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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4/23호_Voice

23호_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가사가 있나요? (2) / 연푸른

by 밍기적_ 2024. 6. 24.

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가사가 있나요? - 2편

 에디터 연푸른

 

어떤 음악은 나를 움직인다.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도 만들고, 꾹 참고 있던 눈물을 끝내 터뜨리게도 만들며, 너무 좋아 아악 소리를 지르며 이마를 빡빡 치게도 만든다. 이 음악에 춤을 추고 싶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서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기도 하고, 따뜻한 목소리로부터 자신 없던 마음에 위로와 확신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은 우리를 움직인다.

음악 속에서 나를 건드리는 것들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특히 가사에 집중했다. 에디터인 내가 좋아하는 가사와 자신이 사랑하는 가사를 소개하는 다섯 명의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담았다. 1편에는 듣는 이에게 힘이 되어줬던 가사가, 2편에는 또다른 창작의 영감이 되었던 가사가 담겨있다. 

당신에게도 아마 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노래가 있을 것이다. 혹은, 지금 움직이고 싶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가사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천천히 듣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시길. 이 인터뷰가 당신의 무더운 여름에 조금의 생동감을 더할 수 있길 바란다.

 


[연푸른]

 

악동뮤지션 – 작은별

저게 인공위성일까 별이었으면 좋겠다
눈에 안 보일 뿐이지 별은 사라지지 않아
나이를 먹은 하늘 눈이 침침할 뿐이야
여전히 별은 빛난대

지금 저 멀리 보이는 흐릿한 불빛이 인공위성일까, 별일까? 목을 쭉 내밀고 눈을 찡그려도 보면서 열심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불빛의 정체를 알 마땅한 방법은 없고, 그래서 그저 별이길 바라기만 하는 마음이 안타깝기도 귀엽기도 하다. 이 가사에는 저 불빛이 비록 인공위성이더라도 그 옆에는 보이지 않는 별이 빛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눈을 또렷하게 뜨고 그 별을 찾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친구들은 하나둘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는데, 나는 여전히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하지도 못한 채 그저 머물러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스물다섯살의 여름에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난 무대에 서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제껏 내가 쌓아온 것들은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었다. 낯선 무대 위를 내 일터로 정하기에는 확신도 자신감도 부족했다. 지금 내 눈에 반짝이는 저 무대가 정말 내가 찾던 그 곳이 맞을지, 아니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없는데 뭐라도 ‘이 길이다’ 하고 정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만들어낸 가짜 도피처는 아닌지, 저게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사실은 2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완벽한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오히려 아직 정해진 게 없을 때, 잃을 게 조금이라도 적을 때 그냥 이 길을 선택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공위성도 결국 별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이 빛이 인공위성 불빛이더라도, 이 여정을 통해 나는 별에 더 가까워질 테니까. 인공위성 옆에서 아직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이 분명히 빛나고 있을 테니까.

2022년 3월, 이 노래로 ‘쿨쿨’이라는 제목의 춤을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연습이 끝난 후에는 연습실에서 집까지 40여분이 걸리는 길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버둥 – 태움

내가 죽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죽은 나를 기릴 준비 / 아직 이르지 않을까
나를 장작으로 쓸 생각 마세요 (중략)
나는 살아있다 죽지 않으려 / 이렇게 단단히 살아있어
우린 살아있다 지지 않으려 / 이렇게 이렇게

다 타서 죽어버린 줄 알았던 장작이, 그래서 아궁이 한 쪽에 쌓아 방치해둔 장작이 어느 날 새파랗게 살아서 아궁이는 물론 부엌 전체, 냄비 안과 냉장고 속까지 죄다 초록빛으로 채운 다음 경고하는 것 같은 노래다. 싸늘하게 식은 아궁이 속에서 사실 장작들은 서로에게 기대 살아오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다에서 ‘우리’는 살아 있다로, ‘죽지 않’고 살아있겠다는 다짐에서 ‘지지 않’고 이기겠다는 다짐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장작들이, 여전히 불타는 생명력을 품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남아서, 기어코는 자신을 태우려고 했던 누군가를 이겨먹으려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겹겹이 누워 죽은 듯 보이는 사람들이 어느 날 서슬퍼렇게 눈을 뜨고 일어나 자신을 그곳에 데려다 놓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을 만들고 말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어 오랫동안 묵혀만 놨다. 결국 무대 위에 그 장면을 올린 건 첫 다짐을 한 후 2년은 더 지난 2022년 9월이었다. 다섯 명의 무용수를 모으고 ‘Remember me?’라는 제목의 작품을 올렸다. 주제는 ‘냉장고 속의 여자들’ 이었다. ‘냉장고 속의 여자’는 여러 이야기 속에서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해 살해되거나, 강간당하거나, 위험에 처하면서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여성 캐릭터를 말한다. 하지만 누누이 말하는데, 그들은 살아있다. 다음 냉장고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노래를 듣지 않고 본다. 음악보다는 그 음악으로 만들어진,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 퍼포먼스가 나를 더 설레게 만든다. 그래서 사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 노래에 춤을 추리라 벼르고 있는 노래가 많다. ‘태움’은 그 첫 시작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볼 때마다 좀 더 열심히 내 몸을 훈련시켜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니노]

