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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9호_주거,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9호_아무리 얇은 종이라도 앞뒷면이 있다 / 바투

by 밍기적_ 2021. 10. 2.

아무리 얇은 종이라도 앞뒷면이 있다



에디터 / 바투




기숙사 생활과 통학을 병행한 게 7년이었다. 직장 때문에 현재 자취를 하지만 1년에 두 달 이상은 되는 방학 중에는 어김없이 본가에서 생활을 하는 루틴을 반복한 것도 벌써 3년 째. 이렇게 나는 늘 어딘가에서 진득하게 생활을 했다기보다는 다른 두 부류의 생활을 병행했고 병행 중이다. 그렇기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득과 실을 공동 생활에 비추어 가감없이 피부로 느껴왔다.

혼자 지낼 때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단연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있고 싶은 대로 있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서도 나름의 자유를 누리지만, 아무 옷도 입지 않고 다닌다거나, 화장실 문을 꼬박꼬박 잠그지 않아도 된다거나, 갑자기 떡볶이가 땡길 때 시켜서 먹는다던가, 혹은 잔소리 없이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을 수 있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언제든지 친구들을 불러 밤새 음주가무를 누릴 수 있으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생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공간에 나 혼자 있다는 외로움과 적막함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워낙 예전부터 혼자 깜깜한 곳에 있는 것을 싫어했던 터라 혼자 잠드는 것에도 적응하는데 애를 썼는데, 아직도 불 꺼진 방에 혼자 있음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무서움은 여전하다. 조용히 혼자 누워있는 것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고, 나의 근원과 미래 등 무겁고 큰 주제의 흐름에 빠지게 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어디서 오게 되어 이렇게 홀로 이 곳에 오게 되었으며, 나의 이 모든 생각과 행동과 시간이 모여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 종류의 생각은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찾아온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은 이렇게 사색에 잠길 기회와 틈을 주지 않는다.

혼자서 아플 때 서러움은 더해진다. 몇 년째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이제는 익숙할 법 하지만 아플 때면 가족의 품이 아닌 곳은 모두 낯설고 두려워진다. 다정하게 상태를 물어봐주고 죽을 끓여다주는 누구 하나 없이 흰 천장을 바라보고 침대에 누워있노라면 서글픔은 배가 된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면 안 되는 존재야, 절로 다짐하게 된다.

자취의 명과 암이 가지는 공통점은 자유다. 혼자 있어서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모두 자유에서 기인한다. 옆에 있는 누군가는 내가 필요할 때는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만, 내가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에는 간섭이 된다. ‘자유'라는 가치가 가지는 특성 중 하나가 양면성이다. 누구나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아무런 제한이 없는 자유는 되려 자유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자유는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구속, 제한, 간섭과 같이 대비되는 개념이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방학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 아버지와 한 판 붙었다. 최근 무료하고 단조롭던 나의 삶에 큰 활력소가 되어주는 덕질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혼자 지낼 때에는 아무런 장애물 없이, 크게 노래를 틀고 벽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여두는 등 시공간을 무한으로 활용하며 덕질을 무한히 만끽할 수 있었다. 본가에 내려와서는 혼자 살 때 보다야 제한 없이 덕질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험난했다. 작고 소중한 나의 키링들, 휴대폰 배경화면, 생일 카페를 투어하고 받아온 굿즈 등 나의 덕질라이프에 지속적이고 집요한 관심이 이어졌다. 부모님의 관심은 비난이나 비판은 아니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것이 점점 지쳐갔다. 다른 취미 생활이었어도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으셨을까, 싶지만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덕질'이라는 활동이 가지는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 큰 내 딸이 연예인을 좋아하여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할애한다, 는 자체가 엄마아빠에게는 상당한 충격이라고 했다. 엄마도 이문세 좋아했잖아! 되물었지만 그거랑 이건 다르지, 라는 알 수 없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본가에서 지낸 지 3주 쯤이 되어가자 슬슬 자취방에서 노래를 크게 빵빵 틀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졌다. 당연히 가족들과의 시간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덕질을 계기로 혼자서 더 즐겁고 편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이렇게 본가 살이를 1년에 두 번씩 겪었기 때문에, 외롭고 서글픈 타지 살이가 그나마 할 만해진다. 장단점이 확연히 달라 비교가 가능한 두 부류를 번갈아가며 겪는-일종의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것과 같은-경험 덕에 보다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체감한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자극으로 인한 발전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 또한 상당하다.

소소하게나마 나에게는 좌우명이 있다. ‘아무리 얇은 종이라도 앞뒷면이 있다’는 것. 달리 말해 세상 만사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는 양면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러니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낙천적인 결론에 이르게 하는 나만의 작은 주문이다. 십 년 가까이 서로 다른 주거 방식을 병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어떠한 것이든 장단점이 있으니 그 순간에 순응하고 즐기는 것이 최고라는, 진부하지만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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