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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6호_환경, 초여름의 환기

6호_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 연푸른

by 밍기적_ 2021. 7. 2.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에디터 / 연푸른

 

왜 환경주의는 공격받을까?

 

  이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유튜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 영상에서 발을 멈췄다. 작년 10, 에코포럼이라는 채널에서 비거니즘을 주제로 만든 영상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비건 지향인이다. 인터뷰를 통해 그는 비건 생활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그것이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세로 모드로 영상을 보며 한 손으로는 자연스럽게 스크롤를 내리던 나는 댓글창을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댓글의 대부분이 비아냥과 비난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어투가 너무나 공격적이라, 글로 옮기기가 망설여진다. 왜 비건을 강요하느냐고 묻는 댓글은 나은 축이었다. 대부분 댓글은 삼겹살이 존나 맛있다느니, 그 많은 채소를 비좁은 믹서기에 넣고 가는 행동은 너무 잔인하다느니, 비건은 도태된 것이며, 이런 PC주의는 박멸해야한다느니 하는 비아냥이었다. 여기에 쓴 내용은 한 차례 어투를 다듬은 것인데, 원본 댓글은 비거니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있지 않은 나조차 상처를 받을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비거니즘을 공격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채소만 먹으면 분명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오해부터,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지 말라는 댓글, ‘동물따위에 감정 이입하는비건지향인들을 가식적으로 보고, 이들이 한 번이라도 육식성 음식을 먹으면 선택적 비건이라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유로 들어, 그렇게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식이지향을 왜 강요하느냐는 주장이다.

  이 중 비거니즘의 실천 그 자체를 욕하는 많은 주장은, 대체로 비건 지향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 실천의 강요를 욕하는 주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언급한 영상이든 혹은 다른 대부분의 비건 지향 컨텐츠든, 비건을 강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의 비건 담론은 여전히 힘이 약하고, 비건 지향인이 대부분인 소수의 공동체내에서가 아니라면 강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영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 창을 닫으면 곧 논비건이 주류인 현실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유튜브의 인터뷰 영상 하나가 비건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 강요하지 말라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비건을 다루고 있는 많은 컨텐츠는 비거니즘을 윤리적인 것으로, 보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좋은것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것은 비거니즘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강요라는 말이 나오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가 아닐까? 아니, 그럼 고기를 먹는 나는 비윤리적인건가? 웃기시네! 비건도 다 먹고 살만한 놈들이 하는거지!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날 나쁘게 보는 니가 이상한거라고!

  그러니까 비건을 욕하는 사람도 사실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비건도 먹고 살만한 사람이 한다는 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가장 값싸게 많이 먹는 방법은 별로 질이 좋지 않은 고기를 사먹는 것이다. 콩고기를 사먹거나, 채식 식당에 가거나, 혹은 식물성 단백질을 사서 직접 요리하는 행위는 돈과 시간,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반면 고기는 그냥 무한리필 집에 들어가서 구워먹으면 된다. 만 이삼천원 정도의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부르게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논비건이 주류인 현대사회에서, 채식은 아직 신경써서해야할 일이다. 결국 비거니즘도 그만큼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맞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비건 지향 콘텐츠는, 이런 부분 역시 다루고 있다. 완전무결한 비건은 지키기 힘들다고, 하지만 두 끼 먹을 고기를 한 끼로 줄여보고, 다른 선택 가능한 대안이 있다면 그것도 고려해보자고. 그런 작은 실천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비거니즘이라는 운동의 진정성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는가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건 진정한 비건 지향이 아니라 선택적 비건일 뿐이라고, 그건 비거니즘이 아니라 편식이라고 말하게 된다.

 

  비건에 대한 이런 맥락의 공격은, 다른 환경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포장에 사용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직접 다회용기를 가져가 음식을 담아오는 사람들에게, 애쓴다거나, 유난이라거나, 가식 부리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 그리고 가끔 이들이 그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그럴 줄 알았다고 비판하는 것. 비거니즘에 대해 가해지는 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환경주의적 움직임에 대한 이런 냉소적 시선은 매우 익숙하다. 그런 행동이 뭐 얼마나 유용하길래, 그렇게 유난을 떨며 환경을 챙기냐는 말이다.

  이 사람들도 사실 환경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환경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비거니즘에 대해 그러하듯이, 어쩌면 내가 환경주의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오히려 늘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늘 환경을 신경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내 눈 앞에 당장 비닐봉투가 있는데, 그걸 쓰지 않고 밀랍랩을 쓰는 건 불편하니까. 콩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삼겹살을 먹는게 훨씬 익숙하고 쉬우니까. 나는 그럴 여유 밖에 없으니까.

  환경주의에 대한 콘텐츠는 내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마다의 실천과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내가 그들만큼 성실하지도 진심이지도 못해서 인 것 같다. 부채감은 쌓이고, 나는 어느새 그런 콘텐츠가 불편해진다. 그리고 이는 곧, 그런 부채감을 자극하는 콘텐츠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나는 화면을 닫는다.

