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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4/23호_Voice

23호_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가사가 있나요? (1) / 연푸른

by 밍기적_ 2024. 6. 24.

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가사가 있나요? - 1편

 에디터 연푸른

 

어떤 음악은 나를 움직인다.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도 만들고, 꾹 참고 있던 눈물을 끝내 터뜨리게도 만들며, 너무 좋아 아악 소리를 지르며 이마를 빡빡 치게도 만든다. 이 음악에 춤을 추고 싶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서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기도 하고, 따뜻한 목소리로부터 자신 없던 마음에 위로와 확신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은 우리를 움직인다.

음악 속에서 나를 건드리는 것들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특히 가사에 집중했다. 에디터인 내가 좋아하는 가사와 자신이 사랑하는 가사를 소개하는 다섯 명의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담았다. 1편에는 듣는 이에게 힘이 되어줬던 가사가, 2편에는 또다른 창작의 영감이 되었던 가사가 담겨있다. 

당신에게도 아마 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노래가 있을 것이다. 혹은, 지금 움직이고 싶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가사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천천히 듣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시길. 이 인터뷰가 당신의 무더운 여름에 조금의 생동감을 더할 수 있길 바란다.


[연푸른]

투개월 (원곡 패닉) – 달팽이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 나는 영원히 갈래

쨍쨍한 햇빛이 살을 태우고, 열기를 이겨내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 손을 찐득하게 적시는 여름날이 생각나는 노래다. 차는 쌩쌩 저마다의 도착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는 달팽이 한 마리와 함께 정처 없는 걸음을 옮기고 있다. 내 귀에는 달팽이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저쪽 나무 위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길거리를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저 멀리 있을 시원한 바닷바람을 생각하다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다. 목적지가 없어도, 남들처럼 목적지를 향해 쌩쌩 달려가지 않아도, 느려도, 괜찮다고. 지금 이 햇빛과 노랫소리와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즐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건강하기만 하면 괜찮았던 초등학생 시절, 얼린 쿨피스를 파먹으며 걸었던 어느 토요일의 하교시간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던 건 고등학생 때였다. 우리 학교는 주말에도 자습실 문을 열었고, 나는 그 주말마다 공부를 하다 말고 툭하면 학교 밖을 나가 목적지 없이 한참을 걷곤 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때, 수행평가를 위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그냥 머리가 복잡할 때. 끈적이는 위로도 억지 텐션도 부담스러울 때는 이 노래를 틀곤 무작정 교문 밖을 나섰다. 가는 곳이라봤자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대형 서점이거나, 바로 길 건너편 알파문고가 전부였지만. 나는 그 알파문고에 갈 때마다 쓸데없이 샤프심이나 지우개 따위를 사오곤 했고, 그 때 사 모은 지우개와 샤프심을 8년이 지난 지금도 다 쓰지 못해 책상 서랍에 넣고 다닌다.

초록색 버스와 승용차들이 내달리고, 지상철과 지하철이 만나는 우리 학교 주변에는 온갖 입시미술 학원이 즐비해 있었다. 나는 한적한 주말의 거리를 걷다가, 나올 때처럼 갑작스럽게 다시 교문안으로, 나의 책상 앞으로 돌아가곤 했다. 달팽이처럼. 빠르게 어딘가로 내달리지는 못하고 결국 비슷한 곳으로 돌아와 늘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그래도 달팽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따듯한 햇볕 아래서 한참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어쩐지 나른해진 몸과 함께 조금 불안했던 마음도 가라앉곤 했다.

여전히 이 노래를 들으면 산책을 가고 싶다. 바다까지는 못되더라도, 한강변이라도.

 


[채령]

2024년 낭독극 <쿠스코의 신성한 협곡>에서 동료 배우로 만났다. 카리스마 있는 Unnie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땋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스윗걸이었다. 섬세하게 느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다정하게 들어주는 사람. 지금은 대안공간에서 Assiatant Curator(그녀의 명함에 난 오타를 그대로 옮겼다)로 일한다. 물 만난 채령의 옆에 나도 헤엄치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예린 – bye bye my blue

난 왜 니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걸까 / 감당하지도 못할 것들을 손에 꼭 쥐고서
여기서 무얼 얼만큼 더 나아지고픈 걸까 / 너도 똑같은 거 다 아는데 내가 이기적인 걸까
많이 가져도 난 아직 너 같진 않아 / 아픈 기억들 위로 매일 혼자 걸어 난
아플걸 알아도 자꾸 마음이 가나 봐 / 그래서 자꾸 네게 욕심을 내나 봐
나의 나의 나의 그대여 / 이름만 불러봐도 맘이 벅차요


https://www.youtube.com/watch?v=WbhK3wMXluE&ab_channel=JYPEntertainment 

 

어떤 노래를 골랐나?

