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커피 안 마시면서
에디터 / 망
고등학생 때 커피를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야, 커피라는 건 담배나 술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만 마시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 물론 성인의 여부에 상관없이 커피는 음용 가능했지만 일부러 찾아 마시지는 않았다. 몸에 어쩐지 안 좋을 것 같아서. 학생이라면 잠이 올 때 자면 되지.. 라는 생각도 있었다. 쉬는 시간 10분만 자고 일어나도 개운할 수 있던 그때 그시절. 하지만 똑같은 10대의 건강을 갖고도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는 친구가 있었다. 이틀에 걸쳐 세 시간을 잤다고 말하던 친구는 학교에서 하는 활동이 많고, 또 욕심도 충분한 학생이었던지라 정말 바빠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해 보였지만. 그러나 커피를 마셔야 할만큼 수면 시간이 부족한 건, 걱정되는 일이긴 했다. 나는 타인이었으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커피를 음용하진 못했다. 한번 호기심에 마셔봤을 때도, 여기저기서 듣던 것이 있어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자야할 시간에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괴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더라..?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는 기억은 명확해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가온 커피 음용 습관이라는 건, 그 시작이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마시기 시작한 시점은 있다. 재작년부터 낮잠 잘 시간도 없이 바빴더랬다. 작년에는 더욱 바빴다.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마셔서 하루에 두 잔씩 마시니 몸이 그만큼 피로에서 회복되길 바라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면,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커피부터 마셔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일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더 회고하건데, 안타깝지만.
이즘 돼서 밝히는 나의 커피 취향
나와 카페를 자주 가 본 지인은, 메뉴판 앞에서 ‘너는 뭐 마실래?’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내가 바닐라 카페 라떼만을 마시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샷 내리는 기계를 사서 같이 마시자는 지인도 내 커피만은 내려주지 않는다. 다들 커피 머신을 찾더라도 나는 꿋꿋하게 믹스 커피를 찾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나의 커피 취향은.. 꼭, 반드시. 달달함이 들어가야 한다. 달달하고 씁쓸한 커피 맛. 그게 내 취향이다.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면 카페 가서 초코라떼를 마시면 되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초코라떼는 또 너무 달달했다. 전부 단 맛만 있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씁쓸한 맛이 섞여 있는 게 좋았다. 물론 이걸, 인생에는 쓴 맛도 있으므로 그런 것을 마시고 싶다-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런.. 감성을 알 수 없는, -물론 인생은 쓴 맛이 있는 건 맞지만- 어쩐지 나이 어린 상대에게 젠체하고 싶어하는 느낌을 띄고 싶진 않다. 그런 느낌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인생이 객관적으로 어떻든 혓바닥이 찾는 게 그런 거니 어떡한단 말인가?
커피 취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몇마디 더 변명을 덧붙여보자면 나는 혓바닥 입맛 취향이 원래 달달한 것을 위주로 찾는다.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것들. 이걸 아는 지인들은 나보고 소위 애기 입맛, 초딩 입맛이라곤 했지만.. 초등학생들도 요즘은 비빔밥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나는 그런 호칭을 듣는 게 억울하지 않을까? 충분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 정말 장난으로 억울해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특히 뷔페에 가면 세 접시만에 디저트를 담아오기 때문에 지인들 사이에서 더 그런 인식이 자리 잡았으니, 본인도 설탕만을 찾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느 식사류에서든 일관된 취향이니 커피에서도 바닐라 카페 라떼를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근데 어차피 커피 안 마시면서?
각설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시작해보자.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두 번씩 마시던 커피를 올해 들어서는 전혀 마시지 않았다. 작년 내내 지난한 콧물과 가래에 시달려 왔는데, 휴가를 얻은 김에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목에 염증이 있다 하여, 술, 커피, 기름진 것 등등이 금지 되었다. 그런 진단에 상관없이 마시고 즐긴다면 나야 상관없겠지만 착한 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
술, 기름진 것, 탄산.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커피를 끊었을 때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커피를 한 번 끊기 시작하자 온종일 몽롱하고 힘이 없고 기운이 없어, 밥만 먹고 소화한 다음에 자꾸만 픽픽 쓰러져서 자야 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휴가를 받기 전까지 다소 혹사해왔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데에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새삼 참 이번에는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얼마나 억울한 게 많기에? 여담이지만 평소에 참지 말고 살자- 어쨌거나, 그만큼이나 카페인에 중독이 되어 있었던 듯하여 무기력하게 수면욕에 굴복하고서 일주일이나 되는 기간에 정말 말 그대로 잠만 잤다. 휴가 내내 이렇게 허송세월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건강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던가, 물론 일 년씩이나 염증을 방치할 정도로 생활하는 데에 있어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겸사겸사, 이만큼이나 중독되어 있던 카페인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각오도 있었고.
이미 눈치 챈 사람들은 눈치 챘겠지만 수면 부족의 고통은 정말 딱 일주일을 갔다. 이후로는 막 세상에 태어난 망아지 다리처럼 후들거리긴 했지만 아무 데에서나 누워서 자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고 걱정할 수도 있지만.. 이미 올 한해도 2월달에 접어들고 있으니, -아차, 혹시 여기까지 읽고 놀라고 있지는 않은가? 올해 세운 계획 1월에는 잘들 지키셨는지?- 카페인도 끊었겠다. 그러니 선방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2월호 주제를 카페인으로 잡는 데에 동의했나요?
나의 이런 건강 생태에 대해 공유하면서, 또한 카페인에 중독된 사람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대답을 돌려받기는 힘들겠지만. 지난번 업무차 미팅을 했던 분은 커피를 하루 일곱 잔 마시는데 병원에서 끊을 것을 권고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이란 무엇인지, 돈을 벌어 행복해지고 싶어서 일하는데 돈 번 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정신과 건강은 갉아 먹히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올해 들어와 짤막하게나마 고생하면서도 몸소 얻은 교훈이었기 때문에, 아마 올 한해의 소박한 목표가 있다면 일주일에 커피를 최대 한 잔만 마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부족한 부분은, 다른 활동들을 미련 없이 놔줌으로써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겠지. 건강해지고 싶다. 다들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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