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그물
에디터 / 온기
4호의 주제로 기억이라는 주제가 선정되면서 가장 먼저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초안 작성일이 한참이 지나고서도 완성된 글을 내보이지 못했다. 내 글이 너무 깊은 사색에 빠지지는 않을까,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기억이란 온전히 내 것.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 음악을 통해, 영화를 통해 느낀 것들까지도 결국은 내 안에서 피어난 것들이다. 그렇다. 기억이라는 주제가 선정됨과 동시에, 원래 감상에 자주 빠지는 내가 쓰는 글에 멜랑꼴리하고 센치한 것들이 체현되어 담기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의 것을 담기로 했다. 어쩌면 하고 싶었을 이야기들을 짜임새 없이 그냥 담아내보았다.
개인의 기억
우선 기억이라는 건 각자 개인이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보관하는 고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한 일련의 사건조차도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기억과 가해자의 기억은 다르고, 각자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불꽃놀이는 다르고, 나를 보면 항상 싱긋 웃던 너와, 너를 보면 속으론 눈물이 나던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역사는 다르다.
집단의 추억
기억은 개인의 것이지만, 추억은 모두의 것이다. 대게 홀로 쌓은 추억은 많지 않다.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도 말이다. 일기를 쓰며 오늘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고, 혼밥을 하면서도 타임 킬링용 영화를 틀어놓고, 혼자 공부하러 왔지만, 좁은 칸 하나만 넘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온전히 홀로 보낸 시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기억 속 그들과 나의 유대가 깊을수록, 그것은 추억이라 불리우는 것 같다. 추억은 꼭 메아리처럼 시간이 꽤 지나서도 우리에게 여러가지 감정을 전한다. 이번에야말로 사람을 두루 사귀지 않겠다, 정을 주지 않겠다 말도 안되는 다짐까지 했지만, 결국 과분한 인연들 앞에서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고 만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얼어붙은 마음도 한순간에 녹일 온기를 지닌 인연들과의 추억만큼은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기억의 예언
Memories are not just the past, it determines our future!
-The Giver-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나 능력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와 자아를 형성하는 가장 큰 요인, 사실 아이덴티티 그 자체를 가리킨다. 소설 <기억 전달자>에서는 기억보유자로 선택된 사람을 제외한 모두의 기억을 파멸해버리고, 삶을 통제한다. 기억전달자가 임무라는 이유로 과거의 기억들을 꽁꽁 싸맨 채 자신들만 홀로 간직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사회적 책무 회피일까.
여기 기억이 중요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 또 하나의 세상을 담은 소설이 있다. 쏘마 한 알이면 모두가 유토피아를 만나게 된다는 올더스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가 그러하다. 두 사회 모두, 나의 배경이 되는 부모의 기억을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만들어 그것이 마치 공평한 세상인 척 표방한다. 또한 사람들이 느끼게 될 여러가지 감정과 그로 인해 생기게 될 혼란과 무질서를 두려워하고, 그것을 사회악으로 여긴다. 작가는 비단 우리의 기억에만 없다면,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논쟁거리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는 이미 반어적으로 제목에서부터 그 부정성을 한껏 드러내놓고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 답 하기 어려운 논쟁에 대해 몇 번이고 부정하기를 희망한다.
홀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와 당혹감을 남긴다.
‘기억보유자’로 임명된 조나스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직무 훈련 중 경험했던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친구들도 자신처럼 느낄 수 있게, 기억 전달 속 썰매를 탔던 생생함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무지개를 통해 세상에 훨씬 많은 색이 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세계관 속 기억의 전달은 모두에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기에, 조나스의 간절한 노력은 단지 시도에 그친다. 친구들은 그저 덥썩 손을 잡는 그가 당황스럽기만 하고, 당최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기 힘들다.
나는 너 기억력 무엇…이냐는 당혹스러운 감탄과 함께 나는 어쩜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바람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대다수에게 기억조차 없는 희미한 기억들이 여전히 머릿속에 너무나도 가지런히 놓여있을 때가 있다. 축복받은 해마를 가진 것 치고는 나는 기억력으로 인해 꽤 오랜 시간 우울하고 불행하다 느꼈다. 우선 정갈하게 놓여진 기억들을 꺼낼지 말지에 대해 나는 판단해야 했다. 적당한 깊이의 기억을 대수롭지 않은 척 던지거나, 기억에 있는 것을 꺼내지 않은 적도 자주 있었다. 자신들도 기억이 흐릿한 과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상세하게 늘어놓는 내 모습이 좋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와 나 사이의 너무 큰 기억의 간극은 결국 당혹스러움과 함께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내게 하나의 인상을 준 것들의 잔상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은 경험에서도 많은 의미를 찾고, 늘 배움을 얻었다. 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괴로운 기억을 지워 보려 애써도 기억은 얼룩처럼 번져서 한참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많은 순간 기억력의 수혜자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의미가 부여된 기억에 지쳐 버리기 일수였다.
