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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4호_기억의 산물

4호_기억의 산물 / 편집장의 인사

by 밍기적_ 2021. 4. 27.

기억의 산물

 

편집장_연푸른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이미 벚꽃이 한 차례 피고 졌으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4월은 봄의 시작이라는데, 글쎄, 아마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노트북 화면만 매일 들여다보고 있었을 나같은 대학생들에게, 4월은 봄 보다는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달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다. 이틀 후에 있을 시험을 위해 인도네시아어 단어를 외우다 이 글을 쓴다. 공부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결국 암기가 이해를 쉽게 만들고, 가끔은 이해의 목적 자체가 암기일 때도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 모든 내용을 완벽히 소화할 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나는, 늘 시험 기간이 되면 분류 작업을 먼저 한다. 이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 이건 외워두면 좋을 내용, 그리고 저건 외울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내용. 어떤 정보가 중요한 정보인지를 판단하고, 오직 중요한 정보만을 외우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이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굳이 머릿속 한 켠에 보관할 정보를 선택하는 행위는 비단 시험기간에만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어떤 정보는 필사적으로 기억하고자 애쓰고, 어떤 정보는 그저 어딘가 적어 두기만 하며, 또 다른 정보는 눈으로만 흘깃 읽고 지나친다. 내가 담아두기로 선택한 정보, 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버린 정보는 조금씩 쌓여서 내 기억을 만든다. 그 기억은 곧 생각이 되고, 문제의식이 되고, 정체성이 되고, 결국은 나 자체가 된다. 몇 년 전에 수강한 서양철학의 이해 수업에서는 꼭 이런 내용을 다뤘다. 나의 기억이 그대로 다른 개체로 옮겨간다면, 그것은 곧 나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억은 곧 나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기억이며, 이는 앞으로 나는 또 어떤 기억을 쌓을 것인지까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보가 곧 나라면, 이 사회가 기억하고 있는 정보는 곧 이 사회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4.19 민주화 운동은 기억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은 4.19 민주 이념의 계승을 천명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제주 4.3은 기억하지 않는 듯하다. 중고등학생 때 꽤나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던 내게도 수업 시간에 4.3 사건을 배웠던 기억은 없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선 4.3에 대한 기억 투쟁이 가시화되는 듯하지만, 여전히 제주 4.3은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부여 받지 못했다. 4.16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의 이름은 수많은 정치적 이해집단의 명명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되고, 그에 대한 통일된 기억은 아직 우리 사회에 자리 잡지 못했다. 4.16이 보여준, 안전보다 효율이 우선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껏 내가 쌓아온 기억은 앞으로의 나의 행동을 만든다는데, 이 사회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밍기적»의 4호 <기억>은 기억의 개념과 그것이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연푸른의 인터뷰 기사 <기억과 71억>은 기억와 71억 중 하나만을 택하라는 다소 맥락 없는 요구를 통해 어디까지가 ‘기억’이며, 이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담아냈다. 온기는 <기억의 그물>을 통해 ‘기억에 대한 기억’의 파편 조각을 직조해냈으며, 이를 통해 자신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인지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망이 <수능 날의 기억>에서 소재로 다루는 수능은 개인적인 기억인 동시에 매년 수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기억이다. 그는 수능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깨달음와 경험으로 남았는지, 그리고 수능에 대한 공통 기억이 교육환경 속에는 또 어떤 흔적으로 존재하는지를 지적한다. 한편, 바투의 <기억한다는 것은>은 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제주 4.3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예시로,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이끌어낼 수 있는 책임과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렇듯 각각의 에디터는 서로 다른 크기와 내용의 기억을 다뤘다. 하지만 네 개의 글은 공통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암기하는 것 이상임을 보여준다. 기억해야 할 것도, 기억되지 못한 것도 많은 4월. «밍기적»을 통해 당신의 4월의 기억을 잠시라도 돌아볼 수 있었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번 4월이 당신에게 따뜻한 봄과 같은 것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응원하며, 나는 이만 다시 시험 공부를 하러 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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