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대화문은 임의로 구성한 가상의 상황이지만, 역사적 사실이나 법령 및 통계수치 등은 실제 자료를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여기, 방금 막 수어 수업을 함께 듣고 온 세 사람이 있습니다.
새싹 :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수어를 처음 배우러 와서 아직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이렇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먼저 제안해주셔서 감사해요! 다들 어떻게 수어를 공부하게 되신 건가요?
노을 :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청각장애인들 중 수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시는 분들과 소통을 더 잘 하고 싶어서 수어를 배우러 오게 됐어요. 저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었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농인 선생님들께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선생님들께서는 질문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걸 오히려 반기시거든요.
바람 : 안녕하세요. 저는 아버지가 청각장애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계셔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수어를 습득하게 되었어요. 다른 분들과는 아직 얘기를 못해보셨을 텐데, 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해 전문적으로 수어를 배우려고 온 학생이나 자기계발 목적으로 수어를 배우러 온 직장인 등 생각보다 더 다양한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많답니다.
새싹 : 그렇군요! 저는 사실 K-POP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에 ‘빅오션’이라는 아이돌 그룹이 데뷔한 걸 보고 수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3명의 멤버 모두가 청각장애를 가진 그룹인데, 청각장애 때문에 박자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치열한 연습 끝에 박자에 맞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모습이 대단하더라고요. 모니터 화면이나 진동을 주는 스마트워치 형태의 메트로늄 등 여러 수신호를 사용해서 박자를 맞췄다고 들었어요. 이런 사실까지 알고 난 후에 데뷔무대 영상을 보니 더 감명을 받아서 사진도 저장해두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이 사진 속 안무가 “다 함께 손을 잡아요.”라는 가사를 표현한 안무인데, 딱 그 가사에 맞는 수화 동작 같지 않나요? 실제로 한국 수어뿐만 아니라 미국 수어나 국제 수화도 포함시켜서 안무에 녹여냈다고 해요.
노을 : 정말 멋진 분들이네요. 이 분들의 노력 덕분에 일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다소나마 줄어들 수도 있겠어요.
새싹 : 네, 저도 원래 청각장애인이라면 말을 못하는 줄로만 알았으니 말이에요. 찾아보니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비장애인처럼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애초에 장애 정도에 따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다르더라고요. 보청기나 인공와우 장치 1 등의 도움을 받아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고요. 또, 청각장애인은 모두 수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 것도 잘못된 일반화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빅오션의 무대를 보고 나서야 제가 그 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편견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부끄럽기도 하고 문득 수어에 관심도 생겨서 수어를 배워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바람 : 맞아요, 많이들 그렇게 오해하곤 하죠. 과거에는 듣지 못하는 사람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러서 ‘농아인’이라는 표현으로 묶어 둘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으니까요. 청각장애인들은 청각에 문제가 있을 뿐 성대가 없는 사람은 아니니 웃을 수도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들처럼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경우도 있죠. 실제로 저희 아버지도 청각장애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셨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음성으로 소통을 하는 ‘구화’를 어느 정도 하세요. 그럼에도 본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여전히 발음이 뭉개지는 경우도 있고, 대화할 때 입술의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을 잘 살펴야 상대방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하시지만요. 저희 아버지는 수화를 사용하는 걸 제일 편해하시긴 해요.
노을 : 법률적으로도 보면 2016년에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농인을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 2 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청각장애인의 범주가 농인 개념보다 넓다고 볼 수 있죠. 돌발성 난청을 가지고 있는 사람, 구화나 필담 등 다른 소통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 등은 모두 청각장애인에 해당하지만 농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구분을 하고 있는 셈이죠.
새싹 : 어.... 그런데 수어사용과 농문화를 기준으로 농인만을 청각장애인에서 따로 분류하면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인종이라는 개념의 구분이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서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정당화한 ‘짐 크로법(Jim Crow Law)’ 3 의 근거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노을 : 물론 그런 의견도 있긴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불편함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채용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기준만 가지고 일할 사람을 선발하는 건 부당하잖아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실질적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현재 수어통역센터가 점차 증가해서 현재에는 약 200여개로 확대된 것이나, 2022년에 장애인 방송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행정규칙 일부개정안 4이 의결되어 한국수어방송 의무편성비율이 5%에서 7%까지 상향 조정된 것 등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을 위한 제도가 꾸준히 마련되고 있지요. 모두 농인에 대한 개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일지도 몰라요.
