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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2/14호_사람 옆에 사람이, 인간관계

14호_경계를 넘는다면 / 온기

by 밍기적_ 2022. 4. 5.

경계를 넘는다면 / 에디터 온기


길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관계에 둘러싸여있다. 오밀조밀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친구, 동료 등 속해있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우리는 부여받은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명명한 이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고, 자신을 어떤 사람인지까지 정의하기도 한다.


그냥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관계가 시작된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사이인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어떠한 호칭 대신 우리는 서로의 이름으로만 부른다. 때로는 유대가 꽤 깊어질 때까지 서로의 나이와 직업에 대해 전혀 모르기도 한다. 서로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는 사이. 뿌리 깊은 유대나,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 소속된 집단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관계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깊은 관계까지 발전하지는 못 할까? 길에서 만난 우리들은 결국 딱 거기까지인 걸까?


영화 노마드랜드 속 유목민들은 우연히 만난 사이들 치고는 꽤 깊은 호의를 베푼다. 그들은 실용적인 도움을 준다. 버리고 가는 쓸만한 의자나 식기를 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유목민으로 생존하기 위해 차를 관리하는 방법이나, 임시직 일자리를 소개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건네고, 유목민으로서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들을 공유하면 서로 꾸밈없는 위로를 건넨다.

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며, 자신의 가족 품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밥

영화 속 유목민들끼리는 숨기거나 꾸밀 것이 없다. 각자의 사정은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있다. 그래서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숨겨왔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의 카피에서도 “낯선 길 위에서 만난 기적 같은 위로"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장소가 다소 생소하고, 서로의 다가섬은 낯설지만, 우리의 관계는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카피를 들으니, 평생 혼자서만 간직할 것 같았던 비밀을 완전히 낯선 사람에게 처음으로 터놓았던 마법 같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눈 건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든다.

너와 나의 세상 하나 뿐인 연결 고리
<노매드랜드>를 제작한 클로이 자오 감독 역시 “영화 속 세상을 통해 독특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연결되고 싶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인간관계는 어디까지 포괄할 수 있을까, 그 정의가 불분명하다면 가장 좋은 증거가 될 단어, 바로 ‘연결’이다. 연결되어있는 모든 관계는 어쩌면 우리의 인간관계이다. 유목민들은 끈끈하고 분명하게 ‘연결'되어있다.

어떤 인간 관계를 구성할지 결정하는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시작되어 아무리 끊어내려 해도 쉽지 않은 연결이 있다. 또 아주 짧은 순간 만남이었지만, 운명처럼 서로를 각인하여 누구보다 끈끈히 이어지게 된 연결도 있다. 필자는 ‘연결’이라는 단어로 완성도를 더해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관계를 인정받고 싶어 14호의 글을 쓰게 되었다.

뭐 어때. 우리가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가장 거침없어지는 순간은 아무래도 여행지에서 처음 본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나갈 때다. 여행지에서 처음만난 상대는 삶에서 처음 연결된 사람이다. 서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 무슨 대화든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다. 상대와 즐거운 대화가 이어진다면 그저 개이득인 부분, 그게 아니라고 해도 잃을 것 하나 없는 관계. 그야말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솔직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환경이다. 아무런 연결된 접점이 없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편안히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 그것은 처음 만난 사람이다. 전에도 본 적 없고, 원한다면 오늘 이후로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만난 지 24시간, 거침없이 직진하는 제시와 셀린

이름도 모를 누군가와 동행하고, 친구가 되고,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는 것.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분명히 위험한 상황에 나를 내던지는 일이다. 얼마나 위험할지 충분히 인지한 후에도 우연의 기회와 만남들에 내 인생을 내던지고 운명을 걸겠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실천되지 못 한 강한 욕구이다. 그게  내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본 원리라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았다.



관계의 형성은 자만추. 재고 따져 만난 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500일의 썸머>영화 속 톰은 어릴 적부터 로맨스 영화에 빠져 사는 로맨틱하고 우연한 관계에 집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톰만큼이나 극강의 낭만주의자는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연한 관계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은 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연애에 대해서는 더욱이 인위적이고 계산된 관계보다는 자연스럽게 가지는 만남을 선호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기적 같은 사랑에 빠지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게 되며 시작된 인간관계를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극적인 설정을 위해 두 인물의 우연한 계기로의 만남과 어긋남을 한 폭의 그림 같은 화려한 미장센과 함께 그려낸다.



