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커피
에디터 / 연푸른
나는 커피를 많이 먹는 편도, 못 먹는 편도 아니다.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날에는 하루에 한 잔의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시험 기간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을 때는 한두 잔 정도를 마시는데, 밤을 새우고자 마음먹은 저녁 열한 시 즈음이나 ‘오늘 수업은 절대 졸지 않겠다’라는 기특한 다짐을 하는 아침이 그런 때이다.
종종 커피를 마시지만, 원두나 로스팅을 가릴 정도로 세심한 취향을 가지지 못한 나는, 마신 커피를 일일이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연례행사에 가까운 특별한 일인 것도 아니고, 유달리 향이나 맛이 좋은 커피를 구별하지도 못하니까. 커피는 그냥 커피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커피 몇 잔이 있다. 여기서는 그렇게 내게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는 몇 잔의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한다.
1. 맥심 믹스 커피
아마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집 부엌 찬장 한쪽에는 늘 맥심 커피 믹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아직 얇아지기 전, 마루에서는 종종 이 인스턴트 커피의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커피 믹스 포장지에 ‘이지 컷(easy cut)’이라 불리는 점선이 표시된 것이 매우 보편적이고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포장지를 가로로 찢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혁신적인 시도였던 것 같다. 쉽게 찢어진다는 점이 그 텔레비전 광고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였으니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집에 있는 주말 오전.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종종 과일과 함께하는 티타임을 즐기고는 했다. 어렸던 나에게 커피는 ‘어른들의 음료’였고, 나는 커피 대신에 율무차나 마차 따위를 마시고는 했다. 카페인은 어린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을까? 커피 한 잔이 모두 내 차지였던 적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학교 삼 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할머니의 몫으로 나온 커피를, 그 조그만 티 숟가락으로 한두 숟가락 떠먹고는 했다. 믹스 커피는 맛있고, 달달한 음료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에게는 ‘금지된’, ‘어른’들의 음료라는 있어 보이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으니, 아마 당시 나에게 커피 몇 방울은 지금보다 더 달달하고 맛있는 음료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그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커피 맛 아이스크림은 즐겨 먹고 있었다는 점이다. 삼각형이라고 해야 할는지, 사각형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를 오묘한 모양의 ‘더위 사냥’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내게 ‘직접 커피를 타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믹스 커피 타는 법은 대충 이랬다. 전기 포트에 물을 받고, 물이 끓는 동안 커피 믹스와 커피잔을 준비한다. 커피잔은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궈내고, 물기를 대충 털어내야 한다. 그 안에 커피믹스를 붓고 나면, 다음은 가장 중요하고 세심한 단계이다. 바로 물을 ‘적당히’ 붓는 것.
고작해야 티 숟가락 한두 스푼으로 커피를 즐기던 당시의 나는 커피가 ‘묽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개념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커피잔에는 그런 사람을 위한 특별한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커피잔 안쪽에 조그마한 잎사귀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그 잎사귀에 닿을락 말랑하게 물을 부으면 딱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직 싱크대를 편하게 이용할 정도로 키가 크지 않았던 내가, 혹시나 물이 잎사귀를 넘을까 걱정하며 쪼로록 쪼로록 소심하게 물을 붓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분명 물을 너무 많이 부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작고 약했던 나는, 물이 가득 찬 전기 포트를 안정적으로 들지 못했고. 그래서 가끔은 손을 떨다 실수로 물을 왈칵 부어버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커피를 타기 전에도 커피잔 안쪽에 잎사귀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귀여운 디자인, 혹은 잔의 앞뒤를 알려주는 표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 나에게 커피잔 속 잎사귀는 맛있는 커피를 위한 눈금이 되었다. 이 잎사귀가 그런 용도였다니! 어른들이 커피를 뚝딱뚝딱 잘 타서 마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이런 숨겨진 배려가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네. 당시에는 이렇게 언어화하지는 못했겠지만, 아무튼 나는 숨겨진 비밀이라도 발견한 듯 신기해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의문이 생긴다. 커피잔 속의 잎사귀는 정말 물의 양을 맞추기 위한 용도로 그려진 것일까? 잔을 만들 때부터 잔의 용량을 계산해서, 믹스커피 한 봉지에 적절한 물량을 표시해 둔 걸까? 맥심 커피 믹스를 위한 적절한 물량과 카누 다크 커피를 위한 적절한 물량이 같지 않을 텐데, 그럼 잎사귀는 어느 커피를 기준으로 표시되었을까? 어쩌면 정말 단순히 예쁘라고 넣은 그림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우연히 그 잎사귀의 위치가 할머니가 딱 좋아하시는 농도의 물양에, 정말 우연하게도 들어맞았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나는 달달한 믹스 커피는 물론 씁쓸한 아메리카노도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지만, 커피 전용 잔에 커피를 타 마시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자취방에는 잔 안에 잎사귀가 그려진 커피잔이 없고, 나는 적당한 물을 넣은 커피의 풍미를 즐기기보다는 날 눈뜨게 해주는 카페인의 강도에만 신경 쓰는 대학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 본가를 방문해서, 그보다 더 가끔 가족을 위한 커피를 직접 탈 기회가 생기면, 아직도 나는 커피포트를 들고, 잎사귀에 닿을락 말락 물을 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고 세심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물을 ‘적당히’ 붓는 것.