2023년 12월, 낭독극 <쿠스코의 신성한 협곡>에서 작연출과 배우로 만났다. 연극 프로젝트팀 ‘어떻게인연이’의 수장이자 화제의 희곡 <웨이 투 와이키키>를 쓴 장본인. 나에게 니노는 일상 속 작은 일화,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와 순간들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사람이자, 읽고 보고 쓰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도 그녀의 성공과 후속작을 기원해본다.

 

Jon Brion – Little Person

And somewhere, maybe someday / Maybe somewhere far away
I'll find a second little person / Who will look at me and say
I know you. You're the one I've waited for. Let's have some fun”


https://www.youtube.com/watch?v=FXL8sbalC8I&ab_channel=JonBrion-Topic 

 

영화의 OST를 골랐다. 노래 설명에 앞서 영화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Little Person’은 내가 굉장히 감명 깊게 봤던 <시네도키, 뉴욕>이라는 영화의 메인테마 곡이다.

<시네도키, 뉴욕>은 <이터널 선샤인>과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Charlie Stuart Kaufman이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케이든Caden이라는 이름의 실패한 연극 연출가이다. 실패라기보다는 작품적으로도 힘들고 부인과의 결혼 생활도 힘든 그런 생활을 하다가, 뉴욕의 진짜 초거대한 완전 현실과 똑같은 연극 세트장에서 연극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이 사람에게 주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요한 건 ‘현실과 똑같은’ 세트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케이든은 아예 현실을 세트장에 옮겨놓는 느낌으로 작업을 하면서 자신을 연기할 사람, 자신의 부인,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연기할 사람을 구한다. 그렇게 현실과 연극 두 개를 오가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게 얘 상상인지 뭔지, 시간이 어떤 흐름으로 가는지 이런 것들이 되게 복잡하게 얽히는 게 굉장히 재미있다.

근데 이런 부분을 떠나서, 이 영화의 메인이 되는 감정이 정말 사무치는 외로움이다. 근원적인 외로움.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연극이 잘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해결될 수 없는’ 그런 외로움.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해결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 케이든이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된다. 초반부에 이혼을 하고, 아끼던 딸과도 멀어지고. 이후로 여러 사람들, 여자들 만나면서 잠자리도 갖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외로워진다. 이런 외로움의 감정이 굉장히 잘 살아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지?

가사를 보면, 이 가사는 정말 별거 아니지만 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낭만을 꿈꾸고 있는 가사다. ‘나는 언젠가 이런 사람을 만날거야. 그런데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줄거야.’ 아, 이게 한국말로 하면 느낌이 잘 안 오는 것 같은데. ‘너는 내가 기다려온 사람이야’만 있었으면 별로 사무치지 않았을텐데 앞에 ‘I know you’가 붙는다. ‘나 네가 누군지 알겠어. 넌 내가 기다려온 사람이야.’ 자신을 보면서 그렇게 말해줄 사람을 언젠간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인데, 사실은 바로 그런 사람을 이 사람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거다. 그 감정이 되게 좋았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Song for Caden’이라는 노래도 존 브리온Jon Brion의 곡이다. 케이든Caden이 만든 연극 속에서 ‘Song for Caden’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가 ‘이 노래는 널 위한 거야. 누가 이 노래를 듣고 있든 이 노래는 널 위한 노래야’ 이런 내용이다. 그러니까 이 케이든이라는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보면 너무 웃긴거다. 유아적이지 않나? 날 위해 노래해 주길 바라고, 누군가 날 보자마자 ‘어 나 당신을 알 것 같아, 당신은 내가 평생동안 기다려온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게 너무 유치하다. 그런데 사람을 이렇게 유치하게 만들 정도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에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약간 걷다가도 멈춰서 생각하게 된다. 이 노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나를 멈춰서게 하는 노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명을 들으니까 감정이 좋다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외로움에 대한 여러 노래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 노래가 니노에게 그렇게 작용하는 이유가 있을까?

