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 일이 될, 노동
에디터 / 연푸른
6월 26일, 서울대학교 기숙사의 청소노동자 한 분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한참이 지나 7월 6일부터 보도된 관련 기사들에 따르면, 돌아가신 노동자분은 정원이 196명인 기숙사 건물을 혼자서 관리하셨다. 이는 가장 오래된 기숙사 건물 중 하나로, 4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하나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은 증가했지만, 청소 인원은 충원되지 않았다. 돌아가신 노동자분은 혼자서 100L가 되는 대형 쓰레기봉투를 매일 옮기고, 4개 층을 쓸고 닦으며 8개의 화장실, 4개의 샤워실을 관리하셨다. 그는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더불어 상사의 갑질 및 모욕에도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19년 8월에도 청소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무더위가 지속되던 당시, 노동자분은 에어컨도 없는 휴게실에서 휴식하시던 중 사망하셨다. 휴게실에서 휴식 중 사망이라니,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이를 계기로 노동자의 휴게 공간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에어컨 설치가 이어졌지만, 열악한 청소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올해 또 한 명의 청소노동자가 돌아가셨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늘 그렇게 누군가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분이 사망하기 또 몇 주 전에는 쿠팡 물류 창고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쿠팡의 물류센터는 축구장 15개가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물건과 일하는 사람으로 가득 찬 그 공간에는 단 하나의 에어컨도 존재하지 않는다. 24시간 선풍기만 돌아가는 물류센터. 이번 화재는 그 선풍기를 돌리기 위해 사용한 멀티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방재실은 이를 오작동으로 판단해 현장을 가보지도 않고 경보기를 6번이나 의도적으로 멈췄다. 직원이 최초 신고 10분 전에 불이 난 것을 인지했지만, 물류 센터에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해 신고가 늦어졌다.
쿠팡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문제가 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빠른 배송을 강조하며 시간당 생산량(UPH)을 측정해 생산량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계약을 연장할 때 이를 평가 항목으로 삼는 쿠팡의 정책상 노동자는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 배송을 담당하는 경우, 하루 치 물량을 다 처리하지 못하면 그것이 곧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져 과속을 감수하는 노동자도 많다. 그렇게 작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과로사로 사망한 쿠팡 노동자는 총 7명에 달한다.
세상은 참 편리해졌다. 더러웠던 휴지통이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깨끗하게 비어 있고,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싱싱한 농산물이 버튼 몇 번 클릭으로 내 집 앞에 배송된다. 내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런 마법 같은 일은, 당연하게도 전혀 마법이 아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줄이고, 몸을 혹사하며 만들어낸 편리다.
이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도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우린 이런 노동자의 존재를 쉽게 잊곤 한다. 우리의 눈에는 깨끗한 휴지통과 깔끔하게 포장되어 도착한 택배 상자만이 보일 뿐, 그 뒤에 있는 노동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노동이 들어가 있는데, 그 물건 하나하나, 서비스 하나하나에서 이를 만들어내고 운영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특히나 더 그렇다. 노동은 점점 더 잘게 쪼개지고, 한 상품을 생산하는데 더 많은 사람이 얽히게 되었다. 나는 커피 하나를 샀을 뿐인데 그 노동의 끝에는 커피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스타벅스 아르바이트생의 고난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커피 농장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노동의 형태도 더 다양해졌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 하는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내는 노동자가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직업군과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의 노동환경을 상상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노동의 형태가 점점 더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노동자’ 혹은 ‘노동’의 의미도 변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식의 오르내림을 관찰하고, 타이밍을 맞춰 이를 사고파는 행위는 과거에는 전혀 노동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불로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자마자 주식을 확인하고, 학교에서도 주식을 가르치며, 주식을 위해서라도 경제를 공부하고, 그걸 가르치는 산업이 만들어지는 백만 동학 개미 시대에 여전히 이것은 ‘전혀 노동이 아닌’ 일인가?
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의 범위도 달라질 여지가 보인다. 전통적인 노동자는 보통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뜻했다. 법이 정하는 근로자도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도,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지도 않은 노동자가 매우 많다. 프리랜서, N잡, 긱 이코노미, 플랫폼 경제 등의 단어가 유행하고 이런 단어로 설명되는 노동자의 수도 많아졌다. ‘노동자’를 새롭게 정의하여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밍기적의 7호 <노동>은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모습이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네 에디터의 생각을 담고 있다.
연푸른의 <집에서 집으로>는 과거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자들이 국내외의 유급 가사노동 시장으로 유입된 과정과 그러면서 일어나게 된 문제를 다룬다. 연푸른은 가사노동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더 취약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가사노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노동자’가 되지 못했던 가사노동자와는 달리, 망이 <내가 근로자임을 증명하는 것>에서 다루는 ‘프리랜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그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망은 프리랜서가 자신의 ‘근로’를 증명하는 방식을 소득세 신고를 통해 관찰하며, 이 사회가 받아들이는 ‘근로’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온기의 <원한 적 없는 자유> 역시 변화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노동 형태를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독립적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긱 워커의 삶은 알고 보면 매우 불안정할 뿐이라는 그의 주장이 방대한 자료 및 사례와 함께 나타난다.
바투의 <노동, No 同>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다루며,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인간의 노동은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노동자로서 인정되는 것 이상의, 안전하고 좋은 ‘노동의 형태’는 무언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을 구성한다. 노동자 개개인에게도 노동은 생계유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어떤 노동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내 경험과 정체성, 삶의 질 전반을 결정하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괴롭힘은 내 직장 밖의 삶까지 두렵게 만들 수도 있고, 고된 노동은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쳐 나를 아프게도, 죽음에 이르게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은 삶이 된다. 누군가의 노동이 나의 노동과, 누군가의 삶이 나의 삶과 닿아있는 이상 그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과 경험은 나의 삶과 떨어질 수 없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택배 파업이 많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7호 <노동>에는 유난히 복잡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많았다. 실제 노동 현장과 그곳에서의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만큼 복잡하고 무겁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당신이 어느 곳에서 일하든, 7월의 오늘도 잘 버티고 건강히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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