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카페인의 약속
에디터 / 편집장 연푸른
1호 주제가 <시작>이었는데, 2호 주제는 <카페인>이다. 어느새 ‘카페인’ 없이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에디터들이, 하필이면 마감이 끝난 당일 저녁에 주제를 선정해서 생긴 일이다. 다들 피곤해보이긴 했지만. 이 잡지, 이렇게 현실적이어도 괜찮을까.
우리는 왜 카페인을 먹을까?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잠을 쫓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카페인에는 졸음을 깨우고 피로에서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으니까. 게다가 뇌의 작용을 도와주기도 한다. 인터넷 바다의 어디선가에서 흘러온 정보에 의하면, 카페인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여 몸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다시 뇌에 산소공급을 촉진하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게 만든다. 아직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닌 듯하지만, 적절한 양의 카페인 섭취는 치매를 예방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보통 카페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런 긍정적인 효능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카페인 중독’이라거나, ‘과다 섭취’ 같은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실제로도 ‘카페인’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게시물은 ‘카페인 과다 섭취가 위험한 이유’ 라거나 ‘카페인은 독?’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게시글에 따르면 과도한 카페인 섭취는 손 떨림, 불면, 불안을 야기하고, 골다골증이나 근육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에게 카페인은 이 둘 모두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분명 마시는 순간 나의 잠을 깨우고는 한다. 그 효과 중 일부는 얼음물의 영향일 것이고 또 일부는 플라시보 효과겠지만. 가끔은 그 영향이 지나쳐, 커피 세 모금에 심장이 뛰고 손이 차가워지면서 덜덜 떨린다. 졸음은 사라지지만, 지나친 각성은 또 다른 피로를 몰고 온다. 카페인이 아예 기능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카페인의 효과가 돌기까지 걸린다는 45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두 시간은 지난 후에야 일어나는 날이다. 그러고 나면 잠이야 더 이상 오지 않지만, 그것이 카페인의 효능인지 낮잠의 효능인지는 구분하기 힘들다. 잠들지 않고 어떻게 45분을 버틴 날에도, 졸음이 깬다기보다는 단순히 ‘참는’ 것에 가까운 뿌연 정신 상태로 그냥저냥 하던 일을 이어가는 날이 월등히 많다.
그러는 와중에, 사실 내가 카페인을 먹는 가장 지배적인 이유는 또 다른 데에 있다. 이건 일종의 의식(ritual)이다. 평소에 잘 안 마시는 커피도 마셨겠다, 혹시 당 떨어질까 초콜릿도 준비했겠다, 지금부터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커피를 마시는 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카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에는 더하다. 이 시국에 카페까지 와서 커피를 시켰으니, 적어도 이 글은 다 쓰고 집에 가야지. 결국 카페인을 먹는 것은 그런 마음가짐을 스스로 격려하기 위한 행동이고, 열심히 해보자며 스스로와 맺는 약속 같은 것이다. 카페인이 나의 잠을 깨워 주지는 못하지만, 노트북 옆에 놓인 아메리카노 한 잔은 쉬고 싶어 하는 내 마음 정도는 잡아줄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카페인은 다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고, 약리작용을 하는 194.19의 분자량을 가진 물질인 동시에 문화다. ‘저 이번에 내려요’로 대표되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기호 식품 커피는, 어쩌다 ‘혈중 카페인 농도 부족’이라 설명되는 노동 음료가 되었을까? 부장에게 깨진 사원의 손에 쥐여준 캔커피는 따듯한 마음이 담긴 손난로일까, 아니면 이제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일까?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카페인의 의미와 효능은 같은가?
«밍기적»의 두 번째 호 <카페인>은 카페인의 다면적인 의미를 관찰한다. 연푸른은 그의 글 <내 인생의 커피>를 통해 그의 삶 속 몇 잔의 특별한 커피와 그에 얽힌 자신의 경험을 짧게 이야기한다. 바투의 <카페인, 카페 인>은 보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카페인 이야기를 담았다. 에디터 본인과 주변인의 경험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커피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는 또 어떻게 우리 삶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관찰과 의문을 던진다. 망의 <어차피 커피 안 마시면서>는 그러한 연결 사이에서도 특히 건강 및 노동과 커피 소비 사이의 틈을 보다 내밀하게 파고들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에디터 온기의 소설로 이어진다. <우리는 조종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카페인 없인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 사회가 어떤 조직적 음모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짧은 소설의 한 대목이다.
<카페인>은 스스로와 맺는 약속이며, 또한 일을 시작하고, 이어나가기 위한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한 호로 끝날 수 있었을 프로젝트 «밍기적»은 <카페인>을 통해 2호로 이어졌고, 이 약속은 또 그다음 호를 부를 것이다. 독과 약의 경계를 정하는 것은 ‘양’이라고 한다 (네이버 웹툰 ‘그날 죽은 나는’에 나온 대사. 꼭 봐주시길). 2월의 막바지.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는 «밍기적»의 에디터와 독자에게 «밍기적»이 독이 되지 않기를, 적당한 거리와 애정으로 «밍기적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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