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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3/19호_자유 주제

19호_여고 동창회와 저출생 이야기 / 바투

by 밍기적_ 2023. 12. 27.

여고 동창회와 저출생 이야기

 

에디터 / 바투

 

12월의 어느 평일, 졸업한 지 8년 만에 여고 재경동창회에 다녀왔다. 저 먼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그래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 고등학교다. 특히나 여성이 제대로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보란 듯이 자리를 잘 잡아 성공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내집단 의식이 강하며 후배들에게도 많은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선배들이 오셨다. 아니나 다를까 오신 선배들의 약력을 들으니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군도 많았고, 특히 현직 국회의원은 무려 4명이나 된다는 엄청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와 후배가 만나는 자리라는 이야기만 듣고도 왕복 세 시간을 할애해 선뜻 나갔던 나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과 애교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 감정이 더욱 고취되었다. 국회의원, 화가, 약사, 기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 탄탄히 자리를 잡은 선배들을 바라보며 멋있고, 부럽고, 존경스러우며, 그들의 모습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이 사회에 나 또한 여성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는 자리에 가고 싶었다.

 

동창회가 마무리될 때쯤, 자리와는 맞지 않는 저출산이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했다. 올해부터 재경동창회의 회장직을 맡게 되신 선배님이 공교롭게도 국회에서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이었고, 마침 후배들(그것도 저출산의 주요 원인을 안고 있다고 지목되는 2030 여성들)이 모인 김에 자신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40대이지만 늦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한 선배, 결혼을 일찍 해서 출산 계획이 있는 선배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시간상 마이크를 잡고 길게 발언하기 어려웠기에,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이렇게 밍기적의 한 페이지를 빌려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날 내 생각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밤새 생각했다. 꼭 이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그날 어떤 선배는 지금의 이 사회가 아이를 낳기에 좋은 세상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니 굳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했다. 학벌 위주의 사회, 과도한 무한 경쟁, 다양한 가치관의 혼재 등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공감했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내 피붙이가 살아갈 환경이 나 하나조차도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굳이 아이를 낳을 이유가 있겠는가. 좋은 사회가 우선되어야 아이를 낳는다는 점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정작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또 다른 한 선배는 아이를 낳고 싶으나 아이를 육아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면 좋겠다고 했다. 가령 어린이집의 돌봄 서비스가 저녁 늦게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야근이 있는 날이면 막막하고 당황스러우니 공공 돌봄 서비스의 영역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언뜻 들었을 때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교무실의 한 선생님도 그나마 육아시간 제도를 활용하여 아이를 늦지 않게 데리러 갈 수 있음에 감사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늦게까지 직장에 있고, 아이와 부모가 떨어져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 자체가 아이를 낳기에 좋은 환경이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돌봄 서비스 제공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다. 그들의 노동 시간을 연장하여 남의 집 아이를 돌보게 하고, 정작 부모와 아이는 만나지 못한 채 부모 또한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바로 개선되어야 하는 점이다. 이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노동 시간을 줄이고, 가족 간의 시간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결국 가정 내에서의 행복과 안정이 또 다른 가족을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아이를 낳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망가지는 몸, 임신 기간 동안의 몸의 불편함과 심적인 우울감까지 출산 자체의 부담만 하더라도 여성이 온전히 갖게 된다. 하지만 이것에 주목하지 않는 사회는 여성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같은 여성들끼리 왜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묻고,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는 상황을 해명해야 하는가? 출산과 육아의 고됨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같은 여성들끼리는 이해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기에 이러한 상황 자체가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다. 물론 선배들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는 많이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고, 성 역할이 다르고, 같은 국가와 같은 학교를 지나왔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의 고통과 여성의 희생을 왜 희생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선배들의 모습에 탄식이 나왔다.

 

아직도 교과서에서는 저출산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저출생의 개념을 쓰고 있다. 사회적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누구에게 두는 가의 차이다. 달리 말하면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의 차이이기도 하다. '저출산'을 사회적 문제로 규정하고, 그 해결방안을 그저 여성의 출산에의 인식 변화, 금전적 지원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으니 해결이 될 리가 없다. 지금 현재의 정책과 기득권층의 발언들은 비출산을 다짐한 여성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과연 옳았음을 확인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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