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카페 人
에디터 / 바투
커피 없인 아무 것도 못 해. 일단 커피 한 잔 하고 시작하자.
직장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리다. 현대인들, 특히 직장 생활의 피곤함에 찌들었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커피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커피 없인 돌아가지 않는 일상이 당연하게 자리잡았지만, 그 당연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마실 수도, 마시지 않을 수도 있는 커피가 우리의 일상에 필수로 자리잡았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의 몸이 외부의 각성 없이 제 스스로 버틸 수 없을 만큼 과중하고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커피 없이는 왜 난 하루도 버티지를 못하는가. 커피 없는 일상을 사는게 정말 내가 생각하는 대로 불가능할지, 그러한 상황에도 내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것인지 실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커피를 사시면 공간을 드려요
코로나 창궐이 한창 심해지던 작년 11월 말부터 12월 말. 수도권 지역의 카페 취식 금지가 나에게 이렇게 큰 시련을 줄지 몰랐다. 늘 그랬듯 카페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들으며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학년말 업무를 하고자 했으나, 답답한 내 방에서 그 일을 해야만 했을 때 참 막막했다. 어머, 카페에서 커피 못 마신대? 테이크아웃 하면 되지 않아? 할 법도 하지만. 카페에서 정작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커피 한 잔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채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언제 커피 한 잔 하자.
커피는 또 다른 관점에서 공간을 제공한다. 오늘날 카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공적인 공간을 제외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마땅한 장소가 카페 이외에는 거의 전무하다. 실제로 커피를 마시는 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커피를 한 잔 하자는 말은 하나의 인용구처럼 통용된다.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 식혀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는 시간과 공간을 대변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 커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커피가 가지는 상징과 의미가 그것이 가진 화학적 효과 이상으로 소비될 지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커피를 왜 마시는가
가장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나 (20대 중반, 늘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사회 초년생 직장인) 부랴부랴 준비해서 직장에 도착한 후, 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꼭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신다. 루틴이 되어 버렸다. 날씨에 맞게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한 잔 만들어서 내 자리에 털썩 앉아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그제서야 일할 맛이 난달까.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하고 내 자신에게 쏘아지는 신호탄과 같다. 실제로 카페인이 가지는 각성 효과보다 카페인이 내 몸에 돌고 있으니 나는 이제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효과가 더 확실하게 온다. 카페인 자체가 가지는 화학적 효과보다, 그것이 가지는 상징과 의미를 소비하는 것이겠지. 한 번은 커피를 마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커피를 내려놓고 정작 마시지 않음을 뒤늦게 알게된 적이 있다. 분명 내 몸 속에는 카페인이 돌고 있었던 것만 같은데 말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걸까, 커피라는 이미지와 상징을 마시는 걸까. 이밖에도 식사를 과하게 한 후 소화용으로, 직장에서 부장님이 커피 쏘신다는데 비싼걸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서, 달달한게 땡기지만 살이 찔까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작업을 할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카페에 가게 되었을 때 등의 다채로운 상황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한다.
아빠 (50대 후반, 직장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고년차 직장인) 그에게 커피는 하나의 기호 음료에 지나지 않는다. 따뜻하고 달달한 음료. 커피 속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그의 신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루에 믹스 커피를 최소 3잔은 마시고, 심지어는 가끔 자기 전 음료로 마시기까지 할 정도로 카페인은 그의 신경계를 뚫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노는 취향이 아니라 먹지 않는다.
동생 (20대 초반, 내후년의 시험 공부을 방금 시작한 대학생) 카페인을 두려워했다.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새벽까지 뜬눈으로 밤을 샜다. 카페인은 ‘나와 맞지 않는’, 그런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하루에 네다섯 잔을 마셔도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것이든 고정되어 있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카페인을 통해 알게된 것이다. 원효 대사의 해골물이 생각났다. 나는 카페인에 약한 사람, 이 아니라 그 때의 내가 카페인이라는 큰 자극이 없이도 충분히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카페인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공부에 쏟고 있는 상황이다. 커피를 통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 (50대 중반, 직장에서중요한직책을맡고있는고년차직장인)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믹스 커피와 아메리카노 모두를 즐기는 사람. 우선 출근하고 나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태워먹는다. 이 한 잔의 커피가 피로감을 없애준다. 일을 하다가 오전 10시가 될 무렵, 달달한 믹스커피가 절로 땡긴다. 당 충전할 시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시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커피의 종류를 달리해 즐긴다.
각자는 각자만의 이유로 커피를 마신다. 누군가에게는 커피가 즐길 수 있는 것이고, 혹 누군가에게는 커피의 깊은 맛을 즐길 새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호로록 마셔버려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이 선호하는 커피의 종류와 마시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아이패드 오른쪽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이 놓여있다. 각자의 커피가 가진 의미를 되돌아보길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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