일단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이 감독이자 작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하는 부분을 잘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되게 서사를 중구난방으로 쓴다. 뻔뻔하게. 정말 뜬금없는 얘기를 해도 이 사람은 뻔뻔하니까 오히려 그 지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식인데, 어쨌든 영화 자체에 대한 호감이 되게 크다.

두 번째 이유가 있다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해결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다. 꼭 어떤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대입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내 꿈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별거 아니지만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낭만 같은 거. 내가 느끼기엔 모두한테 그런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런 해결될 수 없는 것들 중에 제일 고약하고, 뭔가 해결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것 1순위가 바로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도 되게 매력적이고, 또 외로움에 대해 얘기하는 많은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 속 외로움이야말로 가장 해결이 안될 것 같달까? 사실 영화의 결말에는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슬프다. 그게 더 사람을 사무치게 하는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스포니까 꼭 영화를 봐주시길.

또 존 브리언이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에서도 작업을 했는데 그 중에 나온 ‘와이키키Waikiki’라는 노래에 내가 빠져서 <웨이 투 와이키키>라는 연극을 만들었다. 그 정도로 원래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시네도키, 뉴욕>은 그 다음 작품이었던 <쿠스코의 신성한 협곡>에 큰 영감을 줬고. 이렇게 원래도 좋아하는 작곡가의 곡이 원래도 좋아하는 작가 겸 연출이 만든 영화에 나오면서 취향을 많이 저격한 것 같다.

 

해결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안에 절대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걸 최근에 느끼고 나서 이런 거에 더 꽂힌 것 같다. 지금 내 상황과 굉장히 밀접한데, 나는 공연 PD로 일하고 있다. 창작자로서의 삶과 직장을 다니는 삶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만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걸 최소화하려고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그런데도 해결되지가 않는다. 오히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괴리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 이건 해결될 수가 없는 거구나, 그냥 내가 평생 안고 가야 되겠구나. 그냥 취할 건 취하고 포기할 건 포기해야겠구나, 그런 걸 최근에 많이 느끼고 더 사무쳤던 것 같다.

사실 이 노래를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런 고민이 별로 없었다. 작년에 <쿠스코의 신성한 협곡>을 준비하면서 이 노래를 들었었는데, 당시엔 그냥 영화가 좋아서 노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할 계기들이 많이 생기다보니 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좋다, 괜찮네 그게 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헐 존내 사무치잖아’ 이렇게.

 

나도 비슷한 고민을 늘 하고 있다.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지만 이걸로 생계 유지가 될 수 있는지, 안된다면 난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고민이 길어지다보니 이제는 내가 배우가 되고 싶은 건지,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이상이 부딪힌다 이전에 내 이상이 뭔지조차 헷갈리는거다.

나도 그렇다. 그것도 해결될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성격상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뭘 성취해도 금방금방 ‘아 알고보니 내가 원했던 종착역이 여기가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충무로만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오이도까지 가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계속 더 가보자 가보자 하다가 오이도까지 가서도 마음이 아니면 배도 타고, 북한까지 가고 더 올라가서 러시아까지 가서도 아 여기가 맞나? 하는. 그것도 진짜 해결될 수 없는 지점의 끝판왕인 것 같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도, 이상이라는게 끝이 없다. 근데 그거가 어떻게 보면 좋을 때도 있다.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항상 있다는 거다.

그리고 사실 현실에서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눈 감고 귀 막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충무로인지 오이도인지도 모르고, 내가 도착한 곳이 충무론지 충정론지. 이런 식이다. 몇 호선인지도, 내가 서울에서 탔는지 인천에서 탔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로 계속 가야 하는데 ‘여기다!’ 라는 생각이 안든다는게 문제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저 역이 맞는 것 같은데 도착하고나면 여기가 아니라고 느낀다는 게 너무 열받는다.

