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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_2022/13호_움직임의 궤적을 따라, 성장

13호_성장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는 모두 은수저가 물려 있음을 / 망

by 밍기적_ 2022. 1. 28.

성장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는 모두 은수저가 물려 있음을

 

에디터 / 망

 

 성장이란,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을 의미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그렇지만 우리는 성장을 단순히 육체적 발달에만 국한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점점 커짐’이라는 것은 경험의 세계를 뜻하기도 하며 정신적 성숙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해야만 하는가? 경쟁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동식물은 도태되고 마는가? 그렇다. 동식물은 어쩔 수 없이 성장해야만 한다. 특히 가축으로서 키워지는 동물과 농장에서 재배되는 식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조금이라도 산란 수치가 낮아지거나 젖이 도는 주기가 빈약해지만 도태되고, 부상을 입으면 마찬가지로 도태되어 고기로 만들어지기 위해 실려간다. 하지만 인간은 경제동물만큼의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언제든지 원하면 성장을 멈추고, 쉴 수 있고, 돌아갈 수 있고, 헤맬 수 있다. 헤매더라도 결국 우리는 어딘가에 도달하기 마련이고, 성장과 나아감이 두려워 뒷걸음질 했을지라도 그 순간마저도 경험이다. 뒷걸음질 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깨달음을 주고, 설사 인생 최악의 인연을 만났더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될 일이다.

 여기에는, 그러한 ‘뒷걸음질’을 겪은 두 인물이 있다. 둘은 모두 일본 만화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지만 10대로서 겪는 방황 속에서 멘토를 만나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울림이 되는 존재들이다. 한 명은 <마인탐정 네우로>로 유명해진 작가 마츠이 유세이의 후속작, <암살교실>의 주인공 시오타 나기사이며 다른 한 명은 <강철의 연금술사>로 우리에게 더 익히 알려진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후속작 <은수저>의 주인공 하치켄 유고이다. 성적으로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고, 높은 성적을 얻을수록 A반에 배정되어 수준 높은 교육을, 낮은 성적일수록 F반에 배정되어 교사 한 명과 산속에서 교육을 받는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에서 주인공 시오타 나기사는 F반 학생이다. 공부 못하는 F반, 뭘해도 실패하는 F반, 낙오되면 그곳으로 가야하는 수치스러운 낙인으로서의 F반. 그곳에서 시오타 나기사를 비롯한 F반의 학생들은 성장을 포기하지만, 결국 그들의 인생을 바꿔줄 멘토를 만나게 된다. 하치켄 유고 또한 마찬가지다.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아버지의 공부 압박에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 지은 주인공 하치켄 유고는,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하고 중3 담임선생님께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기숙 생활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대답하는 하치켄 유고에게, 그의 중3 담임선생님은 에조노 농업 고등학교를 추천하고, 한번도 농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본 적 없던 하치켄은 그곳에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비법을 찾게 된다. 

성적이 순위가 아닌, 암살이 순위가 되는 이상한 교실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F반에는, 본교에서 벌점을 많이 받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들만 모인 소위 문제아 집단이다. 본교는 통학이 편한 평지에 있지만, F반의 교실은 본교 옆에 있는 산속에 위치해 등교부터가 쉽지 않다.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본교에 가야 하지만, 그 외에도 축제나 체육대회를 즐기기 위해 본교에 가더라도 본교 학생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받는다. 본교 학생들은 쿠누기가오카의 엄격한 학제 과정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난 F반 학생들보단 나아, 하며 위안거리로 삼는다. 비교 대상이 되는 최하위 F반 학생들은 본교에 가서도, F반 교실에 가서도 자신은 결국 F반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학생이라며 포기하고 만다. 그들을 믿고 이끌어주려고 했던 전(前) F반 담임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희들은 어차피 안되는 녀석들이라며 자괴감 가득한 말을 한다. 그들은 외부의 시선, 그리고 아무리 어떻게 해도 이 격차를 좁힐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성장을 포기하고 F반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F반에 찾아온다. 여기서부턴 만화답게 판타지 요소가 나오기 때문에,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 담임 선생님이 지구를 파괴하러 온 외계 생물체인 것!

 

영화화된 <암살교실>의 살선생님▶

 

 

 

 

문어같은 생김새에, 성격 좋게 늘 웃고 있는 표정, 자유자재로 몸을 변형시키는 촉수를 갖고 있는, 악당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외계 생명체가 바로 그들의 선생님이다. 외계 생명체는 올해 말에 이 지구를 파괴할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고를 하면서도 동시에,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의 F반 선생님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일본 정부는 이를 용인할 수 없었지만, 제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올해 말이고 뭐고 지금 당장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협박을 해, 어쩔 수 없이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의 교장 선생님의 동의를 얻어 그를 F반으로 보낸다. 이를 허가한 교장 선생님의 이유는 간단했다. ‘아차피 F반은 Fail의 F반이니까, 수업에 방해되는 게 가봤자 상관없다’는 것. F반과 같은 시스템을 만든 교장다운 발언이었다. 여기서 더 어이없는 조건은 바로, 본인을 살殺선생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한 이 외계 생명체가, F반 학생들을 암살자로 길러 자신을 올해 말까지 암살하는 것도 허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F반 학생들은 지구의 원수일지도 모르는 이 외계인에게 수업을 받는 것도 모자라서, 정부로부터 온 관계자에게서 암살 훈련까지 받게 된다. (...)

