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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1/12호_일상을 이야기로, 기념

12호_기념하지 않는 삶 / 온기

by 밍기적_ 2021. 12. 29.

기념하지 않는 삶


에디터 온기

Intro

개인적으로 12월은 좋아하는 달이 아니다.

한 해의 마지막, 한 해를 함께 달려온 사람들을 격려하고 함께 모여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긴다. 올해는 특수한 제약이 생겨 모임이 확연히 줄어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연말인데, 그래도 12월인데”를 외치며 함께 모여 기념하는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연히 기념해야 할 우리의 한해 끝 자락이니까.

만남을 가지지 못 하더라도, 소소하게나마 선물을 주고받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최소한 한 해동안 수고했다는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거나, 다음 해를 기약하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쨋든 12월은 여러 기념할 것들이 넘쳐나는 달이다.

12월은 밍기적에게도 특별한 달이다. 바로 작년 이맘 때즈음 밍기적은 술 한잔을 기울이다가 말하자면, 어쩌다보니(?) 만들어졌다. 분명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우리는 선후배 사이에서 각자 사회로 나간 뒤 접점 없이 몇 년을 지냈다. 오랜만에 귀국 후 그리웠던 사람들을 하나 둘 모아 만남을 가졌고, 밍기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가 올해 12월, 바로 얼마 전 밍기적의 1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모이는 자리에 이견이 없었다. 밍기적 네 명의 에디터 모두에게 12월은, 그리고 프로젝트 밍기적은 이미 중요한 의미로 자리잡았으니까.

12월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달이다. 2016년즈음부터였을 것이다. 2016에 나는 오랜 수험 생활을 마치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일본 여행을 택했다. 그땐 학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친구들은 여전히 학교에, 나는 오사카에. 기분이 묘했다.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된 그 때부터 였을 까? 나는 매 해 12월, 특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각기 다른 장소에서 특별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 혹은 강박이 생겼다.

내 나이 19의 첫 해외여행 이었고, 처음 비행기를 탄 날 이었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16년도의 연말은 나고야의 나바나노사토 불빛 축제를 현지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즐겼다. 17년도엔 서울, 여의도 타임스퀘어에서 당시 교제 중이던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18년은 절친인 Mariah와 뉴욕의 록펠러 센터 앞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함께 소원을 빌었다. 19년은 잠시나마 하던 일도 내팽겨둔채, (사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식당 안 직원이고 손님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뛰쳐나왔다.) 시드니의 하버 브릿지 위에서 대형 불꽃 놀이를 보러 나왔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자 서로를 껴안고 다음 해의 소망을 빌었다. 그리고 20년의 12월은 근무지였던 경기도에서 서울로 갓 올라와,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 밍기적 멤버들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21년의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렇게 매 해 달라지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기념이 될 만한 일들을 했다. 차곡차곡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을 쌓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제와서 무엇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바꾸고 싶은걸까? 무엇이 사실은 솔직하지 못한 내 마음인 걸까?

뭐가 그렇게들 유난들이야?

그저 100이라는, 200이라는 숫자일 뿐,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데. 그 상징적임을 표방한 날짜가 부리는 마법은 무서울 정도다. 사람을 잔뜩 긴장시키는 그 날에만 딱 반짝이고 마는 관계는 피하고 싶다. 기억하고, 축하하는 것이 아닌 마치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기만 하는 관계는 다 티가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시답잖은 것들을 기념하는 사람들을 세모눈을 뜨고 보게 된 것 같다. 유난스럽게 지나가지 않아도 좋을, 그냥 그대로 두어도 좋을 관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말이다.

