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집으로
- 가사 노동이 향하는 곳
에디터 / 연푸른
자취 5년차의 대학생인 나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면 집안일을 시작한다.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정리한 후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나면 이미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아까 돌린 빨래를 종류별로 분류해 건조기에 넣고 나면 또 1시간이 훌쩍 지난다. 창틀은 여전히 더럽고, 아직 냉장고도 정리하지 못했으며, 가구 위에는 먼지가 그대로 쌓여있는데 나는 이미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 10분만 쉬자고 생각하며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는 2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때쯤 일어나 밥 먹을 준비를 하다 보면 분명 아까 깨끗하게 정리해둔 싱크대에 다시 설거지거리가 쌓인다. 청소하느라 흘린 땀에 입고 있던 옷도 그대로 빨래통에 들어가고, 하루는 끝이 난다.
자취를 하기 전만 해도 집안일이 이렇게 종류가 많고 다양한지 몰랐다. 설거지나 청소 정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지, 화장실 변기가 그렇게 빨리 더러워지고, 창틀에 먼지가 그렇게 빨리 쌓이며, 옷과 이불을 그렇게 자주 빨아야 하는 줄도 몰랐다. 조금만 방심하면 샤워한 후 몸을 닦을 수건이 하나도 남지 않고, 물때가 낀 화장실 바닥이 미끌거린다. 계란은 왜 그렇게 금방 떨어지며, 쓰레기 봉투와 휴지, 물티슈는 왜 꼭 필요할 때 동이 나는지. 머리카락이 이 정도로 빠지는데 왜 나는 아직도 대머리가 아닌지. 왜 청소기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하며, 세탁기도 주기적으로 세탁을 해줘야 하는지.
몇 평 되지도 않는 집에 왜 이렇게 신경 쓸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오빠와 함께 신경써서 집을 갈고 닦는데, 부모님은 집에 오시자마자 3시간은 더 청소를 하신다. 내가 아직도 못 보고 있는 집안일이 그만큼이다 더 있다는 뜻이다. 그럼 결국 나 혼자서 이 자그마한 자취방을 청소하려면 시간이 5시간은 넘게 걸린다는 건데, 난 왜 자취를 하기 전인 지난 19년 동안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가사 노동이란 그렇다. 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데, 안하면 티가 많이 난다. 이제껏 우리의 무급 가사노동자분들이 대체로 ‘훌륭하고 성실하게’ 가사노동을 해왔기 때문인지, 가사노동의 어려움은 오랜 시간 티 나지 않아 왔다.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지저분한’ 혹은 ‘책임감 없는’ 그래서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을 뿐, 가사노동은 이를 담당하여 잘 ‘해내는’ 누군가가 있을 때일수록 그 중요성을 무시 받아 왔다.
그리고 대체로 이를 ‘담당하여 잘 해내는’ 누군가는 여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노동이 더욱 무시되어 온 것인지, 혹은 가사노동이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이 여성이 해야할 노동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그 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성이 집에서 벗어나 경제 활동을 하고 이에 따라 맞벌이 가정이 흔해진 지금도 여전히, 가사노동은 많은 경우 여성의 몫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일하고 돌아온 여성이 일하고 돌아온 그의 남성 배우자보다 더 많은 가사 노동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 집 밖에서 하는 일 자체가 가사 노동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유급 가사노동자 이야기다.
2021년 5월 21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유급 가사노동자는 제대로 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의미인데, 따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급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도 없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그 수를 25만명으로 추산했는데,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그 수는 15만명이다. 2년 사이 10만명의 가사 노동자가 갑자기 사라졌을 리가 없는데, 와중에 다른 곳에선 유급 가사노동 종사자가 30만에서 60만 명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셋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 통계인지는 통계청도 고용노동부도 가사노동자 본인도 모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급 가사노동 종사자 중 정확히 여성의 비율이 얼마인지도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긴 힘들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산업 직업별 고용구조조사의 결과가 그나마 가사도우미, 간병인, 육아 도우미 등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남녀 노동자의 수를 제시해주고 있는데, 놀랍게도 가장 최근의 자료가 2009년의 자료이다. 이미 12년의 시간이 흐른 자료이니 지금의 현실과는 큰 차이가 나겠지만, 그래도 굳이 찾았으니 참고해보자.
