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
에디터 / 망
관계의 시작이라니! 참으로 새삼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의무 교육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맺어온 인간관계를 따져보면 의무 교육의 울타리에 있었던 시기만큼 인간관계가 복잡한 때가 없다. 또한 강제적이었다. 세대에 따라 70명, 혹은 40명, 혹은 20명의 인간 군상이 한 공간에 모인다. 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일년을 함께 버텨줄 친구를 찾고 무리를 이룬다. 다른 무리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에서 말썽은 생기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자꾸만 귀에 들어온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는 사회에 나가 부딪힐 더 큰 문제들에 대비한다. 학기초 친한 친구 만들기가 학창시절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만큼 대부분이 관계맺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서로 맞지도 않는 또래들끼리 모아놓은 교육과정에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고 취향 맞는 사람하고만 어울려 지내면 안되나? 선생님은 꼭 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모둠을 만들라고 해서 잘 모르는 애하고도 대화하게 만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지 않듯이 낯선 사람하고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성에 일말의 보탬이 되었음을 안다.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는 그만큼이나 다양각색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누군가 강제로 만남을 갖게 해주지 않는다. 이후로는 내가 선택한 대학의 학과에 따라, 적어도 나와 공통된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다. 공통분모가 넓어지기에 어쩌면 한 교실 내의 모두와 관계를 맺어야 했던 시기보다 조금 더 나을 수는 있다. 취직을 하면 바빠져 회사 사람들과 쳇바퀴 굴러가는 일관된 관계맺기에서 나아갈 수 없다. 그나마 집단성이 있는 곳으로 진로를 잡으면 그렇다. 비즈니스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사람 집단이 아니고서야 다른 모든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발성을 띄어야 한다.
즉, 다시 말해.. 자만추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자만추란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뜻하는 줄임말이다. 왜 이런 단어가 생겨났냐면, 그와 반대되는 말인 ‘소개팅’, ‘미팅’ 등 때문이다. 소개팅은 연애 상대가 생기기를 바라 주선자의 도움으로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기회이다. 하지만 이를 인위적이라 생각하여 지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는 데에 지쳤거나, 낭만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느 정도 목적성을 띄기에 ‘기대’하는 만큼이 아니기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혹은 그외 등등 다른 이유들 때문에 소개팅을 거부하거나. 하지만! 강제적으로 학교 교육과정이 우리를 묶어두던 시절은 지났으므로, 그 이후는 관계맺기를 자발적으로 형성하며 다닐 수밖에 없다. 자주 들리는 카페의 손님과 자만추를 하거나,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과 자만추를 하는 것이 학창시절에 만나며 부딪히고 그 수많은 인원에서 나랑 마음 맞는 또래 한 명 즘은 있겠지ㅡ하고 기대할 수 있는 때보단 그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또한, 학창시절에 만나던 친구들과는 달리, 대화의 주제가 적나라하고 속물적이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진득하고 오랜 시간 지켜보다가 서서히 서로를 물들여가는 것보다 신속하고 효율성을 따져 얼마 만나다가 맞지 않으면 바로 다음 사람을 찾아야 하는, 그런 속도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기에, 우리는 남이 관계 맺는 것을 꾸준히 볼 수 있는 거겠지. 우리는 그것을 소위 ‘데이팅 프로그램’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개팅도, 예능도 관심이 없던 필자는 이미 꾸준히 한국 사회에 나오고 있던 데이팅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하트 시그널이 국민적 관심을 한몸에 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 외국판 데이팅 프로그램이라며 ‘솔로지옥’이 넷플릭스에 입점하고 입소문을 타자 필자의 귀에도 들어오게 된 것. 출연자 중 한 명에게 특별한 관심이 생겨 그 사람만을 보고자 시작한 것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관계맺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문세훈 씨였다. 이런 작은 글에서나마 거론되는 것에, 일반인으로서 부담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그에게는 아픈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콕 찝어 언급하건데 ‘솔로지옥’ 초반, 그는 전혀 선택되지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늦은 타이밍이지만 잠시 데이팅 프로그램을 소개하자면 말 그대로 데이트, 즉 소개팅을 대놓고 주선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미를 위해 출연자들의 나이나 직업을 숨기고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이름을 숨기기까지 한다. 출연자들이 어떤 계기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 서서히 나이와 직업을 공개하고 더욱 교류는 깊어진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이와 직업을 일종의 조건 취급하고 이를 다 드러낸 채로 시작하는 소개팅보다, 상대방의 본연에 접근할 수 있다. 나이도 직업도 모르니 그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 상대를 판단한다. 상대도 나를 그렇게 판단한다. 제약이라 느꼈던 것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만나는 것이다. 솔로지옥은 여기에서 더 덧붙여, 서로 마음이 통한 사람끼리 천국도(島)에 가서 상대에게 자신의 나이와 직업을 밝힐 수 있다. 