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배움에 도움이 되는가?
에디터 / 바투
임용경쟁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꽤나 즐거우면서도 힘이 들었다.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였지만, 개론서를 읽으며 여러 이론을 알아가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내가 공부에 나름의 소질과 취미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되다 보니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 혹은 표면적인 내용들을 암기하는 것 위주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더 편하고 깊게 배움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혹은 애초에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공부이므로 시험이 없었다면 공부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임용경쟁시험 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들에서 자격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여러 시험 제도를 두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학교에서의 시험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각종 평가를 중심으로 학교교육과정 및 학사 일정이 구성된다. 나는 현재 3학년을 전담하고 있고, 11월부터 시작되는 고입 전형을 대비해서 부랴부랴 수행평가 한 가지를 끝냈다. 즉, 진도 자체가 평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거의 대부분의 수업은 평가를 위해서 구성되고 진행된다. 시험을 위한 공부, 시험을 위한 배움이 디폴트값이 되어버린 이러한 현실이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험이 없는 상황에서의 순수한 배움은 과연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중학교에서는 거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를 기준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내신에 반영되어야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자발적인 참여와 배움을 일으키는 데에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유익하고 가치있는 내용을 평가 속에 담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고민이 된다. 예를 들어, 환경 단원을 다루고 있을 때에 나의 수업 목표가 ‘학생들이 환경 정의를 이해하고 환경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는 것'이라면 평가 자체를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된다. 각자 환경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느낀 점을 발표하게 하는 식으로 평가를 구성하여, 비록 평가가 수단일지언정 그 속에 나의 배움 목표를 녹여내는 것이다. 교사로서 자존심은 약간 구겨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나서서 무언가를 배우고 알려고 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평가를 방패 삼아 수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떤 사소한 것이든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되는 지점을 배움이라고 정의한다면 당연히 시험은 배움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순수하고 원초적인 동기에 의해 촉발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배움에까지 이어지는가 묻는다면 다소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시험이 있는 한 배움은 시험의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시험에서 묻는 범위 내에서, 시험 출제자의 의도 하에서, 정답으로 인정되는 요령을 더한 배움이 펼쳐지게 된다. 배움은 시험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만 펼쳐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시험이 배움을 그나마 가장 촉발시킬 수 있는가? 가령 선다형 시험의 경우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단순히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도 있는 고민을 끌어내지 못한다. 비교적 서술형이나 논술은 오랜 고민과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에 더 나은 유형의 평가라 여겨지고, 이러한 점 때문에 중학교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에는 서논술형이 필수로 포함되었다. 서술형도 다 같은 서술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대부분의 서술형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교적 정답이 있는 발문으로 주어진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 공교육의 시험에서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던져 수험자의 생각 속에서의 배움을 평가하지만,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서의 서술형은 생각보다는 긴 문장 형식으로 정답을 얻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길게 쓰여있는 서술형 정답을 외우고 외워 시험에서 잘 구현해내면 좋은 점수를 얻게 된다.
일상 속에서 우연히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관계에서 아픈 일을 겪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혹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새로이 깨닫게 된다. 이러한 배움은 우리의 피부 깊숙이 느껴지고 또 잔상이 오래 남는다. 어떠한 목적에 의해 시작된 배움은 목적이 달성됨에 따라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목적 없이 우연히 얻게 되는 배움은 비교적 소비 기한이 길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시험에 들게 된다. 계속해서 내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대한 도전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시험을 잘 이겨내며 자아가 두터워지고, 그것이 내 삶에 대한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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