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일상의 파괴이다
에디터 / 망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각양각색일 것이나 여행이라는 것은 분명 일상과의 괴리를 의미한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도피처로 휴양지를 선택하거나, 일상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알기 위해 모험을 떠나거나,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거나, 일상에서 커다란 이벤트가 하나 끝나고 마음을 잠시 다독이며 정리하기 위해 떠나거나. 평범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일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단 꿈처럼 짧은 것이라 우리는 여행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평온함이나 즐거움이 질리기 전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일상은 다시 지루함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여행으로 인해 정돈된 마음이 다시 상기될 수 있는 잠재력의 발현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건, 그리고 여행의 목적이 어떻건 일상과 여행은 분명 떨어진 것이라 일상으로부터 여행을 떠나는 것과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모두 분열과 재구축의 반복이다.
그래서, 여행은 일상의 파괴라고 생각‘했다’. 에디터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렵고 여행을 다녀와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도 괜스레 남들에 비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여행을 가서 즐거운 기억을 잔뜩 만들고 있다 보면 우울감이 따라오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런 즐거움은 다시 느낄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특히나 가족 여행이 그러했는데, 부모님이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방과 후에 노는 것처럼 부모님도 하루 종일 놀고 쉬는 모습을 보며 측은지심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념품을 사오면 여행에서의 기억이 나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한들 사진을 잘 찍지도 않았다. 그건 습관이 되어 아예 사진을 찍지 않는 버릇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진으로까지 남긴다는 것은 기억하고 싶을 만한 사건이고 추억이라는 뜻이기에, 추후 그 사진을 보았을 때 그만큼이나 즐거웠던 때가 있었지, 하고 회고하는 것이 힘들었다. 즐거움을 즐거움답게 즐기지 못하는 건 어딘가 삐뚤어진 마음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고.
비단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힘겨운 일상으로부터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개그콘서트가 아직 방송을 할 무렵에는 그런 말도 있지 않았나.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노래를 들으면 우울해진다고. 에디터는 그 현상이 남들보다 심해 일요일 아침부터 우울해 하는 사람이다. 금요일 밤이 제일 즐겁고, 토요일 저녁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하다가 일요일은 월요일을 생각하며 우울해 있느라고 하루가 그냥 흘러간다. 그렇다고 차라리 하루 종일 평일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에디터에게 있어 여행은 그다지 즐거운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 뿐일까?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색이 있다고 하지만 사람을 몇 가지 성격 유형만으로 유사하게 묶어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여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 그 이유가 에디터와 똑같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행을 미워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즐거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대부분은 종종 일상에서의 도피를 위해서라도 여행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혹은, 여행이 어디 멀리 떨어져 지내던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므로. 다행이도 여러 해를 거치고 여러 종류의 여행을 경험하며 나에게 걸맞은 여행의 유형을 찾아냄으로써 이런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긴 하였다. 방콕 위주의 여행이 좋다든가, 돌아다니는 것보다 실내에서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걸 선호한다든가, 효도 관광을 좋아한다든가 등등. 전자야 체력적인 이유고 후자는 아마 에디터가 어렸을 때 여행이 불호 기호가 되었던 원인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과도기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하는 것도 실내를 벗어나는 것이라 번거로워 했다가, 그 외출이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일상의 해방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납득한 뒤로는 오히려 에디터 본인이 부모님을 밖으로 끌고 나가는 포지션이(?) 되었다. 기호는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경험과 시간, 그리고 이해가 빚어내는 인생 그 자체니까. 지금도 저물어가는 주말의 밤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리는 여행의 마지막 날 시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 아직 여행이나 비일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우울해지곤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져야 할 문제다. 여행이 언제나 나쁜 추억으로 자리하기를 바랄 수도 없으니까, 앞으로의 경험이 지금보다 더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주진 못할지언정 싫어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Magazine_2021 > 11호_여행의 조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호_혼자 여행하는 사람입니다만 / 온기 (1) | 2021.12.07 |
---|---|
11호_스쳐가는 곳 2 / 연푸른 (2) | 2021.12.06 |
11호_스쳐가는 곳1 / 연푸른 (1) | 2021.12.04 |
11호_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바투 (0) | 2021.12.02 |
11호_여행의 조건 / 편집장의 인사 (0) | 2021.1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