바람 : 맞아요. 그런데 전 한편으로는 농인에 대한 구분으로 인해 ‘농인이 아닌’ 청각장애인, 즉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청각장애인들이 사각지대로 밀려났다는 생각도 들어요. 농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노력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각지대라고나 할까요? 저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수어는 농인들만의 문화에 속하니, 수어에만 초점을 맞추면 ‘농인이 아닌’ 청각장애인들은 농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수 있거든요. 예컨대 음성과 수어로만 상담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있다면,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청각장애인들을 배척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물론 농인들의 편의를 높이려 한 각종 제도들은 농인들의 권리를 과거에 비해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는 변화긴 하지만, 이렇게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청각장애인들은 비교적 눈에 띄지 않게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농인인 청각장애인과 더불어 농인이 아닌 청각장애인들까지 골고루 포섭할 수 있는 정책을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찌됐든, 새싹 씨가 수어에 관심이 생기셨다니 제가 다 기쁘네요. 오늘 수업은 괜찮으셨어요?
새싹 : 네, 괜찮다마다요! 엄청 재밌었는걸요. 저는 ‘수화’라는 단어만 알았는데 수화를 통해 구사되는 언어체계인 ‘수화 언어’를 줄여서 ‘수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수어는 음성언어인 한국어와는 문법체계가 다르다는 점에 적잖이 놀랐어요. 말 그대로 또 다른 언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감염병이 확산되던 시기에 마스크를 착용하던 게 왜 농인들에게 특히 더 힘들었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수어는 단순히 손짓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표정이나 시선, 입 모양도 같이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에요.
바람 : 하하,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아 즐거우셨나 봐요.
새싹 : 네, 게다가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고요한 적막 속에서도 손짓과 표정만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기분이 참 묘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나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데,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손쉽게 표현해낼 수 있음에도 대체 왜 그토록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일부 정치인들은 생산적인 토의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인신공격만 하잖아요.
바람 : 재밌는 예시네요. 우선 말을 하지 않고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건 맞죠. 우리가 방금 수어를 배우면서 손짓이나 표정으로만 소통을 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소통이 ‘잘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농인들끼리도 수어로 소통을 ‘할 수는’ 있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싸울 때가 있거든요. 서로 마음이 맞지 않거나, 표현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또 수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과 수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면 역시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요. 애초에 수어 자체도 한국 수어, 미국 수어, 영국 수어 등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언어적 장벽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고요.
새싹 : 아, 그렇네요. 듣고 보니 청인들이라 해도 언어가 다르거나, 표현 방법이 잘못되거나, 각자의 속마음이 다르면 소통이 잘 안 되긴 하죠. 언어가 다른 경우는 외국어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투리만 놓고 보더라도 표준어만 사용하는 사람과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또, 화를 내는 방식으로만 본인의 속마음을 표현하려는 사람과는 소통이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 같은 경우는 그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 소통이 잘 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수업에서 잠깐 경험해본 걸 가지고 농인의 소통 방식은 좋지만 청인의 소통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해버렸군요. 역시 사람은 조금씩 다른 면이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다 비슷한가 봐요.
노을 : 사실상 수화든 음성이든 필담이든 ‘언어’의 범주에 포함되고, 언어는 ‘소통’을 잘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니까요. 다시 말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든 간에 모두 소통을 하려는 목적은 같은데 그걸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다른 거라 할 수 있죠. 다만 비장애인들은 그러한 도구들을 모두 사용하거나 임의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반면, 농인을 포함한 청각장애인들은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목소리를 내는 일이 비장애인에 비해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청각장애인들은 본인들의 권리를 위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도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들의 어려움을 발견하고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발자국일 테니, 이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싹 : 안 그래도 오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니 농인 분들 중에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봐요. 농인이 아닌 청각장애인 분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불편함이 크다 보니 그런 거겠죠?
