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에디터 / 바투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짓말이 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문제가 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친구들과 멀리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 신나게 놀고 있을 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기 싫어 그냥 집 근처에서 놀고 있다고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을 때가 있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2 등 여러 매체에서 언급되는 멀티버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만 진실이 아니라,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진실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멀리 여행을 떠난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나의 거짓말로 인해 엄마는 내가 집 근처에서 놀고 있다고 믿게 되고 그것이 엄마에게는 진실이자 사실이 된다. 이런 경우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전달하는 것보다 상대의 불필요한 걱정과 감정 소모를 덜어주는 것이 우선이 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거짓말은 때로 “허용"되기도 한다. 문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시적 허용되듯이,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때로는 핑크빛 세상을 꾸며내는 것이 허용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릴 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얀 거짓말이나 착한 거짓말이니 그 모든 것은 거짓말을 한 자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부끄러운 자들이 떳떳해지고 싶어 내세우는 위선일 뿐이라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상대가 정확히 알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국 상대를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풍파를 겪으며 어른이 되어 특히 학교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는 지금은 사실과 거짓말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키워나가고 있다. 결국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심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기 보다는 조금 더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과장도 좀 하고, 없는 근거도 좀 대고, 학생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다면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이야기를 모두 끄집어와서 활용해야 했다. 우리는 이것도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는가? 사실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정확히 묘사하고 서술할 수 없다. 그러한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것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는 것이 나중에 실제로 일어난 상황과 다르게 되면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비단 사실과 다른 것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던 예전과 달리, 삶을 살아보니 ‘사실'을 규정하는 것이 때로는 부단히 의미없음을 깨닫게 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해야만 하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느끼게 되었다. 그러한 거짓말에는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느낄 필요도 조금 덜어내도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구조적인 거짓말
글이 시작될 때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친구와 노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기 싫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거짓말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큰 성별은 어느 것일까. 똑같이 여행을 가고, 똑같이 과 행사에 참여하고, 똑같이 술을 마시는 자리이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위와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거짓말은 내가 속한 집단, 내가 타고나거나 사회가 나에게 부여하는 특성에 따라서도 그 빈도가 바뀌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는 거짓말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전달하는가의 문제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함을 겪은 시민들이 늘어나며 연일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뉴스 헤드라인만 읽은 채 원색적인 비난만 표하는 사람들, 아주 사소한 부분만을 짜집기하여 의도적인 왜곡을 이어가는 기사들이 포털 뉴스란의 기본값이 된지 오래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이유는 무엇인지 그 목소리에 집중하기보다 그러한 시위가 초래하는 불편함에 초점을 둔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될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거짓이 아닌 사실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있는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구성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전달되는 그 창문이 깨끗하게 닦여 있는지, 혹여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있는 것은 아닌지에 더 가깝다. 그리고 전달 과정이 깨끗하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과연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나 사실과 거짓을 잘 구분하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지 다시 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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