2009년, 여성 가사 도우미가 약 9만명이었을 때, 남성 가사 도우미는 185명으로 비율은 0.2% 정도였다. 그나마 간병인 및 육아 도우미로 종사하는 남성은 수가 조금 더 많아서 그 비율이 각 3%와 2%정도가 였지만, 어찌되었든 세 분야 모두 여성 종사자 비율이 95%이상을 차지하는 여성 지배 직종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에서 53세로, 보통 다른 경제 활동을 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며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즉, 무급 가사노동을 하기 위해 경력 단절을 경험한 50,60대의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다 키운 이후에는 유급 가사노동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아무튼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이 가사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 대상으로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해왔다. 근로기준법 11조가 ‘이 법은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조항이다. 지금은 가사노동을 시간 단위로 사고 팔 수 있고, 때문에 가사 노동이 상품 혹은 서비스로 인지될 여지도 늘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 가사노동자는 사용자 개인의 집에 입주한 ‘식모’로 일했고, 이들은 사용자와 의식주를 함께하며 ‘근무’와 ‘비근무’의 구분 없이 일했다. 따라서 이를 서비스 혹은 ‘산업’으로 보는 시선이 미처 만들어지지 못했다.
가사노동 시장이 더 큰 산업으로 성장하고, 대부분의 가사 노동자가 입주노동자가 아니라 특정 시간 동안 출퇴근하는 노동자로서 지내는 지금.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가사 노동자를 적용 예외 대상으로 두고 있다. 그 이유로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의 영역을 국가가 감독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나,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개인 혹은 각각의 가구를 ‘사용자’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제시된다. 앞서 지난 5월에 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가사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완전히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의 예외 조항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가사 근로자 고용 개선에 관한 ‘특별법’의 형태로 ‘일부’ 가사노동자들에 한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겠다는 뜻이다. 여전히 국가 인증 기관에 속해있지 못한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4대 보험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이들의 지위는 여전히 모호하다.
5월 21일, 가사근로자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일부 가사노동자가 4대 보험, 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는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코로나 사태 이후, 대표적인 가사 노동자인 가사 도우미 이용요금은 한층 상승했다. 수요는 늘어났으나 그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인 동포의 입국은 줄어, 인력난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가사도우미 서비스 이용요금은 23.1% 상승했고, 가사근로자법이 제대로 시행된 후에는 지금보다 10~20%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가사노동자가 다른 직군에 비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가사노동 전반이 무시 받는 사회에서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큰 돈을 받으며 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가사도우미 어플에서 검색해본 결과, 3시간동안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데에는 4만 2000원의 돈이 필요하다. 이를 3으로 나누면 시간당 1만 4천원인데, 이는 수수료가 포함된 금액일 테니 실제로 노동자가 받는 돈의 양은 더 적을 것이다. 그 외 인터넷에는 보통 시급을 1만원에서 1만 2천원 사이로 책정하며 도우미를 구하는 글이 많았고, 한 가사도우미 업체는 ‘최저 시급 8720원부터’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집의 평수 및 가사노동자의 경력, 구체적인 하는 일 등에 따라 실제 비용은 변할 수 있다. 가사 도우미의 일은 청소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아이와 등교 및 하교를 하고, 아이나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고,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간병을 하는 등의 일을 포함한다.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의 특성상, 하기로 되어 있는 일 외에 추가적인 일이 주어지기도 하고 사용인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대가로 시급 만원 남짓의 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따라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어 가사노동자 고용 비용이 오를 것을 대비해 가사노동 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한국은 외국인에게 가사노동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가사노동자로 취업할 수 있는 외국인은 영주권자, 결혼 이주자, 재외 동포가 전부다. 이는 국내 5060대 여성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앞서 말했듯, 가사노동 및 돌봄 노동 분야는 경력 단절을 경험한 5060대 여성이 많이 유입되는 노동 분야이고,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불법적 위치는 이들이 더 값싼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막아주는 장치였다. 그런데 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제한을 풀어 필리핀, 베트남 등 타국의 외국인도 가사노동자로 취업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가사노동 시장의 인력난이 줄어들고, 한국인이나 재외동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이 등장함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올해 3월부터 가사도우미 외국인 개방에 관련한 연구 용역을 실시 중이다.
