했어. 그러나 그게 ‘회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 그대로, 정말로 ‘원래 상태’ 그대로 돌아온 걸까? 물론 단어의 의미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사전적 정의로서의 회복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나름대로의 회복으로 재해석을 해볼까 해.

 11살의 라일라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달리 복합적인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기쁘면서 동시에 슬플 수 있다는 걸. 웃으면서 동시에 울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13살의 라일라도 친구들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사춘기로서 겪어 나가야 할 네 가지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앞으로도 삶은 불안한 일이 종종 더 일어나고 기쁜 일은 줄어들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크게 방황하진 않알거야. 라일라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 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 아웃>시리즈에서 보여주는 회복은 라일라의 원래 상태로의 회복이 아니야. 관계의 회복이지. 라일라 자체로만 보면 그는 회복한 게 아니라 성장한 거고. 성장한 이상 우리는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험을 통해 끝없이 원래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성장한 상태가 새로운 원래 상태가 되고, 또 성장을 통해 원래 상태를 벗어나고, … 즉, 전하고 싶은 요지는, 앞서 계속 말한 것처럼 ‘원래 상태’라는 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 같으면서도 아닌거지. 원래 상태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니까!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건 이제 사회적 관계망밖에 없어.

 

회복 = 끊겼던 사회적 관계망의 재형성

 만약 나의 원래 상태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기 힘들다면, 반사회적 성격장애 꼭지와 우울 장애 꼭지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해 주는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야지.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우울 장애 모두 이미 그런 상태고, 돌아가야 할 상태가 없는 것이지만 함께 지내기 위해선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 노력(전문가를 찾아간다든가, 치료를 받는다든가 등)이 필요해. 치료한다는 건 원래 상태의 부정이 아니야.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지. 노력을 통해 사회적 자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우울 장애가 ‘원래 그런 상태’라는 핑계로 자신의 상태를 정당화 해서도 안돼.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범죄자, 우울 장애를 갖고 있어 주변을 갉아 먹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이제 없어져야 해.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해 원래 상태가 정당화 수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원래 상태라는 건 모두가 그 기준이 달라서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 사회에 공유되는 사회적 자아로서의 동질감은 있어. 우리에게 있어서 회복이란, 개인적 문제 행동으로부터 치료 등과 같은 노력을 통해 사회적 자아로 ‘되돌아감’을 의미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건강한 대인 관계로 ‘다시 복귀한다’는 걸 의미해야겠지.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우울 장애로 무너진 건 나의 원래 상태가 아니야. 남들과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소통 가능성, 사회적 관계망의 붕괴지. 새로운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면 충분히 가능해.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없고 우울 장애를 한평생 겪어본 적 없는 사람도, 사춘기를 통해 (아 물론, 사춘기를 아주 무난하게 지낸 사람도 있겠지만!) 완전 제멋대로의 새로운 내가 생겨나는 걸 느끼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대부분일 거야.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면 ‘너 사춘기일 땐 참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이젠 철 들었구나’라는 말을 듣지. 철 든 상태는 사춘기를 겪기 이전의 상태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은 여러 번 했어. 원래 상태라는 건 정해진 기준 없이 그저 어떠한 상태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사춘기 시절, 그리고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반사회적 성격장애 또는 우울 장애를 갖고 있던 시절의 나는 사회적 관계망을 무지막지하게 파괴하고 있던 상태였을 거야. 사춘기 시절을 지나오고, 그리고 반사회적 성격장애 또는 우울 장애로서 필요한 조치를 받고 사회적 자아를 새롭게 형성한 상태는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

 서로 다른 다양한 원래 상태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사회적 관계망으로의 회복을 긍정하는 사회, 앞으로는 더 나아가 이 공유되고 있는 ‘사회적 자아’라는 동질감이 무엇인지 공동체 내에서 합의하는 노력도 필요할거야. 더 존중받고 더 성장하는 회복된 사회를 위해, 오늘도 inside(원래 상태)로부터 out(사회적 자아의 발휘)하자고!

 


참고자료

  1. 김종기, 〈사이코패스란?〉, 정신의학신문, 2022.08.24.,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3464
  2. 박미라, 〈사이코패스,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MEDICAL Observer, 2018.01.03.,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354
  3. 최강록,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신의학신문, 2023.06.24.,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4512
  4. 최강록, 〈기억 구슬과 감정의 복합성 -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정신의학신문, 2024.07.22., https://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5472
  5.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주요우울장애〉,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 https://www.nct.go.kr/distMental/rating/rating01_2_1.do
  6. N 의학정보, 〈우울장애〉, SNUH 서울대학교병원, http://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353
  7. 마음대로 Mindroad,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Living With A Blackdog) - 우울장애 | 심리학 | 우울증극복 | 검은개 | ”, 2020.11.06., https://www.youtube.com/watch?v=ijG62TCHu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