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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4/20호_닿을 수 있을까, 상상

20호_일확천금의 꿈 / 망

by 밍기적_ 2024. 1. 30.

 수능.

 상상을 주제로 갑자기 웬 수능 얘기냐고? 하지만 수능 현역생일 때를 ‘상상’해 보라. 수능을 치르는 동안 수험생들에겐 문제를 보느라 충분히 정신 없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능 감독이야말로 수능 문제만큼이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쪼끔만 말을 거역해도 부정행위 취급하고 수험장에서 내쫓아 버릴까봐! 그러나 수험생 신분을 벗어나면 수능 감독이 그렇게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건 가뿐히 알 수 있다. 대체 수능 감독이 누구길래?  이 의문에 대해선 이미 해답이 많이 주어져 있다. 학교 선생님들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능 감독은 과연 수능 시간 내내 시종일관 부정 행위 자를 잡아 내기 위해 곤두서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특히 100분이나 되는 특정 과목은 거의 두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데 앉아 있는 수험생들의 집중력도 (긴장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긴 하겠다만) 바닥 날 마당에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능 감독의 자세 강도는 그들로 하여금 수험 시간 내내 집중하게 하고 있기란 힘들 것이다.

 수능 감독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부른다. ‘시간과 공간의 방’. 휴대폰을 볼 수도 없고 사담을 나눌 수도 없고 딴 짓을 할 수도 없다. 극S가 아닌 이상 감독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하며 시간을 메워야 한다는 뜻이다. 수능 감독들은 감독 후 일시불로 감독비를 지불받으니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얼추 잘 가긴 할 거다. 소비하는 상상이야말로 행복한 게 없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것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시간이 빨리 가는 상상법이 있다.

 바로 복권 당첨 이후를 상상하는 것이다.(;;)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는가? 실제로 필자가 동료 교사로부터 추천받은 사항이기도 하나 수능 감독 시즌에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밍기적 이번 호 글을 쓰기 위하여!

 복권을 샀다는 사실!! (핑계다.)

 

 복권을 사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인 것 같다. 세 번째 인 것도 같은데, 그 사이에 복권을 샀던 건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처음 복권을 샀을 때가 제법 인상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말하자면 그간의 복권은 모두 낙첨이긴 했는데, 처음 샀을 때 정말 복권 꿈을 꿔서 괜히 좋은 기분에 성인이 된 처음으로 자동 조합으로 복권을 사봤다. 일주일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 구름 위를 걷는다면 그건 곧 솜사탕 같은 달콤함 일 거예요-라는 진부한 문장이 찰떡일 만큼. 왜냐하면 그때의 난 내가 꾼 복권 꿈의 효력을 정말로 믿었고, 그 덕분에 그 다음 주가 되면 확실히 복권에 당첨되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였던 내가 복권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지 꾸었던 꿈은 상당히 추상적이었고 효심이 깊었던 것으로 기억할뿐더러 아직 대구에서 살 적이라 월요일에 어떻게 농협 본점까지 가지? 라는 상상까지 했더랬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던 대로 첫 복권은 낙첨되었으니 지금 형편에 경제적 여유는 별 것 없고, 이번에 산 복권은 오로지 밍기적 글을 쓰기 위함일 뿐이다. 결코 당첨 되었을 경우 (제법 큰) 부수입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밍기적의 성공뿐이라는 순수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막역지우 T를 불러오겠다. T는 나아 함께 복권을 사서는 당첨 이후의 꿈을 함께 그려준, ... 그러니까 ... 나와 함께 일확천금을 노리는, ... 아, 아니. ... 나와 달리 일확천금을 노린 ... 이게 아니라 ... 내가 글 쓰는 걸 도와주는 ... 고마운 사람이다. ... (어째서 글자가 점점 작아져야 할 것 같지?)