 

그런 점에서 아까 그 가사, ‘I know you’가 더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난 뭔지도 몰랐는데, 널 만나고 나니까 내가 기다렸던 게 너라는 걸 알겠어’ 라는 뜻이니까. X(구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봤다. 거기서 말하길 운명이 뭐냐면, 나한테 한 번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데 어느 날 그걸 만났을 때 아, 이게 내 삶에서 평생 부족했던 거구나를 깨닫게 되는. 그런 게 운명이라는 글이었다. 그런 어떤 운명을 이야기하는 가사처럼 느껴진다.

오, 맞는 것 같다. 나도 그런 게 있나 생각해봐야지. (잠시 생각하다) 흠, 생각이 안난다. 아무튼 약간 지하철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귀에서 이어폰 빼더니 ‘여기서 내리셔야 돼요’라고 말해주는 그런 느낌이다. 근데 내렸더니 와, 천국이네? 이 노래의 화자는 그런 걸 원하는 거다. 

그래서 정말 가사를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You are the one I waited for’은 되게 뻔한 가사고, 아이돌 노래에서도 많이 나온다. 근데 그 앞에 ‘I know you’라는 초단순한 한 마디가 붙는 순간 이 사람이 얼마나 이 얘기가 듣고 싶었을지, 이 말이 얼마나 필요했을 지가 확 사무치는 게 좋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영어 가사를 보고 사무치지는 잘 않는데, 이 ‘I know you’는 너무 쉬우면서도 다가오는 게 있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없지만 ‘I need you’라는 표현도 좋다. 한국말로 해석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한국어로 ‘네가 필요해’라고 하면 약간 나를 써먹겠다는 그런 느낌인데 I need you는 I love you 보다 훨씬 더 위의 느낌이다. 조금 더 절박한 느낌. 어떻게 보면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더 풍부하게 해석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은아]

2024년, 클래식 전용 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사이. 같이 일한 시간은 간신히 한 달 정도지만, 어쩐지 친해지고 싶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봤다. 실용음악과에서 보컬을 전공하고 지금은 예술경영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회사까지 다니는 갓생걸. 하지만 은아만의 알록달록함과 감성은 잃지 않는 사람. 그녀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은아를 닮아 햇살같다.

 

다린 - stood

하얀 손목에 핀 라일락은
밤새 두근거리고
손톱 끝이 둥그런 게
넌 예쁜 달을 열 개나 가졌네

https://www.youtube.com/watch?v=m5KR6quKOPg&ab_channel=%EB%AF%B8%ED%99%94%EB%8B%B9%EB%A0%88%EC%BD%94%EB%93%9C-MihwadangRecord

 

이 노래는 어떻게 듣게 된 노래인가?

학부를 실용음악과를 나왔는데, 대학교 동기가 내가 부르면 좋을 것 같다고 소개해준 노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들었고, 노래는 좋았지만 당시엔 그냥 ‘좋네’하고 넘겼다. 그때는 이 노래가 나에게 별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후에 원래는 노래만 하고 살다가 곡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됐는데, 가사가 정말 충격받을 정도로 좋았다.

 

어떤 곡인지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곡의 전체적인 내용은, 뭐 다린이 어떤 의도로 쓴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이 곡의 내용은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 뭐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연인을 대상으로 쓴 것 같고, 그 사람과 밤에 같이 누워 있는데 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그 안에 우리가 같이 있는 것 같고 그 상태로 시간이 멈춘 것 같고 그래서 심장이 뛰는. 그런 시간에 대한 얘기를 쓴 것 같다.

그런데 그 시작의 도입 가사가 너무… 미쳤다. 이 다린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사를 되게 잘 쓴다. ‘하얀 손목에 피는 라일락은 밤새 두근거리고’ 가 무슨 뜻이냐면, 손목에 있는 핏줄을 말하는 거다. 심장박동이 손목에서 뛰니까 이런 가사를 쓴 건데, 가수로서 노래만 하고 살았을 때는 이런 부분이 잘 안들리다가 내가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해야 되는 시점에 다시 들으니까 너무 좋더라.

이 가사를 보고 나도 좋은 가사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대학 다닐 때 가사 쓰는 수업이 있어서 가사를 종종 쓰고는 했는데, 그걸 메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이 노래를 듣고 이렇게 딱 봤을 때 ‘와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3년도에 본격적으로 곡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곡을 쓰기 전에 나를 위한 응원가처럼 이 노래를 듣고 시작한다. 그러면 좀 힘이 난다.

