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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4/21호_날씨, 그 변주곡

21호_예민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 온기

by 밍기적_ 2024. 2. 29.

예민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에디터 / 온기

 

지난 여름엔 꽃가루 알러지로 고생을 했다. 평생 꽃가루 알러지라고는 없었고, 되려 꽃가루 알러지라며 간절기마다 재채기를 달고 살던 친구를 놀라운 눈으로 보던 나는 정작 내가 꽃가루 알러지라는 말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여름 방학동안 보험을 포기한 상태라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는 꽃가루가 사라져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엔 정말 목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바로 지난 주말에는 생각지도 못 하게 에어비엔비에서 하루를 투숙했다. 다른 지역에 볼일이 있던 친구를 따라 나섰다가 뉴욕 북부 전체에 눈보라가 심하게 왔고 안전상의 이유로 도저히 깜깜한 밤에 눈길 운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타이어가 헛돌아 꽤나 아찔한 상황까지 있었지만, 사실 악명 높은 뉴욕 북부의 겨울 날씨를 나도 친구도 이미 겪을 대로 겪은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날씨로 인해 겪은 불편 에피소드는 사실 예고편에 불과하다. 나는 온도 알러지가 있다. 갑각류나 강아지와 같이 특정할 수 있는 것에 알러지가 있어서 그 부분만 각별히 주의하면 되는 사람이 부러울 지경인 나는 알러지를 일으키는 요인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 보통 한 겨울의 추운 날씨에 노출되면 알러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더러 한랭 알러지가 있다고 하고, 더운 날씨에 발생하는 알러지를 콜린성 두드러기라고 칭하는데, 나는 추운 날씨와 더운 날씨 두 가지 모두에 취약하다. 

 

이 증상은 재 작년 미국에 다시 오게 되면서 점차 정도가 잦아지더니 지금은 컨디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일상에 불편을 빈번하게 겪을 정도로 심한 상태다. 정말 심각할 때에는 몸에 점차 한기가 돌아 창문을 닫기 위해 몇 초간 찬 공기에 손이 노출된 경우에도 손등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뜨거운 커피를 마셔 몸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 정도만으로 가려움을 동반한 두드러기가 온 몸에 일어난다. 누구는 몸의 온도를 아예 완전히 올리는 고강도 운동이나 찜질, 스파 등을 추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낮은 강도의 운동을 지속하며 조금씩 온도 변화를 주며 몸을 적응시키라고 말한다. 사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그나마 공인된 방법인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고 실내 온도를 유지해서 최대한 몸의 온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안타깝지만 이 병(?)은 발병 원인도 해결방법도 뚜렷하지 않다. 

 

미국과 나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도 같다. 공기나 물의 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새로운 나라의 물과 공기에 몸이 적응을 못 한 탓 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미국만 탓 하기엔 미국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다양하며 더군다나 나에게는 새로운 곳도 아니다. 온도 알러지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겪지 않았던 증상이다. 그래서 추측하건데 이건 날씨를 비롯한 여러 외부 요인들을 떠나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에 생긴 변화가 생겨 겪는 불편일 수도 있다.  

 

사실 원래도 나는 더위와 추위에 강한 편은 아니었다. 겨울철만 되면 두통이 잦아 귀마개나 후드로 얼굴과 귀를 열심히 가리고 다녔다. 햇볕 알러지 때문에 학창시절엔 열로 심하게 붉어진 나를 보며 친구들은 보건실에 데려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난 그냥 모든 계절에 취약하고 무척 허약하다.) 마음만은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내 몸은 그 바람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상적으로 나는 호주와 같이 계절별 온도차가 크지 않아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나처럼 몸이 작은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날씨는 그 사람의 중요한 삶의 일부분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날씨가 기분을 좌우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대부분이 하늘이 화창한 날에 기분좋게 시작하는 정도이지 날이 조금 흐리다고 해서 하루종일 기분이 다운되어 있지는 않는다. 그저 개인이 무던한 성격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날씨 자체가 주는 영향이 줄어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류는 이제껏 겪지 못 한 수 많은 이상 기후를 경험하고 있다지만, 사실 큰 갈래로 보면 날씨가 개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하면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높아져 다가올 경우의 수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고,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과거에 비해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날씨를 가진 곳으로 이동도 가능해졌고, 그런 마음을 가진 심리를 시장에 반영해서 날씨를 상품화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12월부터 이어지는 추운 겨울에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북반구의 나라) 세부와 괌, 발리같은 따뜻한 휴양지는 언제나 인기를 끈다. 1년 365일 온화한 날씨만 이어져 평생 눈을 본 적이 없는 미얀마에서 온 내 친구들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눈에 추운지도 모르고 한참을 눈밭에서 뛰놀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번엔 여럿이 모여 스키캠프를 갔다왔다고 하니 날씨의 상품성은 여기서 또 한번 통한 듯 하다. 

 

이렇게 인간은 이제 주어진 날씨를 꾸역꾸역 견디며 사는 것이 아닌 날씨에 맞추어 생활 양식을 융통성있게 바꾸기도, 기술을 통해 되려 날씨를 이용하기도 하니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우리는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날씨가 직접적으로 개개인의 삶을 관통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날씨는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날씨는 공기처럼 형태만 다를 뿐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가끔 간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날씨의 범위와 영역 역시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힘주어 이야기 하고 싶다. 미래 sf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날씨를 스위치 하나로 이리저리 바꾸는 세상은 스케치북에나 존재하는 것이지 지금도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인 친구 A군은 자카르타 저지대에 살던 친척들이 날씨의 급격한 변화로 집이 물에 잠겨 평생을 함께한 삶의 터전을 옮겨야했던 이야기를 들려줬고, 미국 교환학생 B양은 귀국 전 꿈에 그리던 요세미티에 애써 찾아간 날 다행히 안개가 끼지 않아 암벽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운이 좋았다고 후일담을 늘어놓았고, 생각지도 못 한 핀란드로 출근을 하게된 지인 C씨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흐린 날씨에 내내 울적한 기분이 들어 비타민 D라도 열심히 섭취하고 있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이렇게 우리는 대자연의 흐름인 날씨 앞에 한없이 무력해지고 작아진다. 예민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날씨는 여전히 우리 삶에 많은 변주를 주는, 우리에게서 절대 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삶의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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