 

좀 더 쉬운 환경주의

 

  환경주의에 대한 공격은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환경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지만, 내게는 그걸 실천할 여유가 없다. 환경주의는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안타깝게도 나는 거기에 속하지 못한다. 그렇게 환경주의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자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식이 된다. 비건지향인이 가끔 고기를 먹고, 제로웨이스트 운동가가 가끔 플라스틱을 버리는 것은 그것이 가식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실제로 환경주의는 지키기 힘든 실천이다. 많은 편리함을 포기해야 하고, 더 많은 일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당장 돈이 없는데 비싼 콩고기를 살 수는 없고, 당장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생활용품은 대체로 플라스틱이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당연하다. 모든 사람들이 환경운동가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잘못된 것은 환경주의를 어려운 선택으로 만드는 외부적 요소이다. 환경주의는 더 선택하기 쉬운 것, ‘환경주의적이지 않은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을 만큼 싸고 간단한 것이어야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더 쉬운 환경주의를 만들 책임은 기업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주의적인 선택지를 늘리고, 그 선택지를 정말로 선택 가능한것으로 만드는 것은 기업의 역량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은 기업에서 환경을 생각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유통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대체로 스티로폼을 사용해 신선식품을 배송했지만, 현재는 고객의 선호에 따라 다회용 보냉 가방을 병행하여 사용하기도한다. 고객이 할 일은 주문 시 종이상자 혹은 스티로폼 상자 대신 다회용가방에 체크 표시를 하는 것, 그리고 물건을 모두 꺼낸 가방을 다시 집 밖에 내놓는 것 정도다. 그럼 기업은 알아서 이를 수거해 재사용한다. 배송상자에서 테이프를 없애 종이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거나, 비닐 포장 대신 종이 포장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주류 및 음료 업계에서도 환경주의적 선택지를 제공한다. 음료가 담겨있는 페트병은 재활용되어 다른 페트병을 만들거나 섬유 및 부직포를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갈색이나 녹색의 페트병은 색소와 불순물 때문에 이처럼 재활용되기가 어렵다. 이에 음료 업계에서는 기존에 염색이 되어있던 페트병을 투명한 용기로 바꾸거나, 분리배출이 쉽도록 아예 라벨을 제거해서 판매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럼 고객이 이를 분리배출하기도 더 쉬워진다. 원래는 잘 떨어지지 않는 라벨을 칼 등으로 제거해 버려야 했지만, 이제는 뚜껑만 분리해서 배출하면 된다.

  비건 음식에 대한 접근성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편의점에서 파는 이 음식은 비건도 먹을 수 있대요하는 식으로 알음알음 정보를 접해 비건식을 찾아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에는 아예 채식주의를 달고 판매되는 상품이 많아졌다. 비건 떡볶이와 채식주의 도시락, 콩 불고기 버거나 비건 김밥 등이 그것이다. 이젠 비건 지향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편의점에 방문해 그냥 여러 김밥 중 특정한 맛의 김밥을 고르듯 채식주의 김밥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환경주의적인 선택에는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집에서 생분해 되는 대나무 칫솔과 천연 수세미, 고체 설거지 비누와 밀랍랩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나는 플라스틱을 아예 배출하지 않는 고체 치약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건 양에 비해 가격이 좀 비쌌다. 한 번은 여유가 있어 고체 치약을 구매하더라도, 꾸준히 계속해서 고체 치약을 구매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겨있는, 하지만 조금 더 가성비 높은 비건 치약을 샀다.

  다회용 물품이라면 어차피 오래 쓸 테니 좀 비싼 제품을 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비누나 샴푸, 핸드크림처럼 자주 쓰고 빨리 소모되는 물건을 친환경 제품으로 사는 건 아직 고정적 수익이 없는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물론 살 수는 있고, 그 대신 커피 몇 잔 안마시면 되지만, 그래도 바로 앞 올리브영에서는 저 두 배 용량이 같은 가격인데같은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가성비를 따져야 하는 가난한 자취생의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

  이렇듯, 지금 기업이 판매하는 친환경상품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소비자는 굳이 돈을 더 내고 환경주의적인 선택을 해야한다. 물론 내가 환경주의를 실천하는 기업들에게 다이소 정도의 가성비를 바랄 수는 없다. 특히 앞에 언급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경우에는 그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다. 하지만 작은 기업에게는 힘든 일이더라도, 큰 기업은 대체로 환경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환경주의적 움직임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있다. 우리가 압박해야 할 것은 환경주의를 실천하는 혹은 실천하지 못하는 개인이 아니다. 우리가 압박해야 할 것은 이런 기업들이다. 변화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기업이다.

 

  물론 기업이 환경주의적인 변화를 택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또 소비자의 구매 행위다. 나 역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시스템 탓만 하는 시스템 주의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그만 좀 싸우고 싶다. 비건이든 논비건이든, 환경주의를 실천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고 있든, 우리의 적은 서로가 아니다. 우리들의 싸움 속에서, 조용히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있다. 환경적인 기업에게 돈쭐을 내주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에게 혼쭐을 내주든.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것이지 서로를 가식적이라고 혹은 환경에 무관심하다고 헐뜯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환경 운동 하기도 힘들 환경운동가분들이 악플에까지 싸우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팍팍한 삶을 살고 있을 사람들이 괜히 일상에 부채감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비건과 논비건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로웨이리스트를 실천하고싶지만 동시에 얄팍한 지갑에 쪼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기업에게 말하고 싶다. 그냥 우리 좀 사랑하게 해주세요. 당신들에겐 그럴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는 에이핑크의 노래 제목이랍니다. 그리고 이 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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