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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9호_주거,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9호_세상 모든 닭들을 위하여 / 온기

by 밍기적_ 2021. 9. 29.

세상 모든 닭들을 위하여

에디터 / 온기

 

닭장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문간 옆에는 거위가 (꽥꽥)

배나무 밑엔 염소가 (음메)

외양간에는 송아지 (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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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 위엔 고양이 (야옹)

마루 밑에는 강아지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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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동물농장> 가사의 일부이다. 노래를 보면 노래 속 주인공네 집에는 닭장도, 문간도, 마루도 멋드러지는 배나무도 한 그루 있었나보다. 듣기만 해도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정도로, 주인공이 사는 집은 충분히 넓고, 주거의 필수 요소는 물론 힐링 요소까지 갖추고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이제 노래 속 주인공과 전혀 다른 공간에 사는, 스스로를 닭이라고 말하는 이의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가보자. 

 

“나는 나보다 잘 살고있는 닭은 먹고 싶지는 않다고!!!”

 

시즌 3까지 히트한 드라마 <실리콘밸리>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아시아계 배우 지미 양은 한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젠 닭들도 좁고 청결하지 못한 닭장이 아닌 청정 무공해 지역에서 자유로이 사는데, 본인은 HBO에 출연까지 한 배우지만 나는 아직 5평짜리 쉐어룸에 산다는 그의 진심 100% 울분이 느껴졌다. 그의 코미디를 지켜본 모두가 “치킨은 최저 시급보다 비싸면 안된다"는 그의 말에 신랄한 웃음을 터트린다. 지미 양처럼 닭들이 무공해 자연 속에서 길러져야한다는 의견에 나도 누구보다 지지하지만, 나도 우스개소리로라도 “다음 생에는 인간이 아닌 중국 부자의 반려견으로 태어나겠노라"라고 외쳤던 적이 있다. 

 

나는 닭이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그리고 집에는 ‘사람’이 산다. 그런데 나는 닭이었나 보다. 나는 호주에서 있는 1년 내내 일명 닭장 쉐어라 불리우는 ‘다인원 수용 렌트 하우스’에서 생활했다. (지금도 ‘다인원 수용 렌트 하우스’에 안 산다고는 안했다..) 여기서 닭장 쉐어란 호주 대도시 지역에서 법적으로 규정된 렌트 인원 수를 어기고 무분별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좁은 공간을 렌트해주는 것을 말한다. 아마 다른 국가에도 이러한 렌트 형태가 없지는 않을 터인데, 내가 생활했던 호주 시드니에서는 이런 렌트 형식을 공장식으로 기르는 닭장에 비유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시드니에서만 총 세 번 이사를 했지만, 4인실 6인실 잠시나마 16인실 등 인원과 장소만 조금 변했을 뿐 나는 꼬꼬댁, 닭이었다. 16인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아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부연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먼저 코로나 이전만해도 시드니는 전 세계에서 워홀러들이 인원 수의 제한도 없이 몰려드는 워홀의 성지였음을 인지해야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 단기 체류자, 워홀러, 학생 등등 단기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백패커도 따라서 넘쳐났다. 백패커는 다양한 형태를 띄지만 싼값에 여러 명이 머무는 다인실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사진은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되어 관리된 채 찍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저기서 7-8개 국에서 온 다채로운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대형 캐리어와 배낭을 사진 속 장소에 적용해서 공간을 상상해야 한다.)

 

내가 시드니에 도착해 처음 살았던 백패커는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 벙크 침대 무려 8개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렇게 그 방은 16명을  겨우 겨우 소화했다. 그 백패커의 다른 방에서는 더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태어나서 3층 침대는 처음 봤다. 심지어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 침대에서 영국과 독일에서 온 건장한 남성 셋이 짐을 풀고 있었다. 그야말로 방들이 모두 과부하로 체할 지경이었고 사람은 더 체할 지경인 그 광경을 나는 무려 59일간  지켜봤고, 약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방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심지어 나는 그 이후에 이사와 이사 사이에 잠시 주거지가 없던 공백의 시기에도, 몇 푼의 돈이라도 악착같이 아껴보고자 그 백패커를 다시 찾았다. 무서운 사실이다. 분명히 이 상황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는데, 사람들은 어쨋든 적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순응한다. 