바람 : 그렇지 않을까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면,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할 수도 있는 정책이 시행되는 걸 모른다면, 피해를 입기 훨씬 쉬운 상황일 테니까요. 비장애인들이 보지 못하는 시선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어야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저희 아버지가 이런 이유로 정치에 관심을 많이 두시거든요. 단순히 시사적인 사건에 흥미가 있을 뿐인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새싹 : 음.. 그런데 한편으로는 수적으로 소수인 이들이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정책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전부 반영하기는 힘든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정책을 다수에게 맞추지 않는다면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국가가 성장하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제가 알기로 청각장애 인구는 2022년 12월 말 기준으로 약 42만 5천 명이라고 해요. 장애인구 중에서는 지체장애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수이긴 하지만, 전체 인구상으로는 여전히 0.8%에 해당하는 수치죠. 그러니 소수에게 기준을 맞춘다면 다수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거나 다수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지 않나요? 청각장애인과 관련된 예시는 아니긴 하지만, 예를 들자면 저상버스의 추가 도입으로 인해 세금도 사용되면서 멀쩡한 기존의 차량을 폐차하는 등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할 수도 있잖아요.
바람 :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효율성이나 경제적 성장이 사회의 절대적 가치는 아니라고 봐요. 청각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같은 사람인만큼, 비장애인들이 영위하는 일상을 청각장애인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등하게 누려야 할 부분들임에도 청각장애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장애 유무를 알기 어려워 오해를 사거나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단순히 친구가 바로 뒤에서 불렀는데도 알아채지 못해 오해를 받을 수 있지요. 또,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비장애인들이라면 잠깐 졸더라도 안내방송만 듣고도 정류장을 알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가득 찬 만원 버스나 지하철이라면 전광판을 확인하기조차 어렵고요. 심지어 건물에 화재가 나는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비장애인들은 주변에서 알리는 소리를 듣고 대피를 할 수 있는데 일부 청각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어요. 이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곤란함은 본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 이들의 불편이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수만을 위한다고 해도 세상이 효율적으로만 움직이지도 않는 것 같고요. 각종 폭력과 억압이 자행되었던 나치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다수를 우위로 삼는 행태가 반드시 효율성이나 성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애초에 성장이라는 개념은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는 지표도 아니죠.
노을 : 저도 동의하는 바예요. 특히 예산의 낭비로 인한 비효율이라고 하면 비리를 저지른다거나 사적인 용도로, 혹은 단순 개인의 선호를 이유로 예산을 사용해버리는 행태에 더 부합하는 말 아닐까 해요. 소수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일은 예산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쓰여야 할 곳에 사용되는 거죠. 그리고 저는 소수를 위한 제도나 정책은 기존의 원칙에 예외를 덧붙이는 것처럼 다수를 기준으로 하면서도 소수를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와 소수의 이익이 항상 상충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소수를 위한 정책들이 오히려 다수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일례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경사로는 유모차를 사용하는 부모나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편리하니 사회 전체의 편익을 높여준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 이런 이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건 기존의 정책에 반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정책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봐요.
새싹 : 말씀하신 것들을 듣고 보니 비장애인들이 당연한 듯 누리는 일상생활이 누군가에게는 고군분투해서 얻어내야 할 권리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소수자의 고통에는 무감한 채로 말을 한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제 생각에 모든 집단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될 수 없듯 청각장애인이라는 집단의 목소리도 묻힐 수 있다는 점만은 여전한 것 같긴 해요. 모든 사회적 이슈가 동시에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니, 보다 시급한 의제에 우선순위가 매겨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바람 :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어떤 의제가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기도 하고,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어렵지만 계속 논의하면서 균형점을 찾아나가야겠죠. 무엇보다 사회란 결국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그 중 일부가 반영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구성되어가는 것이니까요. 다만, 저는 앞서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묵살되기 더 쉬울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여러 의제들에 밀려나기만 하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 거고, 소수자들은 지속적으로 고통이나 불편함을 겪어야 할 테니까요.