백예린의 ‘bye bye my blue’를 골랐다.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나는 ‘너’라는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을 질투하고, ‘난 왜 저렇게 못하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 사람이 가진 것들을 자기가 가졌어야한다고, 한 때 욕망했던 것들에 대해 실제로 그걸 가지기 위해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저 바라면서 그냥 그 상태로 머무르고 있다. 내가 한 때 욕망했던 그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혹은 그걸 가진 상대방도 뭔가 힘든 점이 있을 거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여기 머무르면서 욕심만 내고 있는. 그런 노래다.

 

노래는 알고 있었지만 가사를 제대로 읽어보는 건 처음이다. 사실 나는 이 노래가 짝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석하는 걸 나도 봤는데 되게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 노래가 전혀 사랑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가 뭐였을까? 채령의 어떤 시기에 들은 노래인지 궁금하다.

스무살, 열등감에 발버둥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나의 상황을 조금 알아야 이해가 될 것 같은데, 나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항상 그림을 그렸었고 그게 당연했다. 당시 나를 정의하는 단어들은, 반에 한 명씩은 있는 어떤 반의 ‘그림 잘 그리는 애’.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미대를 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시절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학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 그래서 부모님께서 미술을 하는 건 안되겠다고 이야기하셨다. 사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맞고, 그게 내 돈도 아니고, 또 미술은 통상 어려운 길이니까. 또 나는 장녀였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다. 근데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입시 미술을 하고, 화구통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에게 질투나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나랑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났다. 걔도 원래 미술을 하고 싶어 했는데, 1학년 때 아버지에게 말을 꺼냈다가 아버지가 ‘어디 환쟁이가 되려고 하냐’면서 가방을 불태웠던 전적이 있는 친구였다. 우리가 노는 무리는 달랐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같이 종종 놀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같이 영화를 보러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근데 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 입시미술학원 어쩌구 하는 광고가 나왔고, 둘 다 그걸 빤히 쳐다보면서 너무 싫다, 너무 짜증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 못생긴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됐던 것 같다.

그리고 3학년이 됐다. 학기 초가 조금 지나고 나서였나, 쓰레기 당번이라서 다른 친구랑 같이 쓰레기통을 들고 소각장으로 걸어가다가 그 친구의 반 앞을 지나쳤다. 근데 그 친구가 날 보고 뛰쳐나오더니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 부모님이 그 친구의 진로 문제로 크게 싸우고,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얘를 데리고 학원에 등록을 시킨거다. 그래서 미술 학원에서 상담을 받던 중, 아버지로부터 허락하겠다는 문자가 왔고, 그 결과 그 친구는 가정의 지지를 받으면서 건강하게 입시를 준비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때 나는, 그게 너무 잘 된 일이니까. 막 내가 잘 된 것 같고, 그래서 그 친구를 껴안고 막 울었다. 근데, 그러고 나서 나는 뭘 해야 하냐, 다시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 그래서 다시 쓰레기통을 가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그때부터 뭔가 어떤 감정에 먹히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잘 보냈고 나는 영문과에 가게 됐는데, 그 친구는 서울대학교 공예과에 합격을 했다. 대학생 때 집에서 통학을 하면서 버스를 탔었는데 그 버스에 광고가 붙어있었다. 입시 학원에서 붙인 광고에, ‘서울대학교 공예과 합격자 00여고 000’라고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학년까지만 해도 내가 대학에서 도대체 뭘 배우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떤 일학년도 자기가 뭘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일학년은 원래 그런 시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시에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 스무살을 보내다가 듣게 된 게 이 노래였다.