2. 스누피 커피 우유
아마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였을 것이다. 일명 ‘스누피 커피 우유’가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더 진한 커피 담은 커피 우유’였지만, 그보다는 스누피 커피 우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우유의 전면에는 스누피가 도넛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런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이 우유가 유명했던 이유는 그 카페인 함량에 있었다. ‘핫식스’와 ‘레드불’의 네 배. 편의점에서 볼 수 있었던 카페인 음료 중 그 함량이 가장 높은 우유. 인터넷에는 이 커피 우유의 후기가 넘쳐났다. ‘스누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자게 해주세요’ 라던가, ‘이 우유를 마시면 스누피가 손에 든 도넛 펀치로 잠 못 들게 한다.’ 같은 글이 페이스북에 퍼졌고, 누군가는 이 우유 반이면 하룻밤을 새울 수 있고, 남은 반을 마시면 그다음 날을 버틸 수 있다며 ‘시험 기간 꿀팁’을 공유했다.
당시 나는 야자 시간에 가끔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도 하는 학생이었는데, 그런데도 이 커피 우유는 마시지 않았다. 괜히 맛있다고 몇 모금 마셨다가, 의도치 않게 밤을 새우게 될까 걱정이 됐다. 게다가 아메리카노만으로도 나는 종종 지나친 각성 상태가 되었고, 안절부절못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고는 했기 때문에. 내가 스누피 커피 우유는 마신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바로 9월 모의고사와 수능이다.
나는 늘 모의고사를 치면 조금씩 졸고는 했다. 국어 비문학 지문을 읽기 시작하면 늘 잠이 왔고, 머리가 멍해져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 같은 기분으로 지문을 멍청히 훑고는 했다. 수학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깼다가, 다시 영어 듣기가 시작되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졸면서 모의고사를 치고 나면 늘 도대체 이걸 왜 틀렸나 싶은 문제를 한두 문제 틀리곤 했다. 졸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에 잠도 자보고, 아침 일찍 와서 잠을 청하는 등 이런저런 노력도 해봤지만, 잠에 드는 것도 깨는 것도 늘 그렇게 맘처럼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스누피 커피 우유였다.
9월 모의고사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사실 9월이 아니라 10월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효과를 봤으니 수능날에도 그 커피를 사서 갔겠지. 아버지께서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수능 고사장으로 이동하다가, 길가에 있는 편의점을 보고 잠시 차를 세웠다. 국어 시험을 치기 전에 세 모금, 영어 시험을 치기 전에 세 모금. 영어 시험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국어 시간은 아직 기억난다. 고카페인이 들어간 몸에서 오는 반응을 바로바로 느끼며 비문학 지문을 읽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초조해져서, 국어 지문에서도 미친 듯이 끊어 읽기를 했다. 샤프를 휘날렸고, 괜히 더 진하게 밑줄을 그었다.
아직도 가끔 그 시간을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뭐 하나에 집중해서 미친 듯이 달렸던 시간은 그 국어 시간을 제외하곤 없는 것 같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나는 가끔 그 스누피 커피 우유를 샀다. 그것도 다 그날의 기억에 의존한 선택이었다. 그 커피 우유를 마시면, 그때처럼 미친듯한 기세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국어 시험이 끝난 직후에 느꼈던, 다 맞은 것 같다는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당연하게도, 더 이상 그때 같은 효능은 없다. 지금도 그 커피 우유는 나를 각성시키고, 초조하게 만들지만, 지금의 나는 초조함을 연료로 삼아 일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산만해진다. 미친 듯이 방안을 걸어 다니고, 가끔은 집에서 나가 주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오히려 더 피곤해진 상태로 방에 들어온다. 그리고도 여전히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 날 여섯 모금 먹고 남긴 커피를 어떻게 했더라.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수능날의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 남은 커피 우유를 집에 가져갔던 것 같다. 아직 우유가 많이 남아있어서, 집에 남아돌던 빈 병에 커피 우유를 부어 냉장고 안에 넣어뒀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그대로 남아있는 커피 우유를 개수대에 버린 것도 아마 나였을 것이다. 국어 시험에서는 2점짜리 문제 하나를 틀렸다. 분명 다 맞았을 거라고 확신했던 감각도 거짓말이 되어 지워지고, 점점 수능에 대한 기억 자체가 시간과 함께 흐려져 가는 가운데. 스누피가 그려진 커피 우유만은 아직도 가끔 나와 시험 기간을 함께한다. 그 우유를 마시면 다시 그때의 나로, 확신만 있고 겁은 없었던, 자신만만하던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3. 아메리카노에 타피오카 펄 추가.
