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게 하지 말지어다
에디터 / 망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 이 글이 업로드 될 즘이면 이미 끝났을 것이다. 그러기에, 덕분에, 참의로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이런 주제가 뽑힌 게 아니라는 것 즘은 알 것이다. 모든 10대들이 수능을 거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세 명의 에디터에게 수능은 거쳐야 할 당연한 수순 중 하나였고, 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10대의 마지막 이름이 수험생이라 칭해지는 것이 지당해 보였다.
돌아서면 추억이라는 말이 그때는 그렇게 야속했으나 지금 돌이켜 보아도 추억은 아니었다. 수험생일 때의 나는 제일 성격이 사나웠고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였으매 날 다정하게 키워준 모든 이들에게 날카로웠다. 그래도 서로 동고동락 하는 세월이 즐거웠으니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결사반대인지라, 수험생 시절이 내 등 뒤 남쪽에 있다면 남쪽으로는 베개도 베고 자지 않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니 지금 현재 괴로워하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십분 공감한다. 이미 경험해본 이들이 말하는 위로는 얼마나 한낱 문장에 불과하며 현존재로서의 우리는 된통 겪고 있는 성장통임을. 도달한 끝이 성장이 아닌 이들도 많으리라.
그래도 나에게 수능의 결말은 행복이고 성장이었다. 더 솔직해져 본다면 최저 등급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전형으로 원하는 대입을 거머쥐었으므로 수능 자체가 나에게 준 직접적인 결실은 하나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점수로 다른 전형은 최저를 못 맞춰서 면접실에 가보기도 전에 떨어졌을 정도로, 수능 성적은 내신에 비해선 처참했다. 큰 시험에 약하다는 걸 그때부터 알았어야 했나.
4년이 흘러, 취직을 하기 위해선 수능과 마찬가지로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시험 날짜도 수능 바로 다음 주간이었다. 대학교 내에 있는 도서관에 새벽별 보며 나와 새벽별 보며 들어가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점심 먹으러 잠시 도서관 바깥을 나올 때마다 대학생들은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는데 왜 나만 여기서 썩어가야 하나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추억 보정’을 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고등학생, 수능 수험생일 땐 나와 내 주변 또래들 모두 수험생이어서 다 같이 동고동고하는 사이였는데.. 넓게 보면 후배들마저도, 그러니까 고등학교 건물 내를 배회하는 모든 어린 영혼들이 다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사이였는데.. 아무리 웃더라도 순간일 뿐이지, 저 대학생 새내기들처럼 찐텐으로 행복에 겨워 웃는 애들은 없었단 말이다!’ 라며 (속으로만) 열폭을 시전하기까지. 거기에서 페이스가 무너지고 취직 시험을 재수하게 되었다.
재수하자니 더 우울해졌다. 고향으로 내려가 본가로 기어들어갔다. 돌아온 탕아에 대하여 부모님은 부정적인 코멘트 일언반구 없었지만 지레 찔리는 건 혼자만의 자격지심이었다. 고향에서 홀로 취직 재수생활을 하자니 더 우울해졌다. 사회에 공헌하는 것 따윈 하나 없는 일 년짜리 백수, 쭉정이. 까닥 잘못하면 무기한의 백수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똥꿀레. 그때는 무슨 부정적인 생각이든 다 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멘탈이 무너져 삼수를 맞이하고 만다.
이후의 이야기야, 하진 않을 테다. 이 글은 우릴 시험에 들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지 나의 우울증 기록기가 아니다. 어쨌든 지금은 성실한 납세자로 살아가고 있으니, ...
취직하니 한동안은 업무에 적응하랴 커리어를 쌓아가랴 바빴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 그늘져 응어리진 꿈이 있었나니, 대학원 생활에 대한 희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대학원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 학번의 나에겐 취직을 하여 경제적으로 완전 자립을 이루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또한 곧바로 이어지는 대학원 생활은 불안정한 미래 중 하나이기도 했으므로 일단은 철밥통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게 든든한 나의 투자 가치였다. 호주머니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대학원에 들어가면 등록금은 어쩌랴, 아르바이트를 뛰며 공부를 하면 두 가지 모두 집중되랴, 그리고 그러면 어차피 대학원 졸업 학번일 때도 또 취업 준비다 뭐다 할 텐데 그러느니,
취직을 하고 대학원 등록금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2년짜리 등록금이 모두 모이면 대학원을 도전하는 것으로.