우리는 이 주장 속에서 가사노동이 향하는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한국인 가사 노동자를 고용하는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가사노동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는 ‘집 밖’에서의 경제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자기 대신 가사노동을 해줄 또 다른 여성을 고용한다. 그렇게 고용된 여성은 보통 ‘집 밖의 경제활동’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5060대의 경력단절 여성이다. 이들은 낮은 시급과 인권침해를 받아가면서 일을 하는데, 그보다 더 낮은 곳에는 한국인이 아닌 가사노동자가 있다. 합법적으로 가사노동을 할 수 있는 중국동포 출신의 가사 노동자는 한국 국적을 가진 가사노동자보다 고용 비용이 더 싸고, 그보다 더 싼 노동자를 구매하기 위해서 다른 외국인에게도 가사노동 시장을 개방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사노동은 점점 더 취약한 여성에게 흘러가며, 더 취약한 여성일수록 가사노동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돈도 점점 적어진다. 이런 흐름은 계급과 국경, 인종의 경계를 넘어 이어진다. 이제까지 나는 한국에서 최근 더 가시화되고 있는, 가사노동자 시장의 개방에 대한 논의를 설명하며 이런 흐름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이미 외국인에게 가사노동 시장을 개방한 국가에서 더 잘 살펴볼 수 있다.
외국인 이주 가사노동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는 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거주하며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로, 가사노동자를 수출하는 국가와 수입하는 국가도 구분되어 있다. 유럽 및 미주 국가와 더불어 싱가포르 등이 가사노동자를 수입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이 이들 나라로 가사노동자를 수출한다.
그 중에서도 필리핀은 대표적인 가사노동자 수출국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유럽 및 미주 국가에서 ‘인기가 많고’, 이에 같은 동남아시아의 캄보디아 혹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출 보내는 가사노동자보다 임금도 더 많이 받는다. 필리핀은 전세계 130개국이 넘는 국가와 계약을 맺어 가사노동자를 수출하고 있는데, 그 결과 1150만명으로 추산되는 전세계의 이주가사노동자 중 4분의 1을 필리핀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다. 필리핀의 입장에서도 그 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약 650명으로 추산되는 필리핀 이주 인구 중 절반이 여성이며, 그 여성의 3분의 2가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벌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필리핀 GDP의 8.8%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통계에 잡힌 값만을 따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 비율은 그보다 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족 구성원 한 명이 이주를 한다고 하여, 모든 가족이 함께 나라를 떠나지는 않는다. 이들도 본국에 남편과 아이 그리고 부모님 등 가족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럼, 이 남겨진 가정의 가사노동은 누가 담당하게 될까?
당연히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서 떠나면 남은 가사 노동은 어른인 남성, 즉 그의 남편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가정도 있겠지만, 보통 이 가정의 가사노동은 다른 여성에게 전가된다. 다른 여성인 친척이 집을 방문해 무급 가사노동을 하거나, 혹은 필리핀인 여성 가사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이 여성 가사노동자들은 외국으로 이주를 가지 못하고 필리핀에서 여전히 거주하는, 다른 필리핀인에 의해 고용된 가사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이주를 가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이유다. 이주를 나가고, 에이전시를 통해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초기 비용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가 외국으로 떠나 외국인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주 노동자들이 이들을 고용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 본국으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탈리아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는 달에 (2009년 기준) 1천 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보험금 등도 고용주가 직접 지불해주며,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연말 보너스 등을 받아 수입을 늘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필리핀에서 자신의 가정을 위해 일해주는 가사노동자에게는 월 15에서 40달러 정도의 페이를 지불한다. 같은 필리핀인이지만 ‘어디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받는 돈은 25에서 60배까지 차이가 나고, 솔직히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나라도 나는 외국에 가서 일하고 대신 내 가족을 위해서는 더 싼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러니까 가사 노동 시장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유럽에서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를 구매하는 기득권 백인 여성, 이들에게 고용되어 유럽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 그리고 그 가사 노동자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된 필리핀의 가사 노동자.
