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는 사람입니다만?
에디터 / 온기
“One person?”
“..그럼 혼자 오신 거에요?”
“혼자 오신 것 같은 데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지에서 어딜 가나 이런 질문을 한번 씩은 꼭 받았다. 여기서 여행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알쓸신잡에서 패널으로 활약했던 유시민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참.. 개인을 무시해요..”
미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그 말이 계속해서 귓전을 울렸다. 머리에도 가슴에도 울림을 주었다. 나는 혼자 무언가를 몰두할 수 있는 시간도 간절히 필요하다. 그런데 왜 이 귀한 온전한 나의 시간에 나는 당신들이 속으로 무시해도 좋을 외톨이가 아님을 증명해야하는 걸까?
지난 호에서도 이야기 해왔던 주제이지만, 나는 누구나 홀로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쉬지 않고, 아래로 위로 양 옆으로 쉼 없이 움직였다. 나는 이 여정 전부를 “나는 지금 열렬히, 가끔은 더디게 가끔은 속력을 내서 여행 중이야"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홀로 여행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대체 여행은 뭐길래?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는 무엇이길래?
혼자 여행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
힘들어 떠난 여행이 사실은 더 많았지만, 최소한 여행을 다녀오면, 그 여행은 어떤 사실을 나에게 알려준다.
먼저 여행은 내가 몇 달을 끙끙 앓으며 괴로워하던 그 일이 사실 별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꽤 많은 순간, 여행은 내가 이다지 많은 수의 ‘좋은 사람’을 단 한 번의 여행에 만나는 사람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니까 그 말은 조금 더 운이 좋은 사람, 더 나아가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알려준다.
난 누가 간섭하는 삶 같은 건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밍기적>에서 내내 속내를 드러낸 바와 같이, 나는 가끔 누가 내 인생을 비집고 들어와 나름의 질서를 갖춘 채 놓아둔 내 삶의 조각들을 엉망으로 흐트러놓아주길 기대한다. 그게 바로 모순적인 내가 혼자 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다.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모순적인 기대를 충족할 수 있다. 나는 나 하나만 챙기면 충분할 만큼 홀가분한 짐과 마음으로 떠나왔고, 자유롭다. 하지만 그 곳에선 몇명이나 여정을 같이할 사람이 생길 지 모르고, 원한다면 충분히 함께 떠날 새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듯, 홀로 떠난다면 가능할지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하나의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에서의 여행만이 아닌 몇 십년여를 뛰어넘는 시간 여행을 함께 보여준다. 주인공의 돌발 행동으로 시작된 여행은 한 세대도 더 전에 일어난 레지스탕스들의 혁명과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끄집어내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한다.
지금 잠시 머물러 있는 곳 이자,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종로 역시,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 (옛 것과 오늘 날의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장소)이다. 다만 그게 가장 많이 느껴지는 순간은 역시, 혼자 그 장소에 있을 때이다. 종로나 을지로에 친구와 함께 걷거나 밥을 먹을 때는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바이브나 착각을 느끼기 힘들다.
시간 여행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경주에 갔다가 천 년도 더 된 고택을 방문했는 데, 그때 조용히 혼자 고택과 따라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도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현실에서도,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모두 차분히 홀로 앉아, 우선 눈을 감고,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 해본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그런데 언제 처음 혼자 떠났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인가,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날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인데, 그 날 따라 겨울철 회를 먹으러 부산에 가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더 어릴 적부터 엉뚱한 구석은 있었던 것 같다.) 막장에 신선한 회를 멋 없이 두껍게 썰어주는 부산식 회를 마음껏 즐기며 나는 그때부터인가 겨울이면 부산의 겨울 바다와 맛 있고 멋 없던 이모님네 싱싱한 제철 방어회가 생각이 났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여행 할 건가?
10월은 개인적으로 고된 날들이었다. 내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변 환경과 사람들로 인해 무력감에 빠지게 되어 나는 스스로를 버티기 힘든 상태로 정의 내렸다.
