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고민
에디터 / 바투
작년과 같이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게된 나는 학생 상담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3월을 보내왔다. ‘성적이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 부모님과의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다, SNS 중독을 끊을 수 없다’ 와 같은 고민거리에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조언을 건넬 수 있었지만, 인간관계와 관련된 고민거리에는 대답을 주저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선생님이 되어서도 겪는 고민들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되는 어린 시절부터 눈을 감게 되는 순간까지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과 걱정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때로는 뜬눈으로 밤을 새게도 만들고, 어쩌면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게 하는 여러 고민들을 이 자리를 빌어 나누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금쪽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오은영 박사님처럼, 인간관계에 관한 공통적인 고민들을 묶어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동시에 나 또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민을 겪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많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고민들은 객관적인 정답을 구하는 데에서가 아니라, 이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야기 나누고 이에 대한 따뜻한 반응을 얻는 데에서 9할 이상은 해결이 되는 듯 하니 말이다.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할 때
사회적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교환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베푸는 것은 동시에 어떤 것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준 만큼 받아야 하고, 또 받기 위해 주는 것이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렛을 줬으면, 화이트데이에 비싼 반지를 기대할 수 없다. 내 생일에 10만원 짜리 상품권을 준 사람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주는건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다, 하고 종지부를 찍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물질적이고 계산에 밝은 오늘날의 MZ세대에게 이러한 등가 교환의 법칙은 대다수가 수긍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때로는 ‘주고 받음’이 각자가 이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는지, 더 나아가 이 관계를 지속시킬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주식과 인간관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리가 적절한 주식 매도 및 매수 시점을 모르듯이, 관계라는 것도 내가 유지해야 할지 놓아보내주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빨간색과 파란색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주식과 달리 인간관계에서는 손익을 명확히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관계란 그리 딱 떨어지는 류가 아니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나는 본전을 뽑았는지 계산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계산은 관계와 나 자신을 좀먹으며 사람을 지키게 만든다. 당장 눈에 보이도록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내가 준 것들이 예상치 못한 때에 돌아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주고 받음이 관계보다 우선시되어서는 건강하다고 보기 힘들다. 주고 싶은 마음,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닌 보답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에 베풀게 된다면 곧 주객전도가 되어버린다.
하나 오면 하나 가고, 식의 계산은 건강한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인지라 적당한 오고감은 있어야 한다. 다만 순간 순간의 가시적인 사소한 것에 얽매이기 보다는, 길고 넓게 보면서 나를 파괴하는, 계속 계산하게 만드는 그런 해로운 관계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관계 하나 하나에 연연해하지 않으려면,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결국 그 관계가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일이 없으려면 안전하고 탄탄한 관계들이 나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그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유독 헤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커플이 있다. 싸우는 상황만 보면 쟤네 오래 못 가겠다 싶지만, 그러한 깨붙(깨지고 붙음)이 몇 년동안 반복되기도 한다. 한 번 시작된 관계는 끝을 내기가 참 어렵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종료한다는 것은 결국 함께한 시간과 추억,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과도 작별하는 것이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조건이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경우를 들여다본다. 나는 잘 나가지만 상대는 그러지 못할 때. 나와 비교될 때. 우리가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이, 특히 나의 속도가 네 것보다 더 빠를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이 과연 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지금의 이 힘든 시기는 지나갈 것이라고, 너와 내가 비슷한 위치에 서서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그 아무도 확신할 수 없음을 안다. 차라리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헤어지는 일이 그리 망설여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잘못이 아닌 상황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과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결국 네가 너를 선택해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너라는 사람이 좋아서인데, 너와 같은 사람을 내가 만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경우에 이와 같은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사그러들고, 상황 탓을 하던 것이 자연스레 상대방 탓, 내 애정이 줄어든 탓으로 변하며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계속되는 고민과 걱정, 미래에 대한 불확신과 현재 내 시간이 아깝게 낭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의심은 바위 위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이 천천히 관계를 부서트린다. 그러니 스스로를 돌아보자. 어차피 걱정하고 의심할 거라면 끝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나의 불안과 걱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온전히 상황만을 탓하고 싶다면 마음을 다잡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게 아니라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면 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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