 

 잠시 화제를 돌려, 밍기적 편집부 회의 내용을 들려주고 싶다. 밍기적 편집부 회의는 매달 두 번 이루어지며 그때마다 해당 월의 주제를 정하거나 인스타 계정에 게시글 업로드 방식을 논한다. 이번호의 주제 ‘상상’이 어떻게 정해지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다는 뜻이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청룡의 해라고 한다. 12지신 중 유일하게 상상 속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밍기적 편집장들도 이번호 주제로 ‘상상’을 떠올렸다. 하지만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용은 상상 속 동물이라 불리나 엄밀하게는 ‘환상’ 속 동물이다.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반면 환상은 정말 꿈속에서의 이야기로 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호 주제 또한 상상으로 하느냐 환상으로 하느냐를 두고 짧은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로의 구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상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주제가 상상으로 고정되었다.

 그렇다면 복권 당첨을 통한 일확천금의 꿈은 상상인가 환상인가?

 물론 상상이다.

 충분히 당첨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처음 복권을 샀을 때와 달리 예지몽을 꾼 것도 없으니 당첨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맞았다. 하지만 추구미 ISTJ인 자아 정체성과 달리 야속하게도 당첨 후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무의식이여!

 T와 함께 카페에 앉아 각자의 복권 꿈을 나열했다. 우리끼리 그간의 복권 당첨 액수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평균 14억이 당첨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T는 주기적으로 복권 당첨의 꿈을 꾸는지 상상이 제법 구체적이었다. 집 한 채에 가게 한 칸, 차 한 대를 살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살 집에 차 한 대만 사도 부족할 거 같았지만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고 난 뒤에도 계속 일을 한다 쳐도 가게 하나 정도의 부동산 자금이 있으면 갑작스러운 질병에도 대비하고.. 든든하지 않을까, 하고서 안정적인 경제력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대화는 우리가 정말 당첨금을 오롯이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로 넘어갔다. T가 물었다. 세금을 최대 몇 퍼센트나 떼갈 수 있는 지 알아? 몰라.. 내가 고액납세자가 될 만큼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33%나 떼간데. 그럼 21억을 받아도 14억 즘 되는 거야. 꺄아악~! 복권 당첨금 수령액 평균 14억의 출처가 세후였단 말인가! 실제로 찾아보니 그 주차에 1등에 많은 사람들이 당첨되어 한 사람당 17억을 수령할 수밖에 없던 때도 있었더랜다. 같은 복권에 당첨되어도 액수가 다르다는 건...!... 역시 당첨되고 난 뒤에도 운에, 운에, 운에 맡겨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화제는 바뀐다. 정말로 복권에 당첨되면 말야, 어떻게 당첨금을 수령하는 지 알아? 그거야 알지. 농협 은행 본점 찾아가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어떻게, 은행 창구 가서 물어보느냐는 거지. 그게 아니라 옆쪽으로 난 엘리베이터 근처 경비실로 가면 된데. 그럼 경비원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겠지? ‘아, ..저기, ..그..’라고 하는 순간 경비원이, ‘아, 이 엘리베이터 타고 위로 쭉 올라가세요~!’ 라고 해주신다는 거야. 오래 근무한 사람 눈에는 다 보인다나봐. 그렇지 않겠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자신이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여겨지고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겠지.

 T의 말은 이어졌다. 나는 그래서 그런 상상도 한다? 수령액을 받고 나서 농협 은행 본사 앞으로 나오다가 납치당하면 어떡하지 하고? 웃으며 맞장구 쳤다. 그러게, 월요일 아침에 굳이 농협 은행 본사를 찾는 사람이면 대부분 복권 당첨금 수령자들일 테니까 노리고 있다가 돈을 강탈하면 되겠어, ... 이런 짜릿한 불법적인 상상까지. 그런데 그래서 정말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직원들이, 응, 일단 축하한다고 말해주고선 당청금 수령 방법에 대해서 안내를 한데. 진짜야. 인터넷에 누가 올린 당첨 후기 보고서 하는 말이라니까. 그때 좋은 금융 상품 가입 안내도 한다는데 그냥 빚 엄청 많아서 이걸로 다 갚아야 한다고 말하고 일괄 수령 하면 된다고 그래.

