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딜의 지구
에디터 / 연푸른
이 이야기는 우주 아주 먼 곳, 어느 학교 공작 시간에 일어난 일이에요. 같은 반 학생인 아딜과 포륜은 지구를 만드는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내 지구에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 너무 많아!” 아딜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나쁜 인간들을 골라서 없애버리는 건 어때?” 포륜이 말했어요. 포륜은 반에서 늘 칭찬받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답니다. “괜찮아, 어차피 인간들은 다시 늘어날 거야. 원래 다 그런 거거든!” 모범생다운 아주 합리적인 조언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아딜은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어떻게 나쁜 인간들만 쏙쏙 골라낼 수 있지? 얼굴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걸!”
아딜과 포륜은 몇 시간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포륜이 눈을 크게 뜨며 박수를 짝! 소리 나게 쳤어요. 아딜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포륜을 바라봤지요.
“그래, 실험을 해보는 거야! 곤란에 처한 다른 인간을 도와준다면 그 인간은 좋은 인간 아니겠어?”
아딜은 포륜의 생각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덧붙였어요.
“맞아, 맞아! 곤란한 인간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인간은 나쁜 인간일 거야!”
그래서 아딜은 물레를 핑핑핑 돌렸어요. 곧 물레 안에서 잘 빚은 새 인간 둘이 태어났어요.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체격에 눈매가 비슷하게 닮은 소년과 소녀였어요. 아딜은 아이들에게 정성스럽게 만든 새 옷도 입혀 줬어요. 잘 지은 외투를 가져다가 정성스럽게 얼룩을 묻히고, 송곳으로 이곳저곳을 긁어 헤진 자국을 잔뜩 만들었죠. 그렇게 완성된 얇은 외투는 아딜의 실험에 딱 맞는 옷이었어요! 아딜은 지폐 몇 장과 함께, 두 아이를 서울의 한 중화 음식점으로 보냈어요. 용돈은 딱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어요.
“좋은 인간이라면 이 불쌍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충분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아딜은 반짝반짝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어요.
첫 번째 가게는 아주 붐볐어요. 띠링- 띠링- 테이블마다 벨 울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어요. 아이들은 가게의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아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어요. 스물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저, 이 매장은 1인 1메뉴가 원칙이에요. 두 명이 왔으면 두 그릇을 시켜야 하는데...”
아이들은 손에 쥐고 있는 돈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보내줬어요.
“우리가 가진 돈은 이게 전부인걸요”
아르바이트생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주방과 카운터를 번갈아 돌아봤지만, 다른 직원은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어요. 그때 한 무리의 다른 손님들이 등장해 자리를 찾아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그 손님 무리와 아이들, 주방과 카운터를 이리저리 쳐다보더니 얕게 한숨을 쉬며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식사하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손님도 너무 많아서. 미안해요.”
아이들은 서로 한 번 눈을 맞추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딜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그 아르바이트생을 지구에서 골라냈어요.
아이들은 두 번째 가게로 들어가 똑같이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어요. 점원은 두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갔어요. 곧 짜장면 한 그릇이 나왔어요. 덜도 덜도 없이 딱 1인분의 짜장면이었어요. 아이들은 단무지를 꼬득꼬득, 양파를 아삭아삭 씹으며 짜장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어요. 하지만 아이들의 배는 아직 차지 않았어요.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 소년이 말했어요.
“어쩔 수 없어. 우리는 돈이 없잖아.” 소녀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딱 한 그릇만 더 먹고 싶다.” 소년이,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짜장면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서로 한 번 눈을 맞추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딜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그 가게 직원을 지구에서 골라내고는 아이들에게 같은 양의 용돈을 쥐여줬어요.
아이들은 세 번째 가게로 들어갔어요. 입구 바로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똑같이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어요. 곧 짜장면 한 그릇이 나오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먹어 치웠어요.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 소년이 말했어요.
“어쩔 수 없어. 우리는 돈이 없잖아.” 소녀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딱 한 그릇만 더 먹고 싶다.” 소년이,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이들의 옆자리에는 한 중년 부부가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년 부부는 슬그머니 아이들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너희 아직도 배가 고프니?”
“네, 오늘 이 짜장면밖에 먹지 못했어요.” 소녀가 말했어요.
“하지만 돈이 없어서 다른 걸 시킬 수가 없었어요.” 소년이,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중년 부부의 눈에 안타까움의 눈물이 고였어요. 중년 부부는 카운터로 가서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짬뽕과 탕수육 한 그릇을 더 주라고 말하며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어요. 아이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답니다.
아딜은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래, 아직 내 지구는 살만하다니까! 포륜도 옆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래, 살만해. 아직 지구엔 좋은 인간들이 많다니까!
아딜과 포륜의 같은 반 친구들도 눈물을 흘렸어요. 감동의 눈물과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로 퍼졌어요. 친구들은 모두 아딜과 포륜의 실험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모두가 가엾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죠.
아딜과 포륜은 실험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이후로도 아딜은 물레를 핑핑핑 돌려 새로운 인간들을 만들었어요. 시각장애인 인간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라 시켰어요. 깁스한 인간을 만들어 횡단보도에서 넘어지라고 시켰어요. 소녀 인간과 남자 인간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납치극을 연출하라고 시켰어요. 휠체어에 탄 인간을 만들어 횡단보도에서 짐을 떨어뜨리고 난처해하라고 시켰어요. 그러고는 때로는 실망하며 인간들을 골라내고, 때로는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지구를 정비해 나갔지요.
그리하여 아딜의 지구에는 남을 돕는 착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답니다! 길거리에는 점자 블록과 점자 표지가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람들은 미관을 위해 점자 블록을 없애기 시작했죠.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어디로도 이동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모두가 흔쾌히 그들을 도와줬거든요.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어졌어요. 낡은 엘리베이터들은 방치되기 시작했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계단 주변에서 난처해하며 빙빙 돌고만 있으면 됐거든요. 그럴 때마다 꼭 누군가가 다가와 도움을 줬어요.
모두가 행복했어요! 도움을 받은 인간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행복했고, 도움을 준 인간은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죠. 그런 인간들을 보며 아딜도 행복했답니다. 정말 좋은 일이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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