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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9호_주거,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9호_주거,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 편집장의 인사

by 밍기적_ 2021. 9. 28.

주거,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편집장 / 연푸른

 

밍기적의 모든 에디터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간다.

 

얼마 전에는 추석을 맞이해 본가에 내려갔다. 본가는 참 편하고 좋은 곳이다. 그 곳에 있는 내 방은 자취방 마루보다도 훨씬 크고, 마루에 있는 대형 창으로는 늘 벚꽃 나무와 대추 나무가 보인다. 

본가에 내려가면 생활 패턴부터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밤에 잠을 잘 잔다. 자취방에선 잠을 더 잘 자보려고 디퓨저도 놓고 ASMR도 틀고 보온 안대도 끼는데, 그러고도 한 두시간을 뒤척이다 ‘이럴거면 그냥 일어나서 밤을 새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열 번 정도하고 나서야 슬슬 잠에 든다. 그런데 본가에서는 그냥 누웠다 정신을 차리면 아침이다. 기절에 가까운 숙면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은 내가 몸 뉘이는 공간이 어디인지에 따라서 늘 조금씩 달라졌다. 스무살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조그만 고시촌 원룸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나오는 곳이었다. 제대로 된 요리를 하려면 한 쪽 발은 신발장에 걸쳐둬야 했고, 그래서 그 방에서는 떡볶이와 컵라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곳에 살면서 1년동안 6kg가 빠졌다. 그건 내 몸무게의 7분의 1이었고,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 모든 것이 방이 좁았던 탓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 곳에서 일 년을 산 후에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역세권의 투룸 빌라로 이사를 왔다. 내 주거 공간은 ‘자취방’에서 조금은 더 ‘집’에 가까워 졌다. 여기서도 난 여전히 우울했고, 정신 병원을 다녔지만, 그래도 손수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식물을 키울 수 있었다. 

 

주거 공간에는 그 공간만의 특색이 있어서,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 거주 방식도 달라진다. 

본가에 거주하면 부모님이 만들어 둔 규칙에 따라서 살게 되고, 그 대신 계절 과일을 돈 걱정없이 먹을 수 있다. 그러다 자취를 시작하면 건물주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나만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 자율성만큼 책임도 늘어나서, 제 때 청소를 안하면 벌레라던가 곰팡이 같은 끔찍한 결과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기숙사나, 룸쉐어 같은 다른 공간에는 또 다른 규칙과 성격이 있고. 그 것이 나와 얼마나 잘 맞고,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주거 공간은 내가 모든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내 집 마련을 꿈꾼다. 내가 내 삶의 방식을 완연히 통제할 수 있는 공간, 내가 내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모두가 그런 공간을 가지게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집은 삶의 방식을 따지기엔 너무나 열악하고, 또 누군가의 집은 어쩌면 밖보다 더 고통스러운 공간일 수도 있다.

그나마 코로나 전에는 주거 공간의 일부를 밖에 양도해 줄 수 있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공부는 카페에서 하고, 친구는 공원에서 만나며, 밥은 음식점에서 먹는 거다. 하지만 ‘집 밖은 위험해’가 더이상 유머가 아니게 된 지금, 내 주거 공간은 정말 딱 내 집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 밖은 마스크를 써야하고, 어디를 들어가도 큐알코드를 찍어야하며, 불안해하며 손을 씻어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면서 집 안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집이라는 공간만큼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고 반대로 그만큼 ‘집 안’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밍기적의 9호 <주거>는 밍기적의 에디터들이 체험한 주거 공간과 그 곳에서의 생활을 다룬다.

온기의 <세상 모든 닭을 위하여>에서는 ‘닭장 쉐어’라 부르는 렌트 하우스에서 거주했던 에디터의 경험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집은 ‘집 다운’ 공간이 되어야 함을 지적하며 주거 문제 해결을 주장한다. 

망의 <주거의 필수 옵션, 침대>는 새 집을 구하고 있는 에디터에게 ‘침대 옵션’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의 글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좋은 집’의 기준을 살펴볼 수 있다. 

연푸른은 <내 방을 내 방으로 만드는 법>을 통해 자취방을 아늑한 공간으로 만드는 그만의 작은 방법을 소개하며, 자신의 취향을 묻혀 만들어낸 ‘내’ 공간이 주는 안정감을 이야기한다. 

바투는 그의 글 <아무리 얇은 종이라도 앞뒷면이 있다>에서 십 년간 ‘자취/기숙사 살이’와 ‘본가 살이’를 반복하며 느낀 각 거주 방식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냉온탕을 오가며 얻은 그만의 좌우명도 슬쩍 훔쳐볼 수 있다.




바빴던 9월이 끝나가고, 더 바쁘면 바쁘지 덜 바쁘지는 않을 10월이 다가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3시.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기필코 어느 시골 마을에 에어비앤비를 잡아서, 혼자 이 주동안 리틀 포레스트 같은 삶을 살다 올 것이다. 눈 내리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구경하고, 고구마나 구워 먹으며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싶다.

역세권 한 복판. 카페에 가면 노트북을 키고 강의를 듣고 있는 대학생이 가득하고, 책꽂이에 미쳐 들어가지 못해 침대 위에 쌓아둔 책이 이만큼인 이 방에서는 결코 그런 힐링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은, 나를 바꿀테니까. 그러니까 학기가 끝나면 난 반드시 이 공간을 떠나야겠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집을 떠나 더 넓은 밖으로. 혹은 일년 넘게 나가지 못한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삶이 또 한 번 바뀔 수 있기를  기다리며. 9호는 여기서 마친다. 다들 각자의 공간에서 안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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