과거 기억의 향수는 현재의 색과 온도를 더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과거 그 시절의 반가운 얼굴들과, 배경들, 음악들까지, 향수를 잔뜩 불러 일으키는 요소들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행복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한다. 주인공 ‘길'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장 동경하던 시간으로 주저 없이 시간 여행을 떠난다. 1920년대의 낭만과 예술이 가득했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동경하여 과거로 떠난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시대에서 또 다른 과거,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하는 인물을 만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무의미 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과거의 기억은 저마다의 온도와 색깔을 가지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살아가는 내내 그 기억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너도 나도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경험을 한다. 게다가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은 과거라면, ‘길'처럼 그 환상과 같은 매력에 단번에 빠져드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현재를 살고 있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히, 하루하루를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 내가 나아가는 길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는 아주 희미한 빛도 다른 모든 것들보다 빛난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가끔은 이제 내가 예전의 나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맞아. 과거 난 분명 본인이 수많은 톱니 바퀴 중 하나임을 잊고 과한 열정을 발휘하던 성실하고 슬픈 노동자였다. 현실 속에 순응하며 살면서도, 이상을 추구하며, 선한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도 한 구석에 품고 있었다. 그렇게 과몰입을 일삼던 프롤레타리아가 지금은 초점 없는 눈으로 다른 등 굽은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거부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소설 속 바틀비와 같이, 다소 냉소적이어지며 집단에서는 소외되는 경험을 했다. 최후에 나는 무대에서 쓸쓸히 강제 퇴장당하며 그 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사회가 혹은 그 사회 속 개인인 내가 피로해져서? 무엇이 앞서는 지는 불명확하지만, 나도 사회도 깊은 피로감에 빠져 크게 감흥이 떨어졌다. 분명한 건 내가 달라졌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무지개 끝 흙 속에는 보물이 묻혀있다는 말을 믿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나. 내가 피 땀 흘려 지켜낸 것들이 그다지 가치있지 않은 일임을 뒤늦게야 깨달은 걸까? 그것보다는 세상에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지켜내야할 가치는 그렇게 많지 않음을 깨달은 것 같다.
<2014년, 열 일곱>
<2016년, 열아홉>
하지만 나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어둠과 싸운 것이야..!
정말 나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것일 뿐, 나는 내외적으로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을까? 거울 속 내 모습은 영광의 상처로 보이기보단 어느새 잔뜩 추해 보인다. 부러진 날개를 달고 나는 법을 배우라고 하지만, 부러진 날개로 겁 없이 이전만큼이나 높게 비상할 수 있을까 과연 의구심이 든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싫다고 도려내버릴 수가 없다. 도려내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른다. 불행한 기억들을 최대한 외면하고, 나에게서 동떨어뜨려 놓으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리도 없다. 잘 감춰두었다 생각한 기억도 문득 문득 튀어나와 시간이 많이 지나서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를 괴롭힐 것이다. 결국 현재로 나아갈 힘도, 다시금 부러진 날개를 딛고 비행을 시도해볼 용기도 상처된 기억까지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끌어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린 모두 기억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충분한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 나에게 있어 회복은 그저 빛, 그저 한 사람이었다.
그저 빛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 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 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쫓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오늘도 의미 없는 숨을 내뱉는다. 하루를 살아가는 그다지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에도, 나는 끝내 저버리지 못한 기대를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둔 채 현실을 산다. 내 기대를 들킬까, 여전히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완벽한 타인들에게 드러날까 경계도 하면서 말이다. 서툴고 모난 위로라도 좋다.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아주 희미한 빛을 내주던 그녀의 온기에 감사하다.
71억은 됐구요, 제 기억을 가져가주세요.
4월호에 실을 글을 위해 인터뷰이들을 모집하던 연푸른은 “71억과 자신의 기억 중 어떤 것을 택할 지”를 묻는 간단한 척하는 복잡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71억을 주지 않아도, 내 기억을 지우겠다고 대답했다.
이 질문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71억은 못 참지.. 만 그래도 본인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을 위해, 지우지 않겠다를 선택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답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서 나는 그제서야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단번에 기억을 지우겠다 말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일 수 있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지워져도 상관없을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구나라는 실망감은 분명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다.
여전히 나의 과거는 나의 현재보다도, 다가올 미래보다도 힘이 세다. 기억전달자가 그랬던가, 기억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결정짓는 데 역할을 한다고.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억에서라도 지워 새 출발을 하고 싶다. 단지 하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내게 Family of the year 의 Hero라는 노래는 이렇게 들렸다.
Let me go. I don’t wanna be your hero. …
Your masquerade. I don’t wanna be a part of your parade. …
Everyone deserves a chance to walk with everyone else.
Hero - Family of the year
나의 과거와 기억들에게 이제 그만 나를 그만 놓아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나도 이젠 다른 시간대에서 만날 새로운 이들과 투닥이고 교감하며, 다른 이와 함께이고 싶다. 이런 소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내가 참 오만한 인간이란 뜻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떤 형태의 것이었든 내 손으로 내팽겨쳐놓고 또 그만한 행운이 내게 오길 기대를 품은 것이니.
이제 내 기억은 완전히 지워진다. 이게 내가 기억이 온전한 채 담는 마지막 풍경이 되겠지. 마지막으로, 나를 믿고 기다려준 시간들에, 그게 모두 헛된 것일지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기억을 송두리째 지우려는 마음보다,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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