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의 왼쪽 발바닥에는 점이 하나 있다.
바투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염색을 한 적이 없다.
바투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프로그램 공개방송을 방청한 적이 있다.
망은 의무교육 시절 외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
망은 취직 후 매해 생일마다 꽃다발을 받는다.
망은 처음 산 노트북을 5년 이상 사용하였다.
연푸른은 어릴 적 바닷가에서 해파리에 쏘인 적이 있다.
연푸른은 약한 마늘 알레르기가 있지만 K-국민으로서 어떻게든 참고 먹는다.
연푸른은 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온기는 몸에 타투 세 개가 있다.
온기는 스카이 다이빙을 하다가 안전 장비에 결함이 생겨 조금 아찔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온기는 미 서부 여행을 함께 간 친구와 크게 다퉈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싱글 라이더로 즐기며 “오히려 좋아~!”를 외친 적이 있다.
갑자기 이게 웬 자기소개인가하고 의아해할 수 있겠으나, 위에 나온 모든 문장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 이건 바로 진진가 게임이다.
진진가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진진가는 진짜, 진짜, 가짜의 줄임말로, 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사용되는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3개 ~ 5개 정도의 정보를 제시하는데 그 중 일부는 가짜 정보다. 정보를 들은 상대방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맞추고, 정보를 제시한 사람은 각 정보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무례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을 할 필요도 없고, 말하고 싶은 정보만 취사 선택해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진진가 게임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부담없이 하기에 좋다. 밍기적과 독자들이 만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에디터에 대한 자그마한 TMI를 알아가고 싶다면 위에 나온 문장들로 셀프 진진가 게임을 해봐도 좋겠다. 답은 이 글의 끝자락에 슬쩍 적어두었다. 혹시나 답을 모두 맞춘 사람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이나 티스토리에 댓글로 달아주면, 글쎄 또 모른다. 혹시 상품이 있을지도!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왜 이 게임의 이름은 하필 ‘진진가’일까? 다른 대체어가 많지 않나? 이를테면 참참거(참, 참, 거짓)라던가. 혹은 ‘거거참’이라 부르면 제법 매력적인 이름이 됐을 뻔 했는데… 그거 참,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진짜, 가짜는 명품 가방이나 귀금속에도 쓸 수 있는 반면 참, 거짓은 명제의 사실성 여부를 말하는데 사용되는 표현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진진가보다는 참참거가 더 맞는 표현 같은데 말이다.
‘진진가’를 ‘참참거’라고 부르지 못할, 어감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아마 참과 진짜, 거짓과 가짜의 정의를 철학적으로 혹은 언어학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분명 어떤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밍기적이 이를 분석하는 논문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무책임하게도 그냥 나만의 개똥철학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페이지를 채워보려고 한다. 내가 할 설명은 이거다. ‘참참거’라는 표현은, 이것이 ‘참, 참, 거짓’이 아니라 ‘참말, 참말, 거짓말’의 준말로 잘못 이해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진진가는 ‘거짓을 말함’이 포함된 게임이지만 ‘거짓말을 하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니 오해의 여지를 피하기 위해 ‘참참거’보다는 ‘진진가’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진진가는 명제의 참, 거짓을 가려야 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진진가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을 말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진 않는다. ‘거짓을 말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거짓말이 뭔지부터 정의를 내려야한다. 거짓말은, 문자 그대로만 보면 거짓인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내용이 ‘거짓인 말’과 ‘거짓말’은 우리에게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 거짓말은 (1)그 내용이 거짓인 것에 더해서, (2)내용이 거짓임을 발화자가 알고 있어야 하고. (3)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속이기 위함이라는 의도 하에서 발화된 것이어야하며, (4)듣는 상대방도 이를 퍽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내용이 거짓임을 발화자가 모르면, 그건 착각이나 실수이지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속이기 위함이라는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넉살이나 장난과 같아지며, 상대방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지 헛소리나 연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진진가 속 거짓인 말들은 (3)과 (4)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 가짜 정보를 제시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속이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상대방이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는 것에 가깝고, 상대방도 이미 이 중 몇 개는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해당 정보를 접하기 때문이다. 진진가 게임 속 누군가를 두고 ‘거짓말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 사람이 거짓인 문장을 두고 ‘이거 진짜야. 진짜라니까?’정도의 말은 해야하는 것이다.
자,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의 조건까지 제시해보았다. 위에 나열된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이 지면에서는 그런 논의까지는 진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거짓말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거짓’을 말하는 것임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건에 따르면 거짓말은 실제 상황과, 발화자, 청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만들어낸 상황, 발화자, 청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짓말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을 속여 그의 행동 방향을 바꾼다. 동시에 거짓말을 한 사람도 변하게 되는데, 이들은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속아 의도치 않게 변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행위자들은 또 다시 상황을 변화시킨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행위자가, 혹은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한 때는 거짓말이었던 것이 참말이 되기도 하고, 참말이었던 것이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결국 구체적으로 무엇을 거짓말이라 정의할 것인지, 그 경계는 매우 모호하고 유동적인 것이다. 밍기적의 15호 <거짓말>은 바로 그 유동적인 경계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바투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이 발화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환경을 탐색한 글이다. 바투는 이런 탐색을 통해 사실이 아닌 말은 모두 거짓말인지,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인지를 묻는다.
망의 소설 <배설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루는데, 우리는 그의 소설을 통해 때로는 솔직함보다 편안한 ‘거짓말’ 혹은 ‘침묵’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연푸른의 글 <사랑하고 있을까>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로, 거짓말과 사실로서 지탱되고 이어지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은 하루에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는 매우 사소하고 의례적인 말까지 포함된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7-8분에 한 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는 꽤나 놀랍다. 나는 8분에 한 번 말 자체를 할까 말까한데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3시에 마감해 넘기기로 했는데, 이미 시간이 3시 35분이니, 방금 밍기적 에디터들에게 하나의 거짓말을 한 셈이기는 하다. 이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아래는 글의 초입에서 등장한 각 에디터의 진진가 게임에 대한 답이다. 혹시 정답을 모두 맞춘 독자가 있다면, 밍기적에게 연락을 주길 바란다. 물론 정답을 다 맞췄다는 말이 거짓말이더라도, 우리가 그걸 판단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바투 가진가 / 망 진진가 / 연푸른 진가진 / 온기 진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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