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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2/13호_움직임의 궤적을 따라, 성장

13호_움직임의 궤적을 따라, 성장 / 편집장의 인사

by 밍기적_ 2022. 1. 27.

움직임의 궤적을 따라, 성장

 

편집장 / 연푸른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늘 지난 일년을 돌아보는 컨텐츠가 유행한다. 올해 나온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인물에게 상을 주고, 올해 최고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 사고에 등수를 매기는가 하면, 올해의 트렌드를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같은 시기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올해 잘 쓴 물건을 리뷰하는 영상이 유튜브 곳곳에서 추천되고, 사람들은 새로운 다이어리나 스케줄러를 사며 지난 해의 다이어리를 꾸준히 썼든 그렇지 않든 뒤적인다. 인스타그램 피드는 올해의 나를 기록하는 친구들의 게시물로 가득 찬다. 올해는 이런 해였고, 이런 것들을 배웠고. 1년동안 수고했다, 장하다 나! 

이렇게 내 일년을 정리하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지, 어떤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몇 년 동안 묵혀둔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과거의 내가 적어둔 짧은 글들은 내 생각의 궤적을 훑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도 과거의 내가 써 올린 기록을 조금 뒤적여 봤다. 그 중 일부를 여기에 공유한다. 아래는 2020년 12월 31일에 쓴 글의 일부다.

 

올해 나는 내가 조금은 컸다고 느낀다. 물론 매년 나는 조금씩 컸겠지만. 

2019년의 나는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상태, 그래서 완벽한 상태를 설정해뒀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이탈해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이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려고 애썼다. 그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나는 내가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올해는 그 '완벽한 상태'에 의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이상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있겠어. 다들 자기만의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거지. 이상적인 상태만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건 이상하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사람들만 정상인 세상이라면 그건 그 세상이 이상한 거다. 그래서 올해의 나는 그냥 내가 있던 자리에서 앞으로 갔다. 작년에는 내가 나아졌다고 느꼈다면, 올해는 내가 컸다고 느낀다.

 

지금 보니 상당히 의미심장한 글이다. 도대체 큰다는 건 뭘까? ‘컸다’와 ‘나아졌다’의 차이는 뭘까? 

 

2022년의 여는 밍기적의 13호 주제는 <성장>이다. 성장의 사전적 정의는 (1)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 (2)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짐 (3)생물체의 크기, 무게, 부피가 증가하는 일이다. 사전이 정의하는 성장은 그 방향성이 정해져있다. 성장하려면 커지거나 증가해야 한다. 작아지거나 감소하는 건 성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젠 커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부피가 커지는 것만이 성장이 아님은 확실한데, 무형의 커짐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생물이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국가와 같은 조직이 ‘발달’하는 것,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과 체제가 더 ‘구체화’되고 ‘발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방향성은 정해져 있는 걸까? 각각의 대상에 대해 ‘성장’이 일컫는 방향성은 모두 같은가?

 

밍기적의 13호는 다양한 성장에 대한 각 에디터의 이야기를 담았다.

바투는 그의 글 <국가의 성장>에서 체제의 성장에 대해 말한다.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도 민주주의적 가치를 잘 정착시켜 온 것으로 평가받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제시되는 공약과 후보의 여러 발언을 보며, 바투는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실제로’ 전진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망의 <성장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는 모두 은수저가 물려 있음을>는 인간의 성장을 다룬다. 인간의 성장은 헤맴과 쉬어감, 뒷걸음질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의 성장과는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이 글은 애니메이션과 웹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의 성장을 살펴보며, 인간의 보편적 성장 가능성을 긍정한다.

연푸른의 글 <다육과 나>는 반려 식물과 이를 기르는 에디터 본인의 성장기를 함께 엮은 에세이다. 커가고, 죽어가고, 다시 살아내는 다육 식물을 보며 에디터 역시 함께 크고, 치유 받고, 가지를 내렸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가지가 발달하는 것만이 성장인 것은 아님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온기의 글 <성장통>은 성장에 압박을 다룬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성장을 해야만 하지만,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럽다. 끝없는 성장에 대한 압박을 받아온 온기는 그런 고통 끝에 성장을 이루고 나면, 그 뒤에는 또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성장과 혹사 사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다시, 도대체 큰다는 건 뭘까? ‘컸다’와 ‘나아졌다’의 차이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답을 말해보자면, 컸다는 나아졌다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무언가가 ‘나아졌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상태가 있어야 하고, 여기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지점으로 쏘는 레이저가 아니라, 수만가지 다른 길로 뻗어나가는 달빛을 보고도 우리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커졌다는 표현은 변화의 방향과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 나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지지 못한 움직임까지 포함할 수 있다. 그것이 커짐이니, 성장이 뜻하는 바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난 일년을 함께하며, 나와 밍기적은 모두 조금씩 성장했다. 밍기적과 함께하는 2021년을 정리하며, 나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올해 난 별다른 고민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나 보다. 바쁠 땐 바빴겠지만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일의 연속이었나보다. 어제를 오늘로, 오늘을 내일로 끌고 가지 않는 일 년을 보냈나 보다. 잘했네 나. 잘 살았네.
내년에는 나를 좀 모아봐야겠다. 지난 몇 년간 알록달록 살아봤으니 이제는 채도를 높일 거고, 물감을 모았으니 그림을 그릴 것이다.

 

어제를 오늘로, 오늘을 내일로 끌고 가지 않은 덕분에 무엇 하나 눈에 띄게 ‘발전’시킨 것이 없었다. 다만, 늘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며 매일 새로운 궤적을 그었다. 밍기적이 추구하는 성장은 그런 것이다.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닌, 자그마한 움직임의 흔적 하나하나. 2022년에도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이어갈 것이다. 올해도 우리가 함께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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