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사용설명서
에디터 / 바투
한때 페이스북에 매여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유행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레 인스타그램에 안착하게 되었고, 이제는 하루에 수십 번씩 들락거리며 인스타 속 또 다른 세상에 찌들버렸다. 특히 지금과 같이 대면 만남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에서는 온라인 근황토크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이 훨씬 중요해졌다. 목적이 있건 없건 습관적으로 접속을 하게 되는, 때로는 인스타를 위한 현실이 존재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이 끊을 수 없는 마약같은 인스타그램 속 여러 행위 기저의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부여한 의미인 점을 강조 또 강조한다.
1. 계정의 비공개 설정 :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연장선
친한 친구 중 한명은 트위터가 익명성이 보장되어서 본인의 의견과 감정을 거침없이 뱉어낼 수 있다며 트위터를 선호했다. 아무래도 사진이 기본값이 되는 인스타보다 멘트만 날려도 되는 트위터가 익명성 보장 측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공간의 메리트 중 하나는 현실 속에서의 내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이 되어 활동하거나, 나의 모습 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부분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고, 혹은 현실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자유롭게 표출하기 위해서 익명을 지킨 채 모르는 사람들과 교류한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의 이유로 SNS에 몸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현실-여기서는 온라인과 구별되는 오프라인 속 현실- 속 인간 김규희의 연장선으로서 SNS 계정을 운영한다. 내게 인스타그램은 오프라인 인간관계의 확장판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어서도, 나를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일부러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을 한 이유는 나를 알고 나도 아는 사람과만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굳이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사적인 일상을 공유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모르는 사람의 희노애락을 공유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지도 않다. 떨어져 있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 따로 만날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근황이 궁금한 선후배, 건너 건너 아는 사이지만 서로의 게시글 아래의 빈 하트를 붉게 물들일 수는 있는 대학 동기 등 현실에 존재하는 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2. 인스타 스토리 : 효율적인 생존 신고 수단
소위 ‘인스타 갬성’이 가득한 세련된 카페, 몽글몽글 구름이 피어오르는 화창한 하늘, 한껏 확대해서 찍은 음식 항공샷, 술잔을 부딪히는 부메랑 등 갖가지 종류의 사진과 동영상이 어플 상단의 스토리에 올라온다. 게시글을 올리는 피드와 달리 한 화면에 사진과 글이 함께 들어가며 각자의 개성에 맞게 사진을 다채롭게 꾸밀 수 있다. 보고자 하는 사람의 스토리를 클릭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게시글에 올리기에는 조금 심심하거나 단조로운, 별거 아닌 것들을 보통 스토리에 올린다. 게시글은 업로드 이후 따로 삭제하지 않는 이상 남지만(그래서 소위 게시글 ‘박제’라는 표현을 쓴다), 스토리는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보면 그 사람이 오늘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 오늘 출근룩은 어떠한지, 누구와 술자리를 가지는지, 일상에서 일어난 소소한 웃음거리 까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개 긍정적인 것만 표출되지 부정적인 모습은 철저히 배제되어 보기 어렵다.) 우리는 왜 이러한 사소한 일상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는 것일까. 정말 별 거 아닌 일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내가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이렇게 오픈되는 나의 일상은 인스타 팔로워들과의 소통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이 없던 시절 한 명 한 명과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해야만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한 번 올리는 나의 스토리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 잘 지내고 있어요’를 아주 손쉽고 간편하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공개되겠지만, 적어도 일상 공유와 인간관계 지속의 수단 차원에서는 효율성이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인스타를 끼고 사는 사람으로서 사실 이제는 이러한 목적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예쁘고 좋은 것을 보면 스토리에 공유하게 되었다. 한 2주만 어플을 지워도 굉장히 불안하겠지.