 암살에 성공하면 막대한 포상금도 받을 수 있어서, F반 학생들은 인생 역변을 위해 여러모로 그의 암살에 시도하지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을 암살하려는 학생들이라니, 발상이 참 과감하다.)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자 F반 학생들은 여전히,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 라며 스스로를 질책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암살을 잘 한다는 게 더 문제 아닌가?) 살선생은 그런 학생들을 보며 아이들의 성적부터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이 외계 생명체의 능력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마하2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F반에 있는 학생 전원이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 그리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과 교과를 연결할 수 있는 수업 연구의 시간이 충분하다. 애니메이션 덕후에게 애니메이션 ost 가사로 암기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공을 던지는 속도와 수학 과목을 접목하여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눈을 마주쳐준 것은 살선생님이 거의 처음이었기에 점차 능률이 오르고, 작은 성과를 이끌어내며 자신감을 되찾는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거라 믿었던 그들에게도 사실은 성장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시오타 나기사는 성장에 있어 색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바로 그는, 살선생님을 암살해가는 과정에서 암살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하지만 암살자로서 자라는 것이 결코 환영받을 직업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암살자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암살자의 길을 걸었던 거지,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 자라는 나기사는 상황이 다르다. 나기사가 F반에 오게 되면서 어머니의 압박도 심해졌는데, 어머니의 인생 제 2막을 대신 살아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나기사는 진로 상담의 시간 때 어머니와 솔직하게 마음을 부딪히며, 암살로서의 재능이 다른 방향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암살교실> 114화 중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스스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성장을 멈췄던 아이들이, F반이라고 하는, ‘경쟁에서 실패한 학생들의 모임’에서 그들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멘토를 만나면서 성장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돋움한다. 결국 나기사는, 그들을 솔직하게 바라봐주었던 살선생님으로부터 감화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암살자가 아닌, ...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나기사는 어머니가 바라는 인생의 기로를 따라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F반에 가게 되면서 그 경로를 이탈했다. 한번 정해진 길에서 탈락하다니, 그와 어머니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인 셈이었지만, 결국 그의 길은 그가 다시 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번 경쟁에서 탈락한 자에게도 기회를!

 경쟁 사회란 이토록 무섭고, F반은 그런 경쟁 사회의 탈락자들을 모아놓은 공간이었다면, <은수저>의 주인공 하치켄 유고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든 패배자로서의 감각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농업 고등학교에 가면 일반 과목에서 승부를 봄으로써 전교 1등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하치켄 유고는 수업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서,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은 전부 졸업 후 진로 (대부분은 농가 출신의 학생들이라서 가업을 물려받는다거나, 농업과 관련된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다.)를 이야기는 틈바구니에서 본인의 이름만 소개하는 등 변변찮은 모습을 보인다. 꿈이 없어서 도피하듯 온 곳에서 꿈에 대한 열정으로 더욱 가득 찬 동급생들을 만나자 역시 자신은 쓸모 없는 인간인가, 꼭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하는가, 등의 반발심을 갖는다. 농가 출신의 학급 친구에게, 너희들은 졸업하면 바로 가업을 물려받으면 되니 고민할 것도 없어서 좋겠다는 실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친구가 실은, 어머니 혼자서 농장을 꾸리며 빚을 갚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서 농가의 자식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현실을 점점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친구의 이름은 코마바인데, 그는 야구에 재능이 있어 일본 고교 야구의 결승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고시엔こうしえん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젊은 나이에 스카웃 될 수 있고, 계약금으로 기울어져가는 코마바 목장의 빚을 갚아 다시 가세를 세우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주인공인 하치켄과는 달리, 확실히 목적이 있는 삶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시엔 진출에 실패하며 그길로 곧바로 학교를 자퇴한다. 학교를 더 이상 다녀봤자 학비 부담만 되고, 아르바이트를 해 조금씩 가계 수입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자퇴하는 그를 보고 친구들은 조금만 더 버티지, 하며 아쉬워하지만 친구인 하치켄도 그의 결심을 말릴 수 없었다. 하치켄은, 도망치듯이 올 수밖에 없었던 오오에조 농업 고등학교에서, 자신은 앞서 접해보지도 못했던 가축 돌보기, 마술부에서 승마하기, 버려진 화덕을 활용한 피자 만들기 등을 하며 점점 경험을 쌓아간다. 특히 오오에조 농업 고등학교 마술부에서 관리하는 말들은 다른 경마장에서 실적을 내지 못한 말들을 싼값에 데려왔다거나, 다른 실습시간에 사용하는 기계들은 코마바 농장과 마찬가지로 폐업한 농장에서 싸게 들여왔다거나 하는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하치켄은 새로운 시선으로 고등학교를 바라보게 된다. 본인처럼, 한번 낙오와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 코마바처럼, 한번 실패했다고 고시엔의 꿈이라거나, 목장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접는 게 아니라, 다시 도전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앞서 이 글의 서론에서 언급한 경제 동물의 이야기도 <은수저>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은수저>에 등장하는 가축 동물들은 실적이 낮거나 다치면 바로 폐기된다. 하지만 하치켄은, 그런 동물들마저 아우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를 끝으로 내몰았던 아버지와 마주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잠깐 사정이 있어 돌아갔던 고향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실패나 무모한 도전을 나무란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말에서 하치켄은, 친구 코마바의 실패마저 매도되는 기분을 느꼈고, 그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은수저> 73화 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전문성을 인정했기에 자신이 창업하려고 하는 사업의 출자자로서 협조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치켄 유고는 본인의 꿈을 창업으로 정한다.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사업은, 폐기 처분을 받은 동물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 목가적인 은퇴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친구 코마바의 꿈과, 과거의 도피를 실패라고 여겼던 자신의 경험을 살린 주인공만의 결말인 것이다. 그는 결국 성장하고, 오오에조 농업 고등학교에서 최초로 창업한 졸업생이 되어, 이후 고등학교의 신입생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선구자가 되기도 한다. 일반고교를 가고 싶지 않아 도피한 그가 선구자가 되다니.

