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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3/17호_즐거움 넘어 삶, 취미

17호_내 안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 / 바투

by 밍기적_ 2023. 11. 1.

내 안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

 

에디터 / 바투

 

야구장 근처에 살았던 나는 저녁이 되면 환한 조명 아래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직접 경기를 보러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 팀(이라고 생각하고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이 잘한다는 것은 익히 들었고, 가끔 부모님이 표를 구해오시면 가서 편안하게 승리를 맛보고 오곤 했다. 

윗지방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내 삶에서 야구는 멀어져갔다. 그러다 겨울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로 작년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발단이었다. 늘 1등만 하던, 너무나 자랑스러워 곧 대구의 자존심이었던 우리 팀의 몰락을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었던 나는 이런 저런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친숙했던 선수들이 다 떠났으면 요즘은 누가 남아있는거야? 궁금해하며 점점 스며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선수들 이름을 하나씩 외워 가고 그들의 응원가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러면서 올 한 해 TO-DO 리스트에 야구장 열 번 이상 가기를 자신있게 써두었다. 

유니폼을 사고, 응원도구를 하나씩 사모으고, 몇 번의 직관 끝에 최애 선수를 골라 그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출퇴근길에는 가요 대신 지난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우리 팀의 응원가를 들으며 힘차게 걸어갔다. 유니폼 안에 후드티를 껴입고 약간은 쌀쌀하지만 응원을 하다보면 열기에 왜인지 땀도 좀 나는 듯했던 3월부터 해서, 유니폼 안에 나시 하나만 입어도 몇 번의 타석만 지나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던 한여름을 지나, 다시 긴소매티를 유니폼 안에 입기 시작하면서 아마 우리는 더 추워지고는 경기를 볼 수 없겠지라는 생각에 좌절하던 시즌 말이 지났다. 그렇게 나의 2023년이 지나갔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이토록 잔인할 수가

밍기적 에디터이기도 한 망에게 야구를 보러 가자고 꼬드긴 적이 있었다. (동향 사람이기도 하고,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 야구장과 잘 맞을거라 생각되어.) 물론 ‘와 함께 야구를 본다는 그 자체도 의미가 있었지만, 사실 삼빠(삼성 팬)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래서 머글(팬이 아닌 일반인)을 데려갔을 때만큼은 시원하게 이겨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거늘늘 그렇듯 그들은 시원하게 졌고 나는 도대체 이걸 돈 주고 왜 보는가 하는 망의 눈초리를 못본 척 지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망한 경기를 보고도 망은 삼성의 팬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또 경기를 같이 보러갔지만 그날도 졌다. 

야구는 교훈을 준다

야구만큼 예측 불가능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가 10위일 때 1위 팀을 이기기도 하고,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팀에게 쳐참히 지기도 한다. 어제는 잘하던 선수가 오늘은 삼뜬땅(삼진, 뜬공, 땅볼을 줄인 말로, 점수를 내지 못하고 아웃카운트만 올리는 상황으로 팬들을 아주 열받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을 시전하기도 한다. 8회까지 지고 있다가도 9회에 한 방의 홈런으로 역전해 이기기도 하며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참 고통스럽게도 준다. 져도 내일의 경기가 있고, 이겨도 안심할 수 없는 이 무한 궤도를 반복하다보면 결국은 통달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한 경기 한 경기에 격분하다가도, 괜한 감정 낭비하지 말고 ‘그럴 수도 있지’하며 무뎌지게 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삶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대가 없이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

생각보다 1년 동안 많은 돈을 투자했다. 한번 직관을 갈 때마다 티켓값에, 맥주에(디폴트값이다.), 음식에, 이기면 신나서 지면 분해서 끝나면 뒷풀이도 가야하는 등 여러 사유로 지출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게다가 장비빨, 템빨은 야구에서도 통한다. 첫 직관 때 뭣도 모른채 유니폼만 덜렁 입고 갔다가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에 굉장히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있다. 장비가 곧 팬심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왕 응원할거 제대로 하고 싶어 갖출 수 있는 장비를 모조리 사들였다. (그래서 직관 때 큰 가방은 필수다.) 이렇게 나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쏟아부으며 그저 경기를 이기는 것, 어제보다는 더 나은 경기를 보여주는 것, 성장하는 못브을 보여주는 것만을 바랐다. 목이 터져라 안타를 외치고, 파스를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응원가에 맞춰 안무를 완벽히 해내며,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했다. 손톱을 뜯으면서 중계를 보다 눈 딱 감고 제발 홈런 한 방만 쳐달라고, 알고 있는 모든 신에게 빌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나에게 가시적인 이득이 되지는 않는 무언가를 응원하고,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의 저녁 여섯시 삼십분만 되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지켜보게 되는 이 과정이 내 삶의 하나의 활력소가 되었다. 내일을 기대하게 되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되면서 현실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핑계를 하나 더 찾은 것이다. 

 

스포츠의 매력

운동과는 거리가 꽤 먼 삶을 살았다. 운동신경이 그닥 좋지 않았던 내게 체육 시간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공포의 시간이었고, 한창 사회학을 공부할 때에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억대 연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올림픽 정도의 국가적 행사만 챙겨보곤했다. 이런 내가 선수들의 땀과 눈물에 함께 공감하며 비로소 스포츠의 매력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내년에는 부디 개삼성이 아닌 최강삼성이 되길 바라며, 전국의 모든 야빠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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