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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3/17호_즐거움 넘어 삶, 취미

17호_취미란은 공란 / 연푸른

by 밍기적_ 2023. 11. 4.

취미란은 공란

 

에디터 / 연푸른



취미랄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한 때 취미였던 것들이 이제는 일과 공부와 훈련이 되어버린 탓이다. 취미로 추던 춤은 이제 ‘신체 트레이닝’이라는 이름으로 ‘해야할 일’이 되었는데, 그마저 오른쪽 허벅지 부근 힘줄 염증으로 추지 않은지 오래다. 취미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보다 해야할 일을 미루고 있다는 부채감을 먼저 느낀다. 취미로 보곤 했던 연극은 이제 기록하고 공부해서 영감과 배움을 얻어야 할 참고서가 되었다. 재미있고 독특한 연극을 보는 일은 여전히 즐겁지만, 가끔은 봐야하는 연극을 보기 위해 보고 싶은 연극을 포기하기도 한다.

늘 취미가 나의 전공이나 일보다 나를 더 잘 설명해준다고 느꼈다. 재미삼아 공연을 올리거나 잡지를 만들었고, 나는 내 전공보다 그 공연과 잡지가 더 나같았다. 같은 걸 전공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취미가 곧 나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 이뤄온 게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 외에 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듯 싶기도 하다. 

그런데 취미가 일이 되면서 나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생겨버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안에서 난 여전히 차별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취미로 날 설명할 수 없게 되었으니 새로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한다. 여전히 ‘해온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로 날 설명해야만 한다는 것에 아득함을 느끼다가도, ‘해야하는 일’을 다 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가진 매력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사람의 ‘굳이’에서 오는 에너지가 좋다. 나 또한 그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내 일상의 한 모퉁이에 취미를 끼워넣으려고, 끼워넣을 취미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1.  

첫 시도는 독서다. 늘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훔쳐보고, 나의 사유를 정돈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마땅히 독서는 해야할 것 같았다. 취미가 독서라는 말만큼 진부한 자기소개가 또 있을까 싶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당당히 독서를 취미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가 않다.

나도 예전에는 취미란에 독서를 적을 수 있는 어린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4교시 종이 치면 점심도 먹지 않고 도서실에서 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곤 했고, 주말에는 부모님과 도서관에 들러 큰 쇼핑백 하나를 가득 채울만큼 책을 빌려왔다. 중학생 때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판타지소설을 시리즈물로 찾아 읽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독서량이 매우 줄었지만 그래도 공부하기 싫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원서를 읽으며 자그마한 일탈을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모스부호처럼 끊어질 듯 말듯 근근히 이어지던 독서 습관이 대학을 온 후에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한동안은 읽어야하는 책이 아니면 손도 대지 않더니 더 지난 후에는 읽어야 하는 책도 읽지 않기 시작했다. 열심히 책을 사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빌려왔지만 정확히는 독서보다는 ‘책수집’이 취미인 날이 이어졌고, 여전히 그런 날들을 살고 있다. 내방 한 쪽 벽에는 큰 책장이 있어 여러 책들이 꽂혀있지만 그 중 내가 정말 읽은 책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한다.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이 망할 책들을 빨리 읽고 알라딘에 팔아버리든 어떻게 하든 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방치되어 있던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 장르의 책을 꾸준히 읽지 못하는 나는 늘 서너권의 책을 동시에 읽곤 하는데 최근엔 인터뷰집 <요즘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이혜민)>과 <운동의 참맛(박민진)>이라는 에세이집, 박완서 전집 중 11권인 <엄마의 말뚝(박완서)> 그리고 <FBI 행동의 심리학(조 내버로 외)>이라는 심리학 책을 함께 읽고 있다. 

배우 지망생에게 도움이 될거라는 추천에 읽기 시작한 <FBI 행동의 심리학>책은 상당히 재미가 없어서 아마 끝까지 읽지는 않을 듯 싶다. 예전에는 이런 책을 제일 많이 읽었는데 말이다. 그 때는 책의 기본적인 쓸모가 정보 전달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밀도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 가장 유용하다고 느꼈다. 문학은 재미로 읽는 것이지 쓸모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 명의 인간 혹은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보고, 이해되지 않는 개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작업이 더 재미있다. 물론 이게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는 아니지만. 

여하튼 책의 쓸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책은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이다. 이 책은 ‘평생직장’이란 단어가 옛말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요즘 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의 인터뷰를 읽을 때마다 일과 직업에 대한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낀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내가 즐기는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실천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적어두면 ‘뭐야, 이사람 책 많이 읽잖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이런 노력을 시작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보니, 제법 열심히 읽었다는 기분이 들더라도 완독한 책은 잘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독서보다는 유튜브에 마음을 뺏기고, 그 증거로 오늘은 단 한장의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유튜브는 3시간쯤 봤다). 그래도 읽다보면 취미는 못되도 습관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자기전에 10분만 책 읽다가 자야지.