당시에 페이스북이 유행이었는데,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 자기 작업을 올리는 걸 보면서 ‘되게 스타일이 강한 그림을 그리게 됐네’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예술에서는 스타일이 되게 중요하지 않나. 입시 미술의 느낌을 빼고 정말 자기 작업을 하게 되는 과정. 그러고나면 진짜 아티스트가 되는 거다. 나는 내가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그 친구가 그렇게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걸 보면서 되게 마음이, 쿵쾅거렸다. 보고 싶지 않는데 보고 싶고. 그래서 그 친구 계정에 계속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걔가 그리는 그림의 스타일이 원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원래 다들 모작도 하고, 여러가지 스타일을 시험하면서 자기걸로 나아가게 되는 거니까. 근데 그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 위로가 됐다.

사실 너도 별 거 아닌데. 너도 너만의 흔들림이나 힘듦이 다 있을 텐데 왜 나는 네가 가진 게 항상 더 좋아 보이고 그럴까? 나는 사실 그때 이후론 그림을 별로 그리지 않고, 특히 손이 굳는 게 느껴지니까 더 못 그리겠고. 그래서 그림을 생각하면 괴로운데 그 괴로움 속에도 쾌감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벅차요’라는 가사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에게 열등감이나 못생긴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벅찬거다.

 

이 노래는 채령을 어떻게 움직였나?

어디다 털어놓지 못하는 생각들이라고 느꼈던 것들인데. 왜, 바보 같은 연애를 하면서도 뭔가 말할 곳이 필요해서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사람들처럼, 어딘가 털어놓을 구석은 늘 필요하지 않나. 나에겐 이 노래가 그런 구석이었던 것 같다. 나도 같은 마음인데, 나와 뭔가를 공유하고 있는 데에서 오는 찡함이 있었다. 당시에 반수를 하니마니, 엄마 몰래 미대를 가니마니 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의 이 못생긴 마음을 예쁜 노래로 만들어준 백예린 양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이 부분 가사가 너무 좋아서 관련된 타투도 했다. 그러니까 부디 사고치지 마시길…….

 

채령에게 그림이 정말 큰 의미였던 것 같다. 요즘은 다시 미술을 할 생각은 없는지?

이제는 이차원이 주는 시각적인 쾌감보다도 더 많은 부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걸 즐기고 있다. 그리고 큐레이터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리지만 않을 뿐이지 같은 필드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당시 내 옆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걔는 작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근데 그 친구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다가, 한 단계 더 지지가 필요한 시점에 지원을 못 받게 됐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나랑 같은 학교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졸업하고 한동안 혼자 작사학원 다니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갑자기 국어학원 원장이 됐다. 그런데 아예 작사를 놓은 건 아니고, ‘내가 꼭 이것에 온 몸을 투신하지는 않아도 돼’같은? 완전 투신하거나, 아예 안하거나가 아니라 그냥 같이 평생을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나도 더 어렸을 때는 ‘나는 정말 이거 아니면 안돼’ 같은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뭐. 이걸 할 수도 저걸 할 수도 있고, 언제든 바뀔 수도 있고 또 동시에 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또 다른 노래가 생각났다. 악동뮤지션의 ‘물 만난 물고기.’ 

악동뮤지션 – 물 만난 물고기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작품
독백의 순간을 버티고야 비로소 / 너는 예술이 되고 또 전설이 되었네 (중략)
그는 동경했던 기어코 물을 만나서 물고기처럼 떠나야 했네


https://www.youtube.com/watch?v=0MKIE6LWsjs&ab_channel=THEK-POP
 

 

‘기어코’라는 가사가 좋다. 나는 늘,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세계를 만나게 될 거고 찾게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 사실 물을 만나고 어쩌고 하는 부분들보다는 ‘기어코’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 좋았다. ‘넌 기어코 뭔가를 해낼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스물세살 정도였던 것 같은데, 사실 이때쯤에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고 다른 여러가지 것들을 많이 했었다. 연극이랑 뮤지컬에 한창 빠졌을 때고, 신촌에 올라와서 극회에도 들어가고 연극에 정말 미쳐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여러가지 색깔들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였는데 그래서 그만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에게 많은 것들이 들어오는 그 순간을 즐기면서도 뭔가 부유하고 있는 느낌. 스무살 때는 이거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면 이 때는 뭔가를 많이 해보면서 ‘나 지금은 이렇게 해파리처럼 떠돌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의 바다에 가게 될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미술보다 즐거운 것들이 있을 수가 있구나, 그만큼 빠져있는 것들이 있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 지금도 원하던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평생 이 일을 할 지도 모르는 거고,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그냥 그렇게 즐겁게 살다가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노래는 ‘물’을 만나는 노래다. 그럼 채령은 여전히 그 어떤 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물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여전히 물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마냥 그런 물을 기다리면서 살아온 건 아니다. 사실 그림을 그렇게 그리고 싶어 했던 순간은 잠깐이었고 그 이후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 전공을 처음으로 배울 때는 이거 재미있네, 나 이런 것도 잘 할 줄 아네. 뭐야, 나 잘하잖아. 도대체 재능이 몇개야. 미치겠네 (웃음)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항상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바로 ‘물’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이거 하나로 살아가겠다라는 생각은 시야가 좁았던 10대나 20대 초반에 했던 생각인 것 같고, 이제는 순간순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준하]

