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기적_ 2021. 9. 4. 19:45

교차점에 서서

에디터 연푸른


나는 동남아시아 언어문명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 그러니 이 전공도 내 공식적인 소속 중 하나인데, 이런 소속을 밝히고 나면 사람들은 으레 나에게 ‘원래부터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었느냐’고 묻고는 한다. ‘그런 분야’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일단 그렇다고 답한다.

내 대답은 대략 이렇다.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나는 우연히 교내 아시아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동남아시아 정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매주 다른 주제로, 다른 연사가 발표를 이어갔던 그 특강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주제는 말레이시아의 정치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정작 복수전공을 시작한 후로는 말레이시아 정치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않았기에(…) 간단하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말레이시아는 다종족 복합 사회며, 각 종족은 믿는 종교까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민족은 상상된 공동체고 단일 민족 국가 역시 신화라지만, 말레이시아에선 종족 개념이 정당 정치에까지 긴밀하게 반영되어 기능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종족은 ‘말레이계’인데,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UMNO다. 한편 역사적으로 해상무역이 활발하던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특성상 말레이시아에는 많은 화교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을 대표하는 중국계 정당은 따로 있다. 인도계를 대변하는 정당도 있으며, 독립 초기에는 이 세 정당이 연합하여 말레이시아를 운영했다. 지금은 뭐 이러저러 변했다고 하는데 거기까진 공부를 안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소위 ‘단일민족국가’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정치에 이렇게 종족 개념이 깊이 투영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럼 나는 태어나자마자 내가 속한 종족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믿을 종교와 지지할 정당까지 정해지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런 사회에서 정치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제시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적 입장은 변할 수 있지만 종족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럼 이들은 영원히 대립할 뿐 합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 보면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 나온 의문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러한 궁금증에서 나는 동남아시아 언어문명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작 복수전공을 시작한 이후 나는 말레이시아보다는 인도네시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정치 현실을 따라잡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다. 결국 내가 최초에 가졌던 궁금증은 해결되지 못했다.
또한 이 학과에서 배운 것의 대부분은 ‘종족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 보다는 오히려 ‘정치가 종족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에 가깝다. 그러니까 나는 질문 자체를 반대로 던진 것이다. 나는 동남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종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자의적인 개념인지, 그리고 오직 종족이라는 변수만으로 이 지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를 배웠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언론은 동남아시아 사회를 여전히 종족과 종교 변수로만 이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종족보다는 종교 변수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뭐 그 둘도 아예 상관없는 것은 아니니 적당히 넘어가자(?).
우리에게 익숙한 설명은 대략 이런 식이다.

1) 불교를 믿는 버마족이 다수를 이루는 국가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을 믿는 소수 민족인 로힝자는 종교적 탄압을 받는다. 이들은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난민이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돈다. 이 모든 것은 종교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2)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믿는 자바족이 다수인 국가이다. 하지만 파푸아주에는 기독교를 믿는 멜라네시아 인종이 살고 있다. 이에 파푸아는 분리독립을 원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시 종교와 종족의 차이로 인해, 파푸아에서는 폭력 시위까지 일어났다.
3)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급진주의가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슬람 세력은 중국계이자 기독교 신자인 엘리트 정치인 아혹을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했고, 그는 실제로 2년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급진주의적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 세력인 엘리트 정치인을 종교 및 종족을 이유로 공격했으며, 이에 대다수의 인도네시아 대중이 동의한 사례이다.


위의 설명만 보면 동남아시아의 모든 문제는 종족적 차이 혹은 종교적 차이로 인해 일어난다. 이런 설명에 동남아 혐오 혹은 이슬람 혐오가 추가되면, 동남아시아는 ‘단지 믿음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미개한 지역’이 되거나 혹은 ‘여러 종족이 함께 사는 지역적 특성상 앞으로도 영원히 문제가 발생할 곳’이 된다. 하지만 종족 혹은 종교라는 변수를 벗어나면,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볼 수 있다.

