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과 나
에디터 / 연푸른
내 자취방 마루 창틀에는 다육이 세 화분이 쪼롬이 앉아 있다. 2018년부터 데려와 길렀으니 함께 산 지가 이제 곧 4년이 되어가는데, 이렇게 소개를 하려고 보니 이 녀석들이 어떤 종인지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다. 오래 기른 것치고는 가진 정보가 많지 않아 미안하다.
세 화분 중 두 화분에는 같은 종의 다육이가 자라고 있다. 2018년 여름에 근처 모종가게에서 사온 이 녀석의 애칭은 ‘콩나물.’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게 생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잎이 싱싱한 콩나물 머리를 닮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이 녀석은 데려온 그 해 여름부터 쑥쑥 키를 키웠다. 한 삼 일이 지나면 조금 커졌나 싶었고, 일주일이 지나면 자랐다는 게 티가 났다. 어느 날에는 줄기의 끝에서 새로운 연두색 아기 잎이 고개를 내밀었고, 며칠 뒤에는 연두색이었던 잎이 초록색으로 단단해져 있었다. 잎은 줄기에 달린 상태로도 저마다 고슬고슬 뿌리를 내밀고, 그 뿌리 덕에 줄기의 가장 안쪽은 무슨 맹그로브 숲처럼 빼곡하다.
다른 한 녀석은 애칭이 따로 없다. 학교 심리 상담 센터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해 선물로 받은 이 녀석은 줄기와 잎이 아주 단단하게 붙어 있다. (손으로 슬쩍 건드리면 잎을 우수수 떨어뜨리는 콩나물과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그냥 ‘가장 튼튼한 녀석’ 정도로 부른다. 튼튼한 녀석이 자라는 속도는 콩나물보단 조금 느리다. 날 때부터 단단한 잎 한 쌍은 손을 모으듯 서로에게 기대어 세로로 나고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벌어져 햇살을 만끽한다. 튼튼한 녀석의 잎은 질감도 훨씬 거칠어서, 투박하지만 강인한 장인의 손을 연상시킨다.
극도의 우울함에 시달렸던 옛 몇 달 동안 나는 다육들이 크는 걸 보면서 살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마루로 나가 다육이를 구경했다. 이 녀석들이 어서 더 빨리 자라기를, 연두색인 잎이 어서 초록색이 되기를, 가느다란 줄기가 더 단단해져 갈색이 되기를. 마치 내가 보고 있으면 더 빨리 그렇게 되기라도 할 것처럼 화분만 보며 멍을 때리던 시간들이었다. 지나친 관심은 가끔 독이어서, 그러다가 물을 너무 많이 줘버린 한 다육이는 물러져 죽어버리기도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도선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종을 아는, 토끼 모양의 자구가 귀여운 친구였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자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나는 여전히 바보 같고, 똑똑하고 매력 있는 내 주변 사람들과는 평생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거의 실수들은 현재의 나를 멈췄고, 멈춰있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때도 다육들은 잘 자랐다. 콩나물은 일주일이 다르게 쑥쑥 자랐고 튼튼한 녀석의 잎은 투박하지만 강인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이 자라기 위해서는 내 보살핌이, 내가 주는 물이 필요했다. 그래, 그들은 내가 필요했다. 그 때의 나는 그걸로 살았다. 다육들에게 내 모든 의지를 의탁한 채로, 매일 아침 마루에 나가 다육들을 보면서.
작년 겨울에는 자취방에 다육이를 두고 삼 주동안 본가에 머물렀다. 어차피 겨울이라 물을 자주 줄 필요는 없으니 별다른 걱정 없이 본가에 내려갔다가 돌아왔는데, 돌아온 방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차가운 유리에 볼을 부빈 채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다육들은 추위에 잎이 얼어 투명해진 상태였다. 함께 자취를 하던 오빠가 창문을 자주 열어놓고 살았던 건지 뭔지, 원인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거다.
그날은 펑펑 울었다. 인터넷에는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녹여보라는 조언이 적혀 있었는데, 창문을 닫고 안으로 들인 다육들은 녹음과 동시에 누렇고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국으로 나온 시래기, 너무 오래 끓여버린 청경채처럼. 원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한 친구는 (이 글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줄기까지 힘을 잃어 아예 가망이 없어 보였고, 나는 콩나물과 튼튼한 녀석이라도 살려내려고 인터넷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얻은 조언에 따라 죽은 잎을 조금씩 잘라냈는데, 한 줄기 두 줄기 자르다보니 곧 다육들이 점점 작아져 원래의 반의 반 정도 크기가 돼버렸다. 나랑 같이 몇 년을 함께 살며 길러낸 소중한 잎과 줄기들을 그렇게 내 손으로 하나하나 잘라냈다.
그 후 며칠간은 매일매일 다육 화분을 날랐다. 햇살이 따뜻한 낮에는 햇빛을 받을 수 있게 창문 근처로 다육을 옮기고, 밤에는 비교적 따듯한 마루 안쪽으로 화분을 옮겼으며, 환기를 할 때는 더 따듯한 내 방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러고도 이 녀석들이 앞으로 아예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새 잎들은 원래 늘 줄기 끝에서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랬던 줄기 끝은 이미 녹아 없어진 후였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육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튼튼한 녀석의 새 잎은 사라진 줄기 끝, 그 바로 아래의 작은 틈에서 나기 시작했다. 냉해로 잎을 잔뜩 잃어 앙상한 가지가 여전히 아래쪽에 그대로 있지만 그 위로 새롭고 강인한 잎이 났다. 콩나물들은 좀 더 무성해졌다. 위로 키를 키워가는 대신 옆으로 가지를 쳤고, 그 가지는 원래 있던 가지를 뛰어넘어 더 길게 길게 자랐다.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살아내고 있었다. 더 길고 튼튼하게 새 잎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육들이 살아내는 동안, 나도 내 잎을 키웠다. 원래 해오던 공부는 솔직히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대신 옆에 새로운 가지를 냈다. 새로운 취미를 가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됐고, 추지 못하던 춤을 추고, 읽지 않던 글을 읽으며, 표현하지 않았던 감정을 뱉어냈다. 그게 내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아직은 할 말이 없지만, 내가 키워낸 새 가지들은 적어도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줬다. 나는 앞으로도 더 클 수 있다는 걸, 내 생장점은 한 곳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려줬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다육들이 자라는게 내 인생의 몇 안되는 재미였던 날들. 다육에게 말을 걸고, 웃고. 다육이의 성장이 마치 내 성장 같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그 때처럼 다육들을 보며 살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나를 보며 살 수 있게 되었기에, 나 자신을 더 큰 화분으로 옮겨가며, 나의 자람을 기대하며 살 수 있게 되었기에.
나는 우울을 통과했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내고 있고, 이제 더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곧, 더 무성한 숲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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