2018년 봄, 학내 미투 이어말하기 공동행동에서 발언하고 있는 준하를 처음 봤다. 아마 준하는 나를 몇 주 뒤 페미니즘 극단 메두사의 신입생 OT에서 처음 봤을 것이다(라고 적었더니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동료 스태프로, 배우와 조연출로, 같이 공연을 보고 서로의 건강을 빌어주는, 가끔 헛소리를 나누는 사이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나에게 준하는 클라이머이자 웹소설 작가, 배구 덕후이자 건강쟁이이며 그는 스스로를 ‘민감하고 가볍게’와 ‘유연하고 강한 몸’을 키워드로 살던 사람이라 소개한다.

 

윤하 – sunflower

지난 아픈 기억은 / 이제 중요하지 않아
언젠가는 눈물 멎으면 / 힘들던 시간이 말하겠지
내게 고마웠다고 / 힘내라고 괜찮을 거라고
내게 말해 / 라라라 라라라
나는 나를 더 아낄 거야 / 라라라 라라라
나는 나를 사랑해


https://www.youtube.com/watch?v=kmUB6UPbZ5Q&ab_channel=RIAKOFFICIAL 

 

이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되게 심플한데. 시련 같은 것이 항상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하고 말하는. 그런데 그 방법이 일단 자기자신을 인정하는 거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준하는 어떤 사람이었나?

2017년, 18년 정도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이것저것 신변의 변동이 많을 때였다. 그 변동이라는 게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단은 몸이 많이 안좋았다가 다시 나아지는 경험을 반복했고,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학생운동에 발이 낑겼다가 징계를 받았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본부와 학생 사이에 캠퍼스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캠퍼스 추진 계획에 있어 학생의 입장을 들어달라고 요구했는데 학교 측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학생 측이 더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행정관을 점거하고 있었다. 사실 그 과정 중에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휴학을 한 상태였고, 이후 복학해서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원래 직원들이 있던 건물이 왜 저렇게 돼있지?’하며 신기해서 행정관에 들어가봤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몇 가지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고, 공간이 넓으니 가끔 와서 좀 쉬어도 되겠구나 하면서 오래오래 있다가 여러 일들을 겪었다.

이를 테면 2017년 3월의 어느 새벽에 학교측에서 용역을 써서 행정관에서 학생들을 끌어내고 물대포도 쏘고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도 새벽에 학교에 가 있다가 거기서 끌려 나왔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4월에 학생총회가 열렸는데 결론적으로 행정관 재점거가 의결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중 몇몇 학우들이 재점거 계획을 짜고 다시 점거를 하기로 한 거다. 자세한 맥락은 잘 모른다. 나는 그냥 일반 학우였기 때문에.

그런데 그 일반 학우가 집에 늦게 가도 되니까 그냥 구경이나 할까하고 그 근처에 있었던 거다. 2층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망치로 창문을 깨고 들어가자 이런 의견들이 나왔는데 그 순간 시선들이 막 오가더라. 그런 거 알지 않나? ‘조별과제 조장 누가 하시겠어요’같은 모먼트. 그런 모먼트였는데, 난 사실 아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약간 무식하니까 용감한 것도 있었고, 또 그 창문이 좀 높이 있었는데 내가 좀 키가 크니까. 그럼 내가 가야겠다해서 내가 올라가서 창문을 깼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그 때 창문을 깬 사람이 준하인지는 몰랐다.

다들 말 안 하면 잘 모른다. 아까도 말했지만 갈등이 한창일 때 나는 병원에 있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내가 13학번이었는데 당시 점거 주축 멤버는 15, 16학번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학생 사회라던가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별로 하던 것도 없이 본부에 죽치고만 있던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뭔가를 하게 된 거다. 근데 그게 또 카메라에 찍혔나보더라. 그래서 징계를 받게 됐다. 유기정학을 9개월인가 그렇게 받았다.

