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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5호_SNS, Shaping New Style

5호_부계중독 / 연푸른

by 밍기적_ 2021. 5. 29.

에디터/연푸른



  나는 SNS 계정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통 몇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니, 이 진술은 순전히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본인과 비교해 나 대신 판단을 해줄 수 있을 테니, 내가 가지고 있는 SNS 계정의 종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도록 하겠다.

  나는 가장 자주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만 총 네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다. 내 일상을 기록하고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한 계정으로, 내가 가장 자주 방문하는 소위 ‘본계’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여행스타그램’,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록하고 이를 더 건강하게 바꾸어 보려고 만든 ‘웰빙 계정’. 마지막으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계정을 잔뜩 팔로우해둔 ‘눈팅용 계정’이 그것이다. 다른 SNS 계정도 나열해보자면, 나는 트위터에 두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고, 페이스북에도 계정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계정이 있어 몇 개의 글을 올렸고, 다섯 개쯤 되는 구글 계정 중 두 개로 각각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뒀다. 그 외 익명 질문 SNS인 에스크와 에브리타임, 텀블러, 핀터레스트, 열품타 등에도 계정이 있다.

  지금은 존재도 가물가물한, 하지만 분명 계정이 있긴 할 몇 개의 플랫폼이 더 있고, SNS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는지에 따라서 또 몇 가지 플랫폼이 더 추가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SNS의 정의가 어떻고 저떻고는 자세히 다루지 않을 테니까, 내가 당장 휴대폰 클릭 몇 번으로 접속할 수 있는 ‘대충 SNS스러운 플랫폼’은 이정도다 –로 정리하자. 자, 이렇게 나열해봐도 내 계정의 수가 많은 편인지는 판단이 안 선다. 그러니, 첫 번째 문장을 이렇게 수정해보자. 나는 SNS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서는’ 계정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방금 나열한 열여섯 개의 계정 중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계정은 겨우 한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최근 한 달 동안 한 번 접속이라도 한 계정은 여덟, 뭐라도 활동을 하나라도 한 계정은 다섯이다. 그리고 그 ‘활동’을 좋아요 누르기, 리트윗이나 친구 받기를 제외한 ‘내 글을 올린 것’으로 제한하면, 내가 사용하는 계정은 겨우 하나가 된다.



  이럴 거면 그냥 안 쓰는 계정은 다 없애 버리는 게 깔끔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플랫폼마다 이렇게 계정을 만들어 둔 데에는 또 다 이유가 있다. 플랫폼마다 계정마다, 내가 표현하는 나의 모습도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 글도 있지 않나. 블로그는 ‘내가 이렇게 아는 게 많다’고, 페이스북은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말하는 플랫폼이고, 인스타그램은 ‘내가 이렇게 예쁘게 잘 먹고 산다’를, 카카오스토리는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를, 마지막으로 트위터는 ‘내가 이렇게 또라이다’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공간이라고.

  물론 나는 사진 플랫폼인 인스타에서도 장문의 글을 쓰는 등 딱히 개발자가 의도한 대로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계정마다 드러나는 내 모습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에서의 나는 좀 더 생기있고 긍정적이다. 힘들지만 곧 되겠지, 바쁘지만 행복했다 정도의 메시지가 피드의 주류를 이룬다. 블로그에는 더 우울한 생각이나 고민도 적을 수 있고, 같은 글 쓰는 플랫폼이지만 브런치에서는 고민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한편 트위터에서의 나는 조금 더 날카로운 것 같다. 더 거친 워딩이나 일상생활에선 표현하지 않는 불편함도 쉽게 공유하고, 리트윗한다. 다 내 속에 조금씩은 있는 모습일 텐데, 그게 플랫폼과 만나면서 좀 더 강화되고, 그렇게 계정마다 조금씩 다른 페르소나가 구축된다.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이렇게 계정마다 표현되는 내가 다르다 보니, 새로운 모습을 가지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요즘은 북스타그램 혹은 글스타그램을 만들고 싶다. 내 글을 정기적으로 써 올리고, 이를 예쁜 디자인으로 홍보할 수 있는 계정 말이다. 생각해보니 밍기적 계정이 딱 좋은 예시인데, 그런 모습의 ‘개인 계정’을 운영하고 싶다. 취미 계정도 하나 만들고 싶다. 나는 춤 추는 것을 좋아하고, 연기도 배우고 있고, 그림 그리기도 싫어하지 않는다. 내 춤, 연기, 그림을 모아둘 수 있는 계정을 만들면, 내가 더 열심히 취미 생활을 하지 않을까? 한곳에 모아두면 나도 더 뿌듯하고, 혹시 이게 셀프 브랜딩의 수단으로 성장할지 또 누가 아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춤, 연기, 그림은 각각 다른 분야니까, 그럼 계정도 각각 하나씩 세 개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



  이런 식이다. 친구들과 소통하는 내가 있고, 운동하는 내가 있고, 글 쓰는 내가 있고, 공부하는 내가, 여행하는 내가, 춤추는 내가, 그림 그리는 내가 있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은데, 나는 그런 ‘나’들을 각각 다른 곳에 나눠두고 싶다. 그러면 내가 더 열심히 각각의 활동을 할 것 같다. 계정 하나만 만들었을 뿐인데 나는 왠지 운동도 더 잘하게 될 것 같고, 글도 더 잘 쓰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여행도 더 자주 가고, 춤도 더 잘 추고 그림도 더 잘 그리게 될 것 같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곧 스펙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 세상에서, 계정 하나만 만들어도 뭔가 시작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첫 발자국을 디뎠다는 기분. 내 능력도 곧 일취월장할 것 같은 기분. 부계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선언 행위다. 나 앞으로 이거 제대로 해볼 겁니다! 같은. 

  그런 식으로 부계를 자꾸자꾸 만들다 보면, 이렇게 열다섯 개의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된다. 물론 ‘운영하다’라는 표현은 사용하기 애매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중 내가 근 한 달 사이 게시물을 올린 계정은 단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 능력도 곧 일취월장할 것 같은 기분’은 이렇게 부정된다. 잔뜩 신나서 부계를 만들어도, 결국 그 계정에 올릴 내용물은 나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계정에서 표현될 페르소나도 결국은 내 자아의 한 부분이다. 내가 표현할 콘텐츠가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각각의 나를 성장시킬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결국 새로 만든 부계는 ‘눈팅용 계정’이 된다. 나도 지금 만들어둔 계정들을 그냥 방치해 두려고 만들지는 않았다. 각 계정을 꾸준히 운영하고, 새로운 나를 키워갈 시간과 에너지가, 혹은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조금씩 다듬어 여러 계정에 아카이빙하거나, 혹은 더 글을 올리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해두게 된 것이다.

  클릭 몇 번이 부계는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게 내 자아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자가 복제를 멈추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직접 내 경계를 넓혀야 한다. 그러지 못해 수많은 내 부계가 방치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또 다른 부계를 만들고 싶다. 부계만 만들면 거기에 올라갈 내용물도 그냥저냥 계속 만들어질 것 같다는 착각이 만들어낸 '부계 중독'이다.

 

 

 

+  사실 연푸른도 내 부계 중 하나다. 그나마 내가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글 쓰는 계정 중 하나. 여럿과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운영한다는 사실은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꼭 필요한 수준의 강제성을 부여해준다. 고맙고 다행인 일이다.

+  아무래도 계정 정리를 곧 한 번은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종강부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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