 

  1.  

두번째 시도는 퍼즐이다. 조각퍼즐이 아니다. 스도쿠나 네모네모 로직 같은 논리 퍼즐이다. 논리퍼즐은 종류가 많아서 3D버전 네모네모로직부터, 히토리, 슬리더링크, 모자이크부터 배틀쉽, 그리고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퍼즐 등 종류가 참 많다고는 하는데, 아직 그런 것들에는 도전해보지 않았다. 그냥 베이직 중의 베이직인 스도쿠나 열심히 하고 있다.

스도쿠도 아주 어릴 때 아버지랑 같이 하던 놀이었다. 어쩌다가 하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집에는 스도쿠 책이 한 권 있었고, 아버지와 나는 같은 퍼즐 하나를 복사해다가 누가 먼저 푸는지 게임을 하거나 혹은 함께 어려운 퍼즐을 풀고는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한동안 스도쿠를 잊고 지냈는데, 대학생이 되어 유럽여행을 갔던 어느 날에 비행기에서 풀어야지 하며 파리에서 스도쿠 책 하나를 구매했다. 아마 첫 두어페이지만 풀고 말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책을 어디에 뒀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지금은 책이 아니라 휴대폰 어플로 스도쿠를 하고 있다. 메모도 할 수 있고 시간도 잴 수 있고 갈 길을 몰라 짜증이 날 때는 힌트를 볼 수도 있다. 힌트를 보고나면 온전히 내 힘으로 퍼즐을 푼 것이 아니라는 찝찝함이 남지만,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는 화면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보단 찝찝함을 무시하고 스도쿠 한 판을 완성해 내는 게 더 좋다.

이런 논리퍼즐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명쾌함을 줘서 좋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답이 있는 문제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자격증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한 적도 없고, 대체로 자유 주제로 글을 쓰고 그 논리적 완성도 등으로 평가를 받는 대학 생활을 했다. 인생에도 답은 없었다. 모든 인생은 노답이다. 정답도 오답도 없기 때문이다. 뭘해도 괜찮고, 선택지는 무궁무진하고, 다만 어떤 결과가 따라올 뿐이다. 오지선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훨씬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삶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 앞에서 나는 자유로움과 부담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다 부담스러움이 자유로움을 크게 앞지를 때는 답이 있는 문제를 풀어야한다. 틀리거나 혹은 맞거나, 둘 중 하나다.  틀린 건지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답을 질질 끌어안고 어떻게든 이걸 맞는 답으로 만들어야 하는 지리함이 스도쿠에는 없다. 그냥 큰 생각없이 규칙에 따라서만 사고하면 곧 답이 나온다. 

그 명쾌함과 단순함이 좋아서 요즘은 종종 스도쿠를 풀고 있다. 하지만… 스도쿠를 풀기 시작한지 2주차인 지금, 벌써 조금 질린다. 단순해서 좋았는데 또 너무 단순해서 질린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제는 슬슬 답이 없는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려야할 타이밍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인생이 더 부담스러워지면 다시 스도쿠로 돌아와야지. 휴대폰에 비상용(?) 스도쿠 어플 하나 깔아놓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 외에도 운동을 다니거나(헬스 스트랩과 코르셋을 샀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거나(밍기적을 부활시켰다), 요리를 하거나(레몬청과 밀푀유나베, 마라탕을 직접 만들었다), 식물을 기르거나(레몬청을 만들다 남은 씨앗을 현재 발아시키는 중이다)하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취미를 만들고 싶어 열심히 발버둥을 치는데 어쩐지 전처럼 훅 마음 가는 것들이 없다. 모든 시도가 일회성에 그칠 뿐이다. 내가 요즘 지쳐서 어디에도 마음이 안가는건지 그냥 내 것같은 취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얼른 뭐 하나 짜릿하게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이 칸을 채우고 싶은데 말이다. 

갑자기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 중학교 3학년인가 2학년 당시 생기부 취미란에는 ‘잃어버린 물건 찾기’가 적혀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특기란을 봐야 알 수 있는데, 특기란에는 ‘물건 잃어버리기’가 적혀 있다. 이건… 실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취미를 적어 냈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걸 생기부에 쓰셨을까. 제법 재미있다. 그렇게 따지면 잃어버린 물건 찾기는 여전히 나의 취미다. 물건을 찾게 되면 퍽 즐거우니 취미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취미가 별것도 아닌데, 뭔가 멋들어지고 완성도 있는,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의 무언가를 취미로 뽑아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취미란을 비워두고 싶다. 언젠가 짜릿하게 즐거운 무언가에 휙 감겨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직 내 취미란은 공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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