결국 휴학을 하게 되고, 당시에 사실 건강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우울증 같은 것들의 증상이 많이 심해졌다. 휴학을 하고, 당시 아버지가 멀리서 일하고 계셔서 거기가서 드라이브나 하면서 멍하니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노래 중 하나가 이 노래였다.

 

그때 준하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였나?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지만 일단은 다 지나간 일들이다.’라는 생각을… 물론 그때는 하지 못했지만 (웃음)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 일이 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고 결국 재판도 몇 년 더 이어졌고, 관련된 일들이 계속 지속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진로 고민도 있고 건강 고민도 있고. 그런 일들과 고민이 쭉 이어지는 동안 그냥 이런 노래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노래 가사를 보면 지난 아픈 기억은 중요하지 않고, 언젠가는 힘들었던 시간들이 말하겠지 뭐 이런 내용이 있다. 어쨌든 그때 힘들었던 경험들도 일종의 경험이니까. 그 과정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됐고, 그런 것들이 사실 지금의 나를 많이 만들기는 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13학번이었지만 그때부터 아팠으니까 한 2-3년 정도는 배운 게 되게 적다고 느꼈는데, 본부에 들어가고 다른 단과대 친구들이나 학생 운동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새로 하게도 되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또 가사 중에 내가 정말 뭘 원했는지를 찾아가야 한다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런 고민을 나 스스로도 좀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당시 문학 작품, 소설 특히 대하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런 걸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보니까 내가 사람들과 감정을 교류한다던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던가 하는 것들에 되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더라. 소설가가 하는 일은 수많은 인물을 창조하고, 각각의 인물에게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건데, 그걸 하려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하지 않나. 경험하는 것도 있을 거고 상상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더 단순한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중요한 혹은 중요하지 않은 어떤 선택들을 하고 사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다.

학생 운동을 했을 때도 분명한 부분은 있었다. 어떤 일들이 옳지 않고, 뭔가 잘못되어 있고, 이런 건 머리로 알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작 행동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다르고, 성격에 따라서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어쩌면 난 그런 질문을 탐구하기보다는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 그렇게 많이 변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에 약했거나 부족했던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노래였다.

 

윤하 – 26

Good bye bye / 이제는 안녕
저기 멀리 내가 사랑한 곳
만약 다시 너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웃어볼게 어렴풋하게


https://www.youtube.com/watch?v=eUqwF1-jjwQ&ab_channel=Younha-Topic 

 

사전 인터뷰 때는 윤하의 다른 노래도 언급했었다.

‘26’이라는 노래다. 사실 가사 자체는 문학적이라고 해야하나, 뜻이 명확하지는 않고 사람과의 이별을 말하는 듯한 느낌도 난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해석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졌던 문학에 대한 관심을 이후로도 놓지 못해서 대학에 와서는 국문과 연극반에서 굉장히 오래 활동했는데, 그런 것들도 결국은 조금씩 떠나보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봐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럴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문학적인 창조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회 운동에 대해서도 내가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이 잘 맞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근데 그런 깨달음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그것들이 한때 내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었는데, 그렇게 마음을 쏟았던 것들과도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거. 그런 느낌이다. 연극반에서 알았던 친구들, 무대에서 계속 활동하는 선배들이나 하려고 하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계속 관심을 쏟으려고 하지만 어쨌든 이제 내 일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거다.

 

앞의 노래도 그렇고 방금 소개한 노래도 그렇고, 뭔가 과거는 과거에 두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느낌의 노래다. 준하는 미래로 걸어가는 사람인가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해둔 방향성이 있나?

비슷한 느낌의 노래가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 같다. 