그런데 말야, 꼭 그렇게 딱 떨어지게 정의해야 하나
사람들은 연애관계에서 보통 애매하게 구는 상대를 두고 우리는 만나는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그를 두고 장난을 치는 거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심한 경우 사람들은 나쁜 년, 선수, 어장관리 등의 폭력적인 언어로 공격하고, 그렇게 신중하게 자신의 연애관과 상대와의 케미를 고민하던 사람들은 크게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과 상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만나게 될 모든 관계들을 상처로만 가득 채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연인이 아니나, 연인만큼이나 아니 연인보다 더 특별하고 깊은 사이일 수도 있다. 사랑보다 가까운 우정, 우정이 아닌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사랑이라 착각한 우정, 우정이라 착각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경계를 넘는다면, 그것들은 좀 전보다 뚜렷이 우리 눈에 보일지도 모른다.

 


우린 대체 어떤 사이야?

사랑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한 썸머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톰. 둘의 재회

그렇게 영화 속 썸머는 연인이었던 상대에게, 또 자신을 어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심하게 자신의 도덕성을 비난받았다. “당신에게 나는 무엇인지, 내겐 당신이 어떤 의미인지”“당신과 나는 정말 사랑을 한 것인지.” 머에게나 우리 모두에게나 단번에 답을 내리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또, 서로를 잘못 생각하고 관계를 정의 내린다면 서로에게 돌이키지 못할 상처를 내기도 한다. 애초에 오해한 의미로 인해 빚어진 갈등 때문에 말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데. 우리가 가진 언어로 수 만 가지 감정들을 다 표현하고 우리의 모든 관계를 정의 짓기엔 단어가 턱없이 부족하다.


내게도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랑하는 관계들은 특별히 더 어렵다. 사랑을 잘못 이해해서, 혹은 그 단어가 애초에 모든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충분하지 않아서 많은 실수를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연결된 상대와 천천히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교묘하게 관계를 정의 짓는 핵심적인 질문의 답은 피해 간 비겁한 사람이 되어있기도 했다. 그때, 내게 사랑이란 단어보다 우리의 관계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대체 단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쨌거나, 누구에게나 편히 쉴 마음의 안식처는 필요하다.
살면서 본인의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알게 된 인간관계 (가령 가족, 친척, 유년시절 친구 등)를 완전히 리셋하고 새롭게 시작한 사람은 그 이후 어떤 삶을 개척하게 될까? 4월호 <기억>에서 필자가 썼던 글에서 인용해보면, “나쁜 기억이 삭제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좋았던 모든 것들 역시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인간관계와 그 태초의 인간관계가 준 것들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나는 다른 나라로 떠나기 전, 친구의 집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머문 적이 있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친구네 가족들을 한 명 한명 만났고, 같이 드라이브를 즐기며 가삿말을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주말 나들이를 따라갔고, 함께 영화를 보며 소파에 널브러져 잠에 들었다. 서로가 편해져 큰 대화 없이도 서로가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꼽아야 할 때, 반드시 넣고 싶은 장면들이 스쳐갔던 한 달이었다. (그 집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 가장 행복했던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떠나기 마지막 날 공항으로 나를 데려다주며 친구의 엄마는 내게 엄마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형용하기 힘든 묘한 기분들이 온몸을 관통했다.

보고싶은 그녀의 뒷모습. 타지에서 경험한 오랜만에 느껴본 따스함.

그때 느낀 묘한 감정은 최근에 다시 한 번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자매처럼 친한 언니가 내게 “친 동생이나 다름없다"라고 말을 건네었을 때 또 한번 느껴졌다. 한 번도 거리감이 느껴진 적이 없는 그녀지만, 그때는 내게 기억에 남을 만한 울림과 연결감을 주었다. 왜인지 묘하고 뭉클한 기분이 학습된 결과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연결된 관계가 발휘하는 힘은 강력한 것이고, 내 주변 사람들이 주는 감정의 파도 역시 우리가 어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깊은 관계로 생각해준 상대에 대한 감사보다는 훨씬 더 깊은 감정이었으니, 그건 단지 고마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 명명되어 깊은 결속을 주는 인간관계는 대체되기 힘든 감정적 안식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의되지 못하는 관계들이 내 삶을 가득 채워 풍요롭게 되기를.
기존에 오랜 시간에 걸쳐 연결된 관계들이 (어떠한 이유로든) 부재한 사람들에게 그 빈자리를 대체할 관계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멀리 떠나서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 준 소중한 가르침이 있다. “네 스스로 한계 짓고 제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고, 훨씬 더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그렇다. 애초에 일방적인 시선에서 그어진 선과 경계를 허물면 인간관계라는 것은 지금껏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넓은 개념을 포괄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허물어진 경계에서 내가 하나하나 만들어낸 인간관계들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나 사랑하여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 내 행복을 부단히 응원하고 있다. 어느 것도 재지 않고, 그저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행복하게 앞으로도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진심을 다해 내가 행복하기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다 써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니, 이보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은 없을 터. 내게 잠깐 시련이 찾아와도, 충분히 다시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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