자급자족으로 식생활을 유지하는 지옥도(島)와는 달리 천국도에는 호텔 서비스와 고급 음식, 주류까지 전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천국도에서 지낼 수 있는 건 오직 1박 뿐이라서, 다시 지옥도로 돌아와 천국도에 가기 위한 경쟁이나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 내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서로 시그널이 통하지 않은 것이므로 함께 천국도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문세훈 씨가 그랬다. 그는 첫날 첫인상 교류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신지연 씨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마땅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 신지연 씨는 문세훈 씨에게 호응해주지 않았다. 마땅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신지연 씨는 그냥, 문세훈 씨에겐 딱히 마음이 피어오르지 않았고, 그런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그의 관심에 호응하는 것은 실례라고까지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서로 마음이 통해야 뭐가 시작되건 말건 할테니까. 하지만 관계의 시작이나 유지에서 모두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신지연 씨와 문세훈 씨는 서로 엇갈리는 시선의 방향에 대해 순탄하게 터놓을 대화의 기회가 없었기에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채로 상황이 끝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문세훈 씨 쪽에서 먼저 다시 용기를 내었다. 꾸준히 거절의 메시지만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신지연 씨와 대화로 해결되지 않은 부분, 그리고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신지연 씨의 마음을 확실하게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의 대화 요청에 신지연 씨는 응했고, 신지연 씨 또한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거절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용기를 내기 쉽지는 않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아니던가. 오히려 그러면 나무는 열 번이나 찍혀 아프기만 할 뿐 넘어가도 그것은 나무의 죽음일 뿐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본인이 신지연 씨가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부담이 문세훈 씨라고 없었겠는가. 하지만 관계는 가만히 있어서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 관계가 연인 관계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신지연 씨의 생각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이루어진 둘만의 천국도 여행에서 신지연 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왜였을까. 말은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다가오던 공기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문세훈 씨가 이만큼이나 좋아하니 한번즘은 같이 데이트를 다녀올 수 있는 것 아니냐’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 그렇지만 그 날, 그 자리에서 신지연 씨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되, 본인은 사람을 더 알게 되어야 친밀도를 쌓아가는 사람이라서, 사실은 이 데이팅 프로그램에서 가장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세훈 씨는 신지연 씨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너도 힘들었겠다는 말을 해주었고, 그 말을 들은 신지연 씨가 그간의 마음고생을 눈물로 털어낸 것이었다. 신지연 씨와 마주 앉아 있던 문세훈 씨는 자리를 옮겨 그 옆으로 가 신지연 씨를 달래보러 하였고, 그 거리의 좁혀짐이 나에겐 관계맺기의 진전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후 프로그램이 끝나며 출연자들은 자신의 짝을 찾아 지옥도를 나가게 되는데 문세훈 씨는 이번에도 신지연 씨에게 향했고 그런 그의 마음에 신지연 씨가 보답을 했는지, 그리고 그 보답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친구가 되거나 혹은 연인이 되거나. 어느쪽으로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의 관계는 둘만의 문제이다. 방송으로 송출되는 것에 동의한 사생활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캐낼 순 없다. 특히 내가 둘의 관계맺기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대화와, 그리고 신지연 씨의 가치관이었다.
문세훈 씨의 감정은 프로그램 초부터 잘 보였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신지연 씨도, 다른 출연자들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알 수 있었다. 알 수만 있다면 오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지연 씨의 성향은 드러나는 성향이 아니었고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다. 문세훈 씨 같이 그냥 드러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신지연 씨처럼 친해져야 조금씩 마음을 풀어나가는 사람도 있는 거다. 서로가 어떤 가치관이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맺기를 하는지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도 판타지 소설 속 처럼 상대의 마음을 그냥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어낼 순 없으니까.
사람이 왜 굳이 언어라는 의사소통 체계를 발명하였겠는가. 언어는 발견이 아닌 발명이다. 사람 간의 관계맺기에 있어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해야할 것이고, 언어를 통해 알 수 없었던 부분까지 어림짐작하고 혼자 오해해서는 안될 일이다. 연인, 그만큼의 관계에 있어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인연을 만들거나 만날 수 없고, 그렇기에 나의 올해 관계맺기는 보다 더 노력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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