음,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극반 활동 이후에는 몸과 신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동작이나 자세, 감각, 어떤 생활 같은 것들이 내가 몸을 어떻게 쓰는지에 달려있고, 그래서 내 몸을 잘 들여다보면서 이게 이래서 이렇게 되는구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배우지 않은 새로운 것들도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왜 국어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다행히도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 미래가 불안하거나, 뭔가 지금이 미래의 걸림돌이 될까봐 걱정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윤하의 ‘잘지내’라는 노래를 또 잠깐 소개하고 싶은데, 거기에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워’ 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 부분이 노래도 되게 느낌이 있어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진수]

2017년, 대학교 같은 과, 같은 반, 같은 학회 선후배로 만났다. 오래 연락을 않고 살다가, 2024년 포켓몬 OST콘서트를 보러 온 진수를 공연장에서 일하던 내가 우연히 마주치며 인터뷰를 하게 됐다. 꽂히는 게 있으면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나무위키적 인간. 김윤아 님, 김이나 님, 민희진 님 등 굳은 철학을 바탕으로 묵묵하지만 화사하게 세상을 꾸미는 분들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진수는 사실 그 스스로도 이미 화사한 사람이다.

 

자우림 – 팬이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 애써 웃음지어 보여도
나는 알고 있어 때로 넌 / 남들 몰래 울곤 하겠지
특별할 것 없는 나에게도 / 마법 같은 사건이 필요해
울지 않고 매일 꿈꾸기 위해서 / 언젠가의 그 날이 오면

https://www.youtube.com/watch?v=Tx-Y9lPNqq0&ab_channel=1theK%28%EC%9B%90%EB%8D%94%EC%BC%80%EC%9D%B4%29 

 

이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도 나 하나만큼은 나의 팬이 되어서 내 자존감과 사랑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2절 가사를 보면, ‘어디론가 남들 몰래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이런 우울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어디에도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지길 바라는? 누구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나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이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좀 슬픈 마음을 가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도 내 자신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하는 노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면?

사실 노래 전체의 흐름을 다 읽어야 와닿는 가사다. 1절의 초반부는 ‘언젠가의 그 날이 오면’이라는 가사로 끝이 나는데 그 다음엔 ‘언젠가의 그날을 향해’로 바뀐다. 그러다 2절에서 다시 ‘언젠가는 그 날이 올까, 아직 어둡게 가려진 그 날’ 이라는 더 슬프고 회의적인 느낌의 가사가 나오지만, 결국에는 그럼에도 나는 나의 팬이다.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이런 흐름이 좋았다.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이 있는. 색으로 따지자면 잿빛인데, 희미한 자주색이 느껴지는 노래다. 굉장히 어둡고 외롭고 힘들고 그래서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 멀리 약간의 희미한 빛은 보인다. 물론 자주색도 마냥 밝은 색이라 할 수는 없지만 회색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주색 빛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살아갈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진수는 이 노래를 언제 많이 들었나?

중고등학생 시절에 많이 들었다. 10대는 정말 많이 흔들리고, 주변 친구들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고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힘들 수도 있고 그냥 그런 시기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는데 그런 것들로 인한 힘듦이 있었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들었던 많은 노래 중 하나다. 가사도 가사지만 특히 멜로디와 함께 들으면 더 와닿을 수 있는 노래다. 노래 자체가 마이너와 메이저의 감성이 섞여서,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면이 있다.

 

그때 진수에게 자줏빛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 좀 더 자유롭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과 마음껏 어울릴 수 있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삶에 대한 상상과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버텼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희망적인 노래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힘든 시기를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 아주 밝은 노래는 아니다. 우울할 때 우울한 노래를 더 많이 듣는 편인가?

노래가 마냥 밝진 않다. 자우림의 노래는 다 그런 느낌인데, ‘샤이닝’이라는 노래도 제목은 샤이닝이지만 가사는 오히려 더 어둡다. ‘매직 카펫 라이드’도 마냥 환상적이어 보이지만 김윤아님이 항상 말하시는 걸 들어보면 그 노래도 세상을 다 져버리고 그냥 마구 마음대로 살아버리는 노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울할 때 우울한 노래를 더 많이 듣는 편은 아니다. 내가 느꼈을 때는 이 노래가 내가 들을 수 있는 우울한 노래의 마지노선 같은 느낌이다. 더 쳐지고 더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나도 별로 좋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공감이 되고 와닿을 수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어둡고 우울하지만 그 속에서 최소한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부분이 좋다.

 

그렇다면 진수는 지금 스스로의 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막상 이렇게 말하니까 좀 부끄러운 감이 있긴 한데, 팬…이다. 사실 가끔 뭔가 나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난 이런 나도 사랑해. 하지만 뭐 이것도 나름 매력있잖아? 이렇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모두 나의 팬이어야 될 의무가 있다고, 의무가 아니라면 책임? 혹은 당위? 그 정도의 어감으로 표현하고 싶다. 나 자신이 나를 온전히 응원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또 나를 응원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을 응원하고 싶다. 내가 지금 하는 일 하나하나가 나의 성장에 발판 그리고 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려고 한다.

