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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1호_시작의 시작

1호_인테리어의 시작 / 망

by 밍기적_ 2021. 2. 1.

인테리어의 시작

 

에디터 / 망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모두에게 잊지 못할 한해가 되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다른 이유로 잊지 못할 한해가 되었다. 가족 이사가 무사히 이루어지고, 두 딸이 모두 취직과 이직에 성공한 해였다. 이직에 성공한 사람은 첫째 딸이었고, 취직에 성공한 사람은 둘째 딸인 나였다. 대학생이 되고서부터 취직 준비를 할 때까지 놓지 못한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어, 나에게는 그것으로 더욱 기억에 남는 한 해이다.

 

 할머니 댁에 가면, 사촌 가족들과도 모두 함께 찍은 대가족 사진이 할머니 방 벽에 커다랗게 걸려있다. 할머니 댁에 방문할 적마다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일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드문드문 느낌으로만 떠오르기도 한다. 사진 속 나는 초등학생 고학년 즘 되려나, 키도 작고 모두가 양복 차림을 갖춘 사이에서 특히나 형형색색의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다. 드레스 코드를 아마 전달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초등학생인지라 당장에 갖춰 입을 만한 옷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유치원생일 때부터 안경을 써서 그런지 초등학생 고학년에도 계속 안경 신세였는데 사진 속의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다. 아마 안경을 쓴 채로 사진에 남으면 예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겼는지, 어른들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건 추측에 불과한데, 고작 초등학생 때 기억이지만 이미 저 너머로 넘어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느낌은 몽롱했던 것밖에 없는데 성인이 되어 직장에 나가야 하는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수면왕인 걸 보면 사진 찍을 당시 졸음에 겨워 비몽사몽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꽤나 근거 있는 확신이다. 사실 할머니 댁의 그 사진에 남몰래 질투를 많이 하고 있어, 사진을 찍을 당시 내가 어땠는지 부모님께 여쭤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그렇지만 초등학생 고학년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히 졸았다. 더군다나 안경까지 빼앗겼으니 앞이 얼마나 안 보였겠는가! 시력만 있다면 시각에 많은 기억을 의존하는 영장류가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여러모로 아쉽지만 기억이 정확했더라면 더 질투심을 불태웠을 액자였다.

 

 우리 가족들끼리만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밖에 없다. 이 때 기억은 절대로 머릿속 서랍을 뒤져서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까맣게 뭉개져서 서랍 바닥과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갓난아기였으니까.. 머리털은 나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에서 걸음마를 하기보다 주저앉아 있는 나와, 나보단 조금 더 꼿꼿하게 서 있는 똘망똘망한 어린 시절의 언니와, 젊은 부모님이 함께 사진에 나와 있으되 액자로는 없어 앨범을 뒤져야만 발견할 수 있는 흔적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결국 가족사진이란 없는 것이었다!! 이사한 새 집에 새 TV가 들어왔건만, TV 뒤로 훤한 빈 벽을 바라보는 심정을 아는가? 혹은 소파 뒤에, 그럴싸한 가족 액자가 떡하니 걸려있으면 어떨까 하고 꿈꿔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미 어렸을 때 찍어두어서, 철들 무렵부터 익숙한 인테리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새 집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불어, 내가 먼저 나서서 내가 돈을 낼 테니 제발 가족 액자다운 액자를 걸자, 라고 조를 수 있는 것도 성인이 되고나서부터였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막연하게 가족 액자를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입시에 시달리느라 진지한 계획으로는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뿔싸, 나는 대학을 부모님 거주지와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방학을 노려 부모님 그늘 아래로 다시 들어와도 언니의 직장 생태 상 날을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가족 앨범 계획은 그렇게 물 건너가는가 싶었다. 다행히 언니의 직업도 비시즌이 있고 내가 얻고 싶은 직업도 비시즌이 있는 터라 서로의 비시즌이 맞물리면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더욱 식은죽 먹기였다. 돈까지 떳떳하게 벌어와 촬영 및 앨범비로 지불하겠다는데?

 

 그러나 아뿔싸!! 2020년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해였다! 비시즌과 시즌의 격차가 커 힘들어하던 언니도 이직에 성공하고, 나조차 비시즌이 넉넉해 흡족스러운 직장을 갖게 되었는데! 스튜디오를 가서 촬영을 한다니, 코로나가 두려운 부모님께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10 살배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것은 다들 비슷했는지, 가을 즈음 코로나가 잠시 그 기운이 수그러들었을 때 스튜디오마다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를 개시하기 시작했다. 속는 셈치고 신청을 했더니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는, 동석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락을 받았더니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부랴부랴 언니의 쉬는 날을 맞추고, 날짜를 잠시 미뤘다가도 또 몇 가지 추가 옵션들을 뺏다가 넣었다가 하고, 코로나인데 어떻게 스튜디오를 가냐는 식구 구성원 중 일부를 설득하고 나니 당일이 왔다. 하기야, 코로나 때문에 걱정할 만도 했다. 나도 워낙에 걱정이 많은 성격이고 이 시국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고 조심스러운 나날들이니, 사실 이렇게 글로 밝히는 것이 시작부터 나 스스로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가 아닌가 싶지만 정말로 변명하고 변명해보자면 아무런 약속도 세우지 않고 집밖으로도 나오지 않아 모범 중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있나 하면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일상에서 조금 더 소소한 즐거움을 더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 읽는 독자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사전의 고민과 변명은 이즘으로 줄인다.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은 조용하되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하던 가족들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하고, 부모님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새삼 익숙히 알아왔던 가족들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정을 알아낸다. 감수성 넘치는 말은 최대한 줄이기로 한다. 그들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하는 것이 나으니까.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일들도 생략하도록 한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해서는 그건 내 이야기라고 하긴 어려우니까. 어쨌거나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더 얹자면, 예산 문제 때문에 거실 벽에 걸어둘 수 있는 액자 계획은 무산되고 대신 작은 액자 두 개를 고를 수 있는 옵션으로 노선이 돌아갔다. 주문 제작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빈손으로 돌아와, 액자를 둘 공간을 물색하다보니 새삼스러워졌다. 결국 빈 벽을 통째로 액자로 꾸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구석구석에 우리 가족이 함께였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랐던 인테리어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직 소파를 사지 못했다. 내가 매일같이 뒹굴고 놀 수 있는 소파가!- 주말이 끝나고 다시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 한창 일하고 있을 무렵, 일상이 너무 바빠 기억의 중요도에서 잠시 물러나있을 무렵 액자 제작이 다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가 액자를 받아오고, 엄마가 액자 받침대를 사왔다. 나만 들떠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사실 한마음 한뜻이었던 걸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며 아니었어도 장단을 잘 맞춰주는구나, 싶기도 하다. 한참 뒤에야 본가로 돌아가 집을 확인하니, 작지만 아담한 인테리어가 두 개 소복히 완성되어 있었다.

 

 집 꾸미기의 시작은 역시 그 집에 누가 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가구 배치와 방 사용도와 소규모 인테리어부터 큰 의미에서의 벽지 색, 장판 색까지 다 바뀌듯 모두 주인의 취향을 따라간다. 이제 우리 집에는 내 취향의 가족 액자가 두 개 놓여있다. 성인이 되고부터 부모님의 곁을 떠나 살아왔지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아무리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도 이집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2020년은 많은 것이 시작된 해였고 그것은 2021년의 시작이라는 빅 이벤트에서도 아직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2021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시작될 지 큰 기대는 두지 않는다. 예상치 않게 가족 액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2021년의 모든 하루는 자연스럽되, 또한 갑작스럽게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의미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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