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초여름의 환기
에디터 / 연푸른
초여름의 풍경 / 김재혁
날이 덥다
보이지 않는 새들이 나무 위에서 지저귄다
새들의 울음소리에 나뭇잎들이 시든다
더운 날 나무에게는 잦은 새 소리가
불안처럼 느껴진다
익어가는 토마토마다 빨갛게 독기가 차 오르고
철길을 기어가는 전철의 터진 내장에서
질질질 질긴 기름이 떨어진다
약속에 늦은 한낮이
헐레벌떡 달려온 아파트 화단엔
기다리는 풀벌레도 없다
아이의 손에 들린 풍선이 터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었다’는 시적인 문장이 너무나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일까. 여름날, 빛이 쨍쨍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면 왠지 평생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가 읽고 싶어진다. 저 문장이 시가 아닌 소설 속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런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전혀 방해가 되지 못한다.
낮에는 햇빛이 눈을 따갑게 비추고 마트에는 하나둘 계절 과일이 들어서지만, 저녁에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살만한 시기. 여름이라는 글자가 주는 무거움에 ‘초’가 붙어 답답한 습기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은. 초여름은 그런 단어다. 연두색과 진초록을 동시에 생각나게 하는.
하지만 김재혁의 시 ‘초여름의 풍경’에 그려진 초여름은 조금 다르다. 나뭇잎은 시들고, 초록색 풀 냄새가 나야 할 여름은 검은색 기름과 고무 냄새로 가득 찼다. 풀벌레 없는 여름밤, 터져버린 아이의 풍선은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가다가는 초여름의 풍경 같은 건 곧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그리고 어쩌면 이미 많이 없어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돼버렸다는.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세계의 어느 한 곳에는 미친 듯이 폭우가 쏟아지는데 다른 한 곳에는 가뭄이 지속되고, 가을에 시작된 산불은 다음 해 봄까지 이어졌다. 기후변화로 동물들의 생활 영역이 달라지고, 그런 동물 중 하나가 옮긴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1년 6개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는 2021년 6월. 이 시점에 ‘환경 오염이 심각하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다’ 같은 뻔한 이야기를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환경 보호 포스터를 그릴 때부터. 뭐 큰일 날까 싶어서 해결을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 ‘뭐 큰일’은 이제 그리 먼 일이 아니게 되었고, 환경오염은 너무나 산재해 있어서 더는 고개를 돌려도 외면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보호는 어렵다. 이유는 다양하다. 몰라서, 혹은 귀찮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서.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는 매일매일 접하는데, 뭐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고 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무력감도 느낀다. 내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존이 과연 얼마나 유의미할까? 이런 전 지구적인 차원의 변화 아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은 과연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밍기적»의 6호, <환경>은 이런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작은 밍기적거림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에디터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망의 <환경보존 동아리와의 만남>은 학내 환경 보존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학생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환경 보존을 실천하고 고민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개인의 작은 움직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바투의 <항상성을 끊어내는 용기>는 논의를 더 큰 주체로 확장한다. 그는 환경보호의 부담이 모든 개인에게 같은 정도로 부여되지는 않음을 지적하며, 이런 현실 속에서 친환경적인 선택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은 연푸른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를 통해 친환경적 선택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 책임은 개인이 아닌 기업에 있음을, 개인이 압박해야 할 것은 다른 개인이 아닌 기업임을 주장한다. 온기의 글 <선량한 이기주의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개인임을 이야기한다. 그는 무지와 게으름을 이유로 환경오염을 묵인해온 모든 시민과 정치인, 기업 그리고 심지어 에디터 자신까지 비판하며 환경을 위한 변화를 촉구한다.
6호 <환경>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쓰레기나 탄소배출 문제 외에도 환경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소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면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6호는 여기에서 마무리되지만, 동물, 바다, 소비, 그리고 그 어떤 주제를 가져오든 이는 아마 환경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 아래에서 모든 활동에 제약이 걸리고, 그 제약으로 인해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그 쓰레기와 일회용 마스크의 잔해가 다시 바다 생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6월. 곧 활동의 제약이 일정 부분 풀리고, 백신이 들어오면 곧 인간 활동이 재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오는 있는 6월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어떤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인지할 필요가 있다. 6호 <환경>의 역할은 그런 생각의 환기를 돕는 것 정도이며, 결국 고민과 변화는 개인과 기업, 혹은 정부의 몫이다. 6호에 다루지 못한 다른 수많은 환경 이야기가 앞으로의 «밍기적»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6호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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