 

굉장히 건강하다. 그럼 조금 민망할 수 있겠지만, 본인이 자신의 팬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누군가에게 나를 영업해야 한다면 영업 포인트는 어떤게 될 수 있을까?

뭐가 있을까? 그냥… 말 잘 통해여! (웃음) 약간 좋은 말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에게서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나도 요새는 뭔가 사회생활을 좀 하다보니 삐딱하게 생각이 될 때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도 약간 ‘안돼 안돼, 그래도 이 사람 좋은 점이 분명히 있어’ 이런식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힐링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 내가 오롯이 만족할 수 있는 또 다른 덕질할 뭔가를 찾아서 심신정화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당신의 덕심을 자극하는 노래가 있다고 들었다.

TripleS – Girls Never Die

날 따라와 달라진 날 / 하나가 되자
너의 꿈이 내가 되고 /우리 함께 꾸는 꿈
두려움 따위 다 함께 있다면은 / 이제 무서울 것 없지
다시 해볼까?

https://www.youtube.com/watch?v=2tda_TCjz8w&ab_channel=tripleSofficial 

 

‘팬이야’가 10대 때 정말 지치고 힘들 때 들었던 노래라면 ‘Girls Never Die’는 20대가 돼서 들은 노래지만 그때의 감성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랄까. 특히 이 노래의 댓글 중에 인상깊었던 게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 10대는 뉴진스의 ‘Ditto’였겠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Girls Never Die’였다’는 댓글이었다. 어쭙잖은 긍정이 아닌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건네는 노래라서 공감이 많이 됐다.

나의 10대를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는 ‘Ditto’에 좀 더 가까웠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Girls Never Die’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물론 내가 girl은 아니지만, 학교 친구들 평균 성적이 높아서 그 안에서 성적을 잘 받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부담이 컸다. 친구들끼리 반목도 강했는데 특히나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그냥 안 어울리면 그만이었던 중학교 때완 달리 고등학생 때는 좋거나 싫거나 항상 부대끼면서 살아야 했다. 

그때가 생각나는 것도 있고, 사실 지금의 10대들도 각자의 이유로 힘들텐데 그런 걸 위로해줄 수 있는 요새 나오는 몇 안되는 노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부분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일단 ‘다시해보자’같은 다수의 킬링파트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가 되자’ 이후로 나오는 가사들. 뭔가 앞 부분까지는 개인적인 이슈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하나가 되자’ 이후로는 나도 너와 같은 생각, 너와 같은 체험을 하고 있어. 우리 같이 일어나서 다시해보자. 이렇게 연대의 손을 건넨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해볼까?’로 가사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많이들 좋아하시더라.

쓰러져도, 아무리 좌절과 절망에 넘어져도 그냥 다시 일어나서 묵묵히 살아가는 느낌. ‘할 수 있어!’ 이런 게 아니라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쨌든 난 살아가야 하니까 해봐야지’ 이런 느낌이다. 굳이 따지자면 ‘원영적 사고’보다는 ‘희진적 사고’에 가깝달까. 평균적으로는 밝은 노래들을 더 좋아하기는 하는데, 진짜 와닿는 노래들은 사실 이런 노래들이다. 그래서 가끔씩 와주는 이런 노래들이 고마울 때가 많다. 

 

특히 이 노래가 요즘 진수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노래 외적으로도 사실 심장이 뻐렁쳤던게, 원래 트리플에스(TripleS)라는 그룹 자체가 유명한 그룹은 아니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올라오다가 이제 Top100이라는, 우리 눈에 잘 보이고, 히트곡이라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안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뭔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이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뿌듯한게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한 걸그룹의 성장을 보여준 곡이자 많은 사람을 위로해준 대표 힐링곡으로 H1-KEY(하이키)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있었다면 올해는 이 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트리플에스 멤버 중에 삼수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특히 재수생들이 더 위로 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그 멤버가 부르는 가사가 ‘다시 해볼까’이기도 하고,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오수생으로 유명한 미미미누 채널에도 나왔다. 기획력이 미쳤다.

 

확실히 노래의 메시지와 그룹의 서사가 일치할 때 오는 그 감동이 있다. 

