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감독한다는 것
에디터 / 바투
공교롭게도 '시험'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11월은 시험으로 시작해서 시험으로 끝나는 달이었다. 지금도 지필평가 문제를 한창 출제하고 있으면서 임용경쟁시험 감독을 하루 앞두고 있다. 시험이라는 글자만 봐도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숨이 턱 막힌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은 시험이라는 퀘스트를 하나씩 완료하면서 이루어졌지만, 오늘은 내가 깨왔던 퀘스트가 아닌 시험 감독을 했던 경험들을 다루고자 한다.
1. 교사 임용경쟁시험 감독
교사의 월급은 아주 작고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부수입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는 각종 시험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3대 시험 감독은 <검정고시, 수능, 임용경쟁시험>이다. 이중 수능과 검정고시 감독은 발령 첫 해부터 매년 해왔던 일이지만, 임용고시 감독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3개의 시험 중 임용고시 감독이 기피 대상 1순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년차인 올해 처음 맡게 되었다. 작년에는 혈육이 시험에 응시하여 감독을 할 수 없었고, 그 전에는 너무 저연차라 감독 지원의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최근에는 바뀌었으나 예전에는 3년 미만 경력자는 지원할 수 없었다.)
이런 사정들로 올해 첫 임용경쟁시험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다른 시험 감독을 할 때와는 달리 싱숭생숭하고 묘한 감정이 든다. 어쩌면 남은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이었기에 나 또한 치열하고 필사적으로 준비했었고, 그 시험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게 되었고, 아직도 시험에 붙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능과 달리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화장실을 이유로 퇴실하는 순간 다시 입실할 수 없다.), 시험의 정답이 공개되지 않아 설령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틀렸는지 확인할 수 없으며, 그래서 실력뿐만 아니라 운도 크게 작용한다고 알려져있기도 하다. 그런 중차대한 시험에서 감독 업무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그 긴장감을 다시 느껴보고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되었다.
감독 업무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시험실에서 시험을 감독하는 감독관, 본부에서 답안지 정리 등을 맡는 행정요원, 그리고 시험실과 본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복도 감독관. 이번에는 가장 쉽다고 여겨지는 복도 감독관을 맡게 되었고, 큰 일 없이 시험 내내 복도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임용경쟁시험은 늘 11월 넷째 주 토요일에 치러지기 때문에 쌀쌀한 곳에서 반나절을 있어야 한다는 점 빼고는 복도 감독관의 업무는 지나치게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핫팩과 담요와 패딩으로 무장하고 간다면 큰 어려움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2. 수능 감독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수능일 것이다. 수능날 만큼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시험이 무사히 진행되기 위해 모든 협조를 마다하지 않고, 전국민이 주목하여 그날 하루는 집에 수험생이 있건 없건 전국민이 수능 관련 소식을 접하게 된다. 포털 사이트는 수능일 아침 시험장으로 입실하는 학생들의 모습, 교문 앞에서 부모님과 포옹하는 가슴 찡한 사진들부터 시작해서 매년 어김없이 시험장을 착각하거나 시간이 늦어 경찰차를 타고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으로 1면을 장식한다. 뉴스란은 한 과목의 시험이 끝날 때마다 그 과목의 난이도가 어땠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도배되며, 시험이 종료됨과 동시에 기업들마다 수험생들 고생하셨습니다, 를 내걸며 수험표 할인을 시전하며 고객 모시기에 나선다. 이처럼 수능은 전국민적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능의 중요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수능 시험장으로 쓰이는 고등학교다. 우선 감독 가능 여부를 조사하는 수능 한 달 전부터 슬슬 체감이 시작된다. 내 교실이 시험장으로 정해졌음을 아는 순간부터 교실을 먼지 한 톨 없도록 깨끗이 청소하고, 글자가 적혀져 있는 모든 종이를 다 떼야 하며, 남는 책상을 교실 밖으로 다 빼고 시험장 규격에 맞게 배열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쓰일지 걱정함과 동시에 그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상복구 해야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그저 나온다. 그렇게 교실을 정리하고 나면 수능 감독관 연수가 진행된다. 수능일의 하루 일과가 담긴 길고 지루한 영상을 시청하고 나면 교육청에서 파견나온 장학사가 유의사항을 하나씩 읽으며 꼼꼼하게 두 시간 남짓 설명을 해준다. 사실 모의고사와 지필평가로 1년 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시험 감독을 하게 되지만, 수능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여러가지 불편한 일에 휘말릴 수 있음을 매스컴을 통해 너무나도 익히 알아왔기 때문에 이날 만큼은 사뭇 긴장한 채로 귀기울여 듣는다. 수능 전날만큼은 아무 약속 없이 집에서 얌전히 차분하게 기다리며 다음날의 알람을 한 시간 당겨서 설정해둔 뒤, 비록 잠은 당장 오지 않지만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상상하며 빨리 침대에 눕는다.
3. 검정고시 감독
1년에 약 두 번 정도 검정고시 감독 지원자를 뽑는 공문이 온다. 다른 시험들보다는 부담이 적고, 응시자들의 예민도가 비교적 낮다고 알려져있기 때문에 지원자가 꽤 많아 가끔은 지원을 해도 감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고졸 검정고시 감독을 두 차례 경험했다.
아마 검정고시가 연령대가 가장 다양한 시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생 또래들 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한 교실에서 열심히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울컥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응원하게 되면서, 내가 가진 최대한의 친절함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었다. 한번은 한 할머니께서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omr 마킹을 정교하게 하는 것을 어려워하셔서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알려드리고 나서도 혹 다른 번호에 마킹하시는건 아닌지, 제대로 기입하셨는지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름 얇고 넓은 감독 경험을 한번 되돌아보니 이제는 시험을 치는 입장보다 시험을 준비하고 감독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희귀한 경험이라 생각되어 감사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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