앞날은 모르지

 일본 만화보다 더 친숙한 한국 웹툰으로 눈을 돌려볼까. 그리고 가상이 아닌 실제 현실 인물을 만나볼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일상툰의 대가, 자까의 <수능일기>에서 우리는, 작가 본인이 수능 재수를 했던 경험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작인 <대학일기>에서도 종종 특별편이나 QnA를 활용해 본인의 재수 경험을 말한 바 있었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일상툰이 <수능일기>이다. 일상툰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형식의 웹툰이며 많은 독자들 및 예비 수험생들, n수생들이 작가의 경험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자까는 재수를 감안하여 원하는 학과은 수의학과에 들어갔으며, 대학 생활을 하며 종종 재미로 웹툰을 그리던 것으로 데뷔하여 <대학일기>를 연재하였다. 졸업을 하며 수의학과에 들어왔던 의미인 수의사가 될지 고민하였지만, 그는 결국 <독립일기>를 이어 연재하는 것으로 웹툰작가로서의 진로를 좀 더 이어나간다. 수의사가 되지 않고 웹툰작가가 된다니, 그리고 대학 생활 중 재미로 한 취미 활동이 진로로까지 이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인생은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것이다.

뒷걸음질 경험도 나의 성장 기회임을

 <은수저>의 작품 속에서 은수저의 의미는, 선조들이 일구어온 역사와 신뢰를 의미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선물로 은수저 세트를 선물하는 부모는, 그 가문에 대대로 은수저 세트를 보급해온 장인에게 은수저 세트를 부탁하고, 장인은 몇 번 안되는 일거리라도(아이가 태어날 때만 은수저를 사니까..) 그것이 곧 제 선조가 쌓아올려온 신뢰라서 자신의 가게에만 주문하는 것을 알아, 그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해 은수저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오에조 농업 고등학교의 기숙사 식당 문에는 은수저가 걸려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수저의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금수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을 의미하고, 흙수저는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한 번 수저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 우리는 누구에게나 은수저의 마음가짐이 있다. 은수저라 함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그 상황이 우리가 도피한 상황이더라도, 그곳에서의 경험은 모두 나의 성장 가능성이 된다는 것이다. F반에 가서 만난 선생님과의 인연에서 자신만의 진로를 찾은 나기사처럼, 도망쳐 오오에조 농고에 도달하였다가 창업을 도전하게 된 하치켄처럼, 재수를 하여 원하던 수의학과에 갔으나 현재는 웹툰 작가를 하고 있는 자까처럼. (자까의 경우, 도피한 것은 아니니 나기사와 하치켄의 경우와는 다르긴 하다.)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학업중단 생각 여부 및 생각 이유에 대한 응답을 살펴보면, 성적이 좋지 않아서가 14.5%, 공부가 하기 싫어서가 27.2%에 달해 다른 이유들(괴롭힘을 당해서 5.1%,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0.4%, 학교 규율이 엄격하고 자유롭지 않아서 3.3% 등)에 비해 월등한 비율을 차지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여파가 학교로까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학교 생활이 지루해지고 교과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고, 성취감은 낮아진다. 그러니 도피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도피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도피를 한 곳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나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거나,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겐 성장 가능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은수저를 지닌 채 태어났으며, 어떤 곳에서든 그곳에서의 경험이 오늘과는 다른 내일의 나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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