 

다시 닭장 쉐어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엔 내가 반 년 가량 살았던 곳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방 한 칸에 벙크 베드 4개로 총 8명, 건너편 방에는 네 명이 살았는 데 놀라긴 아직 이르다. 거실에 모기장같이 투명한 텐트를 치고 자는 2명과 두 방이 이어지는 공간에 또 한명이 살고 있다. 별별 인간 유형을 다 볼 수 있어서, 그 이후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심지어 거실을 셰어하는 두 인도인 남성들은 자신의 생일이라는 알 수 없는 특권 (?)을 내세우며 그 집 거실에 자신의 인도인 친구들을 모두 초대했다. 그는 경악하는 나와 다른 룸메이트들의 표정을 보고도 케이크를 함께 먹자고 권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렌트키나 열쇠를 불법 복제하거나 (불법 복제를 해주는 곳들 역시 시티 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음) 인스펙션 (주거 상태 확인을 위한 불시 검문)이 올 것을 대비하여 누가 들이닥치면 놀러온 손님인냥 연기를 해달라는 부탁받는 일도 있었다. 더 끔찍한 사실은 이 별의 별 캐릭터를 가진 14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주방, 하나의 냉장고,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겨우 겨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나 위기때마다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봤다. 코로나가 발발하자마자 나를 비롯한 모든 워홀러와 유학생들은 가장 크게 직격탄을 맞았다. 호주 정부는 코로나가 발발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기 한참 전부터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내쳤다. 주거 영역에서 역시 보호받지 못했는데, 살고 있던 곳에서 임대인으로부터 사전 고지도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택임대법을 한참 어기고 렌트를 해주던 집주인이 그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영화 기생충 <Parasite>이 소름끼친다고? 도시 하층민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처절한 현실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국민들의 삶의 요소 중 주거 영역을 평가하는 여러 요소 혹은 정량적인 지표들만 살펴보면 수치로는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민 삶의 질>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에서 지정한 최저 주거 기준[각주:1]을 미달한 가구 역시 2006년부터 집계된 그래프의 큰 흐름을 살펴보면 줄어드는 추세이다. 2019년 1인당 주거 면적은 32.9미터 제곱으로 전년도에 비해 1.2미터 제곱 늘어난 수치이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14년과 16년을 기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 지역 (그래프에서는 수도권, 광역시, 도를 구분함) 모두 소폭 상승하거나 개선율 역시 정체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외에도 주택 임대료 및 소득 대비 주택 임대료 비율[각주:2]은 오히려 수도권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주거지에서 일터까지의 통근 시간이라던가, 주거지 주변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 등은 다소 떨어지는 추세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곳이 곳곳에서 보인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이자 건축가 유현준은 반지하 건축물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강하게 목소리를 냈다. 도시의 주거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손꼽히는 반지하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독특한 설계였는데, 정부에서는 2010년부터 반지하 건물 건축이 금지했다. (애초에 반지하를 의무적으로 만들라는 규정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시대적인 요소였으니 그럴 듯 하다.) 

 

그는 더불어 건축법,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를 고친다면 건축 행위라는 하드웨어는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가령 그는 주거용으로는 반지하를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점차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4층까지 올릴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건축법을 완화하여 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의뢰인들은 굳이 지상 공사보다 대략 1.5배나 더 드는 공사비를 감당하면서까지 지하를 발굴해, 그곳에 주거지를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평소 건축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건축물이나 도시의 내재된 의미에 대해 말하며 자주 대중과 소통하던 그의 관점이 또 한번 빛이 났다. 유현준 교수가 말한 소프트웨어가 단지 법의 영역에 그친다면, 나는 나아가서 어떤 부분이 처참한 수준의 도시 하층민을 만들었는 가를 말하고 싶다. 

 

집이 온전히 그저 집일 수 있도록.  

집은 말 그대로 집이다. 전통적인 의미이든 현대적인 의미이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전통 가옥을 가리키는 말이든, 현대의 아파트이든. 가족 혹은 개인, 모여사는 이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편히 쉬어가는 안식처의 역할로 기능하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그렇게 기능하던 집 마저도 집을 통해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인해 그 기능과 의미가 완전히 변질되어버렸다. 

 

나는 이 글에서 거의 90%에 이르는 도시 거주민들, 특히 도시 하층민들의 삶 질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를 꾀해보고자 말을 꺼냈던 상대방들 대부분은 그래도 이런 집이라도, 있어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 곳에 발 붙이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좁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16명의 사람과 꾸역꾸역 살아내고, 햇빛은 커녕 창문도 없는 집에서 살다 마음의 병까지 얻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그걸 참아야 하나? 나는 주거 환경을 이 지경까지 만든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시스템을 찾아내 분노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그저 몸 하나 겨우 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가진다. 참으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서사지만, 분노할 곳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변화시킬 힘이 부족하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 의료와 교육 그리고 주거 영역만큼은 빈과 부의 격차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정부도, 기업도, 민간 단체도, 심지어는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작은 단체들도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라는 데, 가장 먼저 출발해야 할 곳은 바로 여기, 주거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1.  주택의 면적이나 방 개수, 채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정해놓은 것. 4인 가구는 `주거면적 43㎡에 방 3개`를 최저 기준으로 잡고 있다.

    출처: 매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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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 (Rent to Income Ratio)은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월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 = (중위 월임대료 ÷ 중위 월가구소득) × 100 으로 계산할 수 있다. 

    출처: 국민 삶의 질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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