노을 : 맞아요. 그러니 모두의 노력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노력과 더불어 그들이 목소리를 잘 낼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나 창구도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요. 또,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새싹 : 참, 그러고 보니 비장애인이 청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 최근 신세대들에게 유행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중에 ‘이프랜드’라고 혹시 들어보셨을까요? 메타버스 플랫폼은 가상세계에서 사용자들이 아바타를 통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서비스인데, 그 중 SK텔레콤에서 운영하고 있는 게 이프랜드예요. 여기서 청각장애인들이 일상 속에서 암호를 해독하듯 겪어야 하는 문제들에 착안하여 방탈출 게임의 형식으로 ‘침묵의 방’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쉽게 말해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게임인 거죠. 게임의 형식을 빌렸다 보니 재미도 있고, 앱 설치만 하면 로그인을 할 필요 없이 게임을 해볼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사람은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의외로 진정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체험을 통해 진정한 역지사지를 실천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획인 것 같아요. 저도 조만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분도 시간 날 때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바람 : 이야, 기발한데요? 기술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좋은 예시네요!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많아지길 바라야겠어요. 이런 노력들이 모인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 간에 더욱 원활히 소통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에요.
노을 : 게임을 만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게임을 해보는 사람들도 멋진 것 같아요. 소통을 하려 해도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쉬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의 눈길이 의식적으로라도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결국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타인과 소통하려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농인이든 청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말이에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아가잖아요.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불화만 생기고 나도 타인도 힘들어질 거예요. 그러니 어렵겠지만 소통을 위해 서로 목소리를 내고 또 그것을 들으려 사회도 개인도, 모두 함께 힘써야 할 필요가 있겠죠.
새싹 : 제가 이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로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정작 실천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집에 가서 바로 해봐야겠어요! 저는 미비한 사회적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일단 청각장애인들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봐야겠다 싶어서요. 그렇게 하기 위한 또 다른 한걸음으로 우선은 수어를 배우러 온 것처럼요!
바람 : 그 첫걸음이 의외로 어려운데 새싹 씨는 대단한 것 같아요. 하여튼, 오늘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새싹 : 네, 오늘 두 분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바람 : 저야말로 오늘 두 분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해요.
노을 : 저도 마찬가지예요. 두 분과 다음에 또 이렇게 대화하고 싶네요. 그럼 두 분 다 조심히 들어가시고 다음 수업 때 뵈어요!
- The End.
[ 참고자료 ]
[1] 김현지, 2023 장애통계연보, 서울: 한국장애인개발원, 2023.
[2] “인공와우란”, 강북삼성병원, 2024년6월15일접속, https://www.kbsmc.co.kr/cicenter/html/cochlear_intro.html
[3] 강서영, “"누가 노크할라…" 공중화장실이 두려운 '청각장애인'”, MBN, 2024.5.15., https://www.mbn.co.kr/news/society/5026599
[4] 고구마말랭이, “‘입 모양’으로 하는 메타버스 방탈출! 청각장애인과 함께 만든 CSR 게임이라고?”, 고구마팜, 2023.10.10., https://gogumafarm.kr/%EC%9E%85-%EB%AA%A8%EC%96%91%EC%9C%BC%EB%A1%9C-%ED%95%98%EB%8A%94-%EB%A9%94%ED%83%80%EB%B2%84%EC%8A%A4-%EB%B0%A9%ED%83%88%EC%B6%9C-%EC%B2%AD%EA%B0%81%EC%9E%A5%EC%95%A0%EC%9D%B8%EA%B3%BC-%ED%95%A8/
[5] 노유진, “국내 최초 청각장애 아이돌 데뷔 "우리가 도전한 이유는…"”, SBS뉴스, 2024. 4. 20.,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618681&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6] 우승호, “청공소,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정책포럼 성료”, 이어뉴스, 2023.6.14., https://earnews.org/posts/Kmta1B
[7] 정일구, “빅오션, ‘눈부신 무대’”, 뉴스핌, 2024. 4. 24.,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0424000945
- 청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양측고도 감각신경성 난청 환자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로, 수술을 통해 이식받을 수 있음 [본문으로]
- 한국수화언어법 [시행 2023. 8. 8.] [법률 제19592호, 2023. 8. 8., 타법개정] 제3조 2호. [본문으로]
- 남북전쟁 이후(1876 ~ 1965)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를 강제한 법안들이 시행되었으며, 민권법(1964)과 선거권법(1965) 제정으로 인해 효력을 상실함 [본문으로]
-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 [시행 2019. 1. 30.] [방송통신위원회고시 제2019-3호, 2019. 1. 30., 일부개정] 제6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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