경제적인 것과 관련하여 그 계획이 성사되는 건 내년 초입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내년(2024년) 3월에 대학원을 간다고 생각하고 2023년인 올해 대학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취직 시험을 삼수했다는 타격은 생각보다 컸다. 그와 유사한 시험과 같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언제나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사회인이 되어 퇴근 후 웰빙을 즐길 때 나는 또 스터디카페에 나 스스로를 가두어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선뜻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고 올해 초 나를 찾아온 새로운 취미들이 나로 하여금 핑계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인생의 전복기는 참으로 재미있게 찾아온다. 그것은 의외로 명쾌한, ‘이것이 기회가 맞다. 날 잡아라.’ 하는 표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취직 시험은 삼수까지 갔다지만 기적적으로 재수할 적 내놓았던 다른 취직처에서 나를 불렀기에 결국 삼수는 하지 않았다던가,
대학원 시험 준비도 하지 않고 2023년의 반 이상을 허송세월하고 있다가, 이미 벌써 대학원 졸업 학번인 대학 동기가 우연히 내 개인적인 커리어의 멘토가 되어 만나
“망아, 너는 언제 대학원 올 거야?”
라는 말을 한다든가.
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허나 기회는 너무나도 명쾌한 시험의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와,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가 시험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그러한 단말마를 지르는 게 아니었던가!
나는 머리를 싸맸다. 대학원 입학시험까지 남은 건 두 달 남짓. 그 사이 입학 최소 기준인 영어 공인 인증 자격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고 학과 전공 시험 준비까지 해야 했다. 그 사이에 내가 대학 동기와 만나도록 이끈 내 개인적인 커리어 컨설팅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그 외 지면에는 실을 수 없는 보다 더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관계까지, 내 인생에 빅 이벤트는 최대 두 개까지만 동시 발생을 허용하고 싶건만, 세 개가 연달아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뭐 어떠랴. 수험생이나 취준생들에게는 억울한 말이겠으나 보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는 날 ‘시험’에 들게 한 ‘시험’이기도 했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의 가벼움 보다는 더 과몰입하게 되어 여기저기 시험 볼 거라고 말한 것 치곤 금방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한 바가지기도 했지만. 한 번 쳐보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한다고 하긴 했으나 결국 우리에게 그 어떠한 시험도 가벼운 것은 없단 뜻이다. 가볍지 않기 때문에 시험이라 불리는 것들이니까.
대학원 입학시험 자체가 말 그대로 시험 그 자체인 것을 떠나 친구가 한 말에만 자극받아 올해 시험 보는 것에 무리수를 둔 것도 어쩌면 시험이었다. 실상은 인생의 매 순간이 시험이다. 과감한 선택이건 신중한 선택이건 장고가 될수록 돌이켜보아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나를 내가 스스로의 마음에게 시험한다. 하지만 무수한 시험을 거쳐 오며 우리는 깨닫지 않았는가. 진짜 앞으로 겪을 시험이 더 많겠다는 걸. 친구와의 갈등에서의 나의 선택, 연인과의 이별의 기로에서의 나의 선택, 결혼 상대에 대한 나의 확신을 확인하는 선택, 자식에게 어떤 말 한 마디라도 더 얹을까 고르고 고르는 선택, ...
그러므로, 정작 이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재였던 대학원 입학시험의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갔는지는 고하지 않겠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이 좋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깨달음과 경험을 얻으라는 게, 시험 그 자체에 괴로워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했던 꼰대들의 말씀이었으므로,
이따금 동감한다. 결국에 긴 인생의 여로와 내딛는 발자국 하나 하나가 전부 시험이 될 것이라면, 그냥 즐겨도 되지 않겠냐고. 결과가 어쨌건 나는 최선을 다 했으며 후회 한 점 없고, 그래도 설령 부정적인 결말이라면 최소한의 아쉬움이라도 남겠지만, 뒤돌아보아 남은 것 하나 없었다고 하기엔 시험대를 걸어온 내가 가엽기라도 하니까. 그래. 인생 남은 길이 전부 시험이라면. 뒤돌아보고 있던 고개 돌려 다시 앞을 향해 딛는 그다음의 가장 첫 번째 발자국조차도 시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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