나는 이럴 때면 늘 말도 없이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 어렵게 잡은 기회이니만큼 큰 기대를 걸었지만, 기대와는 달랐기에 낙담할 수 밖에 없었던 날이 이어졌다. 나는 말레꼰 비치에 종일 앉아 스스로를 위로했다. 워홀을 떠나 하루 19시간을 일하던 날들이 이어져 너무 지쳐 아무 일에도 손을 델 수 없을 때도 밤에 갈아입을 옷 몇 벌만 단촐하게 챙긴 채 훌쩍 떠났다. ‘지금은 정말이지.. 재충전이 필요해..’ 고된 날들이 이어질 때면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늘 새로운 사람이 생긴다. 이번에도 일주일 정도의 여행 끝에 총 8명의 친구가 생겼다. 그 중엔 [전혁림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단독 전시전을 열게 된 작가님도 계시고, 나 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여행을 떠나온 간호사 선생님도 계시고, 묵었던 내내 수다를 끊임없이 떨었던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 남매 분도 계신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여행을 다닐 것인가라.. 앞으로는 안 될 이유가 어디있을까? 여행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데?
여행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당신도 떠날 수 있다.
여행은 시간과 돈과 마음의 여유, 삼 박자가 균형있게 맞아 떨여져야 가능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넘치게 부유한 사람만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여행이 반드시 부유한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들은 누가 있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행 유튜버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빠니보틀, 곽튜브, 여락이들.. 나에겐 이들이 바이블이고, 가이드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공유할 수 있는 기억때문일까? 나는 <대한항공 1등석 리뷰>나 가령 <두바이 7성급 호텔에서의 호캉스 하룻밤> 같은 후킹한 제목의 영상이나, 엄청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채널들보다, 겉 멋 부리지 않는 그들의 영상에 더 눈이 반짝인다. 나도 저렇게 혼자서도 당당히 걸어나가야지. 저렇게 큰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담담히 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시간 역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마음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가진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에 더 많이 할애하는 것 역시 마음이 결정하는 문제가 크다고 봤다. (돈도 마찬가지) 물론 돈과 시간의 여유라는 것은 꽤나 상대적이라 아무리 내 견해라지만 함부로 단정지어 기다와 아니다를 판단내리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갖추어있다해도 마음 한 올 내기 힘들다면 여행은 가능해지지 않는다. 더욱이나 혼자하는 여행의 진입 장벽이란, 그 마음 한 올이 단번에 망설이기만 하던 마음을 단번에 깨부수기도 하고, 영영 여행을 가능치 않게 하기도 한다.
에헤이 그건 관광이지 여행이 아니라고
홀로 여행을 한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함께 가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한 투어나 일정보다는 발 딛는 곳대로 향하는 자유 여행객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게 가장 훌륭하고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각자가 즐기고 싶은 방식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여행이 가진 가장 대표적인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이번엔 관광(?)과 여행(?)을 병행하는 여정을 선택했다. 통영에서 한 선셋 투어는 정말 황홀했다. 숲 길부터, 차문을 열고 천천히 도로의 해안선을 따라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마지막엔 산 중턱까지 다시 올라 거의 다 져 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것. 가이드님이 애정을 가지고 소개해 주어 방문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세상에 이다지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가이드님 역시 통영이 고향이 아니셨다. 그 분은 경기도민으로 반 평생을 살아오다 우연히 경험한 통영에 사랑에 빠져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이었고, 삶의 원동력이라며 보여주시던 아내 분과 따님 분의 사진 역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였다. 가이드님은 이내 계절마다, 시간마다, 장소마다, 심지어는 함께 석양을 즐긴 사람이나 우연히 흘러나온 음악이 달라짐에 따라서도, 각자의 노을은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고 했다.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던 것이, 수 십 아니 수백 번도 더 본 풍경일텐데,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틈틈이 그 날의 노을을 소장하기 위해 가이드님 역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여러 번 그 장소를 방문한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만든 계획과 일정은 지니는 가치가 훨씬 크다. 좋은 것을 공유해준 그 마음 역시 감사하다. 그 날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홀로 방에 돌아와 감상을 짧게나마 메모에 남기며 나는 그날도 혼자서, 또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다. 이렇듯 때로는 함께 또 때로는 온전히 홀로 그 시간을 즐기는 것. 때로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계획을 존중하며, 때로는 계획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터벅터벅 걷는 것! 그 모든 것이 본인의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여행을 몇 번 더 해보았다고 누군가를 뜨내기라고 낮춰부르며 으스댈 필요도, 여행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지레 겁만 먹을 필요도 없다. 여행은 그냥 떠나면 되는 것, 즐거우면 그 뿐 인 것이니까.
통영에서 김기림 대장님이 반한 그 노을. 그리운 통영과 통영이 내게 준 선물같은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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