그럼 애초에 왜 유럽의 기득권 여성은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해야 했을까? 유럽에 진입하는 외국인 여성이 증가한 시기는, 유럽 여성이 가사 외부의 영역에 진입하며 새로운 경제 활동과 역할을 가지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즉, 백인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성으로서의 의무, 가사노동을 벗어 던지기 위해서는 이를 대신해줄 다른 여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가사 노동은 여성의 일이고, 다만 이를 하는 여성이 점점 더 취약한 여성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 젠더화되고 자본주의화된 이 글로벌 세계 경제 속에서, 가사노동은 사슬의 가장 아래쪽, 더 아래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다. 빈곤하며, 비서구사회 혹은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온 여성들. 이들은 자본주의적으로도 약자이며, 인종적으로도 약자이며 가부장제에서도 약자로 존재한다.
앞서 필리핀의 이주 가사노동자가 본국에 송금 보내는 돈이 필리핀 전체 GDP의 8.8%에 달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 덕분에 가사노동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집 밖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본국에 돈을 보냄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필리핀의 가족들이 추가로 얼마만큼의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가사노동의 가치는 그 8.8%를 훨씬 웃돌 것이다. 가사노동자의 존재가 전세계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하는 것이 전혀 과언이 아닌데, 여전히 이 노동은 사슬의 너무 아래쪽에만 존재하고 있고 잘 보이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가끔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수준을 넘을 경우도 있다. 이주 가사노동자 중 일부는 이주 후 여권도 빼앗긴 채 고용주의 집에서 학대를 받다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노동의 공간이 가정이기 때문에 노동 감독이 이루어지기도 힘들고, 입주 가사노동자의 경우 분리된 거주 공간 및 분명한 업무 시간도 없다. 한 집에 고용된 가사노동자가 그 집의 친척 집에서까지 일하며,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새벽에도 불려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의식주 등 기본적인 생존이 고용자에게 의존하고 있어 그 어떠한 불만도 제기하기가 어렵다. 불만을 제기하더라도 이들이 갈 곳은 없다. 초기 이주 비용을 에이전시가 대출 형태로 지불하기 때문에, 이를 갚을 때까지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결국 가사노동이다.
다시 한국의 가사 노동 시장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얼마전,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공식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지원을 받는 국가에서 지원을 주는 ‘선진국’으로 공식적으로 명칭이 바뀌는 경우는 한국의 경우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는 자본주의 글로벌 시장 경제에서 한국이 사슬의 위쪽으로 ‘공식적’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다. 공교롭게도 딱 시기에 맞춰, 가사노동 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딱 한국이라는 국가가 사슬의 위쪽으로 이동한 만큼 가사노동은 그만큼 아래쪽으로 흘려 보내겠다는 듯이 말이다.
외국인에게 가사노동 시장을 개방해야한다는 사람들은 이것이 저출산의 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인 여성이 무급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고, 그 자리를 외국인 유급 가사노동자가 대신할 때 저출산이 해결될 것이라니. ‘가사 노동’은 돌봄 노동이나 재생산 노동 등의 용어와 같은 노동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데, 아이를 돌보는 노동을 점점 사슬의 아래쪽으로 내려 보내면서, ‘이것이 아이를 더 낳게 만들 것’이라 주장한다는 게 참 웃기다. 이런 대책이 설령 정말 아이를 더 낳게 만든다 한들,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유지하는 일’의 가치를 낮게만 책정하는 사회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권리와 행복에 대해서는 얼마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 가정을 유지하고 돌보는 일은 어디까지를 포함하고 있나? 가사 노동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 방향은 옳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떻게 가사 노동을 담당해야하며, 그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나? 이런저런 여러 멍청한 저출산 대책을 내놓기 전에, 먼저 이런 질문에 대한 본질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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