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gazine_2021/3호_밍기적 될 타이밍

3호_타이밍, 탓을 해도 되지 않을까 / 바투

by 밍기적_ 2021. 3. 31.

타이밍, 탓을 해도 되지 않을까

 

에디터 / 바투

어느 날 제보가 들어왔다.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다른 반 친구들과 학교 근처 편의점 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그럴 만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에 관해 3년간 쌓인 내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그 아이는 쉽게 그러지 못할 아이였기에, 굉장히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학교로 불러서 상담을 했다. 웬걸, 자기가 맞단다. 그런데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이란다. 불과 어제, 원래 친하게 지내던 무리의 친구들과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아무래도 학교에서 아무렇지 않게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기에 오늘 우연히 다른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하교하게 되었고, 하필 그 아이들은 원래 담배를 즐겨 피던 아이들이었기에 늘 그랬듯 편의점 뒷골목에서 담배를 폈으며, 우연히 그 옆에 같이 있던 우리반 학생은 호기심에 그리고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담배를 입에 댔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하필 왜 오늘이냐고. 다른 아이들은 몇 년 내내 피다가 오늘 처음 걸렸는데, 자기는 오늘이 처음인데 걸린거라고. 타이밍 운이 너무 좋지 않다며 한탄을 했다. 

 

타이밍 탓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회의 중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지만 과연 이걸 지금 얘기해도 될까,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주저하고 있던 찰나 하필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와 똑같은 의견을 제시해서 칭찬과 박수를 독차지할 때, 이 거지 같은 타이밍!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빨리 말할 걸. 이 때의 아쉬움을 교훈 삼아 다음에는 주저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던 나는 다음 날 회의에서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마자 바로 내뱉곤, 동시에 상사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샘, 제 뒷말을 더 들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주먹을 꽉 쥔다. 나는 타이밍 정말 못 맞추는 구나. 

 

타이밍 탓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물론 탓을 할 수 있는 대상은 많지만. 나의 주저함, 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점, 한 끝 차이로 부족했던 내 용기 등등. 그렇지만 나는 늘 타이밍 탓을 하기가 싫었다. 타이밍 때문에 아쉬워하는 내 모습은 현재에 만족하고 적응하지 못해 과거에 얽매여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운운한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토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 그랬다면, 하고 일어나진 않았지만 일어났을 수도 있는 두 번째 가능성을 곧 타이밍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하나의 일이 끝나서 결과가 내 손에 주어질 때, 만족스럽든 혹은 좌절스럽든 꼭 그 원인을 분석하곤 했다. 원인을 파헤쳐야만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들여온 습관이기도 하다. 시험을 치고 나서도, 친구와 싸우고 나서도, 학교에서 잘 했다고 칭찬을 받고 나서도,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도, 원하던 시험에 붙고 나서도 나의 ‘귀인(attribution)’ 행위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늘 부정적인 결과의 뾰족한 화살은 나를 향했다. 남들은 네 탓이 아닌 타이밍 때문이라고 해도, 나는 늘 내 자신을 갉아먹었다.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다고. 내가 타이밍 탓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나의 편견이자 강박이 깔려있다. 외적인 요인에 귀인하면 나의 발전과 성장이 더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떠한 일이 발생할 때 나의 온전한 노력과 의지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외적인 요인이 존재함을 머리로는 안다. 그렇지만 외적인 요인 탓을 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이를 딛고 더욱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늘 화살을 내 자신에게 돌려왔다.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쿨하게 넘길 줄도 알아야하는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걸 알면서도. 그동안 모든 비난과 후회와 책임을 내 자신에게만 가혹하게 지게 했던 또 다른 내가 이따금씩 미워진다. 특히 교사로서 정말 버려야 할 큰 습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행위 내지 잘못 그 저변에는 아이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분명히 있지만 이를 모두 아이의 탓으로 돌리는 가혹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쿨-하게 넘기고, 아이의 다음 도전과 개선을 기대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신은 늘 나에게 한 걸음 더 발전할 여지를 주지만, 그 때 마음과 실력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그 기회가 보일 것이다. 타이밍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타이밍 탓을 하지 않기 위해 늘 준비된 사람으로 살게 만드는 것. 타이밍에 의한 결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물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만. 이제는 조금 쿨-하게 넘겨도 되지 않을까. 마음의 짐을 덜어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의 작은 관용은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타이밍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섣부른 시도를 해서 낭패를 보아도 그건 타이밍이 잘못된 탓이고, 내 선택에 확신이 없어 주저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 것도 타이밍이다.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 때문이다. 

 

너무 자책하지 말자. 타이밍 탓은 충분히 해도 된다. 타이밍이 잘못인거다. 우리가 아니라. 

타이밍, 탓을 해도 되지 않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