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에디터 / 바투
그날도 추웠다. 밍기적의 역사적인 탄생일이라 거창하게 기념하고 싶은 2020년 12월의 어느 날. 크게 보면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이지만 서로 간의 거리가 꽤 되었던 우리는 각자의 퇴근 후 대중교통을 부지런히 환승해가며 익선동의 한 술집에 모였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우리는 밍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끈끈하게 묶일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만나 크리스마스 머리띠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2020년의 마지막을 추억했다. 그러던 중 연푸른의 잡지 발간 소식을 듣고 제법 재미있겠다는 호기심이 들었고, 그렇게 밍기적은 호기롭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딱 1년 뒤인 2021년 12월에 다시 모였다. 거창하지 않고 투박한, 소소한 얘기도 편히 오갈 수 있는 그런 곳을 찾다가 마주한 한 오래된 술집에서 만나 우리의 찬란한 1주년을 기념했다. 먼저 도착한 망과 나는 부대찌개 하나에 먼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학기말이라 정신없는 각자의 사정을 나누며 동질감을 느끼던 찰나, 방금 막 일을 마치고 온 온기가 급히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에 직장인의 책임감과 고단함을 느끼며 온기를 응원했다. 뒤이어 연푸른이 도착함으로써 완성된 밍기적 편집자들은 잔을 부딪히며 1년 간 치열했던 마감과의 사투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만난 사이냐는 사장님의 물음에 저희는 잡지를 만들어요- 하고 너무나도 당당히 말해 다소 민망했을 때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반가움을 표하며 직접 글감을 하나 내어주겠노라 하셨다. 밀린 주문이 끝나고 사장님은 아주 익숙한 듯이 벽에 걸려있는 통기타를 꺼내들고 악보 앞에 앉으셨다. 가늘고 감미로운 사장님의 목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기타 선율과 함께 우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빠져들어갔다. 연달아 두 곡을 선사해주신 사장님은 우리의 환호에 쑥스러우신 듯 조심스레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주셨다. 꽤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었다며, 심..을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 유명한 심야식당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니, 듣고 보니 정말 모든 것이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낮은 천장, 밝지 않은 적당한 조명, 빛바랜 메뉴판. 어떤 주문이든 척척 받아내는 사장님의 1인 주방.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평범해보이지 않는 식탁과 의자도 알고보니 몇 십년의 역사를 직격으로 맞은 귀한 몸이셨다. 세월이 묻어있는 이 곳과 사장님을 만난 것에 기쁨과 설렘을 감출 수 없었고,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긴 느낌에 벅차기까지 했다.
세월과 스토리를 담은 술집에 앉아 1년 새 자리도 모습도 많이 변한 서로를 바라보다보니 자연스레 밍기적이 시작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각자의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잡지를 시작했을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에 도달했다. 신변잡기든 소설이든 뭐든 써서 기록하는 쓰는 습관을 들이고도 싶었고, 만나면 늘 즐거운 조합이라 같이 한다면 뭔들 즐겁지 아니하겠냐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밍기적의 대주제이다.
매월 달라지는 밍기적 주제는 하나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 바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시작, 카페인, 타이밍, 그리고 이번 호의 주제이자 12월의 밍기적에게 의미있는 ‘기념’까지.
잡지 발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여러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랜 기간 유지해온 것을 기념한다. 태어난지 34년째, 연인와 만난지 2주년 등. 이 험난한 세상에서 무엇이든 유지하기가 힘들어 그런 것일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자축인가. 한편으로는 기념은 그 자체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몇 번만, 몇 달만 지나면 1주년인데 우리가 여기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하는 클래식한 방법으로 동기를 고취시킨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가는 길 내내 붙어있는 이정표처럼, 기념일은 그렇게 우리를 앞으로 나가가게 한다. 등산 코스에서 이정표를 보면 반갑고, 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살펴보게 하고, 잠시 쉬었다 또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념일은 출발과 시작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 남은 여정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계속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그만두고 싶을 때, 꼭 버텨야만 한다면 미리 기념일을 생각해두자. 그리고 그 날 정말 기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기념일’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때까지 걸어온 나날들을 결과적으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기념하기 위해 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것이다.
오래될 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들처럼,
우리의 밍기적도 그렇게 겸손하게 빛나길 바라며.
밍기적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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