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요란하게 문이 닫히고 바삐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 소리,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는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누군가는 이른 점심을 먹었을 지도 모를 시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베개 옆에 함께 누워있는 휴대폰을 확인한다. 90도로 돌아간 흰색 삼각형이 가운데에 박혀있는 빨간 직사각형 아이콘을 습관적으로 누른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영상을 하나 클릭한다. 2배속으로 보다가 그마저도 너무 길어 보기를 멈춘다. 잠은 깼지만 여전히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쇼츠를 보기 시작한다. … 아, 잠깐만 보고 일어난다는 게 또 이렇게 돼버렸네.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간여 가량이 훌쩍 지나갔다. 배는 고픈데 막상 몸을 일으키기가 더 귀찮아져버렸다. 조금만 더 보다가 늦은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야지. …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일 법한 하루의 시작.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퇴사 이후 필자의 최근 일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성인ADHD 증가나 문해력 문제가 뉴스 한 구석을 지속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중독에 빠진 듯한 일상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요즘, 그 원인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현상들의 공통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것은 디지털 기기의 등장이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누구나 영상 위주의 디지털 콘텐츠에 쉽게 접근이 가능해졌고, 사람들이 영상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다 보니 텍스트를 통한 독해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또한 길이가 짧은 영상만 소비하다 보니 오랜 시간 동안 주의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심할 경우에는 일상생활마저 힘들어지는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중독은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듯 많은 이들의 삶을 좀먹고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조절력이 약화되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거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인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2022년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23.6%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의 정신적인 중독은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으로 알코올은 각종 사고 및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2022 범죄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강도, 방화, 강간, 살인, 폭력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전체 범죄자들 중 주취자의 비율이 무려 4분의 1에 달했다. 즉, 강력범죄자 4명 중 1명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중독이라는 개념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신체적 중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정신적‧의존적 중독’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체적 중독’은 중금속 중독과 같이 독성이 있는 음식이나 약물에 의해 신체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일컫는 반면, ‘정신적 중독’은 남용 행동에 따라 정신적인 변화가 유발되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 중독이 가장 무서운 지점은 중독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스마트폰이나 알코올 외에도 약물, 니코틴, 카페인, 설탕, 쇼핑, 일, 섹스, 성형, 게임, 도박, 주식 등 다양한 것들에 중독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중독을 해결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 유전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중독에 빠지는 기전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경우 그 해결이 더욱 요원해 보인다. 특정 자극을 접했을 때 우리 뇌가 보내는 신호들 중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 우리는 쾌락을 느끼고, 우리 뇌는 그러한 쾌감을 반복해서 원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특정 물질이나 행동을 통해 노력 없이 획득한 즉각적인 쾌락일 경우, 우리는 쉽게 그 물질이나 행동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도파민도 소위 ‘내성’이라는 것이 생겨 동일한 자극으로는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존의 자극보다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 한편, 중독에 빠지게 되면 뇌에서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기분을 안정시키고 우울증을 완화해주는 ‘세로토닌’과 자기조절 능력을 담당하는 ‘GABA(Gamma-Aminobutyric Acid)’의 수치가 감소하거나 불균형해진다. 그 결과 점점 더 큰 자극을 쫓게 되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중독의 늪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뇌과학적 기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역이용할 순 없을까? 소위 말해, 좋은 대상에 이런 식으로 깊게 빠지는 ‘좋은 중독’ 같은 건 없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좋은 중독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마니아(mania)’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중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무언가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적절히 표현한 단어는 ‘몰입’일 것이다. 하지만 중독자들은 본인의 삶과 주변을 피폐하게 만드는 반면, 마니아들은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건강한 삶을 지속해나간다. 물론 마니아들 중에서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못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단순히 부정적인 느낌이 들면 중독인 것이고, 긍정적으로 보이면 몰입인 것일까? 뇌과학적으로 본다면 그 비밀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세로토닌’ 및 ‘GAB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독과 몰입 모두 도파민을 발생시킨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몰입 상태에서는 중독 상태와 달리 두 신경전달물질의 수치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다시 말해, 몰입 상태에서는 성취감과 같은 쾌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정서안정이나 자기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중독’과 ‘몰입’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뇌과학적 결과를 가지는 다른 단어이며, ‘좋은 중독’이란 건 없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좋은 중독처럼 보이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몰입’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것이다. 부정적인 문제에 긍정적인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관점의 전환으로 새로운 발상을 이끌어내는 일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독에 대한 논의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신적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중독이 야기되는 과정을 뇌과학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중독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든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중독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주변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인터넷에 있는 중독 자가진단 테스트나 우연한 기회를 통해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였다면,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일례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커뮤니티를 ‘자조모임(self-help organizations)’이라고 하는데, 모임에 참여하면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AA(Alcoholic Anonymous, 알코올중독자 치료 모임)이다. 