사실 너네 그거 다 이용당하는 거야

기념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은 꼭 서로에 대한 애정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념일이나 축하 선물 같은 것들은 때때로 부담이 되거나, 언젠가는 되 갚아야 할 빚으로 전락하기도 하니 말이다. 바로 최근, 내 절친한 친구는 수십 명에게 생일 선물 세례를 받았다. 덩달아 내가 부담이 될 정도의 화려한 생일 축하였다. 지금껏 인생을 잘 살아왔음을 느끼게 할 만큼 많은 이들이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고 “기념”한 것이다. (나는 내년부터 너의 생일을 기꺼이 잊어주겠다고 농담도 던졌다.) 한편으로는 다음 해 내내 선물을 챙겨준 이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기념해주기 위해 그녀 역시 길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이나, 기념일들이 많아진 데는 상업적인 이유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건 사람들의 마음 속 연약한 부분을 공략한 커다란 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그 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본 혹은 시장. 한창 빼빼로 데이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저런 게 다 상술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빼빼로 데이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뭇매를 맞았다. 직접 대면하여 선물을 전하지 않더라도 선물을 주고 받기가 무척이나 쉬워진 것들을 보면서도 느낀 것이 있다. <선물하기> 시장도 시국에 맞추어 덩달아 덩치가 커졌는 데, 이것 역시 시국이 시국이더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한 시의적절한 사업의 확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기념은 함께하는 게 기념이니까

함께 기념 하던 것들을 더 이상은 기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나도 혼자서만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생겨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밍기적 4호 <기억>을 참고하면, 필자는 이상할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어 상대를 당황시킨 이력이 많다.)

우리는 분명 큰 이벤트는 물론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기념하던 관계였는데, 이제는 정말 기억하고 기념해야할 것들조차 번거로운 행위가 되었다 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상대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바란 것이냐 라며 울먹이는 친구를 보며 나는 따라 마음이 서글퍼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뿐이었다. 이처럼 무뎌진 관계에서 혹은 각자의 삶에서 서로의 존재가 더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기념하던 것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곤 한다. 슬픈 일이다.

나는 아주 쌀쌀맞은 사람일 수도

기념할 것 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 기념하지 않게 되어간다는 것은 듣기에 굉장히 냉소적이다. 기념할 것 없음은 함께 의미있는 무언가를 나눌 누군가의 부재를 뜻 하는 것 같으니. 나는 왜 현재를 기념할 것 없는 삶이라 칭하고 있을까? 나에게 더 이상 소중하게 여길 사람이나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닐텐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까지 차가워져버린 걸까.

누군가의 인생에서도 우선 순위가 되지 못 함을 깨달은 후였을 수도 있고, 더는 나에게도 우선 순위 같은 것들을 두지 않게 되어버린 후일 수도 있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명확하게 기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기념비적인 날들을 함께 보낼 누군가를 찾는 것은 일생 일대의 큰 과제가 되어버렸다. 내 시야에서 중요한 것들과 중요한 사람들을 스스로 치워버렸으면서, 뒤늦게 자기 연민에나 빠져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기념까지, 그게 뭐 별일이라고 등의 건조한 표현으로 자기방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곧 한 해가 마무리되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기념 그리고 12월의 온도

나는 밍기적의 1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21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을 따뜻한 연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문장으로 포문을 열었다. 어쩌면 나는 이번 호 주제 의식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연말이 따뜻하진 않을 것이다. 지난 해, 밍기적을 시작하며 새로 정하게 된 필명 “온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겐 과열될 정도로 뜨거운, 누군가에겐 냉골방처럼 차가운 <기념>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와 떼놓을 수 없는 지금은 “연말”이다.

그들 각자의 사연이 담겨 여러 온도가 섞여지면 나는 결국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한 줌의 온기만 남은 글 한편을 써낸다. 이것은 차가운 말을 내뱉지만 한 줌의 온기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이중성과도 이어진다. 이번 호의 주제였던 <기념>에서 역시 ‘기념하는 행위'에 대한 나의 뜨겁고도 차가운 견해들이 뒤섞여 미지근한 한 편의 글을 써냈다.

요란하게 기념하지 않아도 좋을 관계를 많이 만드는 사람도. 또 올해도 기념할 일을 많이 만들자는 말을 건네는 사람도. 각자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념하고, 또 기념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겨우 작은 불빛과 온기만을 낼 촛불을 밝힌다. 저 마다의 온도로 한 해의 끝이 평안히 마무리 되기를 바라며, 이만 21년 마지막 온기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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