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는 것은
에디터 / 바투
4월만 되면 괜히 울적해진다. 갖가지 종류의 꽃이 피고 새 잎이 돋는 봄날을, 길거리를 걸으며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화창한 봄날을 누군가는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달리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난 4월, 이 4월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우연히 수업 시간에도 기본권, 인권, 국가 권력을 다루던 중이라, ‘타이밍' 핑계를 대며 조심스레 제주 4.3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를 정규 수업시간에 꺼냈다. 학교에서는 교과 수업시간 이외에도 민주시민의식 및 공동체의식을 기르기 위한 계기교육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수업 진도를 나가고 평가를 진행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더군다나 확실한 관련성이 더 적은 다른 교과에서는 하물며 어떻게 이러한 사건들을 다루겠는가. 이렇게 사회 교과가 아니면 4.3사건이나 4.16 세월호 참사는 다루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고 나름의 책임감과 사명을 가지고 시작했다.
각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추어보았을 때 4.3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는 학교 현장에서 다루어 질 가치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수업 시간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상당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정부의 미흡했던 대처, 관련자들 간 소통 부재 및 책임 회피,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리고자 한 생각에서 파생된 안전불감증, 사건에 정치적 의미를 투영하느라 제대로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까지. 사실 이것들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비난받고 개선되어야 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과거 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결부되어 세월호 참사 자체를 왜곡하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제대로된 사실 규명조차 뒤늦게 시작되었다. 심지어 세월호특별법 제정까지의 과정은 또 얼마나 험난했던가. 당연히 국민이라면 분노하고 공감했어야 할 문제였지만, 함께 분노한 것을 죄로 몰고갔던 정부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불법시위로 간주하고 참가자들을 입건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하고 싹을 잘라버리려고 했다. 한낱 대학생이었던 나를 조사하겠다고 대구에서 청주까지와서 조사하고, 검찰에까지 넘겼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부의 눈초리를 피해 불온 서적을 읽는 듯, 야학에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도 된듯 조심스러웠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혹여나 위반되는 일은 아닌가, 하는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그 작은 의심이 이번 프로젝트 수업을 하기까지 나를 계속 망설이게 했다. 3학년 수업을 홀로 전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교사 몇 명에게 조언까지 구해가며 망설이던 마음을 다잡았다. 학생들이 열심히 꾸며준 결과물들로 기억의 벽을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동료 선생님들이 열심히 잘 했네요, 라며 지나가다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사회 교사로서 수업을 한다는 것, 즉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의견과 생각은 배제한 채 맥락 없이 개념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은 참 어려울 뿐더러 그 당위성을 끝까지 끌고 나가기가 매우 힘들다.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 나름대로는 사실대로 전달한다고 하지만, 은연 중에 들어가있을 내 의견들이 아마 학생들에게는 느껴질 것이다. 맥락 속에서, 내 한 마디 한 마디 속에서.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도외시했던 일들이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 사회 교과에서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과의 연계성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사회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뉴스 기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분노하고 규탄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 다른 시민을 타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 및 사회 제도를 공유하는 사람임을 깨닫는 것. 이것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회 교과의 목적이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가 계속 언급되는 것을 지겹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냐’는 질문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나름대로 미리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아직도 4.3사건과 4.16참사가 일어났던 그 사회에 살고 있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국가 권력 및 사회 안전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시작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측에 그 원인이 존재하고, 그러한 원인은 아직도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당연히 나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도움을 줄 거라고 예상했던 사회 안전망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답답함 속에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경우는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천 공장에서 일어났던 화재 참사,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 군, 과로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 등 궁극적인 원인이 사회 구조 및 제도 속에 있는 사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곧 부조리한 현실을 고쳐나가는 것이고 사회를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감히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 말한다.
각자 조사해온 내용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바꾸어 제작하도록 했다. 참고로 코로나19 상황이라 모둠 활동 진행 자체도 난항을 겪었다. 협조해준 학생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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