 

이 노래를 듣고 좋은 가사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가사’는 어떤 가사인가?

사람마다 기준은 다를 것 같다. 귀에 박히는 라임이나 어떤 운율이 있는 가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가사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딱 들었을 때 이미지가 그려지는 가사를 좋아한다.

 

요즘에도 곡을 쓰고 있나? 여전히 이 곡이 은아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요즘에는 곡을 쓰고 있지는 않다. 지금은 음악에서 조금은 떨어져서 다른 것들을 해보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첫 소절을 들으면 뭔가 설레는 감정이 느껴진다. 나 지금 심장 잘 뛰고 있나 약간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그리고 내 왼손목에 매화가지 타투가 있다. 매화를 좋아해서 한 타투지만 이 가지가 뻗어 나가는 모양이 핏줄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타투를 하는데 이 노래 가사가 한 20%정도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은아는 가사를 듣거나 부르는 사람이었다가 쓰는 사람이 됐다. 보통 보컬을 배우면 결국은 곡을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나?

가수한테 바라는 게 많아진 시대다. 지금 미디어에서 잘 된 가수의 예가 전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필수가 된 느낌이다. 곡을 못 쓰더라도 악기 하나는 무조건 다룰 수 있어야 한다든지? 예전에는 김나박이나 빅마마처럼, 물론 그 분들도 곡을 쓸 줄을 알겠지만 기본적으론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유명한 가수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스토리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가진 분위기나 정체성 같은 걸로 덕질을 한다. 노래도 노래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듣는 면이 있다.  그래서 다들 스스로 곡을 쓰는 추세인 것 같다. 가수는 결국 가사와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직업인데, 그게 자기 이야기면 그 효과가 훨씬 극대화된다. 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내가 그걸 듣고 공감할 수 있다는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김마리 - 유일한

초록의 기분을 좋아하던 네가
초록의 계절에 멀리 가버린 날
더 이상 너의 계절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난, 그래도 난

https://www.youtube.com/watch?v=sMDNDLAj8gM&ab_channel=%EC%A0%95%EC%95%84%EC%84%A0 

 

그런 의미에서 다음 노래는 나와 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난 사람이 나를 닮았다고 해준 노래다. 조금 민망하긴 한데 ‘나를 여름으로 만들어주는 곡’ 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지금은 잘 안 됐지만, 당시에 서로 노래 추천 같은 걸 했는데 그 분이 이 노래를 보내면서 ‘너랑 너무 닮아서 들으면 네 생각이 난다’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이런 걸 보면 네 생각이나’ 같은 말을 오글거려 하는 타입인데, ‘나를 닮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이 노래가 ‘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다’하고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여름 같은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여름처럼 싱그럽고 눈부신 사람? 내가 초록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을 좋아한다. 원래는 겨울파였다가 타투를 하고 난 후로는 여름을 더 좋아하게 됐다. 내 타투가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식물이라, 초록 식물들이 만연한 여름이 꼭 내 몸에도 있는 것 같아 자연스레 그 계절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확실히 은아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사람 같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전체적인 내용은 약간 슬프다. 첫 구절을 뽑아준 이유는 뭔가?

서로 마음이 있는 관계였는데 상대가 뭔가 사라져버린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사실 첫 구절이 좋은 이유는 ‘초록의 기분’이나 ‘초록의 계절’이 여름을 이야기하는 건데 그걸 그냥 ‘여름’이라고 말해버리지 않아서 좋다. 뒷부분은 가사가 내 취향에 막 맞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앞 두 문장이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앞 노래도 가사를 읽자마자 라일락의 푸른 색채감이 확 느껴졌고, 이 노래도 초록색의 색채감이 느껴진다. 내가 은아를 봤을 때도 굉장히 색감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데, 좋아하는 가사와 본인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도 자기도 모르지만 자신과 닮은 부분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전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뭐 나의 아이덴티티를 밖으로 내비치는 게 좋고 그러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들이 생각보다 남이 나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노래를 그렇게 소개받았을 때 기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를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어서.

 

잔나비 - 꿈과 책과 힘과 벽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8Q5PkxVkHAc&ab_channel=KBSKpop

 

이 노래는 앞의 두 곡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뭔가 웅장하다.