3. 게시글 업로드 : 힙한 배경과 멋진 나의 조화를 이루는 사진을 고르기 위한 고뇌와 고뇌의 반복
트위터와 다르게 인스타에는 늘 행복하고 멋진 사진들만 올라온다. 나 또한 여행을 한 번 다녀오면 한 게시글에 올릴 사진 10장을 추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첫 사진을 무엇으로 해야 가장 좋을지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야 나서야 게시글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과몰입러다. 어떻게 하면 멋스럽고 힙하고 간결하게 게시글 아래의 멘트를 넣을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싸매다 보면 한 게시물을 올리는 데 최소 30분은 소요된다. 사진에 담긴 여러 감정들을 주저리주저리 읊는 것은 멋진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게 요즘의 트렌드이기에, 적당히 유머가 섞인 간결한 한 두 문장과 어울리는 이모티콘의 조합을 생각해낸다. 드는 생각과 있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 될 것인데, 이상하게 인스타 게시글 아래의 멘트만큼은 줄이고 줄이게 된다. 이렇게 온 신경을 쏟다보면 에라이, 그냥 올리지마? 하다가 아니야, 오늘의 내 모습을 남겨야지 하고 다시 몰두한다. 이게 뭐라고.
4. 짧아진 글, 정교해지는 사진 : 한 장의 사진에 많은 것을 함축하는 오늘
2030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SNS가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다. 대부분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통하고,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밍기적도..) 이러한 흐름과 함께 글보다는 ‘사진’의 중요성이 커졌다. 물론 페이스북에도 사진을 첨부할 수 있지만, 인스타그램은 글보다는 사진을 우선으로 한다. 계정별 기본 화면은 정방형의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이며, 키워드 검색 결과도 사진이 우선적으로 보여진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진에 여러 요소를 함축하여 담는 것이 중요해졌고, 사진을 잘 찍는 법과 보정법 또한 널리 퍼지고 있다. 웅장한 감동을 주는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주가 되고 글을 남기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글쓰기’가 점차 낯설어지는 현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진으로 소통을 하는 오늘날 더 멋지고 좋은 사진을 찍는 실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친한 친구와 즐거운 수다를 떨고 난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은 점차 어려워진다. 특히 밈(meme)이 널리 퍼지면서 나의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공간과 장소가 사라진다. 찰칵- 한 번에 몇 줄의 표현이 담아버리는 간편함이 나의 고민과 생각마저 단순하게 만들어버린다. 교차하는 이 무수한 감정과 내가 마주하는 이 복잡한 상황을 정교한 단어들로 조각을 맞춰나가는 소중한 과정이 사라진다.
5. ‘인싸’ 되기 : 취향의 획일화
아마 내가 인스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는 ‘-맛집’이다. 죽전맛집, 용인맛집, 강원도맛집 (하나의 검색어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띄우면 안 됨). 특히 특정 지역의 맛집만을 올리는 (아마도 돈을 받고 올리겠지만) 계정도 따로 있을 정도로 인스타를 통해 맛집을 검색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맛집뿐만 아니라 카페, 여행 등을 검색하다 보면 최근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맛있어보이는 가게에 즉흥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인스타 갬성이 넘치는 곳을 찾아서 방문한다. 그래서 맛집이나 카페의 사진을 검색해보면 거의 다 비슷하다. ‘인스타 감성’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대략 몇 가지 특징은 나열할 수 있는 정도다. 이렇게 SNS에서 뜨는 곳을 선호하다 보니 내 자신의 온전한 취향의 색이 다 바래졌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느낌은 어떤 것이지?를 생각할 틈을 잘 주지 않는다. 유행의 흐름 속에서 나의 취향을 지키는 것이 참 어렵다.
임용경쟁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나를 무엇보다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인스타그램 속 평온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어플을 지우고 다시는 깔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그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매일 접하다가 갑자기 보지 않으려니 참 힘들었다. 고립되고 단절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소통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사라지며 아무렇지 않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알기 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스스로 고립된다는 감정에서 벗어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큰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내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 지를 과도하게 신경쓰기 시작하면 오히려 고립감과 공허함이 더 크게 찾아온다. 타인들이 살아가는 핑크빛 일상의 속도와 내 삶의 속도는 비슷한지, 내가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에 몰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현실과 SNS 속 세상은 늘 같지 않다는 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간격,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여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하나의 재미로 건강하게 소비합시다. 어느 순간 내 삶에서 인스타그램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인스타그램이 현실 속 나의 감정을 좌지우지하지 않을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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