그 외에도 “세종시 중독 자조모임” 2과 같이 도박중독이나 성중독 등 여러 가지 중독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자조모임도 존재한다. 이러한 모임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만큼 인터넷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검색 등의 경로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중독 탈피를 위한 다른 방법으로는 전문가의 상담 및 치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각 지역별로 운영 중인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는데, 해당 센터는 알코올, 인터넷(스마트폰), 도박, 약물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한편, 「2023년 중독 주요 지표 모음집」에 따르면 21년도를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알코올 사용 장애를 진단받은 대상자 중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3.4%, 니코틴 사용 장애를 진단받은 대상자 중 관련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2.0%에 불과했다(곽영숙 2023, 56). 우울장애를 겪는 이들의 이용률이 28.2%, 불안장애가 있는 이들의 이용률이 9.1%인 것에 대비되어 중독에 대해서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 혹은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미비한 실정이다. 더하여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각 지역사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는 하나, 세종 지역에는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여전히 부재한 상태로 파악된다. 그리고 각 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례관리자 1인당 평균 등록 정신질환자는 28.7명으로,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에 비해 2~5명 더 많은 수치를 보인다. 심지어 사례관리자 중에서도 비전문요원을 제외한 정신건강 전문요원으로만 그 수치를 계산할 경우, 전문요원 1명이 관리하는 환자의 수는 51.2명으로 대폭 증가한다. 따라서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전문가에게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있으려면 국가적으로도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중독 관리 전문가 추가 양성과 인프라 구축, 상담 및 치료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3
나아가 장기적으로 정신적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이루어지는 관련 교육까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년기 및 청소년기는 뇌의 억제 기능과 조절 능력이 점차 강화되는 시기로서, 성인기에 비해 뇌가 급격하게 변하는 시기이다. 4 반대로 말하면 해당 시기의 아이들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렵고 각종 중독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중독과는 거리가 먼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려면 교육의 힘을 빌려야 한다. 왜냐하면 가정이나 아동복지시설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랄수록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중독 예방 교육은 교재 제작이나 강의, 상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교육 효과를 높이고자 “가상현실 기술(AR, VR 등)을 활용” 5하는 등 상당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이렇게 단순히 경각심을 갖게 하는 간접 경험 방식은 한계가 있다. 안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중독이 여전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각광받는 현 실태로 미루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게다가 현재의 중독 예방 교육은 각 중독 유형별로 진행되고 있는데, 중독에 빠질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워낙 넓은 만큼 교육이 보다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예방책으로 직접 경험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즉, 아이들의 뇌 속 신경전달물질들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과 ‘GABA'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정서안정이나 자기통제를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신경전달물질의 수준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것이 정신적 중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충분한 수면이 중요하다. 더불어 자연의 채광이나 소리, 풍경 등이 두 물질의 수치를 균형감 있게 유지시켜주므로 자연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독과 거리를 두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진부하게 느껴질지언정 뇌과학적 사실이 그렇다. 한편 이러한 방법들이 언뜻 개인적으로나 실천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앞서 말했듯 유년기 및 청소년기 두뇌의 특성과 주변환경상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그 실천이 용이하도록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더해져야 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방법들을 교육과 연관지어보자면 체육 교과시간의 비중을 늘려 신체 활동을 증진시키거나 낮잠 시간을 도입하는 것, 생태 활동을 필수 교육과정에 도입하여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확실히 보장하는 것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아이들의 두뇌가 정신적 중독에 쉽게 빠지지 않는 두뇌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중독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 역시 중독을 치료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니 말이다.
정신적 중독을 뜻하는 영단어 'addict'의 어원은 ‘~에 사로잡히다, 노예가 되다’라는 의미의 'addictus'에서 왔다고 한다. 그에 비해 주의를 집중한다는 의미의 'concentrate'라는 단어는 라틴어 ‘com(함께)’와 ‘centrum(중심)’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어 ‘원의 중심점, 공통의 중심으로 가져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외부 대상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본인 삶의 중심을 바로 세워 유지하느냐의 차이이다. 이는 각각 ‘중독’과 ‘몰입’에 대응되기도 한다. 게다가 두 단어는 용법에도 차이가 있다. 명사로 사용되곤 하는 ‘addict’가 동사구로 활용될 때는 '중독되다’라는 의미를 가진 ‘be addicted’가 주로 쓰이는 반면, 동사 'concentrate'는 일반적으로 능동 형태 그대로 사용된다. 수동적으로 ‘be addicted’가 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concentrate’할 수 있는 힘을―스스로든, 주변의 도움을 받든―모두가 기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중독되지 않거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곽영숙. 2023년 중독 주요 지표 모음집. 서울: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2023.
한국뇌과학연구원 편집부. (2021). 뇌과학으로 본 청소년의 뇌. 브레인, 86, 48-51.
- 곽영숙, 2023년 중독 주요 지표 모음집(서울: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2023), 49-50. [본문으로]
- 세종시민원, “세종시 중독 자조모임에 초대합니다.”, 세종시닷컴(인터넷카페), 2021. 3. 19, https://cafe.naver.com/1sejongcity/1137053?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jFzZWpvbmdjaXR5IiwiYXJ0aWNsZUlkIjoxMTM3MDUzLCJpc3N1ZWRBdCI6MTcxMzY5NDEwNTg3OH0.17he-sLEckBwRfjcB23wW7cstVFr69rrn7w1JNR1D2A [본문으로]
- 2024년 4월 21일 기준 [본문으로]
- 편집부, "뇌과학으로 본 청소년의 뇌". 브레인 86, (2021): 48-50. [본문으로]
- 임재관, "국민 10명 중 9명 국내 마약류 문제 심각 인식…예방 대책 강력 추진". 메디컬월드. 2024. 4. 12., https://medicalworldnews.co.kr/news/view.php?idx=151096047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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