제목도 되게 멋있지 않나. 가사 전문을 읽어보면 어른을 위한 동화책 같은 느낌이다. 잔나비의 노래들도 가사가 정말 좋다. 나는 대놓고 위로하거나, 대놓고 실패하거나, 대놓고 사랑하는 그런 노래는 별로 안좋아한다. 근데 이 노래는 분명 대놓고 위로하는 곡인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뽑는다면 어떤 부분인가?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부분을 좋아한다. 대중음악 가사에 ‘호령한다’는 말이 잘 나오나? 노래 뿐만 아니라 그 표현 자체를 잘 안 한다. 그래서 좋다. 뭔가 이미지도 바다 위에서 약간 이렇게 (하늘을 가르키는 포즈를 하며) 이러고 서있을 것 같지 않나? 그런 느낌도 좋다.

 

이 노래는 어떻게 듣게 됐나?

고등학교 연극부 선배가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이런 음악을 좋아하더라. 그 분의 스토리에 올라와서 알게 된 노래다. 잔나비의 노래 중에서는 그래도 덜 유명한 곡인데 제목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들었는데 딱 이 부분 가사를 듣고 ‘와… 좋은데?’ 이랬다. 

나는 너무 좋은 가사를 들으면 그런 게 있다. 요즘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아니면 걸어 다니면서 노래를 많이 듣지 않나. 그러다 보면 가사에 집중을 잘 안 한다. 특히 운동하면서 들으면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단순히 멜로디가 좋은 걸 더 많이 듣게 되는데. 나는 그러다가도 딱 이 노래가 나오면, 이 가사를 무조건 들어야 된다. 그래서 이 가사가 지나가면 다시 돌려서 듣는다. 그런 노래다. 그리고 잔나비의 노래가 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른을 겨냥하고 쓴 노래 같은데 어른에게 어른이 되는 걸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이 힘들 때 많이 듣는다.

 

최근에는 언제 들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회사에서 공연 기획 관련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데, 얼마전에 공연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울었다. 나는 내가 보이는 것보다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한번쯤 휴학을 하고도 싶었는데 결국 안 했고 졸업해서 대학원도 바로 가고. 그래서 스스로 ‘이정도면 나 진짜 열심히 살고 있지’ 이렇게, 어떻게 보면 자기착취를 갓생이라 착각하면서 계속 살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다 괜찮고 견딜 수 있었는데, 그날따라 여러가지가 쌓여서 유독 힘든 날이었다. 근데 마침 비슷한 처지의 선배한테 연락이 와서 카톡으로 이런 얘기를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나오는 거다. 그래서 바닥에 앉아서 눈물 뚝뚝 흘리고 집 가서도 막 울었다.

그날은 그렇게 보내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 노래를 들었다. 사람이, 그 전날 저녁에는 막 엄청 좌절스럽고 퇴사하고 싶고 그랬는데 일어나니까 생각보다 괜찮더라. 사람은 참 회복탄력성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이 노래를 들으면서 출근했다 (웃음)

 

가사가 ‘괜찮아’ 이렇게 말해주기보다는 담담하게 ‘그래도 살아가야지’ 하는 느낌이긴 하다.

며칠 전이 우리 학교 축제였는데 그때 잔나비가 와서 이 노래를 해줬다. 그날 최정훈씨 목 컨디션이 엄청 안좋았다. 응급실에 가서 링거도 맞고 했다는데 노래할 때는 전혀 못 느끼다가 멘트를 하니까 티가 나더라. 목도 안 좋고 몸도 안 좋고, 마지막쯤 가서는 입술이 퍼랬다. 그래서 어떡하냐 이러면서 보고 있는데 그렇게 끝까지 노래를 하다 마지막에 이런 멘트를 했다.

“저희는 좀 촌스러워요. 무대 위에서 품위 있게 놀고 품격 있게 마이크를 건네고 품격 있게 하는 방법을 잘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매번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그렇게 할 거고요.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안 하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던 날들이 있었어요. 오늘 보여준 모습이면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행복할 수 있고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이 너무… 안 쓰는 말이지 않나?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승리하다’, ‘호령하다’ 이런 말들이 참 안쓰는 말인데, 진짜 딱 최정훈같은 말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가더라. 그래서 좋았다. 그 앞의 말도 좋았던 게 잔나비의 가사가 막 예쁘게 포장하려고 쓴 가사는 아니다. 오히려 적나라한 느낌인데,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보통 인터뷰를 하면 가사의 의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많은데, 은아는 가사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발음이나 이미지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 게 신기하다. 가사를 쓸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나?