 상상은 날개를 달아 점점.. 마치 우리가 당첨금을 수령하는 사람처럼 만들게 했다. 매주 복권을 사면 정말로, 결과 나오는 토요일까지는 매일 매일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적어도 이번주 한 주 동안엔 그랬다.

 

 토요일 밤 확인한 결과상으론, ...

 이미 받은 고통, 활자로 주어진 고통조차도 줄여보기 위해 빠르게 진행을 한다면,

 낙첨되었다는뜻이다.

 8시 40분에 바로 결과를 확인한 터라 (그땐 아시안컵도 진행되고 있던 찰나였는데, 그 아시안컵조차도 2:2 무승부가 났으니 그날은 모두에게 된통 운이 없던 하루였다.) 몇 명이 당첨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월요일 아침 확인하니 1103회차 복권 1등에는 17명이 당첨되었다. (그래, 그 아래 토요일은 운이 없는 하루였지. 당첨된 17명을 제외한다면!) 나눠 갖는 돈은 한명당 15억. 세후 10억이라고 생각하면 서울에선 집 한 채도 사기 힘들 수 있다. 그걸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엔 어쨌든 누군가의 행복에 소금 뿌리는 짓이니 굳이 구체적으로 상상하진 않겠지만, ... 월요병이 평소보다 짙어지긴 한다.

 

 당첨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결과를 보기 전에도 당연지사 가장 실현성 높은 상상이었기에 나는 결과를 보고 추후 상처 받지 않을 나를 위해 자기 방어의 책략에서 T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당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T 왈, 그게 5,000원으로 사는 행복이란다.

 그렇군.

 불현 듯 닿고야 만 깨달음이다. 5,000원으로 이정도로만 제법 값싸지 않는가. 원효대사 시골물이라는 보편어구에 따르면 마음먹기에 따라 소모비용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행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이 조금이라도 더 현실에 맞닿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0원 정도는 지불해야 한다면 이 또한 값싼 대가 아닌가.

나에게 수능 감독하는 동안 시간 가장 잘 가는 방법으로 복권을 사고 당첨 이후를 상상해 보라고 추천했던 동료 교사가 물었다. 망 선생, 올해 수능 감독에 대비해서 복권은 샀어? 아뇨, 안 샀는데요? 사봤자 어차피 당첨 안 될 건데 말이죠. 나는 제법 시니컬하고 현실적인 사람인 척 쿨하게 대답했지만 동료 교사는 일갈했다. 사고서라도 그런 소릴 해!

 그래, 사고서라도 그런 소릴 하자.

 내가 지금 하는 상상이 복권 당첨과 같이 실현 가능성이 낮고 내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그런 종류로만 가득찬 건 아닐 테다. 나에게 분명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꿈과 상상력이 있고, 5,000원을 주고 복권을 사는 그 단순한 품마저 들이지 않으면 그건 영영 환상으로 남을 것이다. 환상을 상상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 더 이상 기적이라 불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귀찮음을 이겨내고 움직이는 것. 새해 첫 결심이 작심삼일이 될 지언정 어차피 중도 포기할 걸 예상해서 해보지도 않고 상상에서만 그치지 말 것. 새해 결심은 늘 상상에서 그친다지만, 분명 그 꿈을 이루어내고 마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그 귀찮음을 이겨내는 불현듯한 결심이, 나는 복권 당첨보다 귀한 값어치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 으아아아!! -사람은 이성으로 자신을 꾸짖고 채찍질해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이런 모습이 더 멋있는 태도로서 추양받기 마련이지만, 이따금은 이런 요행과 단꿈에 빠져도 좋지 않겠느냐는, 성찰 얕은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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