몇 년 전, 자취방 인근에 ‘아마스빈’이라는 버블티 가게가 생겼다. 나는 버블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버블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묵직하게 달달한 맛과 쫀득한 식감이 마음에 든다. 나는 보편적인 취향이었고, 아마스빈에서 먹는 메뉴도 늘 보편적인 조합이었다. 타로 밀크티나 아쌈 밀크티에 펄 추가. 그러다가 가끔 달달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딸기 요거트에 펄을 추가해 먹기도 한다.
그러다 하루는 뭔가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에 ‘아마스빈 꿀조합’을 검색해봤다. 아마스빈 알바생이라는 사람이 적었다는 추천 조합 리스트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단연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였다. 아메리카노에 펄을 추가해 먹는다고? 그게 무슨 짓이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달달하게 먹을 거면 달달하게 먹고, 씁쓸하게 먹을 거면 씁쓸하게 먹어야지. 이 둘을 섞는 것은 아메리카노와 펄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조합을 보고 났더니 리스트의 다른 조합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지, 그날도 나는 그냥 밀크티에 펄 추가를 먹었던 것 같다.
그러다 또 아마 시험 기간이 찾아왔고. 어느 때처럼, 과제를 하다 지쳐버린 나는 산책이라도 해야겠다며 집을 나서 아마스빈에 찾아갔을 것이다. 쫀득쫀득한 버블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동시에, 할 일을 모두 하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았다. 버블과 카페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메뉴.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를 주문했다.
생각만큼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메리카노는 그냥 아메리카노 맛이었고, 그러다 펄이 들어오면 달달했다. 이건 마치 스콘을 먹다 마주친 크랜베리, ‘엄마는 외계인’ 속 초코과자 같았다. 씁쓸한 아메리카노 사이사이에 예상치 못한 달달함 느껴졌고, 나쁘지 않았다. 달달함이 씁쓸함에 중화된다거나, 둘이 섞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자는 각자의 특성을 유지한 상태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누군가는 모카빵에 든 건포도처럼 산통 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맛엔 괜찮았다. 참고로 나도 모카빵 속 건포도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이 조합을 즐겼다. 달달한 뭔가가 땡기면서도 또 마냥 달달하기만 한 음료를 먹기에는 입이 텁텁할 때. 혹은 카페인이 필요한데, 아메리카노만 먹기에는 스스로가 불쌍할 때는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를 시켰다. 내가 봤던 추천 조합 리스트에서는, 아마스빈은 펄이 다른 곳보다 달달하기 때문에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가 괜찮지만, 다른 카페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확실히 펄이 달달할 때 더 맛있는 것 같은데, 펄의 달달함으로 따지자면 아마스빈보다는 보니또 커피(bonito coffee)가 더 나은 편이다. 카페보니또가 아니라 카멜레온이 그려진 보니또 커피다. 그래서 요즘엔 아마스빈이 아닌 여기서 커피를 사곤 한다. 특히 보니또 커피의 펄은 막 레인지에 돌려 살짝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자기소개를 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늘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를 좋아한다는 문장을 넣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를 일 순위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달달함과 쫀득함, 그리고 카페인. 그 사이의 뭔가를 택해야 할 때 고르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타협지점이다. 하지만 독특한 조합이고, 다들 잘 안 먹으니까. 자기소개를 들은 상대방이 ‘아메리카노에 펄을..?’ 이라고 말하는 듯한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나를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소개가 성공적인 자기소개라고 배웠다.
아메리카노에 펄 추가는, 남들과는 다른, 나의 어떤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늘 취향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대중적인 것,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이 당연히 나도 좋지만, 남들은 의아해하는 것 혹은 낯설어하는 것 안에서도 내 취향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를 안정시켜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독특한 취향을 개발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그리고 가끔은 돈이 필요하다. 그게 참 쉽지 않아도, 음료 취향 정도는 특색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당당하게. 저는 아메리카노에 펄을 추가해 먹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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