다른 사람은 어떨 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가사와 음이 동시에 생각이 나서 녹음을 하고 그 다음에 생각나는 대로 이어서 쓸 때도 있고. 코드를 잡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는데, 사람이 흥얼거릴 때 편하게 생각하는 발음 같은 게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막 부르다보면 중간에 뭔가 좋은 게 나오고 거기서부터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와 협업을 하거나 클라이언트가 있으면 원하는 단어나 분위기를 먼저 생각해서 거기서부터 써내려 가는 경우도 있고. 작업 방식은 다양하다.

 

본인이 자주 쓰는 가사 같은 게 있나? 아니면 들으면 꽂히는 가사라던가? 나는 요즘 아이유 노래를 들으면서 느끼는게, 아이유는 ‘그럼에도’ 라는 가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은아에게도 그런 단어가 있는지 궁금하다.

뭔가 하나를 꼽기는 어려운데, ‘비로소’, ‘무려’ 이런 단어를 좋아한다. 잘 안 쓰는 접속어나 발음이 특이한 단어. ‘호령’도 마찬가지고. 아이유도 발음이 예쁜 단어를 골라서 일부러 쓰고, 발음할 때도 표준적인 발음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들었을 때 예쁘게 들릴 수 있게 발음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원래 단어가 가지는 느낌과 반대되는 느낌으로 쓰이는 경우도 좋다. 최유리의 ‘우리만은’ 이라는 노래가 있다. 거기에 ‘우리 널브러져 있자’, ‘희미해지자’ 같은 가사가 나온다. 보통 이런 단어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데 이 노래에서는 좋은 의미다. 그리고 ‘응 그렇게 흐려져 있자’같은 가사에 나오는 ‘응’ 같은 단어들. 이런 단어를 가사에 잘 안 넣는데, 이 곡에서는 이 ‘응’이 앞부분 가사와 이어져서 발음이 정말 예쁘게 들린다. 그래서 이 곡도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간략하게만 소개하겠다.

 

그럼 은아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가장 먼저 듣는 편인가? 나는 노래를 귀로 듣기보다는 춤으로 보는 사람이라서, 가사보다 비트를 더 중요하게 듣는 것 같은데 보컬 전공자는 어떨지 궁금하다.

일단은 멜로디.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실 노래 비트가 엄청 좋아도 딱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취향이 아니면 듣기 싫어지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많은 프로듀서들이 좋은 보컬을 찾으려고 하는 거고. 

보컬을 제외하면, 베이스. 사실 내가 부전공처럼 베이스를 짧게 했었다. 사실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냥 노래를 들으면 베이스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베이스 솔로를 해도 그 소리가 베이스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그냥 들으면 잘 못 느끼지만 사실 아이돌 음악 같은 경우에서도 베이스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빠지면 정말 허전하고,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베이스음이 잘 들리는 곡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제까지 은아씨가 ‘듣는’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보컬로서 ‘내가 부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노래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보컬마다 잘하는 테크닉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고음을 잘 내고, 누구는 바이브레이션을 잘하고. 나 같은 경우엔 가성이 잘 사는 노래,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파트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 ‘이 노래를 정복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다. 가수라면 필수적으로 어떤 노래를 어떤 창법으로 불렀을 때 내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리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진가성을 오갈 때 내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노래를 들을 때는 내가 잘 못하는 걸 잘하는 노래를 듣는 것 같다. 요즘은 락밴드 음악을 많이 듣는다.

부르는 노래는 약간의 재즈 냄새가 나는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 오늘 소개한 곡 중에는 처음 소개한 다린의 ‘Stood’가 원래는 듣는 곡이었는데 부르는 곡이 됐다. 실제로 대구에서 재즈밴드 하시는 분들과 같이 공연을 올렸는데, 그 공연으로 이 곡을 처음 접한 분께서 노래가 너무 좋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사실 보컬 전공자들은 입시곡이나, 공연을 준비했던, 그래서 내 테크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연습했던’ 곡을 다시 하는 걸 싫어한다. 근데 ‘Stood’는 몇 번을 불러도 안싫다. 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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