1) 식민통치기, 영국은 효율적으로 말레이시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다수 종족인 버마족의 거주지역과 소수 종족의 거주 지역을 분할하고, 소수 종족을 식민 관료로 중용했다. 식민 통치기 이전에 이 지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었고, 로힝자족은 버마 전체의 독립보다는 그들 민족의 자치권을 획득하기 위해 영국과 연대했다. 이는 버마족 중심의 독립운동과 갈등을 빚었고, 그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 이러한 역사가 군부세력이 로힝야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왜곡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논리는 실제 미얀마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다. 한편, 역사적 논쟁과 상관없이 이것이 지금의 로힝야 탄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경제적인 요소도 영향을 미쳤다. 미얀마는 중국과 함께 원유 및 가스 추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4년, 로힝자의 주요 거주지 근처에서 가스전이 발견되었고, 이를 추출하기 위한 송유관 및 가스관이 이들의 거주지를 가로지른다. 미얀마 정부는 파이프 라인과 천연 자원을 보호하고, 지역민이나 다른 민족의 개입을 막기 위해 군대까지 고용했다.
2) 파푸아와의 갈등에 있어서도 종교 및 종족 변수 외에 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파푸아는 자원이 풍부한 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금광 중 하나인 그라스버그가 파푸아에 위치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국적 기업인 ‘프리포트’에게 이곳의 자원에 대한 개발권을 주며, 그 댓가로 세금을 받아왔다. 현재 프리포트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납세 기업으로,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파푸아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자원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이 지역민에게 가지 않고, 오히려 기업이 금과 구리 생산 과정에서 광산 폐기물을 강에 방류하여 파푸아의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파푸아는 단체 행동으로 대항했으나, 프리포트는 인도네시아 군과 협력해 이를 무력 진압했다.
3) 엘리트 정치인 아혹이 중국계이자 기독교 신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자카르타 주지사시절, 정부 주도의 개발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강제로 판자촌에 거주하던 저소득층 시민을 몰아낸 적이 있고, 이로 인해 많은 저소득층 시민은 거주지를 잃게 되었다.
아혹은 종교적, 종족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소수자 집단에 속하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는 엘리트 층이다. 인도네시아 사회는 화교가 경제적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아혹의 이런 정치적 행보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도네시아 대중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런 분노는 인도네시아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인 종교적 언어를 통해 발화되었다.


위의 사례에 있어 종교 및 종족 변수가 사건의 발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단편적인 보도 뒤에는 우리가 종족이라는 소속을 강조하느라 보지 못한 경제적, 역사적 맥락이 숨어있다.

이 글에서는 굳이 동남아시아의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의 소속이 거기에 속해 있는 모두를 설명하는 논리로 기능하는 사례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소속은 너무나 강조되어서, 그 소속 밖에 있는 사람들은 소속을 제외한 맥락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 내부에 있는 균열을 보지 못하고,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역동성을 보지 못한다.
또 어떤 소속은 너무나 강조되어서, 개인이 속한 다른 소속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이란 한 가지 집단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종족으로 구분할 때는 이 영역에 속하던 사람이, 종교로 구분할 때는 다른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이들을 경제적 계급으로, 사회적 계층으로 나눌 때는 또 다른 식의 경계가 생긴다. 그렇게 생긴 경계는 심지어 유동적이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강조되기도 한다.

나 역시 여러가지 소속의 교집합 속에서 살아왔다. 나는 z세대의 문을 연 98년생 여성이지만, 동시에 춤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시아인이며, 경상도 출신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거주하는 1인 가구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서울대학교, 그 중에서도 언론정보학과를 재학 중인 대학생이라는 것이 나를 설명하는 가장 큰 소속처럼 보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근거로 나의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집합을 동시에 밟고 서있고, 이 중 몇몇은 때로는 강하게 존재감을 빛내다가 때로는 옅어 지기도 했다. 당장 이 글은 내가 ‘복수’적으로 속해있는 ‘전공’의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지만, 아마 <밍기적>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내 주전공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교차점에 서 있다. 나도, 당신도, 파푸아 시민도, 중국계 인도네이사 국민도.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교차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