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호_실패 / 편집장의 인사
2월의 막바지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 올해의 6분의 1이 지났다. 새해에는 늘 새로운 나를 기대하며 여러가지를 다짐하곤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새해 다짐 삼대장으로 불리는 운동, 독서, 영어 공부는 물론이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 스트레칭을 하겠다거나, 수어 공부를 꾸준히 하리라 같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오늘 아침 어쩐지 개운한 기분과 함께 눈을 떠보니 이미 수어 수업을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새해 다짐을 지키는 데에 실패했다.
예전에는 이런 실패들에 쉬이 속상해하곤 했다. 엑스표가 그어진 해빗 트래커를 보고 싶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아예 들춰보지 않게 되면 그 다음부턴 오도 엑스도 아닌 공란이 주르륵 이어졌다. 그러고 나면 그 해는 끝이었다. 나는 다음 기회, 다음 해를 노리며 늘 내년은 다르리라 마음먹었지만 생각해보면 이 해나 저 해나 비슷했다. 다행히 요즘은 뻔뻔함이 생겨서, 계획을 잡을 때부터 실패까지 계획하거나 주 5회로 다짐한 아침 스트레칭을 도중에 은근슬쩍 주 3회로 바꿔 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실패와 타협할 줄 안다. 누군가는 이걸 정신승리라 말하겠지만, 나로서는 하나의 실패가 다음 실패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말했지 않은가, 조금 뻔뻔해졌다고.
새해 다짐의 실패는 뻔뻔한 마음만으로 쉬이 극복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이지 극복하기 힘든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다. 목표했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거나, 수년간 꿔왔던 꿈을 이루는데 실패하거나, 사업에 실패해 빚을 지거나, 사랑 혹은 우정에 실패해 누군가를 잃거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혹은 미칠 것 같은 실패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잃은 것 같은 패배감을 느낀다. 실패의 경험은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한 패배감과 트라우마가 이후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개인적 차원의 실패가 아닌, 사회적 차원의 실패도 있다. 정책의 실패나 통치의 실패, 혹은 보다 나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실패하는 사회를 우리는 꽤 자주 목격한다. 이런 사회적 차원의 실패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극복 방법이 묘연하다. 원인을 안다고 모든 실패가 극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실패는 심지어 인식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밍기적의 이번 호에서는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실패에서 배우고, 실패를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다. 래곤의 <우리는 실패에서 어떤 방식으로 벗어나는가>와 또바기의 <37년의 삶이 남기고 간 것>은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래곤은 영화 <화이트 타이거>와 <행복을 찾아서> 속 등장 인물들이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며, 또바기는 많은 고난과 실패를 겪은 이의 삶을 살펴보며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탐색한다. 연푸른은 <무너지는 민주주의 속에서 chill해지는 법?>에서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붕괴의 원인을 분석한다. 그는 트럼프 당선과 국회의사당 폭동을 경험한, 혹은 유발한 미국 정치계를 분석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 망은 <가장 위대한 실패>에서 실패를 성공에 도달하는 과정이자, 그 자체로 의미있는 발견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실험 자체는 실패했으나, 노벨상을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은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에 대해 살펴보며 과학계에서의 실패가 가지는 의미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온기의 소설 <인간 실격>은 인간관계의 실패에 대한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그는 실패를 가치있는 경험이나 극복해야 할 무엇으로 모양 짓지 않겠다 다짐하며 실패를 실패 그 자체로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사실 이번 호 주제로 ‘실패’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새해 다짐이 실패할 타이밍 즈음에 실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글을 발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실패에 좌절하기보단 실패를 디딤돌 삼아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자는 의도가 컸다.
그런데 이 편집장 인사의 글을 마무리하는 동안, 어린 배우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마 그 배우는 실패를 극복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죽음 이후에야 조금씩 들려오는 생전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죽을 정도의 잘못은 어느 정도의 잘못일까, 당사자에겐 죽음보다 무거웠을 실패를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바라봐야할까 고민했다. 우리 사회는 실패와 극복을 당연하게 연관짓는다. 모든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인성 면접이 실패에 대한 극복 사례를 요구하고, 실패를 좋은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번 호를 마무리하는 지금에야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실패의 극복을 개인의 몫으로 맡겨버리는 책임전가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영원히 극복되지 못할 실패도 위로해 줄 수 있는가? 무엇이 실패로 정의되는가? 그 기준은 절대적인가 개인적인가 혹은 사회적인가? 실패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실패한 개인에게 두번째 기회를 줄 수 있는가? 어린 배우의 죽음은 그가 실패를 극복하는 것조차 실패했다는 의미인가, 혹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구하는데에 실패하는 사회라는 의미인가?
이에 이번 호에서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 전해줄 수 있는 컨텐츠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너무 많은 죽음이 스쳐간 겨울이 끝나간다. 따라오는 봄은 조금 더 따뜻할 수 있길, 조금 덜 잔인할 수 있길 바란다.
책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잭 핼버스탬 저 / 출판사 현실문화
“성공을 향한 집착으로 가득 찬 세계에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숨구멍을 찾아야 할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잠시간의 위안을 주겠지만 안식이 되어주진 않는다. (중략)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야 한다'가 전제된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창하는 주문을 무력화하는 비법은 오직 그 주문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에 있다. (중략) 핼버스탬은 실패를 저항과 비판의 한 양식으로 개념화한다. 실패를 실패로 규정하는 자본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그는 실패를 삶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이 힘이 얼마나 전복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파한다. 실패는 약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고 실패는 기존 성공을 뒤엎을 수도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애니메이션, 대중문화, 하위문화 반문화를 훑으며 작품들로부터 전복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_ 알라딘
책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_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알렉세이 유르착 저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실패’의 시기. 이 책은 시스템의 위기가 전개된 과정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실과 관계맺는 방식을 방대한 사례 및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모두 사회주의 체제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으나, 막상 붕괴가 시작된 후에는 큰 충격을 느끼기보다는 이를 받아들이며 각자의 현실을 재구성한다. 지금의 사회가 영원할 것이며, 어떤 다른 대안도 본질적인 변화도 없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책
영화 <더 웨일>
찰리의 삶은 엉망이다. 272kg의 거구의 몸으로 혼자서는 일어나 걷기도 힘든 찰리는 리즈의 간호를 받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떠나면서 아내와의 관계도, 딸과의 관계도,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모두 실패한다. 리즈는 찰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찰리는 여전히 폭식을 일삼는다. 모든 것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찰리, 하지만 어쩐지 그의 삶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