맞다. 그리고 ‘Girls Never Die’를 프로듀싱한 정병기씨가 만든 다른 노래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이달의소녀의 ‘Butterfly’라는 노래인데, 사실 Butterfly라는 제목을 가진 유명한 노래들은 굉장히 많다. 국가대표OST도 있고, 나 같은 덕들에게는 디지몬 오프닝도 유명하고. 이런 노래들 모두 나비를 여리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고, 날아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진 존재로 그린다. 이 노래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차이가 있다면 다른 ‘Butterfly’보다 확실히 더 여리지만, 그러면서도 ‘Girls Never Die’처럼 꿋꿋이 나아가는 느낌이다. 그게 이 프로듀서의 추구미인 것 같다. 가사도 좋지만 멜로디도 굉장히 여리면서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고, 특히 뮤직비디오를 꼭 봐야 한다. 이누이트부터 흑인, 황인, 백인, 진저까지 각 국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연대를 담은 노래다.

 

이 구역의 케이팝 덕후다운 선곡이었다. 소개해준 곡이 다 힘든 상황을 겪어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결이 비슷한데, 다음 곡은 조금 다른 성격의 노래인 것 같다.

김현철 – 춘천가는 기차

조금은 지쳐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https://www.youtube.com/watch?v=82niqWPY6KE&ab_channel=pops8090

 

1989년도에 나온 노래다.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떻게 알게 된 노래인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같은 걸 쭉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듣다가 꽂혔다. 이 곡이 한국 시티팝의 대표곡이 되는 노래 중 하나인데, 재즈스러운 부분도 있고 플루트 소리도 들리고. 느긋하면서도 촉촉하다. 그런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낙관적인 감성이 좋았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을 때 마침 도서관에서 8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고 있었다. 교과서처럼 80년대 한국의 이곳저곳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었는데 이 노래도 80년대 노래니까, 책을 읽을 때 그 노래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틀어졌던 것 같다. 이 노래 나름 유명하다. 리메이크도 많이 되고.

 

100대 명반을 찾아 듣고 한국의 80년대를 기록한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게 참 당신 같다. 이 노래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하나?

처음 가사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게 많이들 하는 생각이지 않나. 힘든 일상 속에서도 하루 조금 힘을 내서 다른 곳에서 힐링을 하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서 좋다. 나도 이 노래를 듣고 여행을 갔었다. 

대학교 친구를 꼬셔서, 그때가 7월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태풍 온 다음 날이라서 날씨가 좀 편했다. 많이 걸어도 지치지 않는 그런 날씨도 좋았고, 춘천 가는 길이 가평 지나고 강촌 지나서 이렇게 가는데 그 길 자체가 자연풍경이 정말 좋다. 이 노래도 지친 일상을 잠시 떠나서 힐링하는 느낌의 노래인데, 마침 춘천이 서울에서 막 크게 계획하지 않아도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곳 중 가장 먼 곳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친구와 정말 부담 없이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로 다녀와도 될 정도로 가까워서 나도 가면서 좀 놀랐다. 그런 여러가지 점에서 이 노래와 싱크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내가 이 인터뷰를 기획했지만 정말 그렇게 물리적으로 여행을 하게 만들어준 노래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친구도 이 노래가 그 여행의 계기였던 걸 알고 있나?

아마 내가 말했을 거다. 친구야, 내가 ‘춘천가는 기차’를 들으니까 너무 참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 춘천을 가자. 이렇게 내가 먼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아까 80년대 한국 모습을 담은 책을 읽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휴대폰에 그 책을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사진이 들어간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 춘천 부분에 무슨 60년대부터 운영했던 ‘이디오피아집’이라는 카페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내가 다른 데는 몰라도 여기는 꼭 가봐야 될 것 같다, 여기를 가지 않으면 내 평생 한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말해서 같이 갔었다. 

사실 나는 뭔가 집에만 있기 좀 심심한데 약속이 없을 때는 그냥 혼자서 홀연히 떠나기도 한다. 지난주에도 킨텍스를 다녀왔고, 백화점 같은 곳도 많이 간다. 그게 나의 소소한 힐링 방법 중 하나다. 여행 한 번이 일상을 완전 바꾸지는 못해도 리프레시를 줄 때가 많으니까.